외부자가 본 북한의 선전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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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설명하고 쓴 사람은 미국인이고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북한으로 조선어를 공부하려고 온 트라비스 라는 유학생이 직접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점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글이다.
떠들썩한 전승절,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평양 외곽의 시골 마을이었다. 새로 문을 연 곳이라서 민과 로를 포함한 우리 중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이 ‘혁명사적’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혁명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지도자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활동을 수행한 장소다. 이런 장소들은 국가의 우상화물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를 환영하는 이곳은 곤자리혁명사적관으로 김일성이 1950~1953년 한국전쟁을 지휘할 당시 머무른 곳이었다. 아니면 그저 우리가 그렇게 믿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동굴 안에는 탁 트인 박물관이 조성돼 있었다. 우리는 여러 시설을 둘러봤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200회에 달하는 회의가 열렸다는 김일성의 사무실이었다.
밤하늘 빛깔의 천장에서는 가짜 별이 반짝였다. 집무실은 연극 무대 세트 같았다. 고급 앤티크 가구를 복원한 것 같은 책상과 의자는 새로 페인트칠을 입혀 반짝거렸다.
해설강사는 “적군이 우리 장군님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증거로 벽에 난 총알구멍을 가리켰다. 아무렴, 그것은 여기 있는 모든 것만큼이나 사실적으로 보였다. 뒤쪽으로 연결된 땅굴을 따라가 보니 작은 교실 하나가 나타났다.
“이곳은 아버지께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시는 동안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수업을 받으시던 곳입니다.” 옆을 흘깃 보니, 평소 우리 뒤를 조용히 따라다니던 로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동굴 입구에 둥글게 배치해놓은 네 개의 의자 사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김일성 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 최초의 세 영웅 전사를 만난 곳입니다.” 의자를 살펴보는데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디서 봤더라. 그 순간 갑자기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내 베를린 집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의자가 있었지. 혹시 누가 아는가? 어쩌면 이케아가 1950년대 조선에 이런 디자인을 수출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날의 마지막 일정은 또다시 불시에 방문한 김 동무와 함께했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대동강 동쪽의 주체사상탑 뒤편 골목길에 숨겨진 새로운 바였다.
김 동무는 맥주와 김치전을 주문했다. “오늘 여러분이 곤자리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드디어 조국해방전쟁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됐겠군요!” 그는 내게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슬쩍 눈짓하며 웃음 지었다. 나는 그가 고위층 인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틀림없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북한의 특권층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참전용사들의 자손들이다.
실제 전쟁을 겪은 이들의 목격담은 분명히 대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평양은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김일성과 수뇌부는 중국과의 접경지대까지 후퇴해야 했으며 전쟁이 끝나서 평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백두산의 김정일 출생지와 마찬가지로 곤자리는 완벽한 세트장이다.
“얘기 좀 해요.”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알렉상드르가 말했다. 밤마다 나누는 대화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은 모두 하루하루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알렉상드르는 바로 분통을 터뜨렸다. 만약을 대비해 우리끼리 남았을 때는 항상 속삭이듯 대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정말 그들은 사람들이 이런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믿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다들 정신병에 걸렸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요.”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을 상대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알렉상드르가 말했다. “NGO나 외국 대사관 직원들과 일하는 사람들이요.
그들이야말로 진정 모순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면서도 막상 현장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서 그들의 머릿속이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생각해보세요.”
알렉상드르는 어둠에 뒤덮이고 있는 도시의 희미해지는 불빛을 바라봤다. “두바이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어땠어?” 내가 물었다.“그 사람들은 이 체제에 믿음이 있어? 조금이라도?”
“그들은 바깥세상을 봤잖아요. 혼란스럽죠. 그들은…… 말하자면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할까요.”
“결국은 헌신 아니면 믿음이죠. 그 둘은 달라요. 이 체제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부류가 있고, 굳이 믿지는 않지만 그저 헌신하는 부류가 있어요. 전 두바이에서 그 두 부류를 다 만났어요. 당연하겠지만, 외국인인 우리는 어떻게든 이 체제로 인해 혜택 받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절대로 만날 수 없어요.
그렇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죠. 그들은 이 모든 게 허튼소리고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데다가 그로 인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체제가 막을 내리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예요.”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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