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선구(先구)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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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선구(先驅)》 - 1945. 12 : 원문 : 원문 전체
잡지 선구(先驅)의 여론 조사 : 1945.10.10 ~ 11.09 한국 및 미국 자료
잡지 선구(先驅)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 군무부장 김일성
선구의 여론조사에는 조선인 만주 빨치산 인사들은 아무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빨치산 시절 북한 김일성보다 더 상관이었거나 활동이 왕성했던 오성륜 (吳成崙, 1900~?) = 전광(全光), / 허형식(許亨植, 1909∼1942), / 김책 (金策, 1903 ~ 1951), / 최용건 (崔庸健, 1900 ~ 1976), / 최현 (崔賢, 1907 ~ 1982) 등의 이름도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다.
북한 전문가 한 분은 여기서 거론되는 김일성은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지, 빨치산 도망병 출신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아닌 것이다 (진지첸은 소련군 시절 북한 김일성의 이름). 전문가 한 분의 의견이지 확실하지 않다. 오성륜은 1941년 변절하여 일본에 투항했다고 하지만 변절하기 전 북한 김일성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그의 이름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변절했다고해서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이름 자체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적이 없다.
허형식도 마찬가지로 국내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전사했기 때문에 거론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빨치산 김일성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김일성 장군과 같은 이름 때문에 착시현상으로 후대에 마치 전부터 유명했던 인물처럼 조작된 것이다.)
이 이부분도 빨치산의 김일성과 전설적인 김일성을 따로 구분하는데 좀 어색하다. 전형적인 박정권때의 이후락의 지시에 따른 이명영의 글 들과 맥락이 비슷하다. 이명영 자체도 일제시대때 친일에 가까웠으니..
김일성 이름이 유명했던 것은 학교나 장터 등을 통해 구전으로 퍼진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한 풍문 때문이다. (여기서도 내가 나름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맹률이 그렇다고 해도 문맹률로 억지로 뒤집어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적인 의도가 엿 보인다. 그리고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호기심과 소문의 수용성은 의외로 빠르고 깊었다. 그리고 위의 글 처럼 학교나 장터의 구전들이, 빨치산의 김일성이 아닌 전설적인 노 김일성 장군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 ) 잡지 선구의 여론조사 : pp.339~344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에는 해방 직후 유력 정치 지도자별 선호도에 대한 설문지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여론조사는 제1호, 제2호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조사기간은 모두 1945년 10월 10일 ~ 11월 9일간이다. 여기에 김일성(金日成)과 관련된 부분만 보면 여론조사 제1호 : 가장 역량이 뛰어나고 양심적인 정치가에 대한 조사
이 여론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위에 나오는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인것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김일성이란 이름이 주는 착시현상일 뿐이며, 조사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도 생각이 틀린 것이다. 자꾸 착시현상 하는데 억지일뿐이다. 그렇다면 저 여론조사의 김일성대상이 전설의 노 김일성 장군이라는 허구에 가까운 또는 진짜로 존재했던 사람.. 김일성이라는 뜻 같은데 그렇다면 노 김일성 장군은 더 높은점을 받아야 앞뒤가 맞다. 분명 북한의 빨치산의 김일성이 맞다.)
북한 김일성은 1945년 9월 19일 비밀리에 원산으로 입북하여 평양으로 와 김영환이란 가명을 쓰며 잠행하다 (여기서도 김영환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10월 14일 처음으로 평양의 대중 앞에 김일성 장군이라 자칭하며 나타났다.
서울의 언론이 이 소식을 보도한 것은 10월 19일께이다. 여론 조사 기간이 1945년 10월 10일~11월 9일이므로 김일성의 평양 출현 소식은 이 기간 중에 서울에 전해지긴 했으나, 과연 위 조사의 김일성을 북한 김일성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뭘 고려한다는 건가? 자꾸 의심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데 빨치산의 김일성이 어느정도 유명끼가 있다면 충분히 나올수 있는 순위다. )
설사 북한 김일성의 평양 출현을 알았던 사람이라도 가짜 시비가 불거지기 전이라 그를 구전의 김일성 장군과 동일 인물로 알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크다. (구전의 김일성이란 도대체 뭐인가? 아예 빨치산 김일성에 대해 아예 인정하지 않는 생각에서 글을 쓰고 있다.)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그의 평양 출현조자 잘 모르고 있을 때이고, 북의 김일성이 실제로 어디서 뭐 하다 온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까지 평양의 김일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 것도 전해진 흔적이 없고, 그의 나이 때문에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고 하는 평양에서 벌어진 논란도 아직 서울의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빨치산의 김일성에 대해서 신문사에서도 발행됐고 분명 나름대로 유명했고 이 글쓴이의 주장대로 구전에서의 김일성이 있다고 쳐도 이미 유명했고, 저 글은 많이 어색하다.
환영인사에서 김일성이 너무 젊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의심도 가고 가짜일거다 라는 생각들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 놈의 나이때문에 김일성 가짜설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 그 고 이명영 교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이 사람이 김일성과 관련하여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등도 돌아다니면서 글을 썼는데 북한의 김일성 가짜설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던 사람인데 글을 보면 순 억지 부분도 많고 박정권의 중앙정보부의 이후락의 뒷배경과 압력이 있었다는것이 밝혀졌고. 이렇게 해서 김일성의 역사가 더 복잡해지고 왜곡되는 부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pp.45~51 (편집인 安峰守. 발행인 高麟燦) 김남식, 이정식, 한홍구, 한국현대사 자료 총서 7권 pp.696~699.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여론조사 원문 제1호 여론조사
대통령 : 이승만 431, 김구 293, 여운형 78, 무기록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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