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보수여 이제 양심선언을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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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경험이 하나 있다. 횡단보도를 써서 파란불이 바뀌자 손을 드려는데 나무라는 부모님의 말씀이다. "창피해 손내려" 어린 나이에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과서나 학교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학교 밖은 그것을 창피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또래집단에서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지만 그 또래를 벗어나면 그것은 탓해야할 행위가 되어버린다. 무의식중에 또래 집단의 중요성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 커가면서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항상 정치인을 욕할 때 사용하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그래서는 되겠냐? 정치인이 청렴하지 않네? 짤라버려!" 또 한 가지를 배운다 남을 비판할 때 교과서를 떠올려라는 것이다. 군대시절 교통단속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교통법위반 사실을 고지하고 소위 딱지를 끊으면 한마디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왜 저만 체포하십니까?" "에이 재수없게 걸렸네" 자기가 위반해놓고 그 위반사실을 인정하면서 억울하다니? 그런데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까 말을 반복한다. 하나를 더 배운다. 물론 원칙의 사용방법이다. 내가 그 비판을 받을때는 원칙의 부당함을 강조해라는 것이다. 대학강의에서 형법강의를 들으면 듣는 말이 있다. 그 대상 사건은 공무원 뇌물사건이었고 피고인으로 기소된 공무원은 다음과 같은 진술을 했다 "저보다 더 돈 많이 받는 놈은 체포되지도 않고 공무원이 선심성 선물을 받지 않으면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위반사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공무원을 언급하고 있다. 법에는 오랜말이 있다 당위와 사실은 구별되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교과서에만 있는 외로운 말이 되어버린다. 이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남을 공격할 때는 원칙의 정당함을 공격받을 때는 원칙의 부당함을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규칙 적용의 편파성을 강조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규범이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은 지켜야할 것이 아니라 지키면 손해보는 대상이 오히려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원칙을 강조하고 당위를 강조했다. 물론 지지를 받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 사람을 하면서 정치를 생각하는 상식을 언급한다. 정치는 수단이 어떠했느냐?보다 결과의 산출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의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결과를 제대로 산출하지 못한 노무현은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비판의 괴리를 본다 "장관이 법을 지켜야지! 대통령이 헌법을 지켜야지! 원칙대로 해야지" 다시 나타났다 남을 비판할 때는 원칙을 사용하라! 어린 학생들에겐 기본을 강조하면서, 그렇게 교과서를 만들어내면서 왜 스스로는 실천하지 않고, 그것을 비판의 도구로만 사용하는가?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를 보면 거기에 놔왔던 대령은 이런 말을 한다. 대령이 언급하는 학생은 명문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징벌위원회가 열린 상태다. "항상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는 보였습니다. 그것을 지키고 가는 것과 그것을 무시하고 가는 것을 선택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순간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항상 그것과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린 학생이 지금 이 선택의 길에 처음으로 놓였습니다. 다른 학생은 부모님의 품으로 숨어버렸고 다른 학생은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제 홀로 동료애라는 원칙을 지켰던 이 아이만 남았습니다. 지금 이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지난날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이 아이의 혼란과 두려움을 공감해야합니다. 전 이 아이의 처음 선택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명문이라고 불리는 학교에 어울리는 행동일 것입니다" 원칙대로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힘들어서 지키지 않는 것을 원칙대로 살면 죄가 되는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무엇인 옳고 그른지는 알 것이다. 또한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 불리한 지 알것이다. 너무도 잘알아서 유리할 때는 원칙을 무시하고, 불리할 때는 원칙을 내세워서 보호받고자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법은 왜 만드는가? 또한 그것을 어긴 자를 왜 비판하는가? 왜 그것을 소중하는 자를 비판하는가? 처음부터 노무현과 그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과 그에 반대하며 그것이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개인적으로 보수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 않다. 보수란 지켜야할 가치가 있어야하는데 그 지켜야할 가치란 것은 없고 지킬 것은 현재의 상태뿐이다. 이런 행동을 하면 수구라는 말을 붙이고 반동이라는 말을 붙인다. 하지만, 이러한 말에는 자기주변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철없는 아이로 만든다. 아무도 이런 말을 안하지만 난 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자기한테는 원칙보다 체면을 소중히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은 점잖하고 인격자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수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체면이 위태롭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하고 싶다. 원칙은 자기한테 유리할 때는 정당성을 주는 것이고, 불리할 때는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국 이말 아니냐! 난 원칙의 예외로 존재해서 마음대로 살고싶다. 하지만 내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보수라고 칭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치겠다고 말하지 말며 결코 원칙을 말하지마라 교과서 말하는 거 다 거짓말이다. 아이들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라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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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꾸 떠들지 말고 사회주의가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가서 당신이 존경하는 김정일밑에서 6개월만 살아 보라우 !
군대 보내지 말고 저런 것들은 북한 김정일한테 보내서
교육좀 시켜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컴풀렉스가 너무 많은거 아닌가 ?
장애인북한이 머가그리대단 하다고 컴풀렉스를 가지싶니까 ?
얼마든지 이해할수있습니다. 대학생의 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소위 자칭 보수라는분들의 답변또한 구월산이나 최성룡같은 답이 틀림없습니다.
북이 좋으면 북에 가라는소리나 빨갱이 같은 소리말이죠.
저들에게서의 대북정책의 다양한 의견은 있을수없습니다. 그런고로 다른 모든 정책적 다양성은 철저히 무시하고 저들 입맛 즉 이데올로기에의해 찬반과 선악이 결론지어집니다.
북의 공산주의와 독재를 욕하면서 저들의 저질적인 토론문화에 관해서나
다양한 의견은 스스로 받아들이지않습니다.
과거 이문열씨나 한나라당이 노무현 지지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무슨 홍위병이니 어쩌니하면서 깍아내리더니 지금의 이명박 지지자들이나 박근혜 지지자들이 하는 행동은 아무소리하고있지않습니다. 그들논리라면 저들도 홍위병이겟지요.
노사모나 박사모 혹은 이사모는 시대가 만들어낸 인터넷문화의 산물일뿐었지요.
미치겠더라.사회생활도 좀 해보고 남한테 당해도 보고 도와주기도
해보고 뭐 좀 경험 좀 쌓고 와라.내 아주 미치겠다.김정일이 너같은
애들 좋아 해.넌 아주 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