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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초명: 김성주)은 1912년 4월 15일에 평안남도 평양부 고순화면(古順和面) 남동 칠곡(외가가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평양 만경대)[6] 에서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년 7월 10일~1926년)과 어머니 강반석(康盤石[10], 1892년~1932년)의 삼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일성의 전주 김씨 12대조 김계상이 전라북도 전주에서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6][11]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김형직은 할아버지 이래로 지주 리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12]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소작농으로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1917년 조선국민회를 결성한 독립운동가였다.[13] 아버지 김형직에게는 동생 김형록과 동생 김형권이 있는데 김형권은 만주의 항일 빨치산 게릴라였다 한다.
어머니 강반석은 기독교 장로교 신도였고, 외할아버지 강돈욱[12] 은 교육자이자 칠골교회의 장로[14] 였다.[15] 김일성의 외가는 큰 외삼촌 강진석(康晋錫)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항일 민족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강돈욱은 평생을 교육사업에 헌신한 기독교인이었다.[12] 그의 외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의 어머니 이름 반석은 베드로의 고사에서 딴 이름이라 한다. 외할아버지 강돈욱, 외삼촌 강진석, 외종조부 강량욱이 모두 기독교 목사였다. 아버지 김형직 또는 할아버지 김보현이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성주(成柱, 또는 聖柱)라 지었다고 한다. 그의 생가는 만경대라는 이름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 사람들아. 김형직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난수 있는 직업으로서 의사를 하기로 하였으며 그를 위하여 숭실대 동학? 에게 부탁하여 세브란스 졸업증을 위조 하여 기초적인 민간치료법을 터특하고 "한의사"로 활동 하였던 것이야. 요즘 같으면 범죄겠지...김형직도 그것을 알고 그 지방 경찰들도 알고 있었으나 친분으로 눈감아 주었다고 김일성 "회고록"에도 비슷히 설명 했고...김형직의 객관적 자료 서술에도 그 지인들이 증명 해주었어. ㅉㅉㅉ
김일성의 조부가 평양 지주의 산당 묘지기였는데....조상의 묘를 평양 지주의 종산에다 밤에 남몰래 이장을 했다나 뭐라나....근데 그 산 지형이 룡의 혈자리 라나 뭬라나...ㅋㅋ 그 이후로 그노무 집안이 일이 자알 풀리고 대통운이 터서 대통령이 줄줄이 나온다나 뭬라나....근데 그 땅의 룡혈의 기운이 올해까지라나 뭬라나....아프로는 운이 안 조타나 뭬라나....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기독교인이며 민족주의자였지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의원을 한것만 말하고 다른것은 다 속여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방향전환의 위대한 선구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신의주인 친구를 잘 알고 있는데 그친구
할아버지랑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잘 아는 사이인데 워낙에
놀음을 좋아 해서 돈 잃고나면 김일성이 돈보내올날만 기다렸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효자라서 소련군 시절 월급타면 집에다 꼭 보냈다고 하구요 ...
아무튼 몇일전 들은 얘기라서 올려 본겁니다 ...
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
개일성은 38년인가? 40년 경에 쏘련에 도망가고,,,,,,
그러면 개일성이가 자기 애비가 죽은 다음에 애비에게 생활비 받아서 송금하였다???
그 친구 거짓말에 도가 튼 사람 같군,
뭐 이런 개소리가 다있냐. 김형직이 1926년 즉 김일성이 14살 코흘리개 때에 죽었는데 무슨소리. 큭..
뭔가 착각이 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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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초명: 김성주)은 1912년 4월 15일에 평안남도 평양부 고순화면(古順和面) 남동 칠곡(외가가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평양 만경대)[6] 에서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년 7월 10일~1926년)과 어머니 강반석(康盤石[10], 1892년~1932년)의 삼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일성의 전주 김씨 12대조 김계상이 전라북도 전주에서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6][11]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김형직은 할아버지 이래로 지주 리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12]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소작농으로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1917년 조선국민회를 결성한 독립운동가였다.[13] 아버지 김형직에게는 동생 김형록과 동생 김형권이 있는데 김형권은 만주의 항일 빨치산 게릴라였다 한다.
어머니 강반석은 기독교 장로교 신도였고, 외할아버지 강돈욱[12] 은 교육자이자 칠골교회의 장로[14] 였다.[15] 김일성의 외가는 큰 외삼촌 강진석(康晋錫)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항일 민족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강돈욱은 평생을 교육사업에 헌신한 기독교인이었다.[12] 그의 외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의 어머니 이름 반석은 베드로의 고사에서 딴 이름이라 한다. 외할아버지 강돈욱, 외삼촌 강진석, 외종조부 강량욱이 모두 기독교 목사였다. 아버지 김형직 또는 할아버지 김보현이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성주(成柱, 또는 聖柱)라 지었다고 한다. 그의 생가는 만경대라는 이름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궁금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