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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선자는 김정일 그를 무시 제압할 수 있는가?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1 319 2008-01-15 15:08:00
1.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穀物(곡물)처럼 절구와 공이로 껍질을 벗기는 것은 하나님이 定(정)하신 理致(이치)이다. 그런 이치로 다루는 곡물과 또 다른 이치로 다뤄야 하는 인간을 함께 비유 속에 담아내었다. 미련한 인간이라도 物理力(물리력)에 의해 그 껍질을 벗는 곡물이 아니기 때문에 自由意志(자유의지)가 있다. 인간에게서 미련한 것을 제거하는 방법상의 문제는 참으로 자유의지에 제한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인간이 스스로 미련의 自我(자아)陶醉(도취)를 벗고자 선택하지 않는 한 그 고집을 말릴 자가 없다. 이는 그런 미련을 스스로 포기치 않는 한 인간의 어떤 물리력으로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한다. 물리력의 힘으로도 물리력을 움직이는 能(능)으로도 결코 인간을 새롭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神(신)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의 반대편에 사는 자들의 그 미련함을 굳게 고집함으로 스스로 포기치 않는다는 말인데, 정말이다.

2. 미련을 인간에게서 벗겨내는 것은 물리력으로는 불가능한데, 오히려 미련한 자들은 물리력에 의존하여 인간을 개조하려는 온갖 詭說(궤설)을 세워 실험한다. 이런 양면성의 의미가 그 비유 속에서 있고 그런 것을 찾아 낼 수가 있다. 미련한 자를 定義(정의)하자면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미련을 벗어 던지려고 하는 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미련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자가 곧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이다. 스스로 미련을 벗고 스스로 지혜를 입는 자유의지의 의미는 의지에 따라서 인간을 福(복)되게 禍(화)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자유의지를 헌법 안에서 보장하는 곳이 자유대한민국이다. 자유세계에서의 인간은 헌법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어쩌지 못하는 것의 한계성을 갖게 된다. 공이로 찧듯이 미련한 자를 다뤄 그의 미련을 벗겨보려고 하여도 결코 벗겨질 수가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3. 미련한 자들의 미련을 벗기려는 방식은 暴力(폭력)과 欺瞞(기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폭력과 기만으로 인간에게 강제주입식의 강요는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지혜를 소비하는 계층이 지혜를 공급하는 계층에게 배움의 자세인 겸손에서 일탈한다면 결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 아는 체 하는데 무엇을 배우려고 할 것인가이다. 스스로 神(신)의 영역에 도달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미련함의 춤사위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미련함에 빠진 자들이 폭력과 기만적인 방법을 盲信(맹신)한다. 暴力(폭력)萬能主義(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불법적인 反(반)국가단체인 김정일과 그의 공산수령 세습독재에 빠진 자들에게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모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을 만능으로 맹신하고 사용한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 모든 자들을 굽어보고 있다.

4. 그런 폭력만능주의에 빠진 그들은 본래는 無知蒙昧(무지몽매)하여 지혜의 消費(소비)층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폭력만능주의로 인해 더 배울 것이 없는 자들로 君臨(군림)한다. 이는 인간을 강탈 억탈 박탈 수탈 약탈하는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폭력으로 모든 지식인들을 굴복시켜 그들에게서 정보를 받아 누리고 또한 그들을 지배하는 거드름을 아울러 피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폭력과 기만으로 인간을 노예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곧 그들의 맹신이고 폭력만능주의 그것이다. 폭력으로, 이름 하여 지식을 가진 奴隸(노예)를 다루는 주인의 입장에서 첨단지식인을 부릴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그런 지식인들을 깔아보고 그런 눈빛으로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5. 때문에 결코 자기들이 미련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는 심리적인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폭력에 굴종한다는 논리를 깊이 達觀(달관)하고 그것을 마음껏 휘두르는 자들이기에 결국은 자신들의 미련함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런 미련함을 인식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미련 속에서 지식인 노예들을 움직여 이런저런 일을 마음껏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본질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개조論(론)을 서슴없이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들의 오만이고 교만한 본질의 내용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이 인간을 개조하려는 노력을 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의 이유가 그들의 미련함에서 나온다고 보게 된다. 물론 物理的(물리적)인 힘의 법칙에 눌려 있어 나오는 행동과 말들이 개조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창조적 개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6. 그것은 인간을 망하게 하는 破壞的(파괴적)인 것이지 창조적인 개조는 아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간 개조가 가능하다면 결국은 인간은 폭력으로 創造的(창조적) 改造(개조)가 된다고 주창하는 논리가 형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역사 이래 인간의 모든 실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결코 인간은 폭력으로 개조되지 않는다는 不變(불변)의 원리를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예수님이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것을 直視(직시)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김정일의 인간개조론에 바탕이 되는 폭력은, 그 힘을 가하면 일시적으로 구부러지거나 눌린다고 하는 물리적인 반응일 뿐이지 개조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대한민국 내의 김정일 走狗(주구)들이 원하는 세상은 결국은 그런 폭력을 마음껏 구사하여 인간 개조를 하려 한다.

7. [주체사상의 입장에서의 민족문화에 대한 관점은 바로 민족의 발전은 문화의 발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문화건설이론은 주체의 혁명이론을 구성하는 인간개조이론과 사회개조이론이 중핵을 이루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 민족문화유산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하고 자기 민족의 특성과 자기 나라 혁명의 이익에 맞는 주체적 문화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박승덕,「사회주의 문화건설이론」, 사회과학출판사, 1985, p. 37.)] 폭력으로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인간을 물리력으로 압박하여 다른 것을 주입하고 규격화 된 목소리를 이구동성하게 하려는 의도성은 60년 동안 저질러온 만행이고 그것이 북한 전 하늘을 피의 절규로 사무치게 하였다.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만하여 사취하는 것이나 폭력으로 강탈하는 것은 큰 罪惡(죄악)이다. 저들의 목적은 한국인을 개조하여 김정일의 노예 民(민)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8. 국가개조를 내세우는 자들의 노림수는 결국은 폭력에 근거한다고 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폭력으로 剝奪(박탈)하고 强奪(강탈)하여 오로지 폭력으로 인간 개조를 하고 또는 기만으로 인간을 세뇌하여 김정일의 노예로 삼으려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 그 세력이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를 노리고 있는 것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 세력의 인간개조론과 사회개조이론은 폭력으로 구축되고 확장된다고 하는데서 선군정치의 의도성이 여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익이 될 때는 달콤한 말을 하다가도 자기들의 이익이 안 된다고 할 때는 언제든지 폭력과 폭언을 쉬지 않고 토해내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를 통해서 인간 개조를 하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 및 사회개조는 主體神敎(주체신교)의 교리를 가슴 속 깊이 사무치게 새겨두어 그것을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수령의 노예들이다.

9. 이런 수령의 노예전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김정일의 지혜와 그 지시와 그 판 안에서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노예들만의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폭력을 기초로 해서 자기들의 논리를 현실화하려는 주체신교의 실험은 남한적화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왕 노릇하는 세상을 여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왕 노릇하는 세상을 열고자 하는 것에 있다. 그것이 곧 김정일과 그의 남한 주구들의 필수코스이다. 따라서 폭력이 미련한 짓인가 아가페 사랑이 미련한 짓인가를 두고 구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그런 것을 토대로 해서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구사해도 되는 세상을 열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구사하는 세상을 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김정일의 폭력에 물리적인 반응을 따라 구차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을 남겨줄 것인가 아니면 아가페 사랑을 통해 이웃의 행복을 여는 세상을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10. 어차피 인생은 죽게 된다면 폭력으로 사는 집단에 加入(가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따라 사는 집단에 加入(가입)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짓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마음을 움직여 自願(자원)하는 가운데 최고의 지혜를 찾아가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김정일과 그 집단이 노리는 수가 결국은 戰爭(전쟁)이라고 하는 카드나 아니면 暴動(폭동)이라고 하는 카드나 아니면 극한 테러와 위협이라고 하는 카드가 있다는 것을 直視(직시)하고 있다. 김정일의 눈치를 보느라고 그런 것의 사이로 난 좁은 틈을 찾아 요리조리 운전해가는 대통령의 실력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 구태적인 길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오히려 直線(직선)인 고속도로를 놓게 되는 지도자를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김정일의 모든 폭력에 굴하지 않는 리더십을 보고 싶다는 말이다.

11. 그런저런 틈으로 요리조리 운전하는 현란한 운전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폭력에도 전혀 굴복치 않는 당당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과연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지금의 현상을 폭력에 굽혀가면서 漸進的(점진적)으로 또는 때가 되면 그 폭력의 힘이 약해지면 그때 가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 같다. 아니면 그것이 시대적 상황이니 그렇게 가야한다고 主唱(주창)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폭력은 언제든지 미련한 것이고, 사랑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에 해당된다고 하는 것에 있다. 때문에 아가페적인 사랑을 부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람들은 이제 일어나서 이런 폭력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 나라가 김정일의 노예책략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때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랑의 세상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북한 전 지역에서 온갖 폭력을 구사하고 있다. 목적은 인간 속에 아가페적인 사랑을 蒸發(증발)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12. 공산수령 세습독재는 인간이 인간을 동물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노예화 과정의 必須(필수)코스이고, 그것으로 길들여 가축같이 순하게 김정일에게 순응하는 자들로 만들려는 교과내용이라고 본다. 인간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폭력으로 박탈하고 그것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의 專橫(전횡)을 보고도 침묵하는 자들은 모두가 폭력에 주눅이 들고 있다는 反證(반증)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런 폭력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 예수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모든 폭력에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善(선)을 베푸는 아가페적인 인간이 되도록 북한 인권을 거론하자고 强調(강조)한다. 북한 인권을 강조한다는 것은 김정일의 폭력에 맞서는 행동이고, 그것이 곧 북한주민의 해방을 만들어 내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지혜를 입히는 것도 불가한데 폭력으로 지혜의 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미련을 입히려는 짓은 더 더욱 불가한 것이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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