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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정의)를 심고 참된 富饒(부요)를 거두자.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230 2008-01-30 12:20:36
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지하경제가 GDP의 30% 250조라고 하는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날 한국의 부자들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不義(불의)한 재물이라든지 公平(공평)치 않은 재물이라든지 不法(불법)한 재물이라든지 등등의 재물들이 모여져서 형성되는 탈세경제, 검은 경제, 은닉경제, 뇌물 커미션경제, 적화경제 등이 출렁이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잘되게 한다는 것은 좋은데 어떻게 正義(정의)로운 경제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경제正義(정의)의 실현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市場(시장)개척도 결국 의로워야 한다는데 국민 전체를 탈세범으로 만드는 법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고, 의로운 시장경제라고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 있는 시야는 확보되었는지 그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2. 古代(고대)로부터 인간은 의롭게 돈 만드는 한계성을 가지고 왔다. 그런 한계 때문에 많은 실업자의 대책이 문제가 되고, 그런 것을 억제하려고 전쟁을 일으켜 실업자의 수를 감하기도 하였다. 정당성이 있는 직업은 무엇이고 그런 직업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의로운 직종에서 의롭게, 공평하게 창조적 지혜로 돈 버는 사람들이 국민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의롭게 공평하게 지혜롭게 돈을 번다는 것은 국민들을 탈세 및 형사범죄자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먹고 사는 것이 포도청이고 인간들은 포도청 포졸 나리에게 잡혀가더라도 우선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면 범죄율은 높아만 갈 것이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에 ‘나 평생 깨끗하게 돈 벌었소.’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몇 %나 될까를 생각한다.

3. 소위 말하는 공직자와 직장인들은 과연 의롭게 돈 벌고 있는가? 특히 공직자들에게 따라다니는 소리, 철 밥통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더더욱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혼 없는 공무원 사회에 책임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국가에서 주는 俸祿(봉록)에 맞게 [국가의 이익의 극대화의 여부 곧 국가 이익의 생산성(生産性 productivity)]을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에 관한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공무원의 수를 줄인다는 것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한다는 얘긴데, 그것도 역시 국가의 돈을 좀 먹는 것이기 때문에 의롭지 못한 것은 틀림이 없다. 공직 사회에서 종이 한 장, 볼펜 한 자루를 생산성 있게 쓰지 못한다면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노무현 정권말기에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언론 통제를 유도했는데,

4.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못을 뺀다고 한다. 그렇게 없어진 돈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런 식으로 국가의 돈, 지자체의 돈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갔다면 그 손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대두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이 내수경기에 한 몫을 했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강변은 현시적 경기의 흐름에 찰라적인 시각효과는 줄 수 있어도 국가경제는 좀먹게 된다. 기업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어떤 프로젝트에든 採算性(채산성 payability)이 크다고 확신되면 돈을 투자하고 생산성의 극대화를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집요한 노력을 하는 것은 건전한 기업의 문화이다. 2008년도 예산 256조 1721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국가의 이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집요한 노력이 있는가를 생각하자는 말이다.

5. 과연 국가의 공무원 사회에 그런 집요한 노력은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그런 집요한 노력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공무원 사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건전한 기업의 인센티브처럼 그런 것이 살아 있어 일한 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것도 필요한, 집요하게 국가의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공무원들이 있다면 국가의 福(복)이라고 말해도 좋다. 국가가 일 년에 256조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그것에서 어떤 [헌법의 지지를 받는 국가 이익이라는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가와 그런 것에 투자해도 좋은 [헌법 안에서 국가이익에 보다 나은 채산성]이 맞는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만큼의 투자한 것에서 얼마만큼의 국가 평안이 나오고, 거기서 얼마만큼의 사회 평안이 나오는가. 그런 평안은 경제의 柱礎(주초)라고 본다면, 그런 주초를 반석위에 세웠는가 아니면 모래위에 세웠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6. 그런 것을 뽑아내려고 예산 투자와 함께 얼마나 억척같이 집요하게 노력하였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반석 같은 평안을 범죄율이 현저하게 낮아진 강물 같은 사회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묻게 한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동안 년 년이 투자한 돈들이 국가 이익을 내는 비교적 채산성이 떨어진 것에 또는 헌법을 짓이기는 일에 투자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헌법 안에서 국가 이익의 채산성은 분명한데, 국가 이익의 생산성 提高(제고)를 못했다면 그것은 마인드 문제이거나 또는 공무원들의 정신에 애국심이 없다는 것과 자리만 지키려는 심리에 젖어 황당하게 대처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산을 투입한 것에서 거기서 인간다운 인간을 얼마나 만들어 내고, 지혜로운 인간들을 얼마나 만들어 내고 또 그것에서 돈을 만들어 내는 기술 인력이 얼마나 나왔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또 거기서 황금사과가 맺히는 황금사과나무를 얼마나 번식시키고 이왕에 있는 황금사과나무를 얼마나 번성케 하고,

7. 또는 얼마나 많은 거위, 곧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 내고 이왕에 있는 거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얼마나 번성시켰는가를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俸祿(봉록)이나 받아가는 정도고 시간을 채우는 정도고 때우는 정도고 그저 예산안에 맞춰 돈을 집행하는 정도라면 그야말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다. 공무원들이 예산을 투입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결과도 알아 낼 수 없고 찾아낼 수 없다면. 그런 정책들이 과연 합당한가. 합헌적인가? 타당한 것인가? 기회비용은 발생했는가? 등등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길도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져 있다면. 그런 타성에 젖어 있는 공무원들이 자기 포지션과 기득권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짓을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참으로 공무원 사회는 애국심이 전혀 없는 집단, 국민의 혈세를 一過性(일과성)으로 흘러내 보내기 위한 통로집단이라면, 이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8. 공무원들이 국가의 예산을 집행함에 건전한 기업의 직원들의 책임의식 같은 것은 있어야 한다는 것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대북문제만 잘되면 된다고 큰소리치던 정부 하에서의 공무원은,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에 경제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해 소위 말하는 인프라를 얼마나 구축했는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이 기득권을 만들어 자기들의 이윤추구에 혈안이나 하였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하게 한다. 김정일 좌파들이 시장자본주의에서 역주행해서 사회주의로 가려는 싸움판을 만들어 정신 차릴 수 없는 그 분위기를 틈타 천민자본주의는 기세 등등 국가경제를 좀먹어갔던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한다.

9.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은 해외로 나가버렸고 황금사과나무들도 비행기 타고 떠나버렸다면 이 나라 경제의 미래는 무엇인가? 과연 국민기업은 있는 것인가? 글로벌시대의 다국적기업은 프로테지가 높아도 국민기업이 없다면 내수경기는 잘 굴러갈 리가 없다고 본다. 과연 그러한가? 오늘날 한국에서의 부자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부요를 축적했는가. 부자로 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은밀하게 조사해 보는 기관은 있는가? 없는가? 각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면 의롭게 부자가 되었는지 불의하게 부자가 되었는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박정희시대의 한강의 기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 안에서 의롭게 부자 된 자들도 있고 그 안에서 불의하게 富者(부자) 된 자들도 있을 것이다. 불의하게 경제를 하는 사람들 중에 지하경제를 우선 淨化(정화)해야 한다.

9. 그 다음 정권에서는 지하경제를 축소시키고 그 다음 정권에서도 지하경제를 축소시키고 해야 하는데... 지금의 지하경제는 GDP의 30%라고 한다. 이는 심각한 일로 보인다. 경제기틀을 착실히 다졌던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면서 의롭고 공평한 경제, 창조적이고 생산성 있는 경제를 만들기 위한 착실한 인프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잠을 자던 공무원 사회가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의로운 경제란 남을 부자로 만들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 월급을 받지 않는 경제를 의미할 수 있다고 定義(정의) 한다면, 무한 책임지는 경제행위로 봐야 한다. 시간 채워서 돈만 받는 경제행위와 비교를 한다면 그것에 대한 문제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10. 직장에 들어가서 월급을 받는 것, 그 월급타령이 문제가 아니고 타가는 월급에 비해 이익이 얼마나 남겼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직장이 잘되도록 이익을 남기지 못하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공평치가 못하고 의롭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학교 교사가 시간을 채우는 것으로 대가를 받는다면 학교는 졸업자격증 주는 곳이고 결국 학부모의 돈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 학교에서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사교육에 전념해야 하고 사교육에 전념하다보니 학부모는 부담을 갖게 된다. 교사들이 그렇게 해서 버는 돈도 불의한 돈이다. 공평치 못한 것이다. 국민의 의식 속에서 의로움과 공평함이 자리 잡는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본다. 의롭고 공평하지 못하면 창조적 지혜가 발생하지 못한다.

11. 창조적 지혜가 없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황금사과를 맺는 사과나무는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사실 의롭고 공평한 것은 지혜가 발생하는 자궁이고, 그 지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황금열매를 맺는 사과나무를 키우는 양식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커다란 부요를 원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구조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가도 국민들에게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뒤가 구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정일에게 돈을 받아쓴다든지 각종 비자금을 받아쓴다든지 또는 자신들이 세비를 받으면서도 국가사회에 아무런 이익을 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반드시 의롭고 공평한 길로 가야 한다. 거기서 창조적 지혜와 만나 돈을 벌어내는 직업이 늘어나고 기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2. 그렇게 하려면 국민들 가슴에 의롭고 공평한 정신으로 가득 차야 한다. 문제는 근로정신의 동기유발이다. 부자가 되려고 근로정신을 유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의 소유욕에 의해서 발동되는 의욕이다. 그 소유욕을 천민자본주의 기계에다가 집어넣고 빼면 범죄자가 된다. 그 소유욕을 이타적 사랑의 기계에다가 넣고 뽑으면 의롭고 공평해 진다. 국가와 국민은 스스로가 의롭고 공평한 길로 가려고 집요하게 노력해야 한다. 의롭고 공평할 수 있도록 그 길로 가야 한다. 그런 사회가 늘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만일 대한민국이 그러한 의와 공평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이타적 사랑에서 나온다고 하는 깨달음을 국민들 가슴에 가득 갖게 될 것이다. 이타적 사랑이 없는 한 결코 이웃을 부자 만들 수가 없다.

13. 받은 월급에 비해 그 이상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노력과 수고해 주는 노력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기업하기에 가장 힘든 나라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국내에서 어떤 사업이나 기업을 한다고 해도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다. 결국 국민은 가난하게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의롭고 공평한 경제를 위하여 눈을 뜨는 覺醒(각성)이 필요하다. 그런 각성을 일으키는 길은 그 하나가 교회에서 해야 한다. 교회는 면죄부만 주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免罪符(면죄부)만 준다면 속죄 받은 의는 있어도 예수님 앞에 몸을 바치는 사랑의 의는 없게 된다. 기독교의 本質(본질)은 예수의 피로 용서받은 자가 성령을 따라 사는데 있다.

14. 성령을 따라 산다는 말은 의로운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은 사랑이시다. 이타적 사랑이시다. 아가페사랑이시다. 아가페사랑으로 이웃을 부자 되게 하는 것이다. 아가페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에게 이웃을 부자 되게 하는 지혜를 부어주신다. 그런 땀 흘림과 수고를 통해서 월급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교회가 오늘날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여전히 지하경제 또는 천민자본주의 경제에 들락거리게 된다. 이는 국가적 불행이다. 예수의 뒤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하는 행동이다. 예수의 뒤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참 선지자들의 외침이다. 한국교회가 천민자본주의에 눌려있다면 그 강단도 역시 천민자본주의가 占領(점령)하고 있을 것이다.

15. 예수를 따라야 한다고 하는 외침은 인본주의적 발상이 아니고 신본주의여야 한다. 그것은 성령에게 인도되는 하나님 사랑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타적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때문에 그 안에서 이타적 사랑을 일으키는 대상을 우선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북한주민의 해방운동이다. 천민자본주의의 입김에 눌려 있는 국가의 경제를 살리는 길은 북한주민을 사랑하자는 운동이다. 그런 사랑의 운동을 통해서 이웃을 돌아보는 운동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운동은 결국 국가의 경제를 살려내게 한다. 우리는 북한 인권 운동을 진정성 있게 하고 그런 진정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타심에서 시작할 것이지만 그 진정성 중에 하나님의 것이 최고이다. 그것이 곧 대한민국 미래를 살리는 길이라고 確信(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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