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행복찾기 - 이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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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북한 민주화 운동의 '자긍심'을 갖자 “선생님 꼭 행복하십시오!” 2월 16일 퇴원을 앞든 필자를 꼬옥 포옹하며 담당치료사(Case worker)가 하는 말이다. 병원문을 나서며 치료사의 말을 되새겨 본다. “행복”이란 두 글자의 단어가 탈북자인 필자에게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한국에 입국한 당시 필자는 상처투성이였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그리워 괴로웠고, 사회적으로 외로웠으며, 경제적으로나 사랑 역시 어려웠다. 그나마 긍지라면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한다는 것 뿐이었다. 행복이라는 두 단어는 필자에게는 사치였다. 행복을 찾는 방법을 몰라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다. 난관에 난관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도 난관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 역시 난관이다. 여기에 외로움까지 겹치면 앞이 캄캄하다. 자기의 문제점을 찾는 카드놀이 모든 생활이 다 그렇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더 하다. 필자도 "월급 70~80만원을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왔다. 외로움 역시 두려웠다. 사람들은 “외로움에서 탈피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다. 필자도 외로움에서 탈피하기 위해 가정을 꿈꾸며 연애도 해봤다. 그 중 한 사람과는 결혼식까지 올렸다가 헤어졌다. 뒤돌아보면 행복은커녕 온통 상처투성이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사람들이 탈북자를 대하는 관점때문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도, 경제생활, 개인생활도 결국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답답한 나머지 나탄 샤란스키의 “민주주의를 말한다” 책을 펼쳤다. 책 속에서 명언과 명문들을 하나하나 메모지에 기록한다. 카드놀이를 해보기 위해서다. 이 카드 놀이는 주패(카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구점에서 메모지를 사다가 그 메모지 한 장, 한 장마다 자신이 바라는 사회적 또는 도덕적, 지향적 가치관이 될 만한 단어 또는 명언들을 적어 놓는다. 메모지들을 섞은 다음 한 장, 한 장 뽑아가며 문장을 만든다. 주어와 술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는다. “나는… … 행복하고 싶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하기 때문에 ~으로써 ~을 위하여 행복해지고 싶다”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 “~”사이에 문장이 이어지지 않으면 새로운 메모지에 전치사를 끼워 넣으며 문장을 만든다. 그런대로 문장의 내용이 자신이 목적하는 내용과 같다면 다시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이렇게 여러 문장을 만들어 그 문장의 내용을 풀이하여 메모지에 적고 다시 문장을 만든다. 이를 되풀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본질적 문제성이 나온다. 필자의 경우는 술과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어려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술에 의존했고, 그 술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왔다. 당연히 사회생활, 경제생활, 육체적 활동 등 행복의 가능성들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었다. 변화 속에 자신감 찾기 문제점을 찾았다면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야 한다. 주별, 일별, 시간별로 종전과 다른 생활세칙을 만들었다. 탈북자로써의 사회적 의무성과 경제생활, 육체적 활동은 물론 스트레스 관리, 분노 관리에 주안점을 두었다. 필자는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아이디어 2개를 끄집어 냈다.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들은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는 것과, 국민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한 도덕적 분별력에 대한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에 관련한 원고를 작성했다. 이 원고를 인권단체들과 언론사에 보냈다. 원고료가 나왔다. 물론 원고의 완성도나 기법에 대한 관련자들의 도움이 컸다. 하여튼 만 오천짜리 책에서 그 7배의 원고료를 받았으니 경제적 어려움 해소의 열쇠는 쥔 듯하다. 자신감이 생겼다. 탈북자 행복의 기준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북한에 있을 당시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왔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그리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차원이 달라졌을 뿐이다. “생활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가? 돈을 위해 생활이 필요한가?”였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생활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서는 돈을 위해 생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탈북자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탈북자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사회가 개인중심주의라는 것이다. 개인 중심주의에 탈북자들이 잘 못 물들면 본이 아니게 이기주의자로 전락할 수 있다. 한편 개인중심주의 사회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복기준의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사회생활의 긍지, 경제생활의 자유로움, 육체활동의 건전함이 바로 그것이다. 자율성과 연대성으로 어려움 극복해야 북한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탈북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경제생활에서의 자유로움이다. 사회적으로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동참한다는 긍지는 있어도 경제생활은 자체로 해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의 허광일 대표와 같이 경제적 어려움의 해소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탈북자 단체들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체적 차원도 도움이 되지만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단체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결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차적 해결은 탈북자들 스스로 노력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탈북자들의 행복은 더 없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율성과 연대성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탈북자들이 그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운동권에서 활동하면 경제생활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 그래야 탈북자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에 동참하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 운동 역시 활동가들의 불행한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활동가들이여 행복해지자! 2006년 3월 8일 이주일 (탈북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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