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조선말기 역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
---|
조선말기에 해당하는 개화기(1878년부터 1897년까지)와 대한제국(1897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강점기(1910년부터 1945년까지)까지는 남한 역사와 똑같을텐데요. 물론 계속 이슈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731부대 생체실험과 같은 것들도 일본군의 악행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인데 이런 것들도 북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제 북한의 입맛대로 역사를 왜곡시키는 부분이 바로 1945년 8월 15일 이후인데요. 6 · 25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습니까?(1945년부터 1950년까지 = 5년) 1950년까지 5년 동안 벌어진 과정들을 북한에서는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글에서 보니 이미 6 · 25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38선에서는 국방군과 보안대(인민군의 전신)가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등 작은 싸움이 벌어졌었다는 내용도 있더라구요.(이미 경계선에서부터 민족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얘기.)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특히1945.8.15 광복과함께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면서 북한은 38경비대라는( 북한군 전신) 무장부대를 조직하여 그책임자로 최현(최룡해의 부친)을 임명하고 은파산일대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무장도발을 일으킵니다.그당시 남한측은 일본군의 라남19사단 산하 함흥74연대장을하던 김석원을 38선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최현과 싸웠습니다.
광복후 남한은 아무 군경험도 없는 청년들로 국방경비대를 창건하여 무장면에서나 모든면에서 북한에 열세였습니다. 반면에 북한은 소련군의 지원하에 군을 창군하기 시작하여 모택동과 김일성의 밀약으로 중국내전에 참전중이던 중공군내 조선인들을 차출하여 북한으로 내보내여 북한군 1사.2.3.4.5사를 조직하였으며 6사는 중공군에서 차출된 조선인 군인들로 조직하여 6.25당시 가장 싸움잘하는 부대로 악명을 떨치였습니다.
특히는 북한군은 일제의 대토벌당시 러시아로 이주하여 러시아군에 편입되여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소 전선에 최용건.김일.강건같은 지휘관들이 정규작전 경험을 쌓고 돌아와 북한군 창건의 주역을 맏습니다.풍부한 실전 경험과 소련.중공의 지원으로 남침을 준비한 반면 남한은 순수 농촌청년들과 학생물림의 청년들로 지휘관들은 일본군복무 경험자들로 조직되였으니 6.25발발과 함께 북한군의 파죽지세 공세에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한것입니다. 당시 북한군전선 사령관이였던 최용건은 서울 함락후3일간을 서울에서 휴식하면서 승리에 도취되여 있었습니다. 김일성으로는 가장 뼈아픈 실수를 범한것입니다. 만약 3일이라는 휴식없이 내처 진격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요 ?
후날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침통하게 후회하였습니다.
6.25는 김일성과 스탈린,모택동의 치밀한 준비와 작전으로 시작된 철저한 남침전쟁이였습니다.그런데 남한의 일부정치가들과 진보좌파라는 사람들과 심지어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6.25를 남한의 북침전쟁이 였다고 주장하는것을 보고 너무도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오늘날 남한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무슨 단체,무슨학자,무슨 법학자요하면서 이념갈등을 부추기는것을 보면 씁쓸함을 금할수 없다.
지금도 레닌,스탈린,모택동,김일성에 이르기까지 허황한 공산학설의 실패와 허구를 우리는 체험하고 보아왔으며 거짓임을 입증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일부 사람들과 북한3대독재 신봉자들은 여전히 맹목적인 북한에대한 맹신 맹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에대한 신격화를 위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남한은 이상한 사람들이 역사를 이념화하여 평가하는 비극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