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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 결정타는 조명선 상장의 죽음이었다
Korea, Republic of 돌통 0 206 2021-12-22 02:33:58
●   김일성 급작스러운 사망 내막...주변엔 구심환 없어서

김일성은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시자로 반세기 가까이 집권했다.그의 급사는 북한에서 정치적 대지진을 일으켰다.북한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비통해 했다.

  북한 개성 판문점에는 특이한 기념비가 있다.이 기념비는 높이 솟은 것이 아니라 가로놓인 장방형이다.기념비에는 읽기힘든 조문(朝文) 수서(手書) 한 줄에 '1994.7.7'이라는 아랍어 숫자가 적혀 있다.

해설위원은 김일성의 서명임을 설명한다.

  김일성의 절필이었다.

  김일성은 돌연사로 사망했다.그의 병고를 앞두고는 한국과의 통일회담에 관한 서류를 검토하며 문서에 서명하고 연월일을 쓰기도 했다.김일성의 친필을 보면 글씨가 반듯하고 병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일성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남한과의 통일 문제에 매달렸다.이 기념비는 김일성을 기리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판문점에 세워졌다고 한다.

  김일성은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시자로 반세기 가까이 집권했다.김일성은 하수를 점검한 뒤 특별열차를 타고 희천으로 간 뒤 그곳에서 차를 타고 평양 외곽의 묘향산 별장으로 이동했다.보건의사는 즉각 헬리콥터를 급조해 김일성을 평양 봉수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일성은 생애 마지막 사인을 한 뒤 이튿날 새벽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그의 기일인 1994년 7월 8일은 조선 역사상 중요한 날이 됐다.조선인의 말로 바로 그날부터 김정일 시대가 열린거다.

  1994년 김일성은 82세였다.김일성은 평소 직업에 충실하고 신체적 자질이 좋아 늙었다고 느끼지 못하고 하루 열 몇 시간씩 일만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김일성의 스케줄은 꽉 차 있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시험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iaea 요원들의 조건 없는 사찰을 요구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다.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회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김일성은 즉각 환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6월 12일 미국에서 한국의 수도 서울에 도착했다.미국은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다.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남한에서 승용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수도 평양으로 향한다.카터는 16일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카터 전 대통령은 3일 동안 평양에 머물렀다.김일성은 카터와 매일 장시간 회담하고 저녁에는 서류 읽기에 바빴다.마지막 날 김일성과 카터의 회담은 6시간 동안 이어진 것으로 김일성은 중간 휴식 시간 20분 뿐 이었다.김일성 부인 김성애가 이를 보고 나이는 속일수 없다는 걸 일깨워줬다.

  카터의 방문은 김일성을 다시 바쁘게 만들었다.카터 전 대통령은 한국 측의 중요한 제안을 전달하고 김일성을 서울로 초청했다.이 소식은 김일성을 흥분시켰다.그의 서울 방문이 성사되면 한반도 남북 정상 간 첫 만남이 되고 그의 서울 방문은 역사에 남을 해빙의 여행이 된다.

  카터를 보낸 뒤 김일성은 강성산 북한 정무원 총리 등을 불러 회의를 열고 북남 정상회담 방안과 관련한 회담 문안을 논의하며 이 같은 중대 사업을 준비했다.그는 우리 정부에 전화를 걸어 28일 판문점에서 이번 북남 정상회담에 대한 예비회의를 갖기로 했다.

  김일성은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시자로 반세기 가까이 집권했다.김일성은 하수를 점검했다.

  곧이어 김일성은 시골로 내려가 각지를 돌며 하수사업을 점검했다.여름 수확이 좋지 않아 김일성은 식량난으로 북한의 목을 조르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은 무엇보다 곳곳에서 식량 생산량을 부풀리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일성은 하수를 점검한 뒤 특별열차를 타고 희천으로 간 뒤 그곳에서 차를 타고 평양 외곽의 묘향산 별장으로 이동했다.묘향산은 중국의 루산(夏日山)처럼 여름이 시원하다.묘향산 별장은 김일성의 여름 집무실이나 마찬가지다.

  김일성이 묘향산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1994년 7월 7일 심야였다.

  김일성이 남한과의 통일회담에 관한 문서를 읽고 서명한 뒤 비서가 보고하러 왔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이 있다.》

보고하러온 비서는 75세의 조명선 상장이 병사했다는 극히 불행한 소식을 김일성에게 보고했다.조명선은 14세 때부터 김일성을 따라다니며 북남전을 치르며 우정을 쌓아왔다.이 갑작스런 비보는 김일성을 심하게 자극했다.

  김일성은 조명선 상장의 병인을 자세히 물어보니 뇌일혈로 밝혀졌다.평양 최고의 병원인 봉화병원은 책임감이 두려워 보수적 요법만 동원했다.김일성은 화가 나서 밤새 봉화병원장을 불러 분명하게 좌우 사정을 들었다.

폭발한 분노와 과도한 과로와 과도한 자극으로 김일성은 갑자기 땅에 쓰러졌다. 그의 주위 직원들은 당황하여 엉망이 되었다. 보건의사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검사 결과 급성 심장 발작으로 판명됐다. 김일성은 그동안 심장병이 확인된 적이 없다.이 때문에 보건의사의 휴대용 의약상자에는 속효 구심환이 들어 있지 않았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묘향산은 풍치유람지라 시설이 좋은 병원이 없다.

  보건의사는 즉각 헬리콥터를 급조해 김일성을 평양 봉수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헬리콥터 한 대가 명령을 받들어 급히 이륙하다.

  날은 어둡고 바람은 세고 비는 폭우였다.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 이 헬리콥터는 급작스레 묘향산에 부딪혔다니!

  다시 두 번째 헬기를 급히 들여와 김일성 별장 50m 앞에 착륙시켰다.

  광풍과 폭우 속에서 사람들은 들것에 손을 얹고 김일성을 헬리콥터로 보냈다.

  이런 실랑이 끝에 김일성은 죽어가고 있었다.

  김일성은 8일 새벽까지 봉수병원에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응급실로 실려갔고, 이때는 이미 백약이 무효였다. 새벽 2시, 김일성의 심장박동이 멎었다.

  김일성의 죽음은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죽음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브레즈네프는 세 옛 전우, 즉 츠비곤 크게브 대장, 지네프와 소련군 상장 그루셰보이 때문에 상심한 나머지 심장발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때쯤 김정일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김정일은 극도로 비통하여, 추모하고 연일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추모식에서 김정일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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