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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146조
Korea, Republic o 김정호 1 859 2007-01-03 15:47:0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146조

보위부 감방 혹은 수용소에서 풀려 나올 때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146조]에 빨간 손도장을 찍는다. 보위부와 관련된 일체 모든 일들을 밖에 나가서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는 맹세와 함께 만일 누설하는 경우에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북조선 인민들에겐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조선로동당의 법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말 실수를 한번 했다가 다시 끌려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으며 그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리에 사라진다.실종되면 찾아야 하지만 보안원(안전원)들은 전혀 관심조차 없으며 그때부터 그 집안은 더 가혹한 감시와 탄압이 이어지며 무슨 사건이 터질때마다 그 가족들을 모두 불러서 조사를 하며 조사가 끝날때까지 감방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아야 한다.

함경북도 청진시 00구역에 살던 우리는 탈북한 이모로 인해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뿔뿔히 헤어져야 했다.
그날에 일어난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눈물겨운 아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니 영원히 지워 버릴수가 없다.

새벽 5시 30분경 장군님께 충성의 목표를 올리기 위하여 남들보다 일찍 직장에 출근하여 하루 과제와 사로청 사업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 한참동안 업무를 보고 있었다.

“사로청 위원장 동무,사로청 위원장 동무.”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급히 갈데가 있다고 하였다. 책상엔 서류가 수북하니 쌓여 있었고 어지러히 여러 가지 종이들이 널려 있어 그것들을 정리하고 가야 하겠다고 하자 그는 다른 사람이 치워 놓을테니 지금 가야 한다고 잡아끄는 것이었다.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3층에 있는 초급당위원장실에 들어가니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첫눈에도 얼마나 거만하고 뚱뚱한지 눈에는 가시가 돋혔고 말투 한마디 한마디에 초급당 위원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 거렸다.고양이 앞의 쥐마냥 초급당위원장은 바짝 얼어 있었다.초급당위원장은 평소 로동자들에게 얼마나 포악하고 거만한지 나를 포함해서 다 싫어한다.

“위원장! 내 일전에 부탁했던 거 준비했나.”
반말 투성이고 그 말은 위압적이었다.
“예,그럼요.저기서(손을 가리키며) 지도원 동무가 사람들을 동원해 지금 한창 차에 싣고 있을 겁니다.그런데 너무 많아 저희 공장 차를 동원했습니다.예,예.”
그랬다.
한달 전 갑자기 사로청 위원장 사무실에 하얀 포대가 많이 쌓였는데 그것이 모두 입쌀들이고 어느 협동 농장에서 자재와 바꾸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포대가 얼마나 많은지 1층에 있는 창고가 모두 꽉꽉 쌓였는데 창고가 모자라 그것을 지도원 사무실에까지 쌓이자 임시로 사로청 위원장 사무실에 넣었던 것이다.공장 노동자들이 일년 내내 구경하기도 힘든 입쌀을 비밀리에 그것도 새벽에 싣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인민들은 옷이 없어 헐벗고 먹지 못해 굶주리고 심지어 옆 집에 살던 출신성분 나쁜 다섯 식구가 문을 걸어 잠그고 쥐약을 먹고 자살까지 하지 않았던가.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네가 사로청 위원장이냐!”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물었다.
얼떨결에 “예.”하자 “나는 도 보위부에서 나온 정치 지도원이다.”
“잠시 나와 같이 가야겠다.“

초급당 위원장을 눈짓으로 전하고는 먼저 문 앞으로 뒤똥뒤똥 걸어 나갔다.초급당 위원장이 “아- 사로청 위원장 뭐해.빨리 따라 나가지 않구...” 하면서 등 뒤를 떠밀었다.거의 떠밀려 운동장에 있는 짚차 뒤 좌석에 올라가 앉았다.내가 오르자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나의 양 옆에 앉았다.
정치 지도원이 차에 실려있는 포대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히죽 거리는데 꼭 일제때 밀정놈 같았다.초급당 위원장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알 수가 없었다.잠시후 운전석 옆에 앉은 정치 지도원은 빨리 가자며 운전수에게 재촉했다.어둠을 뚫고 공장 정문을 빠져나가 한참 달려가고 있을 때 정치 지도원이 나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 “너의 이모가 며칠전 남조선으로 도망쳤는데 텔레비전에 나와 기자회견 하는 것 보았다.지금 그 조사를 하고 있는데 네가 협조해 주어야겠다.빨리 끝날수록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협조 좀 해달라.”

순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독립투사였던 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우리 집은 그런대로 출신성분이 걸리지 않아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내가 살던 옆집과 뒤 동네에는 출신성분이 나쁜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보안원과 인민반장의 감시를 받고 살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된다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3메터의 높은 담장이 둘려친 그 위에는 가시로 된 전기 철조망이 쳐 있는데 평소에도 위압감이 생겨 보위부라면 아예 머리를 돌리고 지나가곤 하였는데 내가 그곳으로 가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자동보총을 어개에 멘 1줄배기 하 전사가 경례를 하고 차를 통과시켜 주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공장에서 2대의 차가 동원되었는데 차 여러대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다른 차에 약 절반가량 포대가 실려 있었다.짚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두 명의 보위부 요원에 의해 팔이 뒤로 꺾인채 끌려 갔다.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우중층한 3층 건물이 있는 긴 복도를 지나 맨 끝에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넓고 큰 지하 감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감방이 모자라 복도에까지 나와 있었다.여자들도 많이 잡혀와 있었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여자 포함 4-7세가량)도 많이 갇혀 있었다.어린 아이들이 모두가 매를 맞아 여기저기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어떤 아이들의 옷에는 피가 붙어 있어 끔찍한 보위부의 만행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내가 들어간 곳은 중국에서 탈북하다 잡혀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1년 동안의 예심 기간을 거쳐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사회로 나가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이었다.감방에 들어가기 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던 옷을 모두 벗어주고 죄수복을 받았는데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고,때가 찌들대로 찌들었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다 헤진 옷을 받았다.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 도저히 입지 못하자 3줄배기 복장을 한 보위부원이 구둣발로 나를 차고 머리를 몽둥이로 치는 바람에 얼른 옷을 받았다.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과 빤쯔까지 벗은 후 죄수복을 갈아 입어야 했다.

오후부터 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취조실은 지하 1층에 있었는데 벽에 있는 많은 고문 도구들이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팔을 뒤로 묶고 무릎 사이에 각목을 대고는 두 명의 보위부원이 서 있었다.
언젠가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책상에 앉아 있던 보위부원이 책장을 몇 개 펼치면서 나에게 물었다.
이름:김정호(가명)
나이:19XX년 0월 0일.
주소:함경북도 청진시 00구역 00동.

모든 것이 반말이고 눈에 거슬리거나 말을 바른대로 대답 못하면 바로 고문이 시작되었다.
남조선으로 도망친 이모의 이름과 나이,무엇 때문에 도망쳤는지,왜 같이 도망치지 않았는지 등등 말이 안되는 질문만 계속 되었다.

태어나서 부모나 담임 선생, 심지어 친구들한테도 한번도 매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무릎 사이에 놓인 각목은 뼈가 우스러질 정도로 두 명의 보위부원이 내리 눌렀고 다른 한 명의 보위부 원은 머리고 몸이고 뒤에서 앞에서 사정없이 나를 내리쳤다.내가 소리 지르자 무슨 걸레같은 것을 입에 틀어 막고는 계속 고문이 이어졌다.

손과 다리를 등 뒤로 묶고는 천정에 매달아 채찍으로 후려치고 아래에는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이 놓여 있었다.채찍에는 뾰족한 가시들이 돋아 있어 한번 후려칠 때마다 쩍쩍 하니 달라붙고 떼어낼 때마다 살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혼절하자 다시 물을 붓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무릎을 꿇게 앉게 하고는 손 톱 사이에 바늘을 꽂았다.내가 다시 혼절하자 이번에는 다시 물을 붓고...
뜨거운 주전자에 매운 고춧가루를 넣고 그것을 강제로 나의 입에 넣고 또 넣었다.배가 남산만하게 부르면 나를 눕혀놓고 배 위에 판자를 대고 두 명의 보위부원이 올라가 내리 눌렀다.그러면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물이 쏟아져 나왔다.

보위부에서의 나의 첫날 신고식은 고문으로 치러졌다.새벽에 불러다가 고문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지 못하게 괴롭히고 나에 대한 고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도망친 이모에 대한 탈북 정보를 알아내려고 온갖 악랄한 방법을 다 동원 하였다.
이빨이 부러지고 손가락이 부어 있었고 몸에는 가죽이 벗겨져 옷이 닿을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오고 일어설 힘조차 없어 걸을 때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너무 않아 있어 발가락의 발톱은 모두 없어졌다.

감방에 돌아와서는 규칙이 있는데 만약 한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모든 감방안의 사람들이 똑같이 처벌을 받는데 앉았다 일어섰다 몇백번,그렇게 날이 샐 때도 있었다.

보위부에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일단 감옥에 들어온 이상 공민증이 박탈되어 이름이 없어지고 대신 번호가 주어진다.사람을 부를때도 번호를 부른다.나는 121번이라는 번호가 붙여졌고 남자가 갇힌 감방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매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보위부원 간수들과 고문하는 보위부원들에게 지켜야 할 말과 행동을 배워준다.만약 말을 잘못하면 욕은 욕대로 먹고 감방 죄수조장이 잘못한 죄수를 죽도록 팬다.
음식도 쌀뜨물 깡치를 삶아준 죽 비슷한 것을 두어 숟가락 주었는데 한 입에 삼키면 금방 목구멍에 넘어가 버린다.그것도 입이 아프거나 목구멍이 아픈 사람은 빨리 먹지 못해 옆 사람에게 다 빼앗긴다.
한달동안 감방안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매 맞아 죽은 사람,고문 당하다 죽은 사람만 해도 7-8명이나 되었다.어느 때는 잠자다가 옆 사람이 죽는 일도 허다했고,무릎 꿇고 있다가 옆으로 쓰러져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덧 1년이라는 날자가 지나갔고 그동안 너무 많이 매를 맞아서 그런지 온 몸에는 감각이 없어졌는데 웬만큼 고문은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었다.감방 안에서는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고 살아서 나간다면 정말 행운중의 큰 행운이었다.
감옥에 있는동안 자살까지도 수십번 생각했고 결심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사람의 질긴 목숨은 그래도 꺼져가는 심지에 촛불은 타고 있었던 것이다.

별별 생각은 다 들었다.
제일 먼저 가족들이 걱정 되었다.내가 갇힌 것을 알고나 있는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알길이 없었다.하나하나 가족들 얼굴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하엽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고문 당해야 하나?

다음에는 직장이 생각났다.
내가 떠나올 때 책상 사무실 서랍 안쪽에 비밀칸을 만들어 돈 2만7천원을 숨겨 놓았다.그리고 친구에게 천원,작업반장에게 855원,고등학교 동창에게 3천원 등등 내가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수두룩했다.가운데 서랍에는 사로청에서 걷은 돈 수천원과,김정일의 얼굴이 새겨진 당 배지가 있는 빨간 보자기 2개 있었다.그밖에 여러 가지 잡동 사니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나에겐 소중한 것들이었다. 서랍에 남겨진 마지막 나의 돈은 그대로 있는지.
내가 호송된 후 보위부에서 나에게서 도망친 이모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한달동안 뒤져 보았는데 한달동안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는 모든 물품을 조사한다는 구실로 압수해 갔다고 한다.
다행히 책상과 같은 큰 물건은 그대로 놔두고 종이 한 장 심지어 쓰레기까지 들고 갔다고 하니 얼마나 보위부에서 증거자료를 찾으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감방안에는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과 또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내가 들어올 때 받은 옷은 찢어지고 헤져서 너덜너덜해져 추운 겨울에는 뼛속까지 시렸다.고문도 엄청나게 많이 받았고 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맞았다.실신한 적도 있었고 며칠동안 깨어나지 못한 적도 많았다.
보위부원 간수들은 하나같이 여자건 남자건 가리지 않고 말을 잘못하거나 눈에 거슬리면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팼다.그들의 눈에는 어린 아이건 나이가 많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나이 어린 소녀부터 나이 많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데 예심 기간 1년이 넘는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으면 단련대로 보내거나 수용소로,최악의 경우 총살까지 당한다.총살할 때는 다른 좋은 곳으로 이송되어 간다고 하고는 군중들이 모인 수성천에 끌고가 총살을 하거나 교수형을 한다.

다행히 나에게서 이모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한 보위부에서는 나를 마치 살려주는양 수용소에 가면 열심히 일을 하여 사회에 나가 당과 조국에 충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 지옥같은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엄청난 일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

중궈인민공화국 훈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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