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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선구(先구)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Korea, Republic of 돌통 0 372 2020-07-15 16:49:09

잡지 《선구(先驅)》 - 1945. 12 : 원문  : 원문 전체
창간호(1945년 10월호, 1권 1호) 표지가 나와 있으나, 여론조사는 12월호(1권 3호)에 실렸다.

 

 

잡지 선구(先驅)의 여론 조사 : 1945.10.10 ~ 11.09 한국 및 미국 자료

 

 

잡지 선구(先驅)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 군무부장 김일성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여론조사 원문

 
 
 

선구의 여론조사에는 조선인 만주 빨치산 인사들은 아무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빨치산 시절 북한 김일성보다 더 상관이었거나 활동이 왕성했던 오성륜 (吳成崙, 1900~?) = 전광(全光), /  허형식(許亨植, 1909∼1942), / 김책 (金策, 1903 ~ 1951), / 최용건 (崔庸健, 1900 ~ 1976), / 최현 (崔賢, 1907 ~ 1982) 등의 이름도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다.

 

 

북한 전문가 한 분은 여기서 거론되는 김일성은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지, 빨치산 도망병 출신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아닌 것이다 (진지첸은 소련군 시절 북한 김일성의 이름). 전문가 한 분의 의견이지 확실하지 않다. 오성륜은 1941년 변절하여 일본에 투항했다고 하지만 변절하기 전 북한 김일성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그의 이름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변절했다고해서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이름 자체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적이 없다.

 

 

허형식도 마찬가지로 국내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전사했기 때문에 거론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빨치산 김일성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김일성 장군과 같은 이름 때문에 착시현상으로 후대에 마치 전부터 유명했던 인물처럼 조작된 것이다.)

 

이 이부분도 빨치산의 김일성과 전설적인 김일성을 따로 구분하는데 좀 어색하다. 전형적인 박정권때의 이후락의 지시에 따른 이명영의 글 들과 맥락이 비슷하다.

이명영 자체도 일제시대때 친일에 가까웠으니..



만주 빨치산 인사들의 활동은 국내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고, 김일성, 최현 등은 1930년대 후반 신문에 자주 보도되기는 했으나, 당시 문맹률이 80~90% 수준이고, 신문 구독자 수도 미미할 때라 그런 기사가 지명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김일성 이름이 유명했던 것은 학교나 장터 등을 통해 구전으로 퍼진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한 풍문 때문이다. (여기서도 내가 나름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맹률이 그렇다고 해도 문맹률로 억지로 뒤집어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적인 의도가 엿 보인다. 그리고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호기심과 소문의 수용성은 의외로 빠르고 깊었다. 그리고 위의 글 처럼 학교나 장터의 구전들이, 빨치산의 김일성이 아닌 전설적인 노 김일성 장군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MBC 특별기획.제48회,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 근거자료집 p.214 : 국회도서관
동향/연구보고서, [서울] : 문화방송 시사제작국, 2002
 


잡지 선구의 여론조사 : pp.339~344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에는 해방 직후 유력 정치 지도자별 선호도에 대한 설문지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여론조사는 제1호, 제2호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조사기간은 모두 1945년 10월 10일 ~ 11월 9일간이다. 여기에 김일성(金日成)과 관련된 부분만 보면
 
 
 

여론조사 제1호 : 가장 역량이 뛰어나고 양심적인 정치가에 대한 조사
1,957매의 설문지를 배포하고 626매를 회수하여 집계 (설문지 회수율 32%)


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이관술 12%, 김일성 9%, 최현배 7%, 김규식 6%, 서재필 5%, 홍남표 5%. 외 23명;
(백분율 합계가 100%를 넘는 이유는 복수 추천 허용 때문임)



여론조사 제2호 :


1,957매의 설문지를 배포하여 9백78매를 회수하여 집계 (설문지 회수율 50%)

 


<내각의 적임자 조사>


대통령 : 이승만 431, 김구 293, 여운형 78, 무기록 176.
재무부장 : 조만식 176, 김성수 98, 정태식 39, 김규식 37, 기타 7명 133, 무기록 279
군무부장 : 김일성 309, 김원봉 98, 이청천 78, 김규식 27, 기타 2인 36, 무기록 226

 


.......
<과거 조선 혁명가>

 


여운형 195명, 이승만 176명, 박헌영 168명, 김구 156명, 허헌 78명, 김일성 72명, 김규식 52명, 백남훈 48명, 최용달 40명, 박문희 19명, 이관술 15명, 최현배 12명. 와 같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위에 나오는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인것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김일성이란 이름이 주는 착시현상일 뿐이며, 조사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도 생각이 틀린 것이다.  자꾸 착시현상 하는데 억지일뿐이다. 그렇다면 저 여론조사의 김일성대상이 전설의 노 김일성 장군이라는 허구에 가까운 또는 진짜로 존재했던 사람.. 김일성이라는 뜻 같은데 그렇다면 노 김일성 장군은 더 높은점을 받아야 앞뒤가 맞다. 분명 북한의 빨치산의 김일성이 맞다.)

 

 

북한 김일성은 1945년 9월 19일 비밀리에 원산으로 입북하여 평양으로 와 김영환이란 가명을 쓰며 잠행하다 (여기서도 김영환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10월 14일 처음으로 평양의 대중 앞에 김일성 장군이라 자칭하며 나타났다.

 

 

울의 언론이 이 소식을 보도한 것은 10월 19일께이다. 여론 조사 기간이 1945년 10월 10일~11월 9일이므로 김일성의 평양 출현 소식은 이 기간 중에 서울에 전해지긴 했으나, 과연 위 조사의 김일성을 북한 김일성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뭘 고려한다는 건가? 자꾸 의심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데 빨치산의 김일성이 어느정도 유명끼가 있다면 충분히 나올수 있는 순위다. )

 

 

설사 북한 김일성의 평양 출현을 알았던 사람이라도 가짜 시비가 불거지기 전이라 그를 구전의 김일성 장군과 동일 인물로 알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크다.  (구전의 김일성이란 도대체 뭐인가? 아예 빨치산 김일성에 대해 아예 인정하지 않는 생각에서 글을 쓰고 있다.)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그의 평양 출현조자 잘 모르고 있을 때이고, 북의 김일성이 실제로 어디서 뭐 하다 온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까지 평양의 김일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 것도 전해진 흔적이 없고, 그의 나이 때문에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고 하는 평양에서 벌어진 논란도 아직 서울의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빨치산의 김일성에 대해서 신문사에서도 발행됐고 분명 나름대로 유명했고 이 글쓴이의 주장대로 구전에서의 김일성이 있다고 쳐도  이미 유명했고, 저 글은 많이 어색하다.

 

환영인사에서 김일성이 너무 젊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의심도 가고 가짜일거다 라는 생각들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 놈의 나이때문에 김일성 가짜설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 그 고 이명영 교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이 사람이 김일성과 관련하여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등도 돌아다니면서 글을 썼는데 북한의 김일성 가짜설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던 사람인데 글을 보면 순 억지 부분도 많고 박정권의 중앙정보부의 이후락의 뒷배경과 압력이 있었다는것이 밝혀졌고. 이렇게 해서 김일성의 역사가 더 복잡해지고 왜곡되는 부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초대 대통령은 누구?, 한국여론협회 조사 발표 동아일보 1946년 7월 23일자 3면.
 


(문) 제1차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승만 박사 1916인 29%


김구 주석 702인 11%


김규식 박사 694인 10%


려운형 씨 689인 10%


박헌영 씨 84인 1%


기타 110인 2%


몰으겟다 2476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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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12일 선구회(先驅會)가 잡지『선구(先驅)』12월호에 해방직후 정치가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정당·언론사·문화단체·학교 등 105개 단체를 대상으로 같은 기간에 제1호, 제2호 2종의 다른 설문지로 ‘조선의 지도자’ 여론을 조사한 결과이다.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pp.45~51 (편집인 安峰守. 발행인 高麟燦)
김남식, 이정식, 한홍구, 한국현대사 자료 총서 7권 pp.696~699.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여론조사 원문
 
 

제1호 여론조사
(여론조사 제1호 양식)

 


우리는 양심적 정치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인물을 찾고자한다. 과거 36년간 자유를 갖지 못한 우리는 인물의 표현방식이 없어 오늘날의 빈곤을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건국이라는 대창업이 앞에 있으니 반드시 우리를 지도하여줄 인물도 있다는 의미에서 출발하고 싶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지도자를 찾고자하는 이 취지를 양해하사 찬조하여 주심을 바라는 바이다.


추선(推選)되는 인물의 자격


1. 국제정세에 정통하고
1. 조선사정에 통달하고
1. 가장 양심적
1. 가장 과학적
1. 가장 조직적
1. 가장 정치적으로 포옹할 아량을 가질 것



조사 결과 : 1,957매의 설문지를 배포하고 626매를 회수하여 집계 (설문지 회수율 32%)


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이관술 12%,
김일성 9%, 최현배 7%, 김규식 6%, 서재필 5%, 홍남표 5%. 외 23명;


(백분율 합계가 100%를 넘는 이유는 복수 추천 허용 때문임)

 



제2호 여론조사


1,957매의 설문지를 배포하여 9백78매를 회수하여 집계 (설문지 회수율 50%)
< 정체> (생략)

 


<내각>

 

대통령 : 이승만 431, 김구 293, 여운형 78, 무기록 176.


내무부장 : 김구 195, 여운형 118, 안재홍 59, 허헌 58, 기타 4인 61, 무기록 85


외무부장 : 여운형 274, 이승만 137, 김규식 58, 김구 55, 기타 2인 36, 무기록 214


재무부장 : 조만식 176, 김성수 98, 정태식 39, 김규식 37, 기타 7명 133, 무기록279


군무부장 : 김일성 309, 김원봉 98, 이청천 78, 김규식 27, 기타 2인 36, 무기록 226


사법부장 : 허헌 371, 김병로 58, 최동오 52, 이강국 42, 기타 36, 무기록 215


문교부장 : 안재홍 275, 김성수 68, 김창준 58, 기타 6명 114, 무기록 249


경제부장 : 백남운 215, 이관술 98, 이(박)헌영 36, 김규식 34, 기타 7명 145, 무기록 246


교통부장 : 최용달 196, 하필원 58, 안재홍 36, 기타 10명 215, 무기록 229


노동부장 : 박헌영 371, 여운형 38, 기타 212, 무기록 213

 



<과거 조선 혁명가>


여운형 195명, 이승만 176명, 박헌영 168명, 김구 156명, 허헌 78명, 김일성 72명,
김규식 52명, 백남훈 48명, 최용달 40명, 박문희 19명, 이관술 15명, 최현배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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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편찬위 한국사 데이타베이스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의한 신문과 잡지의 창간을 허가하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 11월), 《선구》(1945년 11월), 《백민》(1945년 12월) 등이 출간되었다. ... 군정장관은 1946년 7월 18일 특별 성명을 발표하여 “1946년 5월 28일 이전에 법령 제 ..... 싣고 있어 해방정국에서 미군정의 여론조사와 관련된 내용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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