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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대일전때 김일성 부대와의 관계..( 1 )
Korea, Republic of 돌통 0 1148 2022-04-13 01:39:05
01편.     시리즈.   총 4편작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어땠을까.?

 


■ 해방 직후의 소련의 대북정책을 통해-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김일성과의 관계를 알아보면

 

 

 

■  해방 직후의 소련의 대북정책은

 

 

 

● 대일 참전에 나타난 소련을 이해 해야 한다.


◇ 대일전 구도와 한반도의 상황은.!!

      


▷ 1943년 10월에 스탈린이 독일 패배 후 대일전에 참가하겠다고 처음으로 밝힌 뒤에,

          


- 소련이 대일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미국과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1944년 10월 17일의 소, 영 정상회담에서였다.

          


- 10월 14일에 딘 장군이 제의한 5개 항에 대해 스탈린은 소련군의 지상작전에 대한 미국 쪽의 제안이 너무 만주에 국한되어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페이스에 의하면, 이때 스탈린은 일본군의 격퇴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작전지역을 만주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만주에 있는 일본군을 포위하여 고립시키고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쪽으로 장가구와 북경을 강타해야 하며, 동해 쪽에서도 한국의 북부 항구들을 소련의 육, 해군부대가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45년 2월에 열린 얄타회담의 군사회의에서는 대일전에서의 소련군의 역할이 만주 주둔 일본군의 격퇴라고 지적되었으며,

같은 해 7월 24일에 열린 포츠담회담 군사회의에서도 안토노프 장군은 "극동에서 소련군의 목표는 만주 주둔 일본군의 격퇴와 요동반도의 점령"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던 것이다.



이러한 소련의 대일전 목표는 1945년 6월 28일에 수립, 하달된 소련군 최고사령부의 기본 작전명령에도 잘 나타나 있다.



- 이에 따르면 바실례프스키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있는 소련 극동군은 자바이칼 방면군과 제1극동방면군의 2개의 기본방향에서 적에게 타격을 가하고, 제2극동 방면군이 보조공격을 하여 관동군의 주력을 만주 중앙에서 포위, 섬멸시킨다는 것이다.



- 스탈린은 바실례프스키 총사령관에게 관동군을 신속하고도 결정적으로 포위, 섬멸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이 항복하기 이전에 소련이 점령하는 영토를 최대로 하고, 남만주와 북중국에 있는 일본군의 재편시간을 주지 않으며

한국에 있는 주요 해군기지로부터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다음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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