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김일성이 평남고 대동군 만경대서 나오고,,,
김정일이 백두산출신이란것 외에는 그 누구의 고향이나 본적 같은걸 알려주는 법도 없고 알려고 하면 수용소에 갑니다.
아마도 알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고향을 남쪽에 두고 김일성이 빨지산 따라다닌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오진우(吳振宇, 1917년 3월 9일 ~ 1995년 2월 25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정치인이다. 인민군 총참모장, 인민군 총정치국장, 국방 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을 거쳐 1994년 7월 8일부터 조선인민군 원수를 지냈다.[1]
이력[편집]
함경남도 북청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만주로 넘어가 조선의용군에서 항일 유격대에 참가했다. 그는 항일 파르티잔 활동 당시 김일성과 연대하여 1938년 동북항일연군 군관으로 복무했다. 1946년 9월부터 중앙 보안 간부 학교 군사부교장이 되었으며,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설 이후 조선인민군 제3여단 참모장, 여단장, 제3군관 학교 교장으로 조선인민군의 병력 강화에 공헌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때에는 인민군 제43사단장, 최고 사령부부참모장, 제6군단 참모장, 근위 서울 제3사단장이었고, 한국 전쟁 후는 인민군 공군 사령부 참모장, 총참모부 부참모장, 민족보위성 차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67년부터 인민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당중앙 군사위원, 국방 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었다. 1993년 김정일이 국방 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제1부위원장이 되었다. 1979년에는 총참모장직에서 오극렬로 대체되었다가 88년 다시 인민군 총참모장이 되었다.
김정일이 백두산출신이란것 외에는 그 누구의 고향이나 본적 같은걸 알려주는 법도 없고 알려고 하면 수용소에 갑니다.
아마도 알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고향을 남쪽에 두고 김일성이 빨지산 따라다닌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북한의 사관학교격인 강건군관학교도 그 사람 이름을 따서 지은겁니다.
6.25때 북한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인민군을 이끌다가 자신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죽었죠.
- ㅊㅍ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9-03 23:27:34
이력[편집]
함경남도 북청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만주로 넘어가 조선의용군에서 항일 유격대에 참가했다. 그는 항일 파르티잔 활동 당시 김일성과 연대하여 1938년 동북항일연군 군관으로 복무했다. 1946년 9월부터 중앙 보안 간부 학교 군사부교장이 되었으며,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설 이후 조선인민군 제3여단 참모장, 여단장, 제3군관 학교 교장으로 조선인민군의 병력 강화에 공헌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때에는 인민군 제43사단장, 최고 사령부부참모장, 제6군단 참모장, 근위 서울 제3사단장이었고, 한국 전쟁 후는 인민군 공군 사령부 참모장, 총참모부 부참모장, 민족보위성 차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67년부터 인민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당중앙 군사위원, 국방 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었다. 1993년 김정일이 국방 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제1부위원장이 되었다. 1979년에는 총참모장직에서 오극렬로 대체되었다가 88년 다시 인민군 총참모장이 되었다.
오진우의 공로는 김정일이 장자이고 전우 김정숙의 자제라고 우기면서 후계자 추대하는데 공헌한 공신이다. 인간이 도무지 융통성이없고 답답한 돌대가리인데 정일이가 세자책봉할때 공적을 잊지않고 무력부장자리에 앉힌것 뿐이다.
실지 러시아가 진정한 군사인재는 총참모장 오국렬이였다고한다.
진정한이 아니라 인정한 이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