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뉴스

뉴스

상세
“김일성, 스탈린에 ‘3개월내 통일 가능’ 설득 전쟁 승인”
Korea, Republic o NKJOB 1501 2008-06-26 08:57:00
데일리NK 2008-06-24

“김일성, 스탈린에 ‘3개월내 통일 가능’ 설득 전쟁 승인”

“고려인 출신 北인민군 유성철이 6·25 때 첫 발사 명령”

한국전쟁 당시 북한 수뇌부의 개전 지시에 따라 첫 발사 명령을 내린 인물이 소련 국적 고려인인 북한 인민군 작전국장 유성철(柳城鐵)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1945년 소련군 장교로 김일성 부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한국전에 참전한 고려인 정상진(鄭尙進.90.문학평론가)씨는 24일 카자흐스탄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시 유 국장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또 김일성이 1949년 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다음해 4월 다시 소련을 비공식 방문, 끈질긴 설득 끝에 전쟁승인을 받아낸 사실도 공개했다.

한국전쟁 종전 후 소련파에 숙청으로 북한에서 쫓겨난 정 씨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1946년부터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준비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이끄는 남한도 ‘무력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며 “그러나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난 직후 북한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승만 도당이 북침해 인민군이 2시간 만에 격퇴한 것으로고 선전했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내야 한다는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소련군에 자원입대해 1945년 김일성 부대를 따라 북한에 들어갔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을 맞이하게 됐고,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여단장급)에 임명됐다.

그는 “전쟁발발 이전 남북한 상황으로 미뤄 당시 북한 당국의 라디오 방송내용을 그대로 믿었다”고 밝혔다. 1952년 12월초 김일성을 만났을 당시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젠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문화선전성 제1부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 이를 수락했다.

정 씨는 “문화선전성 제1부상에 임명된 직후 고려인 동료인 유성철 작전국장(중장)이 나를 평양의 한 술집으로 불러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다. 내가 1950년 6월25일 오전 4시 (공격개시를 위한) 신호탄을 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밝혀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어 “1950년 6월25일에 직접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인민군이 국방군을 2시간 만에 격퇴했다’고 전한 데 대해 ‘국방군이 북침했다면 사전에 막강한 무기력을 갖추었을 텐데 2시간 만에 패퇴당했다는 것은 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정황상 큰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1957년 소련파 숙청 당시 월북 문인들이 대거 희생되면서 북한 정권수립에 일조한 정 씨와 유 씨 등 소련국적 고려인 428명도 북한에서 쫓겨났다. 현재 북한 정권 내 고려인 출신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씨는 특히 “김일성은 1949년 초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해 스탈린을 만나 ‘남침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스탈린이 ‘2차 대전이 끝나 복구중인 만큼 지금은 곤란하다’며 거부했다”면서 “그러나 김일성은 다음해 4월 모스크바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해 ‘1~3개월이면 통일시킬 수 있다고 설득해 승인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일성은 ‘서울만 함락시키면 이승만 정권이 백기를 들고 나와 통일이 된다’고 판단했지만 서울 함락은 전쟁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며 “북한 정권의 특성상 이러한 전쟁관련 기밀을 공개하지 않아 북한 사람 대부분이 아직도 한국전쟁은 ‘남한에 의한 북침’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씨는 “1945년 소련군 장교로 북한 원산에 들어가 원산시 인민위원회 문화부 차장을 맡게 됐다”면서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사령부로부터 그해 9월말 김일성 부대가 원산항에 도착하니 마중 나가라’는 명령을 받아 다음날 나갔더니 30대의 김일성이 부대원 60여명과 함께 배에서 내리면서 내게 ‘김성주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날 소련군 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김일성 장군은 없더라’고 보고하자 사령부에서 ‘김성주가 바로 김일성’이라고 말해줬다”며 “만주지역에서 항일유격대원으로 활동한 이들 중 15명이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 장군의 존재 여부는 역사가들이 파헤쳐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박인호 기자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응큼한것 2008-06-26 09:21:07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전략.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gmd 2008-06-26 17:31:01
    이넘에게 당해온 민족의 수난의 역사...오..원통하도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자유 2008-06-26 20:52:13
    한 사람에게 있는 두 손도 서로 마주쳐야 소리가 난담니다.그리고 두 손은 동시에 뇌의 지령을 받습니다.뇌의 지령이 없이는 두 손은 절대로 부딪칠수 없습니다.그 뇌의 기능을 불행히도 우리 한민족은 외세에 강탈당했습니다.지금 현상태에서는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를 따지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합치는것이 중요합니다.2012년의북한의 붕괴니,뭐니하면서 미신,운세가들까지 동원해서 있지도 않을 그 어떤 미래를 억지로 예측하는걸 보면 참 불쌍합니다.그리고 우이 기사에서 나오는 유성철이나 정상진은 두말할것 없이 그 당시 정부전복을 꿈꾸다가 숙청된 자들입니다.이런 자들이 술을 처먹고 얼빤한 개소리 줴친것을 반세기가 넘는 오늘에 와서까지 상기시키는것은 민족화해와 협력에 결코 도움을 줄수 없습니다.저 하늘의 태양은 두 손으로 가릴수 없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북방의소나무 2008-06-26 22:10:51
    안녕하셔요.
    저는 죽음을각오하고나서자란고향을등뒤에두고 민주국가한국에입국한 한사람입니다.자유 님 의글을잘읽어보았습니다.
    글을보니 자유님도 이북사람인것갔은데요?
    자유님께서 쓴 글을보니 태양은 누구를 의미하지요?
    이북도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 군사강국이라면 이북사람들이부모처자를떠나서멀고도먼이국을 돌고돌아 민주국가로 왔겠습니까? 이북사람들의 이수난의 력사가누구에의해서 시작됬습니까?
    저의 짧은견해로는 6.25전쟁당시 한국이 이겼다면 오늘날 북한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는 일은 없었다고 봅니다.!!!
    자유님 누구를 욕하고 태양을 두손으로가릴수없다고 글을쓸거면 이한국에
    왜왔는지 저는 궁금 하거든요?제가 이해를 잘못해서글을썼는지는확실히모르겠지만 요 태양은 누구고 그태양을 왜 두손으로가릴수없는지구체적으로써주면 감사하겠네요. 안녕히계셔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지나가다가 2008-06-26 22:18:42
    자유님의 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없다는말같은데요 ^^ 곧 정의가 이긴다 뭐 이런뜻아닐까요? 사필귀정이란말과 비슷한것 같은데요 소나무님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무섭네요.. 2008-06-26 22:23:19
    전세계사람들이 한국하면 6.25전쟁을 첫번째로 생각하는데...그리고 전세계사람들이 다아는 북한이 남침한것을 뻔히 다아는데 북한사람들은 반대로알고 있다니..정말 쇠뇌교육은 정말 정말 무섭네요...
    진실이란것은 북한엔 없는건가요..?
    개새끼놈들 !!!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무서운 2008-06-26 23:00:31
    북한에선 김정일김일성을 태양과 동등하게 취급한대요.

    어디서 보니까 김일성이 죽었을때 태양이 안 뜰거라고 생각했대요.

    쇄뇌교육 정말 무섭습니다. 유치원때부터 갇혀서 쇠뇌받는 어린애들이 넘 불쌍해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광우병한우 2008-06-27 01:47:29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가튼넘이 다시는 이땅에 나오면 안되겠죠!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광우병한우 2008-06-27 01:49:38
    김일성이 넘이 625일으켜 얼마나 많은 민족이 죽었나요?

    동족을 향을 총부리를 겨운 싸가지 없는 김일성이넘!.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미친김일성 2008-06-27 01:51:30
    만약 김일성이가 1950년 6월 24일날 데져 버렸으면 625의 비극도 없을을겁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자유`님 2008-06-27 21:02:02
    탈북자거나 조선족이신 거 같은데요..

    미래지향적이고 민족화합적인 사고방식에는 공감이 갑니다만

    역사를 왜곡되게 인식하고 계신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제와서 남침이야 북침이야를 따지기보다는 외세에 의해 갈리고 싸우고

    죽고 죽이고 헤어져야 했던 민족의 분열을 극복하자는 의견은 분명

    생산적인 의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남침`이라는 역사적인 진실을 부정하려 하셔는 안됩니다.

    저 하늘의 태양은 두손으로 가릴 수 가 없다니요?

    남쪽에서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미로 글을 쓰신 것 같네요.

    잘잘못을 떠나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 . .
    님이 원하는 바대로 그렇게.. 덮고 넘어갈 일이 절 대 로 아니예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한라봉 2008-06-28 20:55:01
    이글은 한라봉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6-28 20:55:28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비극 2008-06-30 09:35:54
    625는 한반도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전쟁이었습니다. 민족의 원수 일본에게 대호황을 가져다주고 우리나라는 인도만큼이나 못사는 최빈국이 되었버렸으니까요. 최대의 친일자는 김성주인지 김일성인지도 알수없는 저놈. 엄청난 희생을 치룬 이 전쟁때문에 남한사회는 반공의 물결속에 민족적 역량을 가진 많은 애국자들이 제거되고, 친일세력들이 반공의 기치아래 수십년동안 권력을 누려왔으니, 이또한 비극..이 비극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한반도 2008-07-02 21:01:59
    6.25전쟁때 남조선이 먹히웟더라면 지금의 북한처럼 됏을거야
    완전통제구역에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햇을거야
    그럼 김일성도 총에맞아 죽지않고 지금까지 살았을텐데...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자유란넘 2008-07-03 12:25:54
    자유란넘 미친넘이군 ^^^ 후유
    북한에서 덩일이나 받들고 살게지 여긴 왜 있어
    탈북자인지 남향사람인지 알수없지만
    개정일이하고 지옥에같이가서 고생꽤나 해야겠네 ...
    이북의 통제구역과 수용소에서 죄없이 죽어간 수많은 종파 혐의자들의 원한이 이를 갈고 있다 !! ,....정신차려 !!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자유란넘 ... 2008-07-03 12:29:20
    북한에서 정부전복을 꿈꾸다 숙청되였다고 했니 ?
    멍청이인지 반동인지 ....참
    그런 김정권은 반드시 정복되여야 하는줄 모르느냐 ? 이넘아
    너같은 넘들때문에 아직 정일이가 활개치고 있느느거다 이못쓸넘 !!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고향친구 2008-07-03 18:15:27
    남한에친북 김정일세력이 잇다더니 자유란놈글을보니 사실이군요 북한에서살아본탈북자는설마아니겟지요 한국에서제가모자라실패한삶을사는자들이나라탓을하면서 막연히이북정권에기대해보는것같군요 김일성이독재체재를유지하고무난히세습까지한 그탁월한전략과전술의희생자들이 반정부음모자들로 매도되엿습니다 그들도나라와민족을위해나름대로청춘을바쳦던분들입니다 써먹을대로 써먹고 자신의독재체제에 걸림돌이되니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감투를씌워숙청시킨겁니다 자신의친위부대외 연안파 쏘련파 남로당출신 모조리 차례로숙청햇습니다 김일성에게충성하는건본인의자유지만 똑바로알고하시요 무조건적인충성그건그의똥개에불과합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北, ‘냉각탑 폭파쇼’ 방송사 초청은 ‘입맛’따라?
다음글
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