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의 숙청..《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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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피의 숙청..《 1 》 ◇ 이 글의 소개 ※ 이 글은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역사에서 절대 뺄수없는 현 북한의 근간이 되고 형성되는 절대적이고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사건은 바로 《 8월종파 사건과, 연안파의 피의 숙청 》이다. 이 사건의 실제적이고 팩트에 바탕으로 된 글이다. 1945년 해방 직후 북한에는 다양한 정치적 파벌이 존재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게릴라파와 연안파였다. 이처럼 북한에 이 시기는 다양한 정치집단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195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1956년 8월종파 사건으로, 북한 역사상 유일하게 조직화된 반김일성 운동과 연이은 연안파의 몰락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비록 중국이 사후에 이 사건에 개입했지만, 연안파의 철저한 근절을 막는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8월의 사변과 연안파의 척결은 북한에 고도로 집중되고 균일한 권력구조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였다. 8월 종파사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학자들은 이전에 기밀로 유지되었던 소련의 파일을 사용하여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8월 종파 사건과 관련된 중국 자료는 현재까지도 공개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중국어 자료 대부분이 개인 자료나 중국으로 망명한 연안 분파 구성원의 회고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근 마오쩌둥 회담 기록이 나오기 전까지는 중국 고위 관리들의 관점을 반영한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다. 1956년 9월 마오쩌둥은 소련 및 북한 대표단과 1대1 회담을 가졌는데, 이는 8월종파 사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반영한 것이었다. 이들 기록의 발견은 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 연안파의 형성과 독립운동> 일반적으로 중국으로 망명한 이들이 수행한 독립운동은 중국 북부(만주)에서 활동하는 유격파(게릴라)와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독립동맹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직접적인 지지와 지도를 받은 독립동맹은 '연안파'라 불리게 되었다. 연안파는 중국 공산당과 가장 가까운 유대를 자랑하며, 조직적으로는 조선 독립동맹과, 의용군과 연계되어 있었다. 이들 조직은 1938년 "정부군사위원회 정치국"(당시 저우언라이가 부국장)이 후베이성 ??우한지역에서 '조선혁명군'을 모아 '조선청년야전단'을 조직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한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1938년 10월 10일 '조선민족혁명당'은 저우언라이의 영도하에 운영될 "조선의용대"를 조직했다. 우한이 적의 손에 넘어가자 조선의용대는 중국의 항일투쟁에 참가하기 위해 각 전투현장에 파견되었다. 대한(조선)의용군 대부분은 박효삼과 석정의 지휘 아래 황하를 건넜다. 2편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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