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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거리 북녘 땅에 이런 일이…'
동지회 585 2006-03-16 11:52:54
공개 처형 직전의 수감자는 기둥에 두 손이 묶여 있었다. 잿빛 수감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고, 허리를 숙인 채 땅을 파는 곡괭이질 뒤로 채찍이 날아들었다. 객석은 움찔했다.

붉은 무대 벽 뒤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함경남도 요덕군 조선인민군 경비대 제2915부대(수용소).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15일 오후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마침내 무대에 올랐다. 탈북자 출신의 감독, 북한 인권을 다뤘다는 이유로 가해졌던 각종 압력과 살해 협박,….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드라마였던 이 뮤지컬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충격이다.

주인공은 무용수로 각광받던 노동당 중앙당 간부의 딸 강연화. 어느 날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자 가족과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가고, 수용소장 이명수에게 성폭행당해 임신까지 한다.


◇15일 개막된 뮤지컬 요덕스토리에서 여주인공 강연화(왼쪽)를 수용소 보위원이 총으로 내려치고 있다./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총성과 매질, 통곡과 비명소리는 애잔한 선율에 섞여 수용소의 현실을 전파했다. 김일성 초상화를 소홀히 간수해 끌려온 여성, 혀가 잘린 채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6·25 국군포로 등 수감자.

굶주린 아이들은 쥐를 발견하고 잡아 먹기 위해 우루루 몰려다녔다. 수용소에서 감자를 훔쳐 먹은 아이의 팔을 보위원이 작두로 잘랐다. 젊은 관객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60대 할아버지는 가슴을 쳤다.

“거기 누가 있다면/이 비명소리 듣고 있는지/거기 누가 있다면/제발 우릴 구해주세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 관객도 보였다. 감독은 “끔찍한 장면은 지우고 또 지운 것”이라고 했다. “시나리오를 탈북자들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수박 겉핥기’라고 했지만, 한국분들한테 보여주면 모두들 너무 끔찍하다고 하더군요.”

객석은 북녘땅이 고향인 할아버지부터 젊은 대학생들까지 다양한 관객으로 가득 찼다.

단체 관람을 온 ‘나라사랑어머니연합’ 권명호(여·56) 회장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일어난 참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왔다”며 “이 뮤지컬이 북한 인권 개선에 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이 고향인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최안길(70) 할아버지는 “뮤지컬 보는 내내 너무 눈물을 흘렸어요. 이게 현실인데, 우리는 지금 현실을 너무 외면하고 있어”라고 씁쓸해했다.

한나라당 박진, 강재섭 의원 등 10여명의 의원들, 마이클 클라인 미국대사관 인권 서기관 등 외국 대사관들도 공연을 지켜봤다.

‘요덕스토리’는 탈북자 출신인 정성산(鄭成山) 감독이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요덕 수용소의 실상을 그린다 하여 화제를 모았다.

무대에 올리기까지 힘겨운 고비를 여러 차례 넘었다. 지난해 뮤지컬 제작이 본지에 처음 보도된 이후〈작년 11월 1일 A1면〉, 돌연 극장측이 대관(貸館)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통보하고, 당초 3억원의 투자를 약속했던 펀드도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로부터의 압박이 계속됐지만 정씨는 힘든 싸움을 계속해나갔다. 이 같은 사정이 또 한번 본지에 보도된 후〈2월 6일 A2면〉, 각계에서 후원금이 몰려들었다.

미 인권단체인 디펜스 포럼 수잔 솔티 회장이 2000달러를 보냈고, 국내외에서 수천여명이 크고 작은 힘을 보탰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 요덕스토리를 완성했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선 특히 외신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CNN, BBC, 로이터 통신에서 카메라로 찍어갔고, 산케이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 언론들도 대거 참석했다.

UPI 관계자는 “결국은 인권 유린에 대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북한인권 문제 때문에 요덕스토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에서 뮤지컬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한다는데, 뮤지컬에 ‘태클’을 건다는 것도 흥미롭다”고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기모카와 마사히루 기자는 “한국언론보다 오히려 일본언론이 더 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대두된 일본인 납북 사건과 관련해 일본 내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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