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에 찬 재중탈북여성들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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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탈북한 사람들 중 60~70%는 여성들이다. 오늘도 중국 땅에서는 10만~20만으로 추측되는 탈북자들의 아까운 청춘을 피와 눈물로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해줄 의무가 있다. 탈북자들은 한 동포라는 견해도 있지만, 인권은 천부적이고 보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으며 노예같은 비참한 삶을 누리고 있다. 북한과 중국 국경지역에서는 탈북여성들을 노리는 인신매매 단이 활개를 친다. 그들은 탈북여성들에게 직장과 살 곳을 알선해주겠다고 하면서 유인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범죄의 방법은 탈북여성들이 불법체류자라는 미끼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장가를 가지 못하는 중국남성에게 팔아버리거나 나이 많은 중국남성과 강제결혼의 형대로 인신매매를 한다. 또 노래방, 유흥가들에도 팔아먹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최근 남한에 입국한 대다수의 탈북여성들에 의해 증언되었다. 올해 2월에 입국한 탈북여성 한정화(28살)씨는 중국 흑령강성 할빈에서 16살 때 (1999년)인신매매 단에 (중국 돈1만원)에 팔려 중국한족과 10여년을 살았다고 한다. 불법체류자라는 오명 때문에 한씨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려지다 시피 중국 농촌들에는 능력이 없거나, 불구로 인해 장가를 가지 못한 남성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남성들이 결혼을 해 볼 수 있는 대상, 조건은 불법체류자의 오명을 쓰고 숨어사는 탈북여성이 적격이다. 인신매매단은 이런 중국남성들에게 결혼의 명목으로 탈북여성들을 팔아버린다. 한씨는 중국에서 겪었던 자신의 생활의 일부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16살 되던 시기 북한에서 브로커를 만나 중국에 들어가면 일거리를 구해주겠다는 말에 나는 그를 따라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어느 산골에 들어가게 되었다. 며칠을 푹 쉬라고 하던 브로커는 며칠 후 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 중국 사람과 함께 차를 가지고 찾아왔다. 중국 사람은 브로커와 중국말로 주고받더니 나에게로 다가와 ‘일자리를 구해놓고 있으니 여기에 오래 있으면 중국공안에게 체포될 수 있다면서 빨리 할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당시 동북3성에는 포고문이 나돌았는데 탈북자 한사람을 잡아오면 한 사람당(중국돈5000원)을 상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그날 내가 탄 차는 농촌과 도시들을 수없이 지나고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가던 도중 몇 번을 쉬였다가 가군 하였다. 처음으로 오래 차를 타보는 나로서는 속이 울렁거리고 멀미가 와 계속 토하며 길을 갈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틀이면 가 닿을수 있는 구간을 5일에 걸쳐 할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것은 할빈시 샹팡에 있는 어느 아파트였다. 문을 두드리니 마중하는 것은 나보다도 17년 차이나는 33살 난 중국 한족 남성 이였다. 나를 데리고 온 중국 사람과 브로커는 그 사람과 다른 방에서 한 시간 가량 무엇이라고 주고받더니 나를 보고 ‘이 사람이 일자리를 다 해준다’고 하고는 떠나가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싫다고 브로커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 남자는 인차 다른데서 잔다’고 하고는 3명이 다 함께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무서웠다. 한참 후에 문소리가 나더니 한족이 들어왔다. 손에는 많은 옷과 먹을 것을 들고 들어왔다.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나는 방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중국말을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 나는 조선말로 ‘빨리 일거리를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그 역시 조선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여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브로커에 속히여 팔려 왔던것이였다. 낯설은 이국땅에서의 나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달아나자 해도 말도 몰랐고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었으며 그보다도 주머니에는 돈도 한 푼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한족사람은 하루 종일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어디에 나갈 때면 열쇠(키)를 밖으로 걸고 나가군 하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는 중국돈 (1만원)에 팔려 왔던 것이다. 나는 속히여 온 것이 분통하였다. 나는 한족이 옆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때로는 방한구석에서 울다가 그대로 잠들 군 하였다. 그러나 며칠이 안 되어 나는 너무도 어리나이에 나의 정조를 잃고 말았다. 나는 그 한족사람이 죽기보다도 싫었고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온갖 모질음을 다 써보았다. 이렇게 되자 한족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또 기회가 있으면 달아나려고 애써도 보았지만 내 옆에서 매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한족사람은 매일 몸에 술을 달구어가지고 다니면서 술주정을 하였고 어떤 날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마구 때렸다. 그러던 2002년 12월 나는 임신하게 되었고 그 다음해 9월 딸애를 낳게 되었다. 딸애가 3살 되던 해 2006년 시장에 나가 채소를 사다가 우연히 김치를 파는 중국교포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고 내 사정을 들어보던 그 아주머니는 나를 남한으로 보내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 빠져나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시어머니가 딸애를 꼭 붙안고 있어가지고 딸애와 함께 달아날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과 싸움을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딸애가 없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더니 내가 달아난다고 시어머니와 함께 장춘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즉시 할빈역전과 가는 곳마다 찾아다녔지만 끝끝내 찾을 방도가 없었다. 그래 그날 저녁으로 중국교포 아주머니를 찾아 그 집에 며칠을 묵으며 시집에 전화도 하고 알아보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알려주지를 않았다. 나의 볼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러내렸다. 이렇게 되어 중국교포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2007년 5월 남한에 입국하게 되었고 그 후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딸애의 소식을 물어보니 “한국돈(400만)을 주어야 딸애를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정화씨는 두고 온 딸애가 보고 싶어 밤이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이것은 한정화씨만의 고통이 아니다. 김정일의 파쇼독재정권이 낳은 한반도 역사의 비극이다. 지금도 탈북여성들은 중국 흑룡강성, 산동성, 호남성은 물론 광주, 상해까지 브로커들에 의하여 돈에 팔 리여 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하루빨리 구원해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탈북자 문제를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김정일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당면하게는 지금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정부의 비인권적 처우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남한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2007년 11월 20일 정학민(2007년 입국)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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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김정일은 짐승보다도 못한 그런 인간이네요..휴~
아직도 중국땅에 있는 북한여성들 어떻게 하죠?!!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울땐 자기 자식이 그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게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였건만 부모의 사랑도 다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중국의 방방곡곡에 팔려다니면서 인간아닌 짐승취급을 받으면서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내걸고 여기로 달려왔지만 지금도 중국땅에서 억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고향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려옵니다..
20년씩 곱게 키운 남의 집 자식을 데려다 그 부모님들한테 이쁜딸을 키워주셔셔 감사하단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자식들과 생이별을 하는 우리의 부모님들..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나고 중국에서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지금도 자다가도 불뚝 놀라 잠에서 깨곤 하는 분들은 또 몇몇입니까...
빨리 변화가 와서 더이상 불쌍한 우리동포들이 집도 없이 헤매고 돌아다니지 않게 따뜻한 구들목에서 온 가족이 모여앉아 행복하게 살 그 날이 하루빨리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 계시는 우리 동포분들..힘을 내시고 내일을 위하여 하이팅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 너무 불쌍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북한 주민들이 마음대로 지도자를 바꿀 수 있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가 있어야 경제적 번영이 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되니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비극이 해결되기 어렵겠네요.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되는지 의견을 올려 주시면 좋겠네요...
그러면 좋은일이 있을꺼에요,
다들 어서 새로운삶의 터전을 찾아야 할텐데..
중국인들이 한국에 올수없게해야한다
중국인 불법체류자를 강하게 단속하자
집단적인 범죄 행위는 너들 한국 때꺼리새끼들이 들어와서
거의 생긴거다
연변 촌넘들이 무슨넘의 수로 국경 드나드는 범죄 행위를
하곤노? 기껏해봤자 자그만한 사기나 치고 하는 짓거리가 그정도지
근데 너희 한국 씹세들이 들어오면서 집단적이 범죄행위가 좇나 많아진거다
종교단체 범죄(무슨 써거얼어질 목사넘이 미게한 넘들 재물에 색까지 얼려내고)
온라인상 도박께임 범죄단체(북경 왕찡에서 그짓꺼리하다 잡힌 한국 떨거지들 좇나 많아 뉴스에도 대대 보도되였으니 알거라 믿는다)
밀입국 범죄(한국넘들의 참여없이 중국넘들이 무슨 넘의 수로
건너가겠노,모든 밀입국에 한국넘들이 모두 참여를 했다)
북조선 탈북자 매매(씹새야 한국넘들이 써벌나게 힘을 썼어요
베트남 거쳐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뺑치고 야마꾸지하고 손잡어서 러시야 일본으로 국제 인신매매하고 씹세끼들)
좇나 일일이 하자면 18 끝이없어요!
그러니 한국넘들 너무 씹내말고 똑바로 살고 있는넘은 계속 똑바로 살기에 노력하고 씹쌔들은 항상 똥구멍 벌리고 하늘이 천벼락으로 똥구멍 까줄때가지 고이 대기하고 있거라!
씹세들!!!
제발 너네 중국으로 돌아가라
여기 이 사이트에서도 웃집의 눈길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는것만 명심하시고 서로 도와주는 것을 이용해가지고 목숨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입니다. 한국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으니 차라리 그런사람들
믿는것이 중국에서 합류하는것보다 아마 더욱 신중성이 있을겁니다.
부디 귀하신 몸들 한군데도 다치지말고 귀국하는것이 이사이트에 들어오는 많은 선배들의 바램입니다.
너무너무 도와드리고 싶은데... 저는 탈북자가 아니라서... 방법을 몰라요
이곳 사이트에도 스파이(간첩)들이 활동할지 모르니 한국땅에 도착한 새터민들중에서 한명을 지정해서 그분이 정보를 주는 방법은 어떨까요?
항상 이곳에 들어와보면 늘 한국행을 희망하시는 중국에 계신분들이 많은데.. 속시원히 그들에게 답변을 주시는 분이 없으시네요.
아마 메일이나 다른쪽으로 도와주시고 계신건가요?
너무너무 안타까와요...TT 넘넘 도와드리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고....TT
괜시리 넘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 하고 갑니다.....TT
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천명남아 도와주고 있는 선교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로년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 일전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돈을 모으는 방법은 교회마다 다니면서 죽어가는 내 동포들을 구원하자고 눈시울을 붉이면서 동양하고 빌어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주고 중국에서 사는 탈북자들에게 생활비를 보냅니다.
다 해여져가는 샤쯔를 입고 바지를 입고 매일 아침 코피를 를리면서 동양을 합니다.
지금도 몇사람이 당장 붓잡히게 되자 그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 시키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블록그들이 너무나도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어요.
돈이 모자라서 안타까워 합니다.
한민족으로서 조금만 도와 줄수 없을까요.?
저는 죽을 면한상태고 학생이여서 아직일자리도 찾지못한 형편이라서 단돈 일원도 보탤수 없네요.
중국에 있는 탈부자들은 알지도 못합니다.단지 조선사람이란 것만 분명합니다 그들에게 온다움 돈을 내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도와주려고 교회를 다니며 그들을 위해 눈물 기도를 하며 동양하기만 하십니다.
70된 이로인을 도울분은 없는지요.이글을 다른 곳에다도 올려줄수 있는분 도와주세요.그럼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주님이 이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주길 기도드립니다
살길을 찾아서 생사를 걸고 탈출해 중국에 들어온 탈출자분들에게 도움을
못줄지언정 어떻게 그런 못된짓만 해가는지.....
좋은조선족분들도 많이 계시니 여러분들의 행운을 빕니다.
탈북해서 한국으로 가지 못하고 중국에서 오래 머문 사람들은 이런 착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북한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도 인권은 북한보다 조금밖에 나아지질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한국으로 탈북한 동지들을 비난하는 글을 싣는 분들 글도 읽어보았다.
죄송하지만 남의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