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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짐승도 안먹는 나무껍질을 먹었다
동지회 930 2005-01-12 11:15:06
우리는 짐승도 안먹는 나무껍질을 먹었다


1990년대 후반 처참했던 북한의 대(大)아사 현장을 지켜봤던 한 탈북 시인이 그 참상을 詩로 써 보내왔다.

시인은 여기에 실린 시 외에 북한의 실상을 전해주는 시들을 모아 곧 시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시인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본인의 신상을 밝히지 못하는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시를 올리며-시인의 말

전쟁도 아니다. 자연재해도 아니다. 이 지구상엔 평화시기 300만이라는 목숨을 굶겨 죽인 김정일정권이 있나니. 이러한 대(大)참사를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가볍게 명명했다.

300만의 죽음도 고난 정도로 이야기하는 김정일독재정권을 과연 무슨 말로 저주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고난의 행군" 체험자로서 그 참상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역사에 기록하고 폭로하는 것이 바로 그곳에서 살았던 작가로서 해야 할 의무이고 양심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이 4년이란 짧은 기간에 300만의 북한 주민들이 어떤 처절한 생죽음을 당했는가를 150편의 시로 재현하여 시집으로 묶었다. 하지만 땅에 묻히지 못한 영혼들의 신음과 울분을 다 담아낼 수 없었기에 이 시집은 나의 영원한 미완성 작품집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짐승도 안먹는 나무껍질을 먹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풀뿌리마저 캐내여 북한의 산들은 모두 하얗게 벗겨졌다.두꺼운 나무껍질을 삶아먹자니 양잿물을 섞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때 우리 여인들의 손은 얼마나 떨렸으랴)

우리는
쌀을 잊은 지 오랬다
그래서 우리의 밥은
나무다
껍질이다

우리의 밥은
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도 아프다
그래도 먹어야만 하기에

두꺼운 나무껍질
슬픔이 끊는 물에 삶아내어
꺼내선 죽도록 망치로 때리고
또 끓이고 또 때리고
그래도 목을 죄는 밧줄 같아
마지막엔 양잿물을 섞으면
마침내 반죽되는 나무껍질

그것도 밥이라고
그릇에 담기라고
우리는 밥을 빚는다
한 줌 속에 나무를 빚는다

오 그러면
그 몇 덩이
우리의 눈물덩인가
볼수록 꽉 메는 목구멍

그 몇 덩이도 없어
그런 밥도 없어
먹고사는 전세계 목숨들이여
이 나라엔 산이 모두 벗겨지고도
그러고도 나무가 모자라 수백만이 굶어죽었다



석달전에 내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하얀 쌀밥이라 했다

두 달 전에 내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불에 구운 메뚜기라 했다

한 달 전에 내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어젯밤 먹었던 꿈이라 했다

내 동생이 살아있다면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이 달에는 뭐라고 했을까…



(하루품을 팔아도 한끼 식사 값도 안 되는 북한이어서 "고난의 행군"시기
전(全)재산을 팔다 못해 숟가락마저 없는 집이 한 두 집이 아니었다. 그것마저 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야만 했던 것이 북한의 실상이었다.)

쌀이 없는 집이어선지
그 집엔 숟가락이 없다
숟가락마저 팔아서
언젠가 아버지 제사에 보탰다

그 누가 행복을 원치 않으랴
죽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그 집 다섯 식구
소원도 하나 같았으니
앞으로 살림이 조금 펴지면
집안에 두고 싶은 첫 재산은
숟가락 다섯 개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
싫다고 발버둥치네
밥달라고 울음 터치네




("고난의 행군"시기 우리 마을에서는 날이 밝으면 아침 인사가 "그 집은 무사하오?"였다. 하룻밤 사이에도 매일 몇 명씩 죽곤 하여 우리 마을 뒷산엔 공동묘지가 생기기도 하였다.)

나의 옆집은
다섯 식구
늙은 부모
갓난 애기
젊은 부부

부모가 귀해
아이가 불쌍해
그래서 더 못 먹고
그래서 더 못 자던
그 젊은 두 사람
젊은 탓에 먼저 죽었다

가정에
마을에
도시에
나라에
굶어죽은 사람들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그 수를
옆집에서 셋다
두 명에서 셋다



("고난의 행군"시기 출장으로 곡창지대 황해도에 내려갔던 나는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를 건너다녔다.)

나는 살인자
스스로의 양심 앞에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몸

출근할 때
눈물밖에 가진 게 없어
동냥 손도 포기한 사람 앞을
악당처럼 묵묵히 지나쳤다
하여 퇴근할 땐
그 사람은 죽어있었거니

이렇게 출근하며 퇴근하며
하루에도 얼마나 죽였는지 모른다
이 골목 저 골목 매일매일
몇백인지 몇천인지 셀 수 없다

오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이 땅에선
누구나 한평생 벌을 받으리
아침이여 나를 사형해다오
밤이여 나를 묻어다오



어디서 얻었는지
찬 밥 한덩이
안해 앞에 내밀며
남편은 즐겁게 말했네
-나는 먹고 왔소

온종일 뙈기밭 일구고
뒷산에서 돌아오신 시부모께
며느리는 그 밥덩이 배부른 듯 내밀었네
-이것밖에 안 남았네요

임신한 새 아기
굶기는 게 평생의 죄 같아서
속이 더 주름지던 노인내외
보물처럼 감추며 말했네
-이 밥이면 아침은 되겠수

그 날 결국
밥이 없는 집에
밥이 남았네



그는 어머니였다
싫다고 울어대는 아이 손목
꼭 잡고 놓지 않으며
시장에 나온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누구든 제 아이를 키워 달라고
두 손 모아 사람들께 빌고 빌며
땅바닥에 무릎 꿇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아이를 품에 안는 고마운 사람에게
마지막 이 소원도 들어줍사
돈 백원 간신히 부탁한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멀어지는 아이에게 미친 듯 쫓아와
그 백원에 기껏 사온 빵 한 봉지
어메나 ! 통곡하며 쥐여준 그 여인은



(한해 농사 지어봤자 국가로부터 온갖 명목의 수탈을 당하고 나면 농민들은 걷어쥐는 쌀이 없어 "고난의 행군"시기 권력 없고 돈 없는 농민들이 더 많이 굶어죽었다.)

피를 말린 가뭄 끝에
하늘이 무너지는 장마비
봄부터 흉년이더니
가을에는 텅빈 계절

씨앗도 뉘 파먹었냐
보이는 건 잡김들뿐
그래도 벼밭의 벼라고
가을에 일어선 속빈 이삭들

쬐꼬만 그 머리들
농사꾼은 아프게 세어본다
온 한해 모아봤자 한 정보에 한 톤
마음에 근심도 한 톤

나라에 올리는 쌀
군대에 섬기는 쌀
간부들께 바치는 쌀
무슨 쌀 무슨 쌀
세고 세다 쌀이 모자라
속에서 불덩이를 꺼내든 농사꾼

어쩔시구 불지르며
저쩔시구 모두 타라!
미친 듯 농사꾼은 춤을 춘다
이 땅에서 죽으라고 농사하며
가을도 이런 가을 언제 봤으랴
한 당대 속에 찼던 원한까지
에헤라 불타는 대풍년인데



(북한 시장에도 물장사가 있다. 그러나 먹는 물이 아니다. 맹물밖에 가진게 없어 그것으로라도 돈을 마련해 보려고 세수물을 파는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시장에 나온 여인들
온 하루 세수물을 판다
맹물세수 5원
비누세수 10원

집안에 재산이란
맹물밖에 없어
그 물에 운명을 담그는 여인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갈땐
한 동이 그 재산을
에잇 죄다 뿌려던진다

그래도 또 날이 새면
희망 가득 동이에 지고
그 짐이 힘이 되여
주린 창자 부여안고
시장으로 달음치는 여인들

어리석은 생명들이여
그 물에 번 돈은 얼마며
그 물에 가난을 어떻게 씻으랴
남들에게 세수하라 웨치면서도
자신들은 세수할새 있었더냐

사람들의 얼굴보다
나라부터 씻어야하매
그 물은 물이 아니다
차라리 그네들이
물을 나르지 않고
불을 날랐다면

오늘날엔
그 불로 눈부신
나라의 새 아침도 보았으리
마음도 시원하게 닦아낸
자기들의 새 얼굴도 보았으리



시인의 팔자는
눈물의 팔자인가
오늘도 나는 젖는다
눈물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나를 두고 슬퍼하기엔
그처럼 한가할 새 없다
모진 이 세월을 안고
온 몸을 기울여 쏟아도
모자란다 나의 눈물은
나는 이 시대의 울보

지금 내 눈에서 흐르는 것은
엄마를 불러 찾는
저 고아의 눈물이다
미친 여자 이빨 짬에 끼운 웃음도
나에겐 통곡처럼 보인다
내 가슴을 때리는 방망이 같다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
열매없는 나무에 매달린 주검들
파리떼가 새까만 오물에도
달려드는 거지 손들
총구 앞에 찢어지는 죄수들의 살점들

그들의 눈물이
내 눈물로 흐르기에
이 나라 이 땅에선
시인이 참아야 될 눈물이 아니다
오히려 눈물이 참아야 될 시인이다

오 과연
그런 날이 언제쯤 오려나
내가 울고 내가 그칠 좋은 날이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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