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일본인 요리인의 수기..< 1 > 편.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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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 [ 시리즈 ] ■ 82년 불안했지만 월급 5백만원에 평양行(행) ※ 김정일의 요리사 ● 첫 북조선 방문을 하는데... ○ 초밥 요리사가 수수께끼의 나라 북조선으로 ○ 북조선에서 초밥을 만들지 않겠는가? ? 1982년 6월 어느 날의 일이다. 초밥 요리사로 일하던 내게 일본조리사 협회의 이타바시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북조선(북한)에서 일해보지 않겠는가?” 이타바시 회장은 느닷없이 이런 말을꺼내더니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닛초 무역상사에서 급히 초밥 요리사를 구해달라고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 말이야. 월급도 50만 엔(한국돈 500만 원)이나 되는데 말이야. 어때, 자네 생각 없나?” ‘월급 50만 엔’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그 당시 일본과 국교를 맺고 있지도 않은 북조선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런 나라에 가면 두 번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대답을 망설이다가 가족과 의논해 볼 테니 내일까지 기다려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예상대로 결사반대였다. 당시 여덟 살이던 둘째 딸은 제 딴에도 불안했던지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내마음으로는 북조선에 가리라 이미 결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듭거듭 말리는 가족들에게 월급이 50만 엔이라는 점과 5개월에 한 번은 귀국할 수 있다는 점, 계약 기간이 1년이니 곧 다시 돌아온다는점, 그리고 북조선에 일본 대사관은 없지만 연락사무소 정도는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닥치면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는 등을 되풀이 해서 설명했다. 그런 다음에야 나는 무조건 반대하는 가족들을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북조선에 가기로 작정한 나는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이타바시 회장과 함께 유라쿠초에 있는 닛초 무역상사를 찾아갔다. 나는 닛초상사 회장실에서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곳 회장으로부터 준비자금 30만 엔을 받은 다음, 그 즉시 여권을 신청했다. 회장실에는 나 외에 또 한 사람의 일식 요리사가 있었다. 그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평양에 있는 보통강 호텔 앞에 가라오케 바 시설을 갖춘 일본 음식점을 열 예정이라고 했다. 이름은 ‘안산관’으로 정했고, 우리가 묵게 될 곳은보통강 호텔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북조선 전용 여권을 교부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하기에그동안 다른 요리사와 함께 식당에 필요한 식기와조리기구, 집기들을 사러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북조선 사람들이 머물고 갔다며 데이고쿠 호텔이 닛초 무역상사 앞으로 발급한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총액이 무려 900만 엔(한국 돈으로 9,000만 원)이라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북조선에서 일본을 다녀간 사람들의 숙박비 등은모두 닛초 무역상사가 부담하도록 정해져 있다고했다. 닛초 무역상사는 조총련 계열 출신의 조선인들이 만든 회사다. 아무리 조국을 위한 일이라고는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금전적 출혈을 강요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인 1982년 8월, 마침내 북조선을 향해 떠나야 할 날이 찾아왔다. 나리타 공항의 출국 로비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배웅하는 가족들을 보며,나는 순간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말로 북조선은 안전할까, 나는 무사히 돌아올 수있을까···. 그때만 해도 내가 김정일 앞에서 초밥을 만들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성대한 환영회, 북조선에서의 첫날 ? 북조선에 가려면 중국의 북경(베이징)을 경유해야만 했다. 북경에서 우리는 북조선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신청했다. 그 날 밤은 북경에서 잤는데, 흥분과 긴장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 시피 했다. 다음날 북경공항에서 조선민항(현 고려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북조선으로 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체는 곧 북조선 영공으로 들어섰다. 나는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북조선이란 말인가. 드디어 나는 낯선 나라의 베일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또 한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북경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마침내 평양 순안비행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를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산 위에 탱크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본 TV에서 본 한국전쟁 당시의 영상을 떠올리며나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렇게 우리는 그럭저럭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중나온닛초 무역상사 직원의 환영을 받으며 곧바로 보통강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밤에 있을 환영 파티 때까지는 푹 쉬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여장을 풀었다. 저녁 7시에 호텔 식당으로 가자 곧 성대한 환영회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속 통역사인 임상종(현재 당중앙위원회 38호실장)씨를 소개받았다.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나는 본래 매운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함께 간 일식 요리사는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고생하는 눈치였다. 북조선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식당은 어디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틑날,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일터가 될 안산관으로 향했다. 안산관은 호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주위에 담만 있을 뿐이지, 도저히 레스토랑이라고할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이에 책임자라는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초밥 식당은 어디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나는 연못이 바라보이는 비교적 좁은 공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곳이 괜찮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배치도를 그려주십시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식당 설계부터 시작하게 될 줄이야···. 그런 것은 당연히 사전에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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