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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간 탈북자 6명의 인터뷰와 생활**
미국이란 나라 1 530 2007-03-05 20:56:45
[국제] 美 ‘탈북 난민’ 6인의 홀로서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한국 대신 미국행을 선택하는 탈북자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탈북자 수용 방침에 따라 지난해 5월, 태국에 머물던 탈북자 6명이 난민자격으로 받아들여진 게 전기가 됐는데요, 이 6명의 탈북자들은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힘겨운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낯선 미국 문화 보다 더 낯선 한인사회의 냉대와 차별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인석 순회 특파원이 미국 내 탈북자들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5월 태국에 머물던 탈북자 6명이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에 의거해 처음으로 난민 자격을 인정한 탈북자들입니다. 하나같이 짙은 선글라스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6인의 탈북자들, 미국 탈북자 정책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플러싱 지역. 한인 상가가 밀집한 미국 동부지역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입니다. 수소문 끝에 취재진은 어렵사리 '베델의 집'으로 불리는 탈북자들의 둥지를 찾았습니다.

녹취>김영란 (집사/탈북자 대모): "침대가 여기 침대가 있었고 소파가 여기 하나 더..."

탈북자 6명이 함께 기거하며 첫 미국 생활을 시작한 보금자리입니다.

김영란 (집사/미국 탈북자 대모): "자립들 하나하나 해나가고 3명. (누구누구 살고 있죠?) 한나하고 요셉하고 찬미."
여동생 찬미와 함께 미국에 정착한 33살 신요셉씨, 탈북 10년 만에, 그것도 세 차례 북송 끝에 어렵게 찾는 자유의 땅이기에, 요셉씨의 미국 생활은 아직도 하루하루가 꿈만 같습니다.

신요셉 씨(가명): "맨해튼에 많이 다녔었거든요.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하면서 한 4개월 지나니까 길이 별로 어렵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길 찾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여기 뉴욕주에 한해서는요."
3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요셉 씨가 여동생과 함께 일하는 한인 마트. 온종일 밖에서 주차장을 누비는 고된 일이지만, 요셉씨는 자유롭게 일하고, 또 일한만큼 벌면서 서서히 미국 사회의 생리를 터득해가고 있습니다.

신요셉 씨(가명): "자기가 노력한 것만큼 땀을 흘린 만큼 사니까 그것 이상 좋은 게 없고 힘이 들어도 돈을 법니다. 돈을 벌어서 밑천을 좀 마련해서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닦으려고요."
탈북 8년 만에 동생을 중국에서 찾아 미국까지 데려온 요셉씨는 이제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의 재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북에 남았던 유일한 혈육인 요셉 씨의 어머니가 최근 미국 정부의 망명 허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요셉-찬미 남매는 가족이 흩어진 지 10년 만에 이곳 미국 땅에서 조만간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게 됐습니다.
이제 제법 자립의 기반을 닦은 남매는 가족들의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가 아닌 보통사람이 되겠다며 외부접촉을 모두 끊었던 데보라 씨는 이제 용모부터 사고, 생활방식까지 신세대 뉴요커를 빼닮았습니다. 직장과 학원만을 오가며 보낸 9개월여의 강행군. 일정 수준 영어 실력에 미용 전문 자격증까지 갖추면서 뉴욕 도심인 맨해튼에 일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데보라 씨(가명): "누구 도움을 바라지 않고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만이 제일 최고의 살길이다. 본보기를 보여야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케이스보다도 특별한 케이스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잘 해야죠."
10년 뒤 간호사가 꿈이라는 데보라 씨의 변신에는 말투까지 서울말로 바꾸는 프로정신, 남다른 노력이 한몫을 했습니다.

데보라 씨(가명): "말투로 다른 이질감 느끼지 않게 많이 드라마 보면서 연습을 하고 한국사람들하고 많이 연습을 했어요. (그럼 서울말도 공부하고 영어공부도 하고?)네, 그렇게 두 가지를 하니까 되게 힘들어요. 막 헷갈리고."
인터뷰를 마친 뒤 음성 변조가 필요 없다고 말 할 정도로 데보라 씨는 미국 정착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양배추 고추 볶음이요. 맛있게는 못해요. 그냥."

탈북 뒤 인신매매의 아픈 상처를 딛고 미국 땅을 찾았던 나오미 씨는 뉴욕에서의 방황기를 거쳐 최근 워싱턴에 안착했습니다. 뒤를 봐주던 교인의 집에서 나와 독립을 선언한 나오미씨는 요즘 새 살림살이 장만에 재미가 쏠쏠합니다.

녹취>나오미 씨(가명): "이제는 모든 걸 내 힘으로 구입하고 생활을 내 힘으로 해야되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갖춰가면서 정착하는 데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한국과 달리 거액의 정착금이 없는 미국에서 이들에게 지원되는 것은 의료 보험과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몇 개의 카드가 전부.

나오미: "이것은 아이디카드(신분증명서)고요, 이건 의료보험 카드, 이건 시티뱅크 카드, 이것 소셜 시큐러티 넘버(미국 사회보장 번호)."


때문에 자립을 위해서는 취업이 절대적이지만, 탈북자라는 녹녹하지 않은 신분의 벽이 이들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출신에 대한 한인 동포사회의 냉대와 편견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난민 자격을 인정받아 미국 땅에 발을 디뎠지만 탈북자 출신이라는 신분의 굴레는 여전히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탈북자라는 신분이 들통나면서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쫓겨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결국 대부분은 자신들을 조선족이나 한국인으로 위장해서 살고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뉴욕과 LA를 오가다 결국엔 다시 베델의 집으로 돌아온 37살의 한나 씨, 평양에서 교편까지 잡은 경력이 있지만, 일자리를 얻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탈북자 출신이 문제가 돼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습니다.

한나 씨(가명): "그냥 공부하고 있어요. (어떤 공부 주로 하세요?) 스킨케어 공부하고 있어요.(가장 힘든 점은 어떤 점일까요? ) 한인사회에서는 탈북자한 얘기를 하면 아주, 그냥 중국에서 왔다고 해요. 사람들 인식 자체가 그러니까."
이제 스무살인 요한에게 미국 땅에서 다시 느낀 탈북자에 대한 차별은 견디기 힘든 상처를 안겼습니다.

요한(가명): "여기 불법 체류 히스패닉들 그런 사람들하고 똑같이 취급해 가지고 웨이터 일이 됐구나해서 너무 기뻐서 갔는데 히스패닉들하고 같이 게장 만드는데 게딱지 뜯고 양파 이렇게 썰고."
그래도 후회는 없다는 요한 군은 취재진을 만난 다음날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 중단된 학업을 잇기 위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처음부터 이들 6명을 뒷바라지해온 대모 김영란 씨는 이제는 이들이 겪은 고초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김영란 씨 (탈북자 대모): "최소한 세 번씩, 제일 적은 게 세번. 세 번 쫓겨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죠. 이 새끼는 북한 말 순전히 하면서 너 조선족 거짓말이지 너 어디서 왔어 그래서 탄로가 나면 또 그래요,"
하지만 이들의 사정은 그래도 나은편... 아무런 신분 보장 없이 미국에 밀입국한 탈북자들의 삶은 더욱 고달픕니다. 탈북자 지원 단체가 추정하는 한국 국적의 미국 탈북자는 최소 백 명에서 2백 명 선, 일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또 일부는 생계를 위해 다시 미국행에 몸을 실었지만 신분 불안에 언어, 문화적 장벽까지 하나같이 쉬운 것이 없습니다.

박한성 (미국 불법체류 탈북자): "한국에서 돈 버는 것보다 미국에서 돈 버는 것이 수익상 높으니까 미국에 오면 불편과 고통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근데 와보니까 엄청 힘들어요. 제 민족은 제 민족끼리 살아야지, 또 제 땅에서 살아야지."
미국 체류를 보장받는 유일한 출구인 망명도 지난해 법원이 일부 인사에게 망명을 허용한 뒤 지금은 외교 문제로 지금은 많이 시들해졌습니다. 지난 2004년 미 의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실태를 증언했던 이복구 씨는 망명 재판이 끝난 지 2년 5개월 됐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복구 (망명 재판중인 탈북자): "국토안보부 판사가 얘기하더라고요. 이건 당신 문제는 내가 결론내릴 게 아니다. 국무부가 해야된다. 기다려야된다고 해서 2년 넘어 기다리는 거예요. 직접 오는 경우는 내주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자에게 미국 영주권 준 사례는 아직 없어요."
미국 정부 역시 제3국에 체류중인 탈북자와 한국 국적 탈북자에 대한 분리 수용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호로위츠(허드슨연구소 선임 연구원): "미국의 정책은 하룻밤에 2만 명까지 북한 탈북 난민들을 미국에 데려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일단 한국을 선택해 한국에 간 탈북자들은 자유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들어올 권리가 없습니다."

최근 태국에 머물던 탈북자 16명이 새로 난민 지위를 부여받는 등 앞으로 한국 대신 미국을 찾는 탈북자는 점차 늘어날 태셉니다. 자유와 기회를 찾아 미국 땅을 밟은 탈북자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언어와 문화 장벽,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한인들의 냉댑니다. 그래서 자유를 향한 이들의 꿈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동포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첫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정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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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희 2007-03-07 12:56:36
    언어와 문화장벽은 미국에 이민온 한국국민들도 다 똑같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한인들의 냉대요? 그건 본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냐에 달려있는것같은데요 저도 미국에 난민지위 받아 입국한 6명중의 한사람이지만 아직까진 별로 그런 느낌 받은건없어요 다른분들은 모르겠지만 ...저희나 한국에서미국으로 불법체류 혹은 이민온 사람들 뭐가 달라서 차별하고 냉대해요? 살아온 환경이 다를뿐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착하는과정은 도토리 키재보기에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제아무리 박식하고 그래도 미국에서 알아주지도 않어요 그냥 똑같은 막노동이에요 세탁소에서 일하고 빌딩 청소나 하고 ...그러니 우리 난민이나 뭐가 다른게 있나요 무식한 사람들일수록 약한자를 깔보고 그러죠 제가 일하는가게는 오히려 저를 만난걸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얼마나 좋아하고 잘대해주는지 몰라요 요즘은 그래서 늘 행복하고 모든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한두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모든 북한 탈북자들이 체험하는 현실마냥 너무 외곡하지말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정착하신 분들 그리고 저희들을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모든분들께 특히는 중국땅에서 자유를 꿈꾸며 한국이냐 미국이냐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무엇이든 자신의 노력에 삶의 성공여부가 달렸다고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런지는 몰지만 저는 미국생활 지금 사는 이모습대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꼭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고 느낍니다 자신있게 살고있고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답니다
    저와같이 탈북하셔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미국에 정착해 살고계시는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들어보고싶은데요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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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7 14:27:11
    열심히들 사세요.
    주변 환경의 열악함은 새삼스레 따질 필요도 없이 극복해야 할 숙명일 뿐입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처럼...새로운 곳에서의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정신적/문화적 기초가 튼튼히 쌓이죠.
    모두 미래의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하시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헤쳐 나가세요.
    남 눈치 볼 것없이 자신이 뚜렷히 목표를 세우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간섭하거나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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