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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에게 장래의 소망을 주려면....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1 228 2007-04-21 14:20:48
1.[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아비의 근심과 어미의 고통은 무엇일까? 장래의 소망을 의미할 것으로 본다. 자식의 미래가 소망을 갖게 되는 일이라면 어미 아비는 오늘의 고생을 행복으로 삼아 가는 것이다. 자식들의 장래의 소망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사는 것이 곧 혈육의 사랑이기도 하다. 혈육의 사랑의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이 자기 血族을 위해 갖게 되는 본능적인 이 사랑에 눈이 떠진다면 결과적으로 그 사랑의 노예가 되어 일생을 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 사는 인생을 잡초인생으로 비유될 수가 있다. 식물의 일생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므로 끝이 난다. 그들이 평생을 노력하여 결국은 후세를 위해 살다가 가는 잡초 같은 인생임을 우리는 의식하게 된다. 그런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보고 사는 것이 또한 모든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그처럼 인생의 의미는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단순한 것을 위해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라면 너무 허무한 느낌이 든다.

2. 때문에 많은 자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인생을 즐기고자 한다. 또는 뜻있는 삶을 위해 독신을 즐기기도 한다. 함에도 결국은 인생은 풀과 같이 쇠잔하고 꽃처럼 시들어 버린다. 과연 무엇이 참된 삶이고 장래의 소망인가를 규명하기가 혼돈스럽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일까? 그런 것에 비중을 높이는 자는 자기 삶에 충실치가 못하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산다. 자기 삶에 충실한 자들은 또한 자식들에게 충실치 못하다. 이는 자식을 갖지 않거나, 심지어 있는 자식마저도 버리고 자기 삶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사랑에 弱하다고 본다. 장래의 소망이라는 것은 부모의 가치관 속의 장래의 소망이 있고, 자식들의 가치관 속에 장래의 소망이 있다. 이런 두 사이에서 인간이 가지는 장래의 소망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장래의 소망이라는 것을 말했을 때는 현재는 고생이라는 말이 꼭 받쳐주어야 한다. 그렇게 받쳐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현재의 고생을 감내하는 것은 장래의 소망에 있기 때문이다.

3. 아메리칸 드림이나, 코리안 드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靑雲의 꿈을 안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의 내용이 幸福이라는 막연한 단어에 인생을 즐기고자 한다. 무엇인 행복인가? 행복의 조건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건강하고 재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음껏 사랑을 펼치고 사는 것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오늘의 고난을 감내하겠다고 하는 것이 분명한 선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람이 가지는 장래의 소망은 많은 돈을 벌수가 있는 것이라고 대부분 말하게 된다. 물론 좀 낭만적인 사람은 돈보다 사랑이라고 하겠지만 사랑을 위해 살다보니 돈이 더욱 절실하게 되는 필요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 어디든지 한 곳에 쌓이게 되면 다른 어느 곳은 텅 비어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인류가 끝나는 날까지 貧富는 언제든지 있을 것으로 본다. 조금 좁혀서 생각한다면 행복이라는 것을 단순히 돈과 사랑이라고 요약되게 한다.

4. 건강은 요즘에 나오는 모든 의료시설에서 어느 정도는 지켜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때문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그런 강조를 통해서 인간은 돈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위해 돈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가롯인 유다가 왜 돈에 대한 애착을 갖고 살게 되었는가를. 아마도 사랑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人間이라는 존재는 돈을 사랑해서 소유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지만 사랑을 위해 허비하는 것은 기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팔아먹게 한 그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의 犧牲精神이다. 예수의 희생정신이 진정한 정신이고 그것이 곧 장래의 소망이라고 말한다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역정을 내실 분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 흔치 않는 定義이기 때문이다. 그런 흔치 않은 정의는 이 시대가 그만큼 혼돈의 시대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으로 본다.

5. 장래의 소망이라는 것은 오로지 예수의 희생정신이고 그 정신에게서 장래의 소망이 나온다고 하는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만일 위에서 제시한 지혜의 말씀에다가 혈육의 사랑을 대입하거나 성적인 사랑을 대입하거나 우정을 대입한다면 참으로 혼돈스럽기 그지없는 세상이 된다. 이는 장래의 소망이 아니라 장래의 절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국가적인 위기는 인간 속의 본능적인 사랑의 팽창에서 발생한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 곧 육체 안에 있는 본능적 사랑을 모두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게 하는 사랑이 없다면 인간은, 국가는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를 치료하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숙지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를 지탱하는 公法은 특히 자유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의 사랑을, 법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본다. 이런 내용으로 공법의 내용을 구체화 성문화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자유국가를 지키는 길이며 방종의 국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길이고 그런 국민을 건져 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6. 자식이 이웃을 위해 아름다운 선행을 할 정도의 능력자로 키워진다면, 아름다운 德行을 행하고 아름다운 同行을 하고 아름다운 同居를 하는 자들이 된다면 참으로 장래의 소망으로 定義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예수님이 그런 것을 위해 바로 십자가의 희생을 받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본능의 노예가 되어 사는 세상을 넘겨준다는 것은 장래의 절망을 遺産하는 것으로 본다. 참으로 참담한 세상을 넘겨주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넘겨주려면 지금 우리는 김정일 수령 독재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아름다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이다. 아름다운 세상, 거기는 公義와 公法이 강물같이 흐르고 正義가 바다 같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깨끗한 공기처럼 가득하고 서로 간에 사랑하고 사는 혜택이 넉넉한 곳을 遺産으로 남겨 준다면 그야말로 장래의 소망이라고 본다. 이런 장래의 소망을 갖게 된다면 아비어비는 참으로 기쁨으로 평안히 눈을 감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장래의 소망을 갖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요, 그야말로 행복을 遺産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세상을 열기 위해 부모들이 오늘도 생명을 걸고 희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7. 하지만 위에 열거한 인간 속의 여러 본능적 사랑에 충실한 세상이고 그런 것이 主流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이런 주장이 별로 인간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으로 인간의 흥미를 끄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것은 그 시대의 주류적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 주류에 부응을 따라서 나름대로 요리조리를 잘해서 제공한다면 인기폭발을 얻게 되고 단번에 대박을 터트릴 것으로 본다. 때문에 항상 그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렇게 외면당하고 산 것이게 하였다. 인간에게 장래의 소망은 인간의 기본 자유를 위해 이웃의 욕심이 아닌 행복을 위해 이웃의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에서 만들어 진다고 본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희생정신이 바닷물처럼 가득하게 흘러 다니며 각 사람의 意識無意識을 점령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것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국가의 위기를 고치는 것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이 김정일 하나만을 제거한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8. 한국 사회의 심령 속에 이런 이타적 희생정신이 주류로 자리를 잡는 다면 결국 구국은 자동으로 인과응보 적으로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때문에 그런 것을 위해 외치는 선각자들이 필요하고 그런 희생정신의 輸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신앙 안에서 예수의 부어 주시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때문에 우리가 모여 함께 기도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런 정신을 기름부음 받고 충만케 되어 마침내 그런 사상이, 그런 정신이 主流로 자리를 잡아 간다면 이 나라는 참으로 장래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으로 본다. 사랑의 발생학적으로 볼 때 불이 불을 낳는다고 하는 원리로 비유된다. 때문에 아무리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그 불은 붙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그 불이 붙게 하는 것이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것은 우리가 볼 때,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북한에는 아주 심각한 人權파괴와 人道파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 곧 우리 속의 사랑을 내어 놓을 때 비로소 자유대한민국은 거대한 사랑의 불 곧 희생의 불이 확산되어 삼켜지고 말게 된다고 본다. 그 불이 곧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것이다.

9. 그런 희생의 정신이 가득한 세상이 된다면 모든 것이 다 치료가 된다고 본다. 이는 그 희생정신은 국가의 병을 치료하는 萬病通治藥이기 때문이다. 만병통치약을 통해서 국가가 치료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인식이 가득한 세상이 된다면 그야말로 장래의 소망이 가득 피어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꽃과 같이 된다는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장래의 소망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꽃과 같이 되는 세상을 연다고 하는 것은 부모의 기쁨이며 행복의 가치관적 시각이 건전하다고 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식의 어떤 것을 보고 부모가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가치관이다. 그런 가치관의 의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세상이라면 장래의 절망이라고 이미 定義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을 돌아보는 것은 미래의 자녀들을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남겨주는 아주 중요한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시대에 김정일의 南下를 그의 팽창을 막지 못한다면 자녀들의 미래는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岐路에 서있다고 본다. 부모세대의 선택에서 자녀세대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을 돌아보는 것은 곧 내 자녀의 미래를 돌보는 일임을 예수의 희생정신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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