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의 '김일성' 칭찬글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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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엽~~"나는 지금도 김일성을 존경한다" 황장엽이 정리한 ‘사람중심철학’은 김일성 족재를 정당화하는 요설철학으로 김일성은 이를 ‘주체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채택했다. 황장엽에게는 일생일대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공공연히 김일성을 두둔한다. ① “제가 1958년부터 65년까지 서기(김일성 개인서기)를 하면서 본 바에 의하면, 사실 역사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라는 식으로 김일성을 평가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 사람이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48페이지) = 황장엽이 쓴 저서. ② 황장엽은 1999년 1월 18일 전 인천대 총장 김학준과의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천리마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한마디로 그때가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황금시대였습니다. 김일성의 활동에서도 최고봉을 이룬 시기지요. … … …천리마 운동에서 최고봉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래서 천리마 운동에 대단히 큰 의의를 부여하고 좀 더 이론화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천리마 운동을 복구했으면 좋겠다고 제기했지요. 당의 총노선으로까지 정식화했던 것을 망친 것도 김정일입니다.”(“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51페이지) 김일성의 발기에 의해 1956년에 시작된 북한의 “천리마 운동”은 북한식 문화운동이었다. 명분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개조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돼 있지만 내용은 정적에 대한 소탕전이었다. 이 때 주민들은 3계층 51개 신분으로 분류됐다. 사실상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절대주의 공산세습독재체제수립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바로 이 때 “정치범수용소”가 설립됐다. 황장엽은 이런 “천리마운동”을 “최고봉” “의의가 큰 운동”이라고 여기 남한 땅에 와서까지 강론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근면하고 지혜롭고 위신 있게 행동하였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3페이지). = 황장엽이 쓴 저서 “김일성은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참작하여 정책을 결정하였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간부들을 모아놓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였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7페이지).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많이 하였으며 현지실정에서 많은 것을 착안하였다. 또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때도 한 단위에서 먼저 실험 삼아 해보고 경험을 쌓은 다음 그것을 더욱 일반화하였다.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해나가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큰 나라들의 나쁜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87페이지). “만일 김일성이 1980년대 초까지만 활동하고 한생을 끝마쳤더라면 가짜 김일성이건, 진짜 김일성이건 관계없이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도 살아남았을 것이며 광복 후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역사도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9페이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책은 **조선사가 발행했고, **조선사장 조갑제의 추천문이 들어 있다. 책 속에는 주체사상을 적어놓고, 김일성 찬양의 글들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매체들을 향해서는 김정일이 나쁜 인간이라고 말한다. 황장엽은 김일성으로부터는 총애를 받았지만, 그 아들인 김정일과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넘어 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그대로 간직돼 있었다. 그가 남한에서 10년 이상 [인간중심철학]을 강론했지만 일번 사회에 알려진 요지는 전혀 없다. 오로지 결정적인 시각에 나타나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서 연방체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말들만 했다. 2010.4.22일자 보도를 보면 황장엽은 천안함에 대한 조사에 중국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조사에 참여하면 중국이 북한을 드러내놓고 지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라 했다. 요설이 아닐 수 없다. 사람중심철학 즉 주체철학은 황장엽이 김일성에 바친 노래, 아부의 궤변 철학이다. "공산주의의 고매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위대한 영도력을 지닌 김일성만이 이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제1단계는 북한을 주체사상화하고, 제2단계는 남한을 주체사상화하고, 제3단계에는 세계를 주체사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단계는 옛날에 이미 완성했다. 제2단계는 1980년대 남한의 학원가와 노동계층을 무대로 주사파들을 양성한 것이다. 1980년대는 주사파의 돌파단계요, 지금은 돌파구를 확대하여 적화통일로 달리는 단계다. 지금의 주사파는 황장엽이 길러낸 붉은 바퀴벌레 주사파들인 것이다. 황장엽의 주체사상은 곧 수령론이다.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돼야 하지만 아직은 성장이 부족하여 사회를 경영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과도기적으로 하늘이 내신 위대한 인물, 김일성 수령이 노동자-농민을 대신하여 노동자-농민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인민대중은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진정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수령은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중신 철학은 곧 수령중심철학인 것이다.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지만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인 것이다. 그래서 사상학습과 조직화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황장엽씨와 여러 차례 만나는 동안 "조직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남한의 주사파는 황장엽이 키웠다. 황장엽과 김영환은 한 몸이었다 인간들은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있을 때 뭉칠 수 있으며, 사상으로 뭉친 조직이라야 힘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개조와 조직독재가 사람중심철학의 핵심인 것이다. 저들이 빨갱이를 진보라는 말로 위장하듯이 황장엽은 김일성 수령 절대주의 철학을 ‘사람중심철학’이라 아름답게 포장했고, 다시 남한에 와서는 ‘사람중심철학’을 ‘인간중심철학’이라고 두 글자만 슬쩍 바꾸어가지고 남한의 덜떨어진 지식인들을 모아놓고 매주 1회씩 주체사상을 죽을 때까지 강론했던 것이다. 황장엽에 의하면 김정일은 말끝마다 이렇게 말했다한다. "김일성의 이름과 김일성주의로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처럼 김일성은 신이 돼 있는 것이다. 황장엽의 집단민주주의 이론은 전체주의 이론 한국으로 탈출한 마영애씨, 2006년 미국에 가서 망명을 신청했다. 국정원과 마영애 사이의 충둘이 뉴스를 장식했다. 이 때 황장엽이 나서서 국정원 편을 들었다. [집단의 명예](국가의 위신)를 위해 마영애씨의 망명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면서까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황씨의 집단민주주의란 집단의 이익이나 명예에 반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부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체주의 철학인 것이다. 철학과 사상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북한이라는 숨 막히는 통제사회, 폐쇄된 사회에서 황장엽씨가 무엇을 견학하고, 무엇을 읽었을 것인가. 그가 강론하는 "집단민주주의"라는 것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이 이 두개 시례에 투명하게 비쳐져 있다. 집단을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탄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에는 자유가 있고, 개인에는 자유가 없다는 해괴한 전체주의적 이론이 그가 내세우는 '집단민주주의' 이론인 것이다. ☆ 황장엽=헤스: 사람중심철학=나의투쟁(Mein campf) ~~관련사진은 이 글 맨 하단에... 황장엽에는 야망이 있었다. 자기가 만든 '사람중심철학'을 김일성의 '통치철학'으로 채택케 하는 것이었다. 반면 김일성에게는 ‘절대주의국가’를 세우기 위한 사상 체계가 필요했다. 히틀러에게는 헤스가 있었다. 그는 '나의투쟁'(Mein campf)이라는 책을 써서 히틀러에 바쳤다. 이와 똑 같이 황장엽은 ‘사람중심철학’을 김일성에게 바쳤다. 황장엽의 손에 있는 ‘사람중심철학’이 김일성에 손에 가서 ‘주체철학’으로 포장명이 바뀌었던 것이다. 독일의 헤스, 그는 종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베를린의 슈판다우 연합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김일성이 우리의 적이라면, 적장에게 전체주의 이론과 철학을 제공한 황장엽도 우리의 적이며 헤스처럼 재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머저리들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 망명해서 최상급의 순국선열 보다 더 높은 위치에 묻혀있는 것이다. ● 조갑제의 황장엽 띄우기는 자신의 신분상승 작전.!! 당시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에서도 집단민주주의가 발설되고, 박모 전 한나라당 의원의 입에서도 집단민주주의가 발설됐다. 그와 함께 주체철학에 대한 이념연구를 하겠다고 발대식에 모인 사람이 400여 명이었다. 황씨는 누구였는가? 북한에서는 살아남고 출세를 하기 위해 곡학아세한 사이비 철학자였고, 김일성의 살인행위들을 정당화시켜준 도덕적 법률적 죄인이었다. 그는 북한에서도 죄인이었고 남한에서는 위장간첩 역할을 했다. 이런 자가 또 다른 간첩 용의자 조갑제와 결탁해 이 나라를 사상적으로 붕괴시키고 적화통일의 촉매역할을 했다. 얼치기 지식인들을 모아놓고 황장엽이 뱉어내는 요설을 어려운 학문적 이론이라 생각하게 해주면서 황장엽을 신비의 인물로 띄워주었다. 그것에는 목적이 있어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황장엽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 조갑제도 덩달아 상승했던 것이다. 내가 5.18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조갑제가 5.18 이슈에서 북한 편을 노골적으로 들지 않았더라면 조갑제는 아마도 지금쯤은 우익사회를 지배하는 신적 존재가 돼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소름 돋는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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