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민주주의를 말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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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정필님의 발제글을 읽고 제가 느낀 바를 적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좀 더 많은 분들께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 이렇게 발제글로 올립니다. 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정필님의 글에 올린 댓글과 대동소이하니, 그 댓글을 보신 분이라면 굳이 다시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시고 좋은 의견들 주셨으면 합니다. 과거 학생운동권 활동이 가장 성하던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남한에는 반공주의자 못지 않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친북, 종북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학생 운동권 중 상당수가 그런 성향을 숨기지 않았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때 남한사회에서는 정부에서 공개하는 일부 정보 외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모두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공개되는 정보 역시 조금이라도 북한사회가 사람사는 사회로 인식될만한 내용은 철저하게 차단된 채 공개되었죠. 하지만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미 남한의 군사독재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있을 운동권학생들은 남한 정부가 제공하는 일방적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고, 비록 아주 찰라적이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북한도 사람들 사는 곳'임을 알 수 있는 '사실'을 기초로 남한 정부의 주장은 무조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심지어는 북한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한민족 국가'라고까지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소위 '주사파'지요.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와해되었는 줄 아십니까? 너무 허무하고 간단했어요. 90년대 들어서며 그냥 있는 그대로의 북한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광범위하게 소통되면서, 북한은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었슴을 충격 속에 인정하게 됩니다. 그들이 느낀 충격이 얼마나 컷느냐 하면, 그들 중 상당 수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보수계'로 자리바꿈을 해버리는 사상적 투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또 상당 수가 '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좌파적 가치'로 변화하게 되죠. 좀처럼 장점을 찾기 힘든 북한의 현실에, 어느 덧 그들 사이에서도 북한을 찬양하면 바보취급을 당하게 상황으로 바뀐 겁니다.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친북, 종북적 사고를 갖는 인물들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솔직히 고정간첩같은 직접적 북한의 세력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남한토박이들 중에 그런 인물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건 실제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지만, 스스로 좌파 내지 좌파정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이런 사실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중 상당수는 (제 예상과는 달리) 북한이나 통일문제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아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온갖 현란한 수사보다 투명성과 소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한가지 간단한 예를 더 들어 본다면... 예전에는 그렇게도 운동권 학생들의 성스러운 '바이블'처럼 인식되었던 '공산당 선언'이 있지요. 당시 학생들은 이 문헌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안당국에 구속이 되었을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그것을 이리저리 숨기고 창문으로 새어나가는 빛마저 가려가면서 그것을 탐독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인터넷에서 '공산당선언'으로 검색하면, 공산당 선언의 전문은 물론 관련 정보까지 주르륵~ 뜹니다. 심지어는 상세하게 해설까지 곁들인 서적까지 버젓이 판매하고 있죠. 그런데, 요즘에 이 '공산당 선언'보는 사람들 있나요? 거의 없어요. 그나마도 보는 이들의 대부분은 학문적 이유에서입니다. 남,북 사회 모두를 장점과 단점, 있는 그대로 모두 투명하게 드러내 놓으면, 제 정신인 이상 그걸 보고 북한이 좋다고 따를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작 문제는 숨기고 포장하고 왜곡하는 것이죠. 예로부터 '금단의 열매'는 더 달게 느껴지는 법이며, 투명함 속에서 거짓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투명한 사회. 저는 이 투명한 사회의 다른 말을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와 이념은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서로 많은 다른 생각들을 갖고 때때로 이로 인해 대립하곤 하지만, 대체로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제도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이 원칙적인 면에서 동의합니다. 더구나 좌파적 가치든, 우파적 가치든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성장과 발전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는 역사와 현실이 증명합니다. 반대로 우파적 가치든, 좌파적 가치든 그것이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 그 사회는 '허울 좋은 독재'일뿐입니다. 북한사회가 나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한다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때문이 아니라, 자칭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겉으로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1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그에 상응하는 민주시민의식입니다. 어떤 이념을 추종하든, 서로를 존중하고 민주주의적 제도와 원칙을 지켜간다면,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이념이나 성향과 상관없이 진짜 '북한문제',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비로서 우리가 정말로 통일한국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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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셨네요.
우리나라엔 좌든 우든 민주주의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집단적 패권주의나 포퓰리즘에 이용되지 않는
본래 의미의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북한도 그나마 순수 사회주의 이론가였던 박헌영이 집권했더라면
남북한 사람들의 많은 인생이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 글을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박헌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이력 몇 개뿐, 솔직히 제가 아는 바가 별로 없네요.
선생님께서 높게 평가하신다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박헌영이도 김일성못지 않게 독종이죠. 사람보다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만큼 더 독종이 더 있을까요..세상에 드러난 부분이 적어서 그렇지 악행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김삼룡,이주하 등 그의 충복들인 남로당의 악행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만약 김일성 뒤를 봐주는 소련이 똑같이 박헌영을 밀어주고 경쟁을 붙였더라면 김일성보다 더 노련하고 능구렁이 같은 박헌영이 장악했을 겁니다. 6.25전쟁을 일으키면 곧바로 남쪽 지하당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 조선인민공화국 군대를 열렬히 환영하고 한달이내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이란 호언장담을 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김일성의 총구속으로 사라져 갔지요.
그때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미칠 수 밖에 없도록 우리나라 사회구조와 의식수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박헌여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엇을 겁니다. 다만 정권세솝이 없어질 지는 모르나 중국의 영향아래 모든것을 맡겼을겁니다.
“굴곡은 많았지만 후회 없는 나의 삶이 젊은 세대에게 교훈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해 초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6년 11월부터 64회에 걸쳐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연재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다 지난 3월 말부터 회고록 집필에 더 집중하게 됐다.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의 안보 현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보 현실이라면.
“정부를 불신하고 국익에 반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해방 직후의 이념 갈등이 연상될 정도다. 60년 전에 전쟁의 참화를 겪은 나라가 맞는지 믿기지 않는다.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며 대한민국을 건국한 선배 세대들의 뜻을 되새겨야 할 때다.”
-해방 뒤 ‘사상 검사’를 했는데.
“경성제대 졸업과 고등문관시험 사법과(현재의 사법시험) 합격 뒤 평양에서 해방을 맞았다. 소련군의 약탈과 만행을 접하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자유를 찾아 월남한 뒤 ‘공산당 뿌리뽑는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오제도(2001년 작고) 검사 등과 함께 남로당 지하조직을 분쇄했다.”
-당시 어려웠던 점은.
“백지 상태에서 입당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 조직을 파악해나갔다.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버텼다. 그런 노력으로 남한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던 공산세력을 6.25전쟁 이전에 대부분 제거함으로써 박헌영이 말한 ‘거대한 공산혁명’을 막을 수 있었다.”
-신변에 위협은 없었나.
“50년 1월 집 앞에서 나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뒤늦게 발각됐다. 당시 우연히 일본 출장 일정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모면할 수 있었다. 6.25 발발 뒤 피난길에 올랐을 땐 ‘인민의 원쑤 오제도, 선우종원’를 잡아오면 당시로선 엄청난 거금인 200만원의 현상금을 준다는 벽보가 붙었다.”
그나마 우리가 김삼룡,이주하를 잡았고 박헌영은 김일성이 잡아서 결국 죽였다.
네, 궁극적으로는 북한사회가 개방화되어 자체적으로 민주시민의식이 싹터야만 비로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교류도, 통일도 가능할 겁니다.
다만 이것은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에 하나죠. 예전 노무현 대통령께서 방북 중 김정일에게 '개방'이란 표현을 사용했다가 김정일이 잔뜩 삐져서 입을 꾹 닫고 들어가버려 굉장히 당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하지만 그런 김정일도 결국 자기 권력의 안위를 위해서는 충분히 움직일 여지가 있습니다. 그의 선의나 진정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산을 믿는 것이지요.
물꼬가 트이면, 그 다음부터는 북한주민들 스스로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사회가 그랬듯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린 한민족이니까요.
그 리론가 어디 있나? 데려가 죽이라우~
핵펭귄과 놈년을 합친 초합체 울트라 공산주의자 박헌영. 두만강 노래의 주인공 박헌영은 결국 그렇게 갔다. 물리적 힘이 없으니....
박헌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전임 대통령들을 함부로 욕보이지는 맙시다.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두 분 대통령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분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저도 현 대통령 무척 싫어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이런 공적인 곳에서 그에 대해 쌍소리는 안해요. 제가 쌍소리하면 저야 속이 좀 시원해지겠지만,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이 화날 일이잖습니까.
서로 간에 실익도 없는 나쁜 소리해서, 서로 감정 상해 좋을 일이 뭐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공산 사회에서 살아 보지 못했거나 공산 간부 즉 독재자들을 직접 체험 해보지 못한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세상에 공산주의 자들 만큼 독재를 굼꾸는 자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독재 치고도 세계를 자기 손에 쥘 꿈을 구며... 그 1인 독재를
대를 두고 이어갈 꿈을 꿉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그가 어떤 나라이건... 그가 누구이든 모두 먹어 버리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제일 싫어 하는 것은 똑똑한 사람 즉 머리좋고... 자기의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박헌영이도 미국의 고용 간첩으로 몰아서 죽여 버렸죠.
이제 만약 김정일 세상이 된다면 제일 먼저 죽일 사람들은 남한에서 정부를 반대하여 데모를 하던 ... 즉 자유를 맞본 ... 자기의 주의주장을 위해서는 무조건 들고 일어나는 ...그런 세력들이 될겁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모르면 공산주의 라는 이론과 사상을 절대로 바로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즉 볶은 콩같이 고소하게만 느껴지는 공산주의의 이론속에 숨겨진 야심과 속임수를 절대로 분간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한에도 아직도 김정일에게 동조하는 세력들이 존재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철부지 젊은이들 속에 말입니다.
처방도 바르고...
앞으로도 혀에 칼은 빼고 말씀해주세요. 알았죠 ㅇㅇㅇ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글쎄요...
제가 생각해도 김일성 집권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공산주의가 실현되기엔 당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의식 수준이 너무 낮았죠. 준비는 멀었는데, 턱없이 높은 이상을 들이댔습니다. 게다가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자들 역시 민주적 절차나 의식과는 좀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것이야, 권력의 속성상 당연한 겁니다. 권력을 나눠가지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이잖아요. 더구나 그것이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리고 '만약 김정일 세상이 된다면 가장 먼저 죽일 사람들이 남한에서 자기 목소리내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선생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그 '자기 목소리내는 사람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들이 대부분이 제일 혐오하는 것이 '독재'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산주의 이론 속에 숨겨진 야심과 속임수 등을 말씀하셨는데, 일면 맞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라는 이론 자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그럴 듯하고 고등한 사회이론이거든요. 그러니 매력적일 밖에요.
다만, 어떤 이론이 선의냐 아니냐는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이론들도 다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 일례로, 히틀러의 경우는 우파적 가치를 추구했고, 민주적 절차를 거쳤지만 역시 독재로 전락하지 않았습니까.
즉, 좌파냐 우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의식'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는 87년체제 이후 비교적 잘 정착했습니다. 현 정권들어 '퇴보'가 이야기되고 있고 그 점이 매우 속상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과거 군사독재정권이나 북의 뽀글이 정권에 비교하겠습니까.
다만 후자, '민주시민의식'이란 부분은 앞으로 성장해야 할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도 크게 우려하지는 않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시민의식이 싹튼 서구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우리 시민의식이 본격적 성장을 시작한 지는 길게 봐야 3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짧은 기간으로 본다면 그 성장세가 놀라울 지경이죠.
선생님.
선생님 말씀처럼 남한 사회에 아직도 김정일 정권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소수의 고정간첩들이거나 좀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철부지 젊은이라 하셨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김정일을 지지할 이유는 더욱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그에게 관심조차 없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북한사회. 뭔가 혹하고 좋아 보이는 게 있어야 동조도 하고 지지도 할 것 아닙니까. 생각없는 사람들에게 일수록 그런 것이 더욱 중요하죠. 생각많은 사람들은 쉽게 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보시기에 우리 남한 국민들에게 북한사회가 좋게 보일 부분이 뭐가 있을까요? 한번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제 생각엔 대답하시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거든요. 그만큼 북한사회는 남한국민들에게 매력이 없습니다. 그저 저같이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좀 강하고 통일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좀 아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독재주의는 민주주의의 대척점이고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척점이지요
부르조아(자본가계급)과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의 지속적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내재적 모순으로 멸망하고 말 것이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의 주체가 되는 계급적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독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공산주의가 정말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은 엄밀한 구별 없이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마르크스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계급 없는 공산주의의 비전을 제시하고 여기서 공산주의를 '보다 낮은 단계'와 '보다 높은 단계'의 2단계로 구별하였습니다.
제1단계는 아직 초보적 단계로서 여기에서는 완전한 분배상의 평등은 실현될 수 없으며,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완전한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레닌은 이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였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여 수립되는 '사회주의' 정권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레닌 이래로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제2단계, 즉 '보다 높은 단계'는 생산력의 높은 발전을 전제로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분업(分業)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며, 따라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일의 욕구(欲求)'로 되고,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낭만적인 공산주의의 미래상은 20세기를 관류(貫流)한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런 공산주의의 절대적 종주국인 소련이 공산주의가 가장 경멸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연방을 해체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90년대 이후 도미노처럼 몰락하고 공산주의체제로서는 확대재생산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하고 암울한 현실을 보았을 때, 공산주의의 대가들도 이른바 과학적 이상적 순수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꿈꾸었던 그러한 미래는 도저히 도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독재가 나쁜 것이지 왜 공산주의가 나쁘겠느냐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학문으로서 연구하는 것은 좋을 지 모르겠으나,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공산주의나 비근한 사회주의를 좌파적 존재로 인정하고 나아가자는 것은 오히려 인류를 위해서는 비극이 될 것이며 향후에도 인류를 편가르는 이데올로기 편가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나찌즘이나 제국주의 같은 편가르기로 자기와 다른 종족이나 약자를 한없이 짓밟고 억누르는 그런 사상들이 또는 그런 계급투쟁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를 했군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너무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제 의견을 조금 말씀 드립니다.
일단 '독재'에 대한 제 혐오는 선생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자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입니다. 하지만 독재는 그 속성상 존중과 관용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관용'인데, 독재는 바로 '불관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 선생님은 제 생각을 '공산주의는 위험하지 않다. 공산주의를 수용해야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라고 글 서두에서 정리하셨는데, 이는 오해의 여지가 많은 표현 같습니다.
먼저, 공산주의는 위험하지 않다?
아니요. 제 생각을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위험한 이론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 역시 그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대해 압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민주시민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 봅시다. 민주시민 사회에서 공산주의 이론이 주류 정치이념으로 인정받은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공산주의 이론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공산주의 국가는 사실 대부분 산업화 수준도 높지 않고, 민주적 수준도 낮은 후발국가군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공산주의 이론에 위험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 요소때문에 우리 사회에 정당한 주류 정치이념으로 자리잡을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수용해야 민주주의사회이다?
저 이 표현에 동의합니다. 다만, 이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많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수용'한다는 의미가 공산주의 이론에 동조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그런 이론이 있고, (비록 소수나마) 그것을 연구하고 심지어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자는 수준입니다.
또 물론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치(공산주의)를 추구하면서 그 어떤 행동도 함부로 해도 되고 이를 용인해야 한다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그들의 존재, 생각, 말 등은 민주적 다양성의 가치를 지킨다는 면에서 인정하지만,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범법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법에 의해 당연히 처벌해야지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좀 예가 그렇습니다만... 이런 겁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싫어 군대에 면제가 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고 합시다. 마침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에, 나도 그곳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종 정보를 얻고 그 중에 한 방법을 택했는데, 그 방법이 불행하게도 불법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는 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에 고민 끝에 그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심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제 1단계입니다.
제 2단계에서는, 내가 직접 불법적 면제 방법을 선택해서 실제로 실행에 옮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법의 처벌은 어디부터 가능할까요? 물어보나 마나입니다. 제 2단계부터입니다.
제 1단계 자체가 옳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2 단계에 접어들면 불법적 행위가 증명될 수 있으므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겁니다.
제가 위에서 말한 '민주사회에서의 공산주의의 수용'은 바로 이것과 비슷하며, 이는 법치사회라는 우리 사회에서의 사건의 법적 판단 기준과 일맥상통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공산주의가 좋다거나 나쁜 짓을 해도 그냥 두자는 게 말이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 오해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님께서 올리신 댓글 중에 사회주의적 가치가 나쁜것이 아니라,,,고 하시였는데 문제는 사회주의적 가치란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는것 입니다.
최악의 북한을 배제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아실수 있을것이며 가깝게는 중국을 통하여 쉽게 배울수 있을수 있을것 입니다.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발달한 동부독일은 어떻습니까? 주변의 사회주의권을 살펴보니 어떻하였습니까?
오늘의 중국이 있기 까지는 등소평의 역활이 참으로 대단하였다고 봅니다.
사회주의란 페쇄되고 무아독전적인 세계에서 대담하게 방향을 전환하여 개혁개방을 주도하여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으며 G2의 지위에 까지 올랐습니다.
등소평의 이론은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 단계로 발전하며 그 과정을 걸쳐야 사회주의를 이룰수 있다고 합니다.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전면으로 반박하고 뒤집은 일종의 사회혁명이였으며 그 과정을 걸치면서 수백년동안의 궁핖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렬을 넘보고 있습니다.
동구권사회주의나 중국의 경험으로 보았을때 사회주의란 이룰수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설사 그것을 시험적으로 실시한다면 강력한 독재가 안받침 되여야 모방이라도 할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강력한 독재가 량립할수 있을까요?
때문에 사회주의적 가치는 옳은데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겉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나쁘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될수 없으며 있을수 없습니다.
김정일이가 옳든,그르든 그것을 떠나 여러나라들의 사회주의 경험은 일인 독재든,집단지도체제든 모두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고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은 그 싹부터 짓뭉개버리는 최악의 거짓 이론이며 이념이라는것 입니다.
경제적 빈궁은 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것이라 봅니다.
'사회주의적 가치란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단, 이 표현을 덧붙이고 싶네요.
'원론적인 사회주의'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원론적인 사회주의가 가능하려면 우리 인류의 지적, 도덕적 수준이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져야만 가능할 겁니다.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우리의 뇌를 관장할 때, 그리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할 때에나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런 원론적 사회주의가 아니라면,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고 현재도 실천되고 있습니다.
사실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주의적 가치 아니던가요? 원래 자본주의엔 있을 수 없는 가치잖아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언급하시면, 왜 '사회 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라는 또다른 형태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서유럽 국가들은 외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원론주의자들은 '사민주의'를 짝퉁취급합니다만, 짝퉁이나마나 그들의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주의'에 기반하고 있슴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오랜 기간 집권정당을 했던 '노동당'도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당이지요. 그들은 일년에 몇 차례씩은 모여 '적기가'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경험으로 본다면 사회주의가 영 이룰 수 없는 망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더구나 이들 국가가 독재체제던가요? 아니면 경제적 빈궁에 처한 나라들이던가요?
아니지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잘살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들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반드시 강력한 독재와 짝을 이뤄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레닌의 주장이기도 하죠?)은 맞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이 충분히 가능하며 실재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동의합니다.
또한,특정 정치인이나 정파를 위한 정치적 견해보다 한국국민,한국에 와서 활로를 고민하는 이곳 탈북동포들을 위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토론이 많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샌드맨님님...
러시아,동유럽,중국,베트남 등의 과거 교조적이고 독재적인 사회주의권력은 분명 실패했읍니다.
하지만,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의 사회주의 좌파들은 때론 집권우파를 견제하고,때로는 자신들이 직접 통치하면서 해당국가의 발전에 일정부분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분명한것은 지금현재 북한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불리우기도 민망한 정도의 한심한 통치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정일이정권 =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라는 전제하에 전개돼는 모는 논쟁은 처음 출발부터 잘못됀 전제에서 출발한 잘 못돼고,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이란점을 상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저는 북한정권을 사회주의 정권이나 좌파적 가치와 연관지어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비록 겉에 그런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독재일뿐이라고 누누히 말해 왔습니다.
또한, 제가 '사회주의'나 '좌파적 가치'라 표현하는 대상은, 북한이 아닌 바로 우리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내지 좌파'입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자꾸 북한과 연결지어 비난하는 것은 제가 책임질 수 없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노란우산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도 보수나 우파 역시 정상적이지 못하고 '수구적'이라든가, '극우적'인 세력이 일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만약 노란우산님께서 '보수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그것을 '수구와 극우'로 매도해 버린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태도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일진대, 노란우산님께서 제게 '정일이정권 =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류의 논쟁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고,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제가 뭐라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얘기는 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이젠 민주주의가 되야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그말은 이제 진실을 벗어난 선전 민주주의 , 개민주와는 달라야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고 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상식있는 당략적이 아니라 국가르 생각하는 님? 같은 분들이
그 무엇을 떠나 결의안은 내고서 정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생겨나야 한답니다. 100참석 100찬성의 평양과 다르려면 ,창피한 민주주의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내부 비판이 있어야 됩니다. 어찌 한 사람의 발언도 없는게 말이 됩니까? 거기에 무슨 민주란 말을 허울좋게 붙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전 마구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되길 진정으로 바란단 뜻입니다.
지도 노선 문제 등등엔 참 민주적 다양한 의견들이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흘러나오지 않나요?
그 예날 독재때 모적을 이루기위해선 당내 독재도 용인되야 한다는 주장을 오늘에도 먹힐까요? 그때도 먹힌게 아니라 어찌 대들순 없으니 지나온 거지만 그때나 오늘이나 합당한 주장은 아닐겁니다.
좌파들이 좀 나아졌다고 하나 대놓고 찬동하지 않느 정도이지 .....
천안함 폭침으로 도발을 당했다느 걸 민주당에서 모르나요? 민노당에서 모르나요?
그들은 어쩜 한상렬이나 그 부류들 같은자들에 의해 북의 고위층의 정보로 (단지 과학적 조사를 떠나) 그들의 짓이란 걸 알고 전해 듣고 있을 겁니다.
너무나도 뻔한 걸 반대 선전해대는 민주당 부류와 지금 많이 와해됬다고 님이 평가를 하는 주사파와 이적행위의 실질적 효과가 차이가 있읍니까?
솔직히 이름만 바꾸어 국민들 속에 녹아 있다는 평가가 맞을 겁니다.
몇개월이 흘러도 당한쪽의 국회에서 결의문도 발표않는 민주당과 주사파중에서 어느 자들이 국가에 매국적입니까?
솔직히 말로 뻔지르하게 되받아치기야 하시겠지만 그 부정적인 영향력을 볼때 둘간의 차이를 못느끼며 국가에 해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못하는 한국을 보는 것은 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수준 낮은 민주를 개탄하다 보니 좀 공격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드려봤읍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여러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거론해 주셨는데요. 저도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제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당내 민주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기모순입니다. 용인되어서는 안됩니다.
명색이 '정당정치'인 우리나라인데, 그나마 민주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정당은 매우 드뭅니다.
이는 여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제 1 야당은 민주당 역시 할 말이 없을 겁니다.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천안함 사건.
죄송합니다. 솔직히 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요. 왜냐하면 저와 선생님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크고 현재로서는 그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생각에 민주당과 민노당은 북의 소행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북의 소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단지 당리당략에 따라 외면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나쁜 놈들이지요.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나름 진정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같은 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세번째 한상렬 목사.
글쎄요. 저는 이 분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을까 참 궁금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요. 아무튼 일단 언론에 비쳐지는 그의 언행만으로 본다면 저로서도 이해불가입니다. 북한에서의 발언들도 그냥 일반적 수준의 '립서비스'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고요.
네번째, 민주당과 주사파.
글쎄요. 어떤 의미로 이 두 대상을 연결지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짐작하기로는 친여성향의 분들이 흔히들 말하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면에서 비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 역시 민주당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주사파를 비교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대단히 모욕적인 행위로 지양되어야 합니다.
주사파는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이지만) 북한을 지지, 찬양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진정으로 북한을 위해 일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당은 어찌되었건 정권을 창출했던 수권정당이며 대한민국 제 1 야당입니다. 혹시 그들이 북한을 도왔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때문이며, 그 정책은 물론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연구되고 구현된 것이라 봐야 합니다.
물론 선생님같은 분께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반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 역시 한나라당의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무작정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 보다는, 일단 (도저히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두 주체 모두 '애국'이라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각 정책의 실효성을 따져 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겁니다.
제가 바라는것은 좌와 우,이런 개념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이 땅,대한민국을 사랑하며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부흥을 먼저 생각하는 기저에서 남북관계 등을 바라보자는 것 입니다.
좌,혹은 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정치는 좌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지나치게 친북,혹은 종북적인 측면이 있으며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국가의 경영을 어렵게 하거나 혹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망신시키는 현상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정당화 되여 난무하고 있는것 입니다. 이것은 이념적 분포에서 좌,혹은 진보라고 볼수 없으며 종북주의라 말하는것이 더 정확할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많은 사건들이 있엇지만 이번 천안함폭침사건으로 하여 민주당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정견을 가진 정당과 인사들의 정체가 더욱 뚜렷이 밝혀지였습니다.
최소한도로 결의안도 발목을 잡고 있는 정당을 어떻게 좌익 정당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종북이며 매국적인 행위라고 규탄 합니다.
다음은 노란우산님의 글에서 서유럽과 북유럽을 말씀하시였는데 북한에서 그곳을 지칭하여 말할때는 우경기회주의 정당이라고 합니다.
반면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 자신들의 국가이념이나 정책에 대하여 사회주의적 좌파라고 하지 않으며,
복지국가,혹은 그러한 정책을 추구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라고 합니다.
서유럽이나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사회주의적 정책이나 정파가 어떻다고 하면 그들의 비난을 사게 됨니다.
그들이 인식하는것은 사회주의적 좌파정책이 아닌 선진적 자본주의적 정책이라 생각하며,
반면 북한에서는 그러한(남한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적 좌파)것을 보고 우경기회주의적 정파 혹은 정책이라고 합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내용은 이미 위에 '량우'님께 드린 댓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선생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당연히 그들은 '친북종북성향의 매국세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스스로의 주장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실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대외적 연관성이 있는 문제라 하여 사실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저들을 보고 '친북종북적 매국행위자'라 비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 혹은 비슷한 성향의 분들의 시각에 한정된 것임을 아셨으면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선생님의 주장대로라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거의 절반 가량의 국민이 뻔히 '친북종북주의 매국세력'에 표를 던져줬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단지 전쟁이 두려워서요? 그건 유권자들을 모독하는 언행입니다. 그만큼 현 정권에 대한 불신감도 적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당연히 공산주의 국가들은 '사민주의'를 짝퉁취급합니다. 아니, 거기까지 안가더라도 그 나라들 내에서도 다양한 좌파가 존재하고 끊임없이 선명성과 정책적 경쟁을 하죠.
공산주의, 원리주의적 사회주의, 사민주의, 제3의길, 등등...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사회의 기조가 '사회민주주의'이며 이것은 사회주의 기반이라는 겁니다. 그들 스스로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선진적 자본주의'라고요? 금시초문입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제가 위에 다른 분의 댓글에 영국 노동당에서 '적기가'를 부른다는 말을 쓴 적이 있죠. 그거 그냥 한 소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기든스가 자신의 책에서 그러더군요.
답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데 사실 본문에 많은 오해의 소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력과 연관성을 통해 님을 오해하거나 곡해할 수 있는 내용이 되지 않도록 발제글을 올려주시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네,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가 올린 본문 자체에도 미처 자각하지 못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을테고, 또 그 글을 보는 분들의 시각도 천차만별이니 어느 정도의 오해는 피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선생님 말씀처럼 그런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이렇게 댓글 등을 통해 풀어나가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충고 고맙습니다.
앞서 발제글을 쓴 정필님 글이나, 센드맨님의 이해를 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의견과 반론들은...
30대 이하 특히 10~20대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보다 오히려 조심해야 할 사상이나 체제들의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부정확한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야 할 주의나 사상들이 복고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나찌즘이나 파시스트가 슬슬 끓어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광기로 어지럽히지 않게끔 선도자들의 역할과 꾸중이 어느때보다 절실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40대 이상은 괜찮다?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젊은이들에게 투표권은 왜 줬나요? 자기 가치관조차 정립도 안된 핏덩이(?)들에게 말입니다.
또, 지금 40대인 저도 이곳에서 토론 등을 할 때, 어르신들에게 '아직 어려서 모른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걸 보면, 40대 이상은 괜찮다는 선생님의 주장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그런 어줍잖은 편견 버립시다.
물론 젊은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경향이란 건 있습니다. 경험 부족이 눈에 띄기도 하죠.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장점도 많습니다.
소위 기성세대가 되면 눈에 띄게 세상과 타협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이젠 내 홀 몸이 아니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죠. 그래서 때로는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상황논리나 현실론을 앞세워 굴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잃을 것이 적죠. '까짓 내 한 몸 바쳐~'라는 생각에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이상을 향해 자기 한 몸을 불사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같은 기성세대가 결코 갖기 힘든 그네들만의 장점입니다. 또, 이렇게 세태와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열정은 우리네 사는 세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모두 장,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개인 차도 큽니다.
무조건 일정 나이 이상은 괜찮고, 그 이하는 안된다 하는 건 아무 근거도 없는 편견이자 오만입니다.
선생님이 '물가에 보낸 아이들' 같아 걱정하는 그 사람들. 그 젊은이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성인들입니다.
교훈이 되는 가장 가까운 역사도 알려고 하지 않으니 안타깝습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6.25를 더욱 촉발하게된 국회공산당프락치사건은 1949년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프락치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실형을 받은 사건입니다.
1949년 3월경, 서울특별시 경찰국으로부터 국회의 동성회ㆍ일민구락부 등에 소속된 소장파 의원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서울지검 장재갑 부장검사와 오제도 검사는 서울시경 최운하 사찰과장을 중심으로 특별사찰반을 편성하여 내사를 개시하였습니다.
5월 20일에 자수한 남로당원 전우겸의 진술을 받아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를 구속하였고 혐의 내용은 남로당과 연계하여 국회에서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회는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이들 의원에 대한 석방결의동의안을 상정하였으나 184명 투표 중 가 88, 부 95, 기권 1표로 다행스럽게도 부결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구속자체가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6월 10일, 월북을 시도한 남로당의 여성 특수공작원 정재한이 개성에서 검거되었고(이때 개성은 남한땅이었음)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정재한의 음부에서 발견된 암호로 엮어진 문서가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수법이 이리도 치밀합니다.
이를 계기로 국회의원 노일환, 김옥주, 강욱중, 박윤원, 황윤호, 김병회, 국회부의장 김약수, 서용길, 신성균, 배중혁, 오택관을 구속하고, 8월 16일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였습니다. 물론 현재 이런 상황이 발생시는 구속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1950년 2월 10일 14차 공판(구형공판)에서 서울지검(오제도ㆍ선우종원 검사)은 14명 전원에게 최고 징역 12년형에서 최하 2년형까지 구형되었고, 1950년 3월 14일 15차 공판(선고공판)에서 서울지방법원은 피고인 전원에게 징역3년에서 10년까지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심시를 진행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라지거나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
1950년 2월 15일, 국회 프락치 사건의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오던 노일환은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을 하였다.
“내가 한 일이 누구의 선동이나 사주가 아니었다 함은 누차 말한 바와 같다. 증거에 나타난 진언서나 대북 국회 내 투쟁보고서는 전혀 우리가 관계한 내용과는 다르다. 나는 억울하게 갇혀 있는 여러 동지를 위하여 비열하나마 허위진술을 한 일이 많다. 그러나 내게 대한 김경호 증인의 증언은 천인공노할 허위 사실이다.”라고 하였는데....
김경호란 사람의 증언은
나는 사기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어던 사람인데, 내 감방에 노일환이란 국회의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노일환은 감방 안에서 말하기를 나는 남로당 관계로 구속되었는데 앞으로 50여 일만 있으면 인민군(북한 과뢰군을 지칭함)이 봉기해서 남조선도 인민공화국이 된다고 하더군요.”
검사 앞에서 증언한 김경호의 말인데 이 김경호의 증언이 관연 허구였을까요? 아닙니다 정확하게 노일환의 최후 진술이 있던 날부터 약 백일 후인 동년 6월 25일 괴뢰들의 전면적인 남침이 개시되었던 것입니다.
【사건 착수 동기】
북한 공산괴뢰들이 6ㆍ25 남침을 1년 후에 앞두고 그 계획을 착착 진전시키고 있었을 1949년 3월경 일이다. 서울시경찰국 사찰과장 최운하(崔雲霞)씨 방에서는 연일 서울지방검찰청 오제도(吳制道)ㆍ선우종원(鮮于宗源) 양 검사를 중심으로 한 검경연석회의(檢警連席會議)가 거듭되고 있었다.
그들은 제헌국회(制憲國會) 내의 김약수(金若水)를 중심으로 한 소위 소장파(少壯派) 의원들의 심상치 않은 걸음걸이를 검토하려는 것이었다. 외군철퇴안운동(外軍撤退案運動)ㆍ남북통일협상(南北統一協商) 등, 그들의 배후에는 ‘무엇인가 반드시 잠재해 있으리라’ 하는 것이 이들 검경(檢警) 수뇌들의 공통견해로 나타난 까닭이다.
무심코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것 같고, 또한 너무나 중대 문제였던 것이다. 이들 검경(檢警) 지휘자들은 이윽고 소장파 의원들의 뒤를 철저히 캐어보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월여(月餘)의 미행(尾行)】
최운하 사찰과장은 동과(同科) 분실(分室) 직원인 김호익(金昊翊) 경위를 불러,
“소장파 의원의 중심인물 김약수(金若水)ㆍ노일환(盧鎰煥)ㆍ이문원(李文源)ㆍ김옥주(金沃周) 네 사람의 뒤를 따라보도록!”
명령하였다. 김호익 경위는 즉시 김윤쾌(金潤快) 경사를 중심으로 해서 이종렬(李鍾烈)ㆍ마종국(馬鍾國)ㆍ곽모득(郭卯得)ㆍ오상직(吳相稷)ㆍ이중재(李重載) 등 민완(敏腕)의 형사들로 하여금 특별사찰반을 구성하고 전기(前記) 네 의원을 미행케 하였다.
월여(月餘)에 걸친 전체 미행 사항을 종합 검토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들 4의원과 접촉하고 있는 인물선상에 남로당(南勞黨) 중앙위원 이삼혁(李三赫)ㆍ이재남(李載南)ㆍ김사필(金思苾) 3인이 튀어오른 것이다.
【남로당원(南勞黨員) 등장】
이 뜻밖의 수확에 놀란 이들 특별사찰반에서는 용기백배,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이삼혁ㆍ이재남ㆍ김사필 세 남로당원 수사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 결과 이들 세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선상에는 박시현(朴時鉉)이라는 남로당 중앙간부가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간부 공산당의 출현에 더욱 긴장한 특별사찰반은 불면불휴(不眠不休) 박시현 미행에 골몰하였던 것이다. 박시현의 접선선상(接線線上)에서 발견한 것은 어느 중년부인(中年夫人)이었다, 이 중년부인도 깜쪽같은 형사들의 미행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6월 10일 상오 10시, 이 중년부인은 광우리장수를 가장하고 충무로쪽에서 서울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서울역에서 그 중년부인은 개성(開城)으로 가는 차표를 사는 것이었다. 그 뒤를 따르던 김윤쾌 경사는 당황치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시외로 여행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던 까닭에서였다,
그는 즉시 동행 중인 이종렬 형사로 하여금 본부에 개성행 이유를 보고케 하는 동시에 형사의 응원을 요청키로 하였다. 곽묘득ㆍ오상직 양 형사가 이종렬 형사와 함께 달려왔다. 기차 안에서 이들 네 형사들은 이 급작스레 전개된 사태 수습책을 숙의하였다.
“어떻한다?”
“개성서 이북으로 넘어갈 테니 그대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못 다치면 일을 다 망치게 될 텐데.”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영영 헛수고사 될지도 모르지.”
네 사람은 사색에 잠겨 의견이 구구하였다.
【국부(局部) 속의 문서(文書)】
결국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으니, 슬쩍 가두불심검문(街頭不審檢問) 형식으로 터치해 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개성역에 도착하자, 2명의 형사는 먼저 역전파출소에 달려가 입초순경(立哨巡警)으로 하여금 ‘광우리장수’를 불심검문케 하였다. 불심검문과 소지품 검사를 하여 보았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치 못하였다. 이쯤 되니 입초순경은 물론 인근 행인인 양 가장한 네 형사들도 무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은 컸다. 이 광우리장수 여인이 이 불심검문대로만 해석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그림자처럼 여러 날 미행한 형사들의 만만치 않은 목적을 간파하고 영영 월북(越北)하고 말 것일까? 혹시 후자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일은 다 그르치고 말 것이다. 순식간의 눈과 눈으로 이와 같은 말을 주고받던 네 형사들은 광우리장수 정면으로 다가섬으로써 수일에 걸친 복면전술(覆面戰術)을 버리고 말았다.
김윤쾌 경사는 광우리장수 여인으로 하여금 파출소 숙직실에 들어가게 한 다음 여순경(女巡警)을 입회시켜 의복 속은 물론이려니와 치마허리, 옷고름, 버선 속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별 도리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이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이 광우리 여인에게 용변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광우리 여인의 얼굴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소에 들어간 여인의 일거일동은 창문을 통해서 샅샅이 살펴졌다. 허리띠만 끄르면 용변이 충분한 옷차림을 한 이 여성은 변소에 들어가자마자 왼손으로 자기 음부(陰部)쪽을 주무르는 동시에 반좌형(半坐形)으로 잡시 주춤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여봣!”
고함소리와 함께 변소 밖의 형사가 뛰어들어 그의 왼손을 잡아당겼다. 그 왼손아귀에 쥐어졌던 조그마한 아이스캔디형의 무엇인가가 변소 발판에ㅐ 떨어지는 것이다. 이 음부 속애서 나온 아이스캔디형의 종이 포장 속에서 나온 것은 암호(暗號)로 엮어진 문서였다.
이 중년여성의 이름은 정재한(鄭載漢)이라 하였으며, 남로당 특수공작원이었다. 정재한과 암호문서는 서울로 압송되었다.
【암호문서(暗號文書)】
정재한의 자백을 토대로 특별사찰반에서는 이삼혁ㆍ이재남ㆍ박시현 등을 시각을 다투어 검거하였다. 그러나 정재한의 음부(陰部)에 간직되었던 암호문서 해독은 그러ㅣ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재한을 체포한 지 만 사흘만에 암호문서는 풀어지고야 말았다. 이 암호문서는, 이삼혁이가 박헌영(朴憲永)에게 보내는 보고이었으며, 그 내용인즉,
“남로당으로부터 박헌영에게 보내는 보고안을 국회에 상정 통과시킬 것과 만일 그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유엔한국위원회에 외군철퇴(外軍撤退)의 진언서를 제출하라는 남로당의 지령을 이삼혁이가 이문원(李文源)ㆍ노일환(盧鎰煥)을 국회 내 공작의 핵심분자로 획득하고 나서 박윤원(朴允源)ㆍ김병회(金秉會)ㆍ황윤호(黃潤鎬)ㆍ서용길(徐容吉)ㆍ강욱중(姜旭中)ㆍ김약수(金若水)ㆍ이구수(李龜洙)ㆍ김옥주(金沃周)ㆍ배중혁(裵重赫)ㆍ최태규(崔泰奎) 등을 대국회공작의 중심으로 하여 외군철퇴안을 상정 통과시키려 하였으나, 국회 내 정세에 의하여 그것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주동이 되어 연판운동(連判運動)을 개시한 결과 62명을 획득하여 유엔한국위원회에 진언서를 제출하였다.”
는 것이었다.
그 문서 암호 기례(記例)는,
韓 : 노일환(盧鎰煥), 山 : 이문원(李文源), 尹 : 황윤호(黃潤鎬)
등으로 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세칭 남로당 국회 프락치사건이 전지 특수사찰반에 의해서 탐색되었고 그 박의 움직일 수 없는 허다한 증거에 의해서 희유(稀有)의 사건으로 막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암호문서와 이미 검거된 전기 남로당원들의 자백에 의하여 노일환ㆍ이문원 양 의원을 비롯한 13명의 국회의원들은 연달아 피검(被檢)되어 세인)(世人)을 아연케 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어찌하여? 이와 같은 남로당 프락치라는 오명(汚名)을 쓰게 되었던 것일까? 이하는 특히 노일환ㆍ이문원의 검거에 있어서 조서에 나타나는 그들의 자백 내용을 중심으로 엮어본 이 사건의 전모(全貌)다.
【노일환(盧鎰煥)의 경우】
1948년 12월 하순경이다. 이보다 앞서 국회 개회 이전에 제정된 한미협정(韓美協定)에 대하여 국회의원 중에서 25명이 의장(議場)에서 퇴장하고 반대성명을 발표한 사실이 있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어느 날 하오 2시경 국회 산회 후 귀가차 중앙청 앞에 이른 노일환 앞으로 한 중년 신사가 다사섰다.
“선생이 노선생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잠깐 요담할 일이 있는데 시간을 빌릴 수 없으실까요?”
“오늘은 시간이 없는데요.”
노일환은 무심코 이 낯선 중년신사와 헤어졌다, 그 중년신사가 누구이며 무순 용무로 만나려는지 캐물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고 청탁하는 사람도 많아진 까닭에서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사흘 후 역시 하오 1시경 국회 해산 후 의장 출입문 밖 복도에서 노 의원은 다시 그 중년신사를 만났다.
“오늘은 시간 형편이 어떠신지요?”
“예, 오늘은 시간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중년신사와 함께 중앙청 정문 박으로 나갔다.
“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삼혁(李三赫)이라 합니다.”
중년신사는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이야기나 할까 해서 뵈오려 온 것입니다. 점심이나 하러 가시지요.”
하며 지나가는 택시를 부르는 것이었다. 택시는 시공관(市公館) 앞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린 노 의원은,
“점심보다 차나 한 잔 합시다.”
라고 하며 ‘고향다방’에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이곳은 번잡하니 딴 데로 갑시다.”
하며 이삼혁은 충무로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충무로 4가 모 중국요리점에 자리잡고 나서 주효 등을 회식하면서 이삼혁은 노 의원에게,
“저는 1, 남북협상(南北協商) 2. 화평통일(和平統一) 3. 무력통일 배격 등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먼저 저는 노선생이 현 국회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라고 전제하고 노 의원이 당시 국회 내에서 양군(兩軍) 철퇴(撤退) 주장, 한미협정 반대 등 반정부적 태도를 취해 온 것을 극구 찬양하면서,
“일반 민중에도 노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본인도 있는 힘을 다하여 선생을 도우려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노 의원은,
“저를 지지하여 주신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앞으로의 편달을 부탁하고 그날은 그대로 헤어졌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이삼혁이는 노 의원을 명월관(明月館)으로 초청하였다. 이 회의석상에서도 이삼혁은 “현 국회에서 소장파 제씨가 민주노선을 지향하여 열렬히 투쟁하고 있는 것은 조선의 장래를 위해서 유익한 일이다.”라고 찬의(贊意)를 표하면서 “민주통일을 위하여 외군 철퇴, 한미협정 방대 등은 조선의 현실로서 절대적인 조건으로 요청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후부터는 이삼혁은 마치 10년지기(十年知己)인 양 격일(隔日) 또는 사흘에 한 번씩 노 의원을 방문하고 주로 국회를 중심으로 한 담화를 교환함으로써 친밀의 도를 가하게 되었다, 해가 바뀌어 1949년 2월 초순의 일이었다. 노 의원이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하여 화평통일안을 제출할 무렵 하루는,
“이 선생 소속단체는 어디시오?”
하고 이삼혁에게 물은즉 이삼혁은 태연스럽게,
“남로당(南勞黨이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노 의원은 자신이 약간 당황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노 의원도 남로당에 입당하시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화평통일을 중심으로 한 토의 자체가 남로당의 지령의 일부니까, 만일 입당을 거절하면 당신의 생명을 살해하여서라도 당의 비밀을 엄수하며, 당의 사명을 완수하고 말겠소.”
이삼혁은 정면으로부터 노 의원을 협박하는 것이었다.
2월 6일 이날이야말로 노 의원의 운명을 좌우하는 날이었다. 그는 남로당에 입당(入黨)하고 만 것이다. 이날부터는 노 의원과 이삼혁의 관계는 친교를 떠난 주종관계(主從關係)에 함입(陷入)한 것이다. 노 의원은 매일같이 지정한 장소에서 남로당의 지령을 받아야 했고 본인의 활동 기타 상황을 보고치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2월 15일경이다. 소위 화평통일안(和平統一案)이 국회에서 부결되어 실패에 돌아가자 이삼혁은 노 의원에게 그 다음엔 외군 철퇴안을 상정시켜 통과시키기 위해 연판운동(連判運動)을 하여 최대한의 의원을 확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어 2월 28일 하오 5시 반 시내 중구 삼각동에 있는 보원관(保元館)이라는 요리집에서 이삼혁은 노 의원에게 노 의원과 이문원ㆍ박윤원 세 사람이 조종부를 구성하고 연판운동을 전개하되, 3월 7일까지 40명의 기본의원을 확보할 것이며, 동화상사(同和商社)를 토대로 하여 김약수(金若水)를 선두로 내세우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어 이삼혁은 3월 20일경 금후로는 헌법개정 (1) 대통령 직선제, 내각책임제 (2) 북진론(北進論) 반대 (3) 미국의 무기를 청하여 그들의 전쟁주구(戰爭走狗)가 되지 말 것 (4) 식량정책 규탄 (5) 예산 반대투쟁 (6) 내각총사직 투쟁 등을 투쟁 목표로 노력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문원(李文源)의 경우】
1948년 1월경이다. 이문원 의원은 자기 선출구(選出區)에서 강연을 하고 있던 중 친지인 오관(吳寬) 변호사로부터 “빨리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상경하니, 오관 변호사가 서울역두에 출영(出迎)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좋은 친구를 고개하기 위해서 그랬소.”
두 사람은 오관씨 댁으로 자동차를 달렸다
“바로 이분이 내가 소개하려는 분인데, 우리들과 정치노선을 같이할뿐더러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오.”
오 변호사는 한 중년신사를 이문원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하사복(河四福)이라 합니다.”
그 중년신사는 이문원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문원은 자기와 정치노선을 같이한다는 하사복과 7ㆍ8차에 걸쳐 회담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역시 오관 변호사댁에서 만났을 때였다
“이 선생, 사실은 나는 북조선에서 파견된 남로당원인데 이 선생도 남로당에 가입하시오.”
하고 하사복은 이문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문원 의원은 사회주의자로서 균등사회건설(均等社會建設)이 목적이었고 그 주의주장을 남로당 노선과 흡사하매, 5ㆍ10선거 입후보 당시도 남로당을 이용함으로써 다소 당선에 유리하였던 것이며, 또한 가세(家勢)가 빈한하여 정치자금도 없고, 정치인으로 활동하려면 자연 자금이 필요한 까닭에 하사복을 통하여 남로당 자금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문득 나기에,
“좋습니다.”
하고 남로당 입당을 승낙하였다. 이문원 의원이 남로당을 승낙하자 하사복은 즉석에 이문원의 경력을 지편(紙片)에 상세히 기입한 후 입당을 축하겠노라고 장춘원(長春園)에서 주연을 베푸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부터는 매일 하오 5시부터 하오 10시 사이에 오 변호사댁에서 만나 그날의 지시를 하는 동시에 이문원 의원으로 하여금 국회 내 활동을 보고케 하였다, 이문원 의원이 남로당 입당을 승낙한 지 2주일이 된 어느 날이었다. 하사복은,
“나는 상부로부터 책망을 받았소.”
하고 이문원 의원에게 말하면서,
“본인이 직접 서면으로 입당 수속을 하지 않고 대서승인서(代書承認書)를 제출한 까닭이오.”
라고 설명하였다. 그러고 나서 하사복은 이문원에게 돈 백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문원은 소지한 것이 없다고 대답한즉 하사복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2백원을 꺼내 주고 오 변호사 집 문 밖으로 나온 뒤 그 2백원 중에서 “백 원만 달라”고 하였다. 이문원은 아마 전차값이 없어 도로 달라는 모양이로구나 하고 백 원을 꺼내준즉 하사복은 이 돈 백 원을 당신이 입당하였다는 표시로 상부에 송금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에 이문원 의원은 하사복으로부터 ① 한국정부 시책 중 불미한 점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엔에 보내는 메시지 ② 외군 철퇴 ③ 정부불신임안 ④ 양곡매상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 ⑤ 개헌(改憲) ⑥무력 반대 ⑦식량정책 반대 ⑧지방자치법과 토지개혁법 실시 주장 등을 추진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운동비로서 하사복은 1949년 2월 하순경부터 4월 하순까지 만원, 2만원, 3만원, 8만원씩 5ㆍ6차에 걸쳐 이문원에게 수교(手交)하였을뿐더러 하사복은 이문원에게 “당신이 성실하게 투쟁만 한다면 그 자금제공은 문제가 아니다”고 장담하였다.
【하사복(河四福)의 정체(正體)】
원래 공산당 지하운동에 있어서는 종적(縱的) 연락이 있을 뿐, 횡적(橫的) 연락은 없는 거서이다. 남로당에서는 국회 프락치를 두되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노일환 의원에게 접촉한 이삼혁이란 자를 이문원 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역시 노일환 의원은 이문원 의원에게 접선하는 남로당원 하사복을 알 길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사복이 바로 이삼혁의 별명이라면 그 누가 놀라지 않았겠는가? 하사복과 이삼혁은 이명동인(異名同人)이었던 것이다.
이제 남로당의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구성한 국회 프락치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삼혁(李三赫=하사복) ― 노일환ㆍ오관-이문원 ― 김병회(金秉會)ㆍ강욱중(姜旭中)ㆍ김옥주(金沃周)ㆍ황윤호(黃潤鎬)ㆍ김양수(金若水)ㆍ박윤원(朴允源) ― 배중혁(裵重赫)ㆍ이구수(李龜洙)ㆍ최태규(崔泰奎)
【추상(秋霜) 같은 논고(論告)】
1950년 2월 10일 0시 15분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사광욱(史光郁) 판사, 주심 박용원(朴容元)】정인상(鄭寅詳) 양 판사 배심(陪審), 오제도(吳制道)ㆍ선우종원(鮮宇宗源) 양 검사 입회하에 개정된 소위 국회프락치사건의 구형공판(求刑公判)에서 오제도 검사는 털끝만큼한 범죄도 놓치지 않고 규명하는 듯 예리한 어조(語調)에 약 2시간에 걸쳐 준열(峻烈)한 논고를 내렸던 것이다. (괄호 내는 각 피고에 적용된 법조)
『본건 소위(所爲)를 법률에 비추건대,
▶피고인 노일환(盧鎰煥)은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 제1조 2호 위반, 법령(法令) 19호 4조 나 항(項) 위반, 형법(刑法) 제54조 1항 전단(前端) 제55조 동법 제10조를,
▶피고인 이문원(李文源)은 국가보안법 제1조 2호 위반, 동법 제3조 위반, 법령 제 19호 4조 나 항 위반, 형법 제230조, 동법 제54조 전단, 동법 제554조, 동법 제10조를,
▶피고인 김약수(金若水), 동 박윤원(朴允源), 동 감옥주(金沃周), 동 강욱중(姜旭中), 동 김병회(金秉會), 동 황윤호(黃潤鎬), 동 최태규(崔泰奎), 동 이구수(李龜洙), 동 서용길(徐容吉), 동 배중혁(裵重赫), 동 신성균(申性均)은 국가보안법 제3조 위반, 법령 19호 4조 4항 위반, 형법 제54조 전단, 동법 제55조, 동법 제10조를 각각 적용하여 소정 형기(刑期)의 언도(言渡)를 내렸던 것이다.
노일환 : 징역 12년, 이문원 : 징역 12년, 김약수 : 징역 8년, 박윤원 : 징역 8년, 김옥주 : 징역 6년, 강욱중 : 징역 5\6년, 김병회 : 징역 6년, 황윤호 : 징역 6년, 최태규 : 징역 2년, 이구수 : 징역 2년 6개월, 배중혁 ; 징역 4년.
- 조선일보 기자 김천수(金千秀) : <해방 17년사>(1962)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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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익(金昊翊) 총경(總警) 피살사건>
- <해방 17년사>(1962)에서 옮김
1949년은 마치 암살의 해 와도 같았다. 공산당의 최후 발악의 해이기도 하였다.
3월에 원한경(元漢慶) 박사 부인이 암살되는가 하면, 4월엔 박일원(朴馹遠)씨 살해사건이 밸생하였고, 6월엔 남로당(南勞黨) 국제간첩이 검거되었고, 연이어 국회프락치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며, 6월말에는 한독당(韓獨黨) 당수인 김구(金九) 선생이 흉탄에 쓰러졌던 것이다. 2월에는 법조계(法曹界) 적화(赤化)를 기도한 소위 법조계프락치사건이 발생하였고, 8월에는 김호익(金昊翊: 1920-1949) 총경(總警) 피살사건이 발생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김호익씨는 함경도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에 유학한 바 있으며, 8ㆍ15해방 직전 경찰계에 투신하여 해방 후에는 중부서(中部署) 사찰계 형사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중부서 재임시부터 그는 20관의 체구(體軀)를 정력적으로 구사하여 멸공전선에서 다대한 공헌을 하여 상사의 총애를 한 몸에 지니게 되어 마침내 서울시경찰과 정보주임으로 승진되었다. 김씨의 수완을 십이분 발휘할 수 있는 호기(好期)가 도래한 것이다.
1949년 6월 17일 그는 박헌영(朴憲永)ㆍ김삼룡(金三龍) 지령하에 남한의 군사정치 기밀을 북한에 첩보하여 오던 남로당 특수공작대원(特殊工作隊員) 정재한(鄭載漢: 女) 외 6명의 국제스파이를 체포함으로써 유명한 국회의원프락치서건 관계자 이문원(李文源) 의원 등 13명의 국회의원을 검거하여 세인을 아연케 한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김호익씨로 하여금 공산당의 원수로 만들어 놓는 데 충분한 충격을 준 것이었다. 이 중대 사건 검거의 공로로 그는 일게급 특진의 영예를 획득하였다.
그는 경감(警監)이 되어 서울시경찰국 사찰과 중앙분실장(中央分室長)에 취임 하게 되었다. 1949년 8월 12일 상오 11시 중앙청 바로 앞 경기도청 옆에 자리잡고 있는 여자경찰서 자리에 설치된 중앙분실 가운데 방에서 김호익 경감은 국회프락치사건에 뒤이어 파생한 소위 법조계(法曹界)프락치사건 뒤처리에 골몰한 까닭에 피로해진 몸을 의자에 푹 기대어 구두를 신은 채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담배 한 대를 피어 물고 잡상(雜想)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군복청년(軍服靑年)이 쑥 들어왔다. 괴한(怪漢)은 치안국 정보수사과장의 소개로 왔다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김 경감이 명함을 들여다보는 순간 ‘탕탕’ 두 방의 총성과 함께 총알은 김 경감의 가슴을 뚫었다.
김 경감은 백린제병원(白麟濟病院)으로 실려 간 지 한 시간도 못 되어 숨을 거두었고, 공산당원인 범인은 범행 후 중앙청 앞 원효로행(元曉路行) 버스정류소에서 붙잡혔다.
이처럼 공산당들은 치밀합니다.
아예 책 한권을 다 퍼오셨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토론에 있어 이런 글을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뢰성의 문제도 있고요.
저 역시 '이처럼 친일수구들은 악독합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글을 통째로 퍼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토론 시에 필요한 것은, 서로 의견이 다른 양쪽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공인된, 그리고 객관적인 데이타와 그것을 근거로 한 논리입니다.
같은 데이타라도 서로 보는 시각이 다른만큼 충분히 다른 분석과 결론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제 글이지요. 물론 때에 따라서는 다른 글의 내용도 발췌하고 인용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하지는 않죠.
또한 다른 글을 발췌하거나 인용한다는 것은,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함이 큽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가 될 자료도 어느 정도는 객관성이나 권위를 담보하고 있어야겠죠.
저도 선생님같은 성향을 가진 분들이 보면 불편해하실 책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책은 저 스스로도 참고자료로 볼 뿐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글은 화자의 주관성이 깊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런 글을 인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부디 제 뜻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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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생운동권 활동이 가장 성하던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남한에는 반공주의자 못지 않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친북, 종북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학생 운동권 중 상당수가 그런 성향을 숨기지 않았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때 남한사회에서는 정부에서 공개하는 일부 정보 외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모두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공개되는 정보 역시 조금이라도 북한사회가 사람사는 사회로 인식될만한 내용은 철저하게 차단된 채 공개되었죠.
하지만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미 남한의 군사독재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있을 운동권학생들은 남한 정부가 제공하는 일방적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고, 비록 아주 찰라적이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북한도 사람들 사는 곳'임을 알 수 있는 '사실'을 기초로 남한 정부의 주장은 무조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심지어는 북한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한민족 국가'라고까지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소위 '주사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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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 북한의 정보가 없어서 친북,종북주의자가 많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만큼 맑스-레닌으로 이어진 공산주의 사상 이론이 완벽했습니다.
그 당시 젊은 사람치고 공산주의 이론을 모르면 지식인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모릅니까? 공산주의,사회주의 학습에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모든 원리들이 환상적으로 들어 맞습니다 이것이 지식인들로 하여금 중대한 판단오류를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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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와해되었는 줄 아십니까?
너무 허무하고 간단했어요. 90년대 들어서며 그냥 있는 그대로의 북한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광범위하게 소통되면서, 북한은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었슴을 충격 속에 인정하게 됩니다.
그들이 느낀 충격이 얼마나 컷느냐 하면, 그들 중 상당 수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보수계'로 자리바꿈을 해버리는 사상적 투항을 하게 됩니다.
===반론 : 고르바쵸프의 트로이카정책으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정책을 쓰지 않는 이상 소련도 점점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위기감이 결국 소련연방을 해체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종주국이 무너진 데 대해 전세계 각국의 공산당 및 추종자들은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맞이하게 된거지요. 종주국을 통해 공산주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지 정보가 오픈되어서 무너진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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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또 상당 수가 '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좌파적 가치'로 변화하게 되죠. 좀처럼 장점을 찾기 힘든 북한의 현실에, 어느 덧 그들 사이에서도 북한을 찬양하면 바보취급을 당하게 상황으로 바뀐 겁니다.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친북, 종북적 사고를 갖는 인물들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솔직히 고정간첩같은 직접적 북한의 세력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남한토박이들 중에 그런 인물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 반론 김문수나 이재오처럼 사상적 전향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만 어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골수 주사파, 좌파들은 결코 바뀌지 않앗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대외활동적으로 모두 양지에 나서서 지능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 독소의 깊이를 위장하고 있습니다.
결코 님의 생각대로 해석하시면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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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실제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지만, 스스로 좌파 내지 좌파정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이런 사실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중 상당수는 (제 예상과는 달리) 북한이나 통일문제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아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반론 : 좌파 정당 좌파 언론에 있다고 모두가 다 친북종북 좌파들은 아닙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좌파에 물들면 친구는 물론 부모자식까지 모르는 것이 좌파입니다. 좌파를 알려면 님이 완벽한 좌파가 되어야 점조직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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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온갖 현란한 수사보다 투명성과 소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한가지 간단한 예를 더 들어 본다면...
예전에는 그렇게도 운동권 학생들의 성스러운 '바이블'처럼 인식되었던 '공산당 선언'이 있지요.
당시 학생들은 이 문헌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안당국에 구속이 되었을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그것을 이리저리 숨기고 창문으로 새어나가는 빛마저 가려가면서 그것을 탐독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인터넷에서 '공산당선언'으로 검색하면, 공산당 선언의 전문은 물론 관련 정보까지 주르륵~ 뜹니다. 심지어는 상세하게 해설까지 곁들인 서적까지 버젓이 판매하고 있죠.
그런데, 요즘에 이 '공산당 선언'보는 사람들 있나요? 거의 없어요. 그나마도 보는 이들의 대부분은 학문적 이유에서입니다.
남,북 사회 모두를 장점과 단점, 있는 그대로 모두 투명하게 드러내 놓으면, 제 정신인 이상 그걸 보고 북한이 좋다고 따를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작 문제는 숨기고 포장하고 왜곡하는 것이죠.
예로부터 '금단의 열매'는 더 달게 느껴지는 법이며, 투명함 속에서 거짓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반론 :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과 소통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무조건 통제만 하다보니 금단의 열매처럼 탐독했다는 것은 님이 그 시절의 환경에서 해석하지 않고 세계가 정보화된 현 시점에서 해석을 하니 그것이 원인인것처럼 얘기합니다.
북한은 지금은 탈북자들로 하여금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지만 옛날 그 당시에는 남한보다 더 잘사는 북한인민들이 밖으로 나올 필요도 없었고 한국의 중앙정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파악할 뿐 대부분이 히든된(숨겨진)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보가 있어 숨길 수가 있었겠나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세요. 북한의 아주 작은 정보하나라도 들었다면 무슨 큰 정보를 입수한 마냥 국가 전체가 귀 기울였던 기억이 안나나요?
오히려 잘사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포섭활동이 극에 치달아 남쪽에서도 한때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더 잘 산다는 환상이 많이 있었고 월북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 때 남쪽에서는 대응무기로 승공(공산주의를 이기자)멸공(공산당을 멸하자)으로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펴 나갔던 것이지요
공산주의 이론이 이제 시시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님께서 제대로 공부하시고(제발 환상에 빠지지는 마시고) 토론해 주시면 더욱 깊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만큼 대북정책에 오픈되고 거의 정확한 정보를 습득활용하게된 일등 공신은 인터넷이나 매체에 의한 정보소통이 아니고 100% 탈북자들의 공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북한에 대해서 그만큼 알게 되었습니다.
만야 북한이 우리와 대등하게 산다면.. 탈북자들은 없었을 것이고 더욱 치열한 사상전으로 전개되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반론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차례군요.
선생님의 반론 :
북한의 정보가 없어서 친북,종북주의자가 많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만큼 맑스-레닌으로 이어진 공산주의 사상 이론이 완벽했습니다. 그 당시 젊은 사람치고 공산주의 이론을 모르면 지식인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모릅니까? 공산주의,사회주의 학습에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모든 원리들이 환상적으로 들어 맞습니다 이것이 지식인들로 하여금 중대한 판단오류를 일으킵니다.
제 의견 :
공산주의 이론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상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이론입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것에 흠뻑 빠졌던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것을 부정한 바 없습니다.
저는 다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 멋진 이념을 추구한다는 북한에 대한 정보마저 부족하니, '허상'이 생길 수 밖에요. 이건 아주 일반적이고 당연한 현상입니다.
선생님의 반론 :
고르바쵸프의 트로이카정책으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정책을 쓰지 않는 이상 소련도 점점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위기감이 결국 소련연방을 해체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종주국이 무너진 데 대해 전세계 각국의 공산당 및 추종자들은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맞이하게 된거지요. 종주국을 통해 공산주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지 정보가 오픈되어서 무너진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 의견 :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와해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소련을 위시한 구 공산권의 몰락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국내 상황도 그런 큰 국제적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주장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그런 내용을 국내적 시각에서 풀어 놓은 것 뿐입니다. 당시엔 우리 국내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죠. 바로 87년체제의 등장입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소위 민주화의 열풍을 겪으며 크게 성장해 갔습니다. 때문에 그런 국제적 영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해내기 시작한 것이라 봅니다.
만약 우리가 국내적으로 그런 준비가 없었다면, 우리가 북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또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므로 '정보의 공개와 북한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은 상관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저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일 겁니다.
선생님의 반론:
김문수나 이재오처럼 사상적 전향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만 어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골수 주사파, 좌파들은 결코 바뀌지 않앗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대외활동적으로 모두 양지에 나서서 지능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 독소의 깊이를 위장하고 있습니다.
결코 님의 생각대로 해석하시면 안될 것입니다.
제 의견:
김문수나 이재오같은 사람은 내가 지지하는 이념 쪽으로 투항했으니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이고, 여전히 좌파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죄다 '빨갱이'다?
대체 이것이 합리적인 주장이라 생각하십니까? 그 근거는요?
선생님은 제게 '님 생각대로 해석하지 말라'면서, 정작 자신은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시는군요. 선생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저는 거짓에 속은 겁니까? 세상에 그런 오만이 어디 있나요?
다른 이들에게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나 스스로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슴을 인정할 줄 아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반론 :
좌파 정당 좌파 언론에 있다고 모두가 다 친북종북 좌파들은 아닙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좌파에 물들면 친구는 물론 부모자식까지 모르는 것이 좌파입니다. 좌파를 알려면 님이 완벽한 좌파가 되어야 점조직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의견:
이런 끔찍한 발언을 듣게 될 줄이야...좌파 자체를 아예 쓰레기 취급하시는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건 전적으로 선생님의 시각입니다. 선생님의 시각이 진리일 수 없으며, 그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더구나 그런 편견을 고수하는 한 선생님은 '좌파적 가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알 길이 없을 겁니다. 물론 관심도 없으시겠지만요.
정말 안타까운 점은, 그런 시각으로 상대를 대하는 한 그 어떤 대화나 토론, 즉 민주주의 시스템은 전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고, 선생님같은 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좌파를 싹~ 쓸어버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그건 이미 우리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해요. 굳이 좌파적 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님같은 분들의 그런 극한적 시각을 거부하는 이들이,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많이 늘었고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아~ 옛날이여'와 '나쁜 빨갱이 새끼들'이라는 말만 되뇌이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의견수렴을 해나가시겠습니까?
민주주의 신봉자라면 마땅히 후자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반론 :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과 소통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무조건 통제만 하다보니 금단의 열매처럼 탐독했다는 것은 님이 그 시절의 환경에서 해석하지 않고 세계가 정보화된 현 시점에서 해석을 하니 그것이 원인인것처럼 얘기합니다.
북한은 지금은 탈북자들로 하여금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지만 옛날 그 당시에는 남한보다 더 잘사는 북한인민들이 밖으로 나올 필요도 없었고 한국의 중앙정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파악할 뿐 대부분이 히든된(숨겨진)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보가 있어 숨길 수가 있었겠나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세요. 북한의 아주 작은 정보하나라도 들었다면 무슨 큰 정보를 입수한 마냥 국가 전체가 귀 기울였던 기억이 안나나요?
오히려 잘사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포섭활동이 극에 치달아 남쪽에서도 한때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더 잘 산다는 환상이 많이 있었고 월북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 때 남쪽에서는 대응무기로 승공(공산주의를 이기자)멸공(공산당을 멸하자)으로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펴 나갔던 것이지요
제 의견:
제가 생각하는 정보라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다 못해 북한에 남한보다 더 빨리 훌륭한 지하철이 건설, 운영되었다는 단편적인 사실 조차도 예전에는 금기의 사실이었습니다.
입수되는 정보 자체가 적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입수되어 있는 아주 소소한 정보(특히 '어~ 이런 점은 북한이 나은데?'라고 생각될만한)들조차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생님의 발론 :
공산주의 이론이 이제 시시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님께서 제대로 공부하시고(제발 환상에 빠지지는 마시고) 토론해 주시면 더욱 깊이가 있을 것입니다.
제 의견: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산주의가 시시하다 한 적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현실이겠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산주의 이론이 학문적 측면에서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부터 변함없이 갖고 있던 점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그것이 논점이 아니기에 깊은 얘기를 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부탁인데, 선생님께선 대체 얼마나 식견이 높고 고결하시기에 다른 이에게 함부로 '공부하라~'라는 말씀을 하시는 지 참 궁금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던데, 아마도 그 말이 선생님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지 못한 모양입니다.
선생님의 반론 :
오늘날 이만큼 대북정책에 오픈되고 거의 정확한 정보를 습득활용하게된 일등 공신은 인터넷이나 매체에 의한 정보소통이 아니고 100% 탈북자들의 공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북한에 대해서 그만큼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 :
탈북자 분들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생각은 저 역시 똑같습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정보습득 효과에 있어 탈북자 분들이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남한 내에서의 대북정보의 소통 효과가 오로지 그 분들만의 효과라 말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남북간의 정치적 교류, 민간 분야에서의 물적, 인적 교류 등은 물론이고, 그런 것을 통해 습득된 정보가 자유럽게 소통될 수 있는 인터넷 등의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탈북자 분들의 활동과 효과는 그 여러 중요한 요점들 중 하나입니다.
선생님의 반론 :
만약 북한이 우리와 대등하게 산다면.. 탈북자들은 없었을 것이고 더욱 치열한 사상전으로 전개되고 있을 것입니다.
제 의견 :
아마도 그렇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는데, 과거의 관념과 잣대로 그대로 평가하고 해법을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여기서 드린 주장은, 바로 지금이 2010년 대한민국이이기에 가능한 주장임을 잘 압니다. 과거라면 어림도 없었겠죠.
그리고 지금은 2010년입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오제도검사의 일대기를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940~1960년대 역사지식 접근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더러 좀 더 공부하고 오라는 소리같이 들려 불쾌하군요.
물론 사람의 공부가 끝이 있겠습니까만, 토론 중에 뜬금없이 반론이라는 제목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상대에게 '공부하라~'는 주문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만약 선생님이 성심성의껏 반론을 했는데, 제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생님은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 이 책을 한번 보세요. 그리고 다시 얘기 나눕시다'라고 한다면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시겠습니까.
만약 토론 중에 상대가 잘 모르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나, 내가 꼭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성의를 갖고 설명을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도 부족하다 느끼면 그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서적을 추천해도 좋겠죠.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1] 유다의 배신
목사님 장로님이 아니라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거나 교회 문지방을 넘나들어 본 사람 또는 그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가롯 유다란 자가 예수를 발아 먹은 배신의 전형이라는 얘기쯤은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수는 마지막 만찬에서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고 '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 함에, 가롯유다가 '랍비여 내이니까?' 하고 짐짓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 하였으나 '네가 말 하였도다'라고 유다의 정체를 들춰낸 대목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銀 삼십에 눈이 먼 유다는 검과 몽둥이로 무장한 무리를 이끌고 미리 짠 대로 예수에게 다가와 '랍비여 안녕 하십니까' 입을 맞추어 마침내 예수를 팔아넘기는 데에 성공 했으나 끝내는 무고한 스승을 팔아넘긴 자책을 못 이겨 목매어 자살 했다.
[2] DJ의 위장술
해방공간에서 오제도검사와 함께 '빨갱이소탕'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선우종원 검사는 1949년 6월 좌익전력자 20만여 명을 전향시켜 별도 관리 선도하기 위해서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을 만들었다.
당시 선우 검사는 '공산주의자들을 전향시키는 데는 전향한 공산주의자가 강사로 나서는 게 좋겠다.' 고 생각하여, 전향자에게 강사역할을 맡겼던바 전남에서 올라온 김대중이란 청년이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데 어떻게나 청사유수로 잘 하는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고 증언하였다.
첫 강의가 끝난 후 김대중을 검사실로 불러들여 '오늘 강의를 들어보니 의심이 간다. 최근까지 공산당 했던 사람이 그렇게 공산주의를 비판할 수 있나?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알았다면 일찍 전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네는 정말 전향한 것인가?''하고 물었다.
선우종원 검사는 이에 물음에 대하여 김대중이 '진심으로 전향했다'고 맹세했다고 증언하였다.(이상 2006.11.20, 조잡제닷컴)
그러던 김대중이 1985년 3월 경 연금에서 해제 된 자신을 찾아 온 이철(당시 37세) 전의원을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 단독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현재 우리나라는 극심한 계급적 갈등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꼭 필요하다.'며 이철에게 정치자금 10억을 제공하겠다며 (공산혁명에) 동참을 요구 했다.(1997.12.13 이철 자술서)
일언이폐지하고 이로써 김대중이란 자는 여타의 증언과 관계없이 전향은커녕 평생을 두고 변할 수 없는 빨갱이였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3] 카멜레온 군상들
우리사회에는 노동당깃발을 걸어놓고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절대충성과 무조건복종, 조직보위와 혁명적 동지애'를 선서하고 북괴 '조선노동당 및 그 전위조직에 가입'하고도 뻔뻔스레 '입당사실'을 부정하면서 전향을 거부한 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인혁당 사형수 내의를 염색하여 인공기를 본 떠 만든 한국판 '베트콩'이라 할 남민전기를 걸어놓고 '미제와 식민지앞잡이 유신(파쇼)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족자주연합정권'을 수립한다.'는 공산당 식 강령 규약과 임무완수에 '멸사헌신(滅私獻身)' 할 것(1976년)을 선서한자들이 '반역자가 아니라 민주화투사'라고 설치고 있다.
어찌 그뿐이랴. '민중의 수탈과 억압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분단과 예속체제를 타파하고 외세와 군사독재를 종식시켜 민중주체 민주정부를 수립, 연방제통일국가창출을 기본 목표'로 이우재 장기표 등과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창당을 주도했던 이재오· 김문수 그리고 끈끈한 '同志愛'로 뭉친 민중당계의 현주소는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
노동당에 입당한 이철우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그랬듯이, 이들은 한사코 '노동당입당' 사실을 부인하고 따라서 '轉向'도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민주화인사'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신봉해 온 남민전강령이나 민중당강령에 나타나는 '민주'는 공산당 식 프롤레타리아독재 일뿐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대한민국에 반역한 죄과를 통절하게 뉘우치고 죄상을 철저하게 고백하고 참회한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486, 586으로 업그레이드('?) 된 소위 386주사파 '빨갱이'들 역시 대한민국 정권타도와 체제전복 활동을 포기(중단)한다는 의미의 '轉向書'제출 거부는 물론, 대한민국 법치질서를 존중하겠다는 '遵法誓約書'마저 '良心의 自由'로 포장 된 '혁명적 지조와 의리' 때문에 거부 하였다.
[4] 바람잡이 선지자
성경 구절에(마태 24)에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라고 경계하는 구절이 있다.
어떤 자가 과연 거짓선지인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대선은 윤리선생을 뽑는 게 아니요 일꾼을 뽑는 것'이라며, '그 시대(70,80연대)에 (위장전입. 군복무면탈, 부동산투기) 같은 험 이 없는 자는 쪼다'라고 막말을 한 '조선인민공화국 거류민증 1호' 김진홍 목사가 참 선지자인지 거짓선지자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사회통합수석에 '친북인사'를 추천한 위장취업자 대부 인명진 목사가 선지자인지 아닌지 말 수 없으며, 평양에 밀입북하여 김정일 김정은 부자 앞에서 재롱을 떠는 한상렬이나 비행기를 못 타는 김정일을 대신해서 미국까지 날아가 천안함사건조작설을 주장하는 김상근 목사가 참 선지자인지 거짓선지인지 구분을 못해 분통이 터질 뿐이다.
성경 하나로 부와 명예 그리고 권세를 얻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성공한 대북 퍼주기 역군 소망교회 곽선희와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참 선지자인지 거짓건지자인지 그 또한 알 수 없음이 답답할 다름이다.
[5] 매품팔이 알바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김정일 자살특공대가 백령도 앞바다에 침투하여 초계임무중인 천안함을 어뢰로 기습 공격하여 46명의 승조원과 1명의 구조대, 9명의 구조지원 민간선원 등 56명의 생목숨을 앗긴 참사를 당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4월 22일 자신의 불로그에 '나는 김문수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 한다.'는 말씀을 늘어놓은 김동길 부류가 거짓선지자인지 아닌지, 그 또한 알 수가 없다.
2008년 반미친북세력이 주도한 100일 촛불폭동이 꺼진 후 전국 대도시를 누비며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치는데 돈푼 꽤나 쓰신 분들, 세종시와 4대강문제로 환경이냐 국익이냐 핏대를 올리고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해대는 자들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지 '권력'을 짝사랑하고 있는지 분간이 안가서 답답하다.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는 B모와 C모와 D모와 H모 외에 김대중 찍고, 노무현 찍고, 정몽준과 손잡고 턴, 손학규 띄우고 이명박 찍고, 정운찬 띄우고 또 한 번 턴, G 아무개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마다않는 A. B. C. D. E. F. G... 알바 專業 '매품팔이꾼'들 간(肝) 쓸개는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자들은 김대중이 보도연맹에서 열성을 발휘하여 최고의 강사로 인정을 받고 '眞心으로 轉向을 했다.'고 기막히게 위장을 했듯이 투철한 반북 자유민주 애국투사로 2중 3중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남다른 열성을 보이는 '거짓우익, 짝퉁보수, 가짜애국'을 넘어 위장 침투한 세작인지도 모른다.
[6] 배신의 달인 음해의 타짜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은 30에 팔아먹은 기롯 유다도,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김정일 아가리에 집어넣으려 한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도, 노동당 깃발을 걸어놓고 노동당에 입당하고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 중부지역당에 입당한 반역자들도 위장(僞裝)과 거짓의 달인들이다.
빈민선교, 도산선교는 물론이요, 대북선교를 빙자 한 문익환 박형규의 발자취 따라, 문규현 황석영 밀입북 뒤를 잇는 흉내를 내는 한상렬도, 미전향 장기수를 애국자라 칭송한 홍근수도, 미국까지 기어가 천안함사건날조라고 나팔을 불어대는 김상근도 '赤 그리스도'의 앞잡이요 '거짓선지자'의 무리인지 아닌지는 본인은 알고 하늘만은 알 것이다.
설사 그들이 赤 그리스도의 사도 '거짓선지자' 축에는 못 끼인다 할지라도, 하나같이 광신을 선동하고 '북에 무한한 愛情'을 가진 자들이라는 점에서는 형님 아우를 따질 수 없을 것이며, 종교의 외피를 쓰고 '민족과 민주 애국과 통일'을 팔아 부와 명예 그리고 권세까지 차지하게 된 '僞善과 僞裝의 달인'들이며, '모략과 음해의 타짜'들이기도 하다.
[7] 밴드웨곤이 움직이고 있다.
위장이 됐건 眞性이 됐건 소위 목사들이 들고 다니는 성경이라는 책에 '末世에 대한 끔찍한 豫言'이 있다고 한다. 그 말세가 오도록 재촉하는 자들이 너희와 같은 위선과 위장의 명인이자 거짓과 음해의 달인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물론 피라미 급 선동가들도 한 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을 부정하고'노동자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위장취업'으로 출신성분을 세탁하여'노동자계급'을 쟁취한 폭력혁명투사를 찬양하는'밴드웨곤'은 움직이기 시작 했다. 저들의 나팔소리에 얼마나 많은 군중이 놀아나고 속아 넘어갈지..
1949년 6월 선우종원 반공검사 앞에서 '진심으로 전향 했다'고 한 김대중의 전향이 가짜였듯이 2010년 '(계급혁명)민주화인사'들에게 '轉向'을 물으면 '색깔론'이라고 거세게 역공을 하고 그들에게 친북반역전력을 따지면 '민족과 민주 자우와 통일'로 치장을 하고 '愛國과 安保'로 응대를 한다. 그러나 K모 류의 저질 선동에 넘어갈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대 가슴에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 愛'와 '나라 國' 두 글자가 있었다면, 국가보안법위반 감옥 대신에 대한민국 국군이 되어 육상에서 DMZ를 지키고, 해상에서 NLL을 지켰어야 하며, 노동자천국 연방제통일 대신에 나라를 지키고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서 '싸우면서 건설하자' 며 열사의 중동이라도 누볐어야 애국과 안보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거리를 덮었던 효순미선 촛불족들, 광우병 촛불폭도들, 김대업 음해모략극에 낄낄대던 무뇌(無腦)족들, MBC PD 수첩 비틀거리다 쓰러지는'다우너 소'그림 한 장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골빈당들.. 그대들을 현혹하고 원하는 것 이상의 바보로 만들어 줄'거짓선지자'들의 BAND WAGON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K교수님 아니, 박사님께 함 말씀, 춘치자명(春雉自鳴)이라고, 본인이 쓰고 자신만 읽는 일기장이 아니라 만인이 와서 보라고 만든 불로그에 '김문수 대통령을 학수고대 한다.'고 광고를 한 것은 '속 보이는 오버'가 아닙니까?
하필이면 3.26천안함참사로 나라안팎이 초상집 같을 때, 국가지도급 인사요 국민의 敎師를 자처하는 박사께서 老妄이 아니라면, 어쩌자고 벌써부터 대선분위기조장에 발 벗고 나서려 하는 것입니까?
박사님은 '憂國衷情'을 내세우겠지만, 이는 누가 보아도 누가 들어도 기선(機先)을 제압하고 이슈를 先占 하기 위한 치졸한 술책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사님이 군 복무를 했는지 못(안)했는지 몰라도 기습도 역습도 타이밍이 승패를 좌우 합니다. 아무래도 김문수 대통령 대망론은 조기에 기도(企圖)만 노출한 꼴이 됐습니다.
참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시군요.
일단 이렇게 친절히 글을 잔뜩 퍼다 주신 것 고맙습니다. 이왕이면 출처도 같이 알려 주시죠?
그런데, 이건 아십니까?
이런 내용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저 역시 왕창 긁어다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퍼오신 글은 그냥 선생님의 머리 속에 잘 담아 두시고, 잘 정리해서 선생님의 생각과 논리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나라에서는 변한것이 없습니다. 시대도, 사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다.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마리의 살모사가 오직 상대방을 죽여서 흡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태양이 중천에 솟았다고, 들녁에 꽃이 핀다고 뒤로 돌아설 수가 있겠습니까?
서로 노려보고 있는 상대입니다. 한쪽은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은 싸움이며, 한쪽은 반드시 먹지 않으면 스스로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변했죠. 균형추입니다.
남쪽의 살모사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강한 성체가 되었고 이젠 외부에서도 당당한 주체로 대접받는 반면, 북쪽의 살모사는 남아있는 것은 자존심뿐 아사 직전이죠.
북쪽의 살모사가 남쪽의 살모사에게 덤빌 수 있는 경우는 자기 목숨을 내놓을 때에야 가능합니다.
그냥 모두가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민주주의론만 말했기 때문에 처음엔 모두들 수긍하는 듯 했는데, 결국 모두가 같은 말을 해도 그 마음의 고향이나 의도는 처음부터 각자가 다 틀리기에 논쟁이 격렬해지나 봅니다.
그래서 너무 깨지기 쉽고, 흰색이라 다른 색 물감에 섞어쓰기 쉬운것 또한 민주주의입니다.
샌드맨님은 좌파 학생들이 친북성향으로 가게된게 정부 정보의 비공개 때문이라 하셨고, 반론님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고 하시는데,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충분한 말은 아닙니다.
당시에도 언론매체나 외신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지금의 정보와 별 차이도 없습니다. 놀랍게도 지금 TV에서 보는 북한의 모습은 그때 정부에서 보여준것과 하나도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최근에 여기 탈북자들의 겪은 영상과 북한의 현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부세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북한입니다.
공개되는 순간 어찌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정보공개를 과거 남한정부의 정보공개와 비교하는 것은 적당치 않습니다.
북한은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마치 있는것 처럼 과장하며,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외부의 위협을 보여줍니다. 샌드맨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세습일가만의 독재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반론님이 그때 완벽한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컸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사상과 운동의 도구로서 매우 효율적이어서 인기가 있었던거지 그 자체에 집착한 사람은 질적으론 몰라도 숫적으로는 많지 않았을겁니다. (물론 그 소수가 너무 강력던건 맞나 봅니다^^)
제가 생각할 때 80년대 좌익운동의 몰락은
첫째는 지나친 사회과학의 과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드가 칸트나 헤겔같은 사회과학자를 정신병자로 분석했듯이,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마치 종교처럼 하나의 너무 큰 거대담론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으니까요.
근데 사회가 발전할수록 개인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개인의 문화적취향이나 공감대가 더 중요한 시기가 오자, 시드는 지도 모르게 시들게 된 것입니다. 일부 정치인이나 사회평론가를 빼고는 사상을 전향한 사람도 별로 없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 말들은 다들 먹고 살려고 하는 말입니다. 이젠 다소 신파적일때도 있구요.
둘째는 지나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까지도 영향력이 건재합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유력한 항일투쟁가였다는 사실만으로 좌익운동내에서 주체사상이 급속도로 파급된것도 사실이고
해방후 북한이 친일청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에 정통성을 두는 듯한 사람들도 아직 있습니다.
거기다 수천년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적의 적은 나의 동지" "홧김에 서방질"하는 식으로 손잡아선 결코 안되는 세력들끼리 손을 잡아 망치게 된게 한두건이 아닙니다. 물론 그때는 군사정권타도가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뜬금없이 처음글에 박헌영을 언급한 이유는 86년 학생운동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시킨 문제의 강철서신 첫번째 문건이 "미제의 간첩 박헌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무 것도 아닌 지난 역사, 덜 민감한 문제 같지만, 순수한 막스레닌주의를 짓밟고, 주체로 가겠다는 분명한 효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80년대 친북종북적 지지세력의 몰락(선생님이 사용하신 '좌익운동의 몰락'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매우 흥미롭고 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북한정보의 차단'에 대한 논란입니다. 제가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강조된 것일 뿐, 전적으로 정부의 정보차단에 때문에 학생운동에서 친북,종북적 사고방식이 기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원인을 따진다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더 옳을 겁니다.
남한 내에서의 대북정보의 소통 현상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따져 본다면, 어느 한가지를 꼬집어 '이것이 바로 그 원인이다'라고 말하기 힘들겁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들이 얽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북간의 정치적 교류, 민간 분야에서의 물적, 인적 교류 등은 물론이고, 그런 것을 통해 습득된 정보가 자유럽게 소통될 수 있는 인터넷 등의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께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북한에 대한 정보 공개수준은 비슷했다라고 하시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한 일례로 과거에는 북한에 대한 욕을 한다면 모를까, 관련 이슈를 가지고 진지하게 대화나 토론을 나누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시기에 북에 대한 정보가 지금이나 다름없이 원활히 소통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억지스럽습니다. 비단 탈북자 분들의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과거와 지금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가 왜 논란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제 성향을 미루어 짐작하셔서) 제가 학생운동에 있어 친북종북적 성향이 하나의 큰 흐름이 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보차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이해하셔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미에서 '북한 정보의 차단'을 '북한 정보의 부족'이라 표현하면 되겠습니까?
이러면 오해의 여지가 거의 없겠죠? 당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 사실이었으니까요.
50년 이상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생각하고 얻은 결론은 이것뿐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추구해온 궁극적 가치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북의 김정일은 잘못 나가고 있는 겁니다.
왜? 인민의 자유를 무참하게 짓밟고 겨우 유지되는 불행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나라 5천년 역사에서 백성이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자유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내는 놈들이 있습니다.
평등 없는 자유가 자유냐고 대듭니다.
그렇게 대들 수 있는 자유야말로 엄청난 자유입니다.
북에는 김정일을 향해 왜 이렇게 자유가 없느냐고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반면에 대한민국에는 노동조합도 있고 시민 단체도 있어 밤낮 평등이 없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상경하여 밥벌이가 없어서 보성전문 도선관을 지을 때 돌을 등에 지고 나르는 막노동을 했다는 정주영은 <현대> 왕국을 건설했고, 집이 가난하여 고학을 하면서 고려 대학에 다녔다는 이명박은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도 있습니다.
궁핍으로 부터의 자유도 있고 공포로부터의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부정할 자유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세 끼 밥을 배불리 먹고,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는 김정일의 인민공화국을 두둔할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권력이 이것 한 가지도 분명하게 못한다면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편인가’만은 확실해야 대한민국은 그 발전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북의 2300만 우리 동포를 구출할 수 있습니다.
부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토론하는 이들 누구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를 부정하는 이는 없습니다.
혹시 개인이나 조직의 정당한 요구와 비판까지도, (저들이 좌파, 혹은 좌파라 보여진다는 이유로)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로 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이들 대부분 역시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나만이 애국자이고 애국세력이라는 오만은 버려야 합니다. 똑같이 애국하는 마음을 갖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수 있슴을 인정하셨으면 합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8-11 00:07:37
차별이냐? 사람폭행하는거냐? 사람무시하는거냐? 무시당해고 억울해도 일반백성들은 참고 사는게 공산주의냐?
못사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가는 식당에도 못가는게 공산주의냐?
빈부차별 심한게 공산주의냐?
대한민국은 적어도 중국같지는 않다... 대한민국은 못사는 사람도 부자들이 하는것 대부분 할수 있으니까
빈농의 자식 청소부등도 대통령이 되는 나라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무현 이명박은 빈농의 자식이었는데..
너는 상상도 할수 없을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중교통도 이용할수 없는나라가 중국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수없단다
중국이나 북한이나 한국사람이 보기에는 불평등한정도가 아니다
그런것을 중국이나 북한사람들은 당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것을..
보통의 경우라면 님의 글을 마땅히 무시했겠지만, 가만 살펴보니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 답글을 답니다. 다만, 이왕 대화를 나누는 것 서로 간에 기본적인 예의는 갖춥시다.
저더러 세뇌당한 머리를 그냥 사용하고 있다 하셨습니까?
주둥이로 놀려서, 남의 말만 곱씹지 말고, 악세사리로서만 존재하지 않는 머리라도 사용해 보라 했습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선생님의 머리는 세뇌되지 않은 온전한 머리라 장담할 수 있으며, 주둥이가 아니라 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천박한 표현을 마구 내뱉어 놓고, 제 입에서 선생님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나올길 기대합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댓글을 올리는 목적이 '대화'나 '토론'이라면, 공연히 논점에서 벗어나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유치한 짓은 하지 맙시다. 그런 태도라면 어차피 서로에게 불쾌감만 증가시킬 뿐이니, 그런 태도를 버릴 생각이 없다면 이런 대화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그 점 잊지 마세요.
아무튼 각설이 길었네요.
1 ~ 3번째까지는 좀 다른 견해도 있지만 시시콜콜히 따지고 싶지는 않아 넘어가겠습니다.
4번째, 사적소유의 독재통치방식이라...
이런 표현은 처음 듣는군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소유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나요? 아니면, 선생님의 자의적 표현인가요? 흥미롭습니다.
보통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낯선 표현대신 '배타적 소유권'이란 표현을 쓰죠.
아무튼 민주주의가 '가진 자들의 논리'라는 선생님의 주장엔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 민주주의 제도는 노골적으로 부르조아 계급을 위한 논리였고, 그런 점이 많이 개선된 지금도 역시 그런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점에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폄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많은 단점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 제도는 현존하는 가장 합리적인 정치사회 시스템이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나갈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뜻에서 선생님이 언급하신 '자본론'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심층을 해부할 수 있는 현실 비판적 이론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자본론의 비판적 시각과 접근은 향후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 제도의 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소중하고 기대가 큽니다.
5. 우리의 서열문화.
나이를 한살씩 더 먹어가면서, 국가나 민족이 갖는 각기 독특한 특징을 이해함에 있어, 오로지 장점이 아니면 단점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즉, 그 어떤 특징이란 것은, 그냥 다른 것과 구분되는 좀 다른 모습 또는 현상일 뿐, 그 어떤 가치판단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특징이든 치우치고 과하면 부정적 영향이 큰 단점이 되는 것이고, 적절한 수준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극대화시키면 장점이 됩니다.
저는 한국에 존재하는 엄연한 서열문화 등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인 '서열문화'는, 그 부정적 영향력이 커지면, 선생님이 지적했 듯 '평등'이라는 요소를 방해하는 단점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사람과의 관계성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네트워크적 관계성의 강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할 것이 예상되는 향후 미래사회에서는 또다른 장점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축 운용하고 있는 서구 사회 역시 계급주의적 잔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 문화가 갖고 있는 특징이, 우리가 민주사회를 추구하는 데 있어 치명적일 정도로 부정적 요소라 생각하지 않으며, 실제로 우리 사회는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 발전시켜 왔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들을 어떤 방향으로 강화시키느냐 입니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비록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민주주의 근처도 구경해 보지 못한 중국인의 지적을 받는다는 건, 마치 한편의 코메디같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6. 민주주의에 대해...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는 원기둥처럼 생겼다'고 주장하는 격이군요.
그 누구도 현존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아니,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체 그 무엇이 완벽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따라서 민주주의의 무결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해서 일종의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한심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한심하다 말하고 거부한다면 대안은 있습니까?
현재의 민주주의가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은, 호,불호에 따라 선택했다기보다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지지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실험하고 가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선생님이 이해하고 있는 그저그런 '대리인 제도'가 아닌, '시스템제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는 완결된 형태의 시스템이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따라서 비록 무결성을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유식해 보인다고 자화자찬하셨습니까?
좋으시겠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얼마나 그 삶이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것 하나만 알고 계세요. 그건 어디까지나 선생님만의 생각이라는 걸 말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와 주장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풀어냈다면, 설사 그것이 제가 숭앙하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이라 할 지라도, 저는 선생님을 좀 더 높게 평가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제게 더 심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기껏 알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 등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뿐이며, 그나마도 민주주의 제도와 가치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한 선생님이, 저를 비롯해 민주주의 지지자들에 대해 한껏 허세를 부리며 인격모독적 발언을 쏟아내는 순간, 선생님의 주장은 유식해 보이지도 가치있어 보이지도 않고, 되려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충고 드립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로 글쓰고 대화를 나누면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선생님의 사고나 글쓰기 수준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니 혼자 환상 속에 살지 마세요.
토론의 기초는 이미 무너졌따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도 내가 쓴 문장들을 다 기억할수도 없는 문제이고...
님의 댓글을 보고...
저도 몇마디 댓글을 달아 주죠.
길게 댓글을 써 주어서 감사는 하시고...
1.서열문화에 대해서...
서열문화에 대해서 님의 인식은 아주 미흡한것 같습니다.
서방에서 민주주의가 실현이 되는 과정엔 혁명이 일어났어요.
사람이 많이 죽고...
사회의 일대 대혁명이고, 대변천입니다. 예를 들면, 북조선이 무너지거나, 대한민국이 일본에 합병되는 이런 대 사변과 같은 성격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복처럼 허공에서 공짜로 떨어진것입니다.
공짜이면 공짜인것만큼 선천적으로 불량이 그만큼 많아요.
민주주의는 민주사상을 기초로 하는 사회적제도입니다.
한국엔 민주사상이란 개뿔도 없고, 그냥 마지막단계인 정치형태상에서 민주주의제도를 실시한것뿐입니다.
----이 단락이 무엇을 대표하는가를 잘 읽어주세요.
서열문화라는것이 민주사상과 어떤 관계인가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따면, 님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지도 않았겠죠.
2. 례의
례절이 있는것이 좋죠.
내가 당신을 보고 세뇌되였따면 나쁜 말이고...
님은 북한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정의이다???
ㅋㅋㅋ
내가 겉보이는 례절이 없다면.
님은 속이 아주 음특한 음모가라고 말하는것이 어울리죠.
력사적으로 보면,
"독재"사회에서 사회발전을 빨리 한 사례는 아주아주 많아요.
력사를 부정하지는 맙시다.
더우기...
한국인의 안광과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거나, 북한을 보지 말기를 바라며, 권고를 합니다. 한국사회는 세계의 특종이며, 한국인은 세계에서 특종입니다.
3.자화자찬...
여기, 탈북자동지회가 무슨 유명한 사이트도 아닌데...
여기에서도 무슨 자화자찬이 필요하나요?
론객이면, 작은 시비는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당신은 몇마디 욕하면 또한 어떤데요?
혹은, 님이 나를 욕몇마디 하면, 또 어떠한데요?
ㅋㅋㅋ
나의 대부분의 댓글이 모두 삭제되는 여기에서...
그 누구와 론쟁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따면, 그것은 내가 너무 유치한것이죠.
민주주의를 좋아하시네요.
나의 글과, 조선족들의 글을 삭제나 하지 말라는 주장이나 하시면서..
민주주의가 좋다는 자랑을 하시면..
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 드릴께요.
선생님의 글이 삭제된 것은 참 아쉽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단 댓글들에 비한다면 그래도 참 볼만한 글이었는데, 그래서 저도 그간 무시만 하다가 오랫만에 댓글을 단 거였거든요.
아마도 관리자께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조금 과민반응하신 것 같아요.
아무튼 그것은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안됐다고 말씀드릴 밖에요.
아무튼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댓글을 달아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번 댓글 역시 저로서는 할 말이 많은 댓글이네요. 그럼 저도 반론해 보겠습니다.
1.서열문화에 대해서...
'서열문화에 대해서...'라는 제목과는 달리, 주장의 대부분이 서양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정착과정에서의 차이점에 할애되어 있네요.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서양의 경우는 처절한 사회변혁을 거쳐 민주주의가 이룩된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 노력없이 그냥 민주주의라는 과실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한국은 민주적 사상이나 가치 따위는 없다'는 말씀 아닙니까?
어때요? 이쯤이면 정리 잘 했죠?
하지만 이런 선생님의 생각에는 큰 오류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 드릴께요.
먼저 서양의 경우 고도의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성하면서 얻은 과실도 많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사회적 폐해가 극에 달했죠. 그것에 대해 당시 피지배계층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각성과 정치적 투쟁이 큰 사회적 변혁을 일으켰고 현재의 민주주의적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민주주의'제도에 대한 어떤 준비나 각성도 없이 '제도'로서 먼저 접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서 공짜로 떨어졌다'는 선생님의 표현도 일리가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도 공짜일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공짜로 얻은 듯 했지만 그후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처절한 민주화 역사가 그 대표적인 대가이며, 그 대가는 아직도 완불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민주적 사상이나 가치조차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명백한 오류예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왜 그런 오류를 범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는 전에 댓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선생님 스스로의 '민주주의'에 대한 미흡한 이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광복 후 민주주의 제도를 공짜로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때 저희가 받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즉, 껍데기만 받은 겁니다. 그것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죠.
광복 이후 표면상 여전히 민주주의 껍데기를 갖고 있던 7, 80년대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분명히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두고) 한 외신기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것과 같다'라고요.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시죠?
즉,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껍데기뿐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현 정부들어 조금 후퇴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모범생은 '대한민국'뿐입니다. 이 말은 곧 그동안 끊임없이 대가를 지불했던 민주주의가 드디어 어느 정도는 우리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르며 이곳까지 왔습니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조국 중국은 어떨가요? 죄송한 얘기지만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2. 예의
내가 당신을 보고 세뇌되였따면 나쁜 말이고...
님은 북한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정의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답변 드릴께요.
네, 전자는 나쁜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후자는 제가 말한 적이 없는 내용인데요? 뭔가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게다가 만약 제가 그런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전자와 후자의 성격은 전혀 다르죠.
전자는 개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니 예의가 없는 것이 맞고, 후자는 (비록 정의까지는 아닐지라도) 그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니 예의와는 상관 없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북한 국적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어차피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분이시니 모욕감을 느낄 일도 아닐테고요.
더욱이 저는 북한이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하지도 않은 말가지고 시비 걸지 마세요.
그리고 선생님의 주장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력사적으로 보면 "독재"사회에서 사회발전을 빨리 한 사례는 아주아주 많아요. 력사를 부정하지는 맙시다."'
이 말이 선생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어서 한 말씀 드립니다.
역사적으로 독재가 큰 발전을 이룬 예는 많다?
네, 왕정같은 형태까지 독재의 한 형태로 포함시킨다면 그런 예는 무척 많습니다.
역사를 부정하지 말라?
네. 저는 이것과 관련해 언급한 적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질문 드리죠.
근데 뜬금없이 이 얘기가 왜 나온 거죠?
혹시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나을 수도 있는 제도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예요? 만약 그런 거라면 그 생각이 너무 얄팍한 거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선의의 독재'라 하면, 아마도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언급한 '철인정치'와 비슷한 개념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로 철인이라 일컬을 만한 인물이 대의와 선의만을 가지고 전권을 휘두른다면 왠만한 민주공화정보다 훨씬 낫겠죠.
그런데, 이것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계속해서 '철인'이 대를 이어 집권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로또'가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몇 대나 이어질 수 있을까요?
무소불위의 전권을 가진 독재권력이 부패할 여지는 없을까요?
엄밀히 말해 민주주의 제도는 최선을 뽑는 게 아니예요. 그보다는 최악을 피해보자는 제도입니다. 게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개인보다는 조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권력을 분권화 시킨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민주공화정이 독재보다 우월하다는 겁니다.
3. 자화자찬
자화자찬은 선생님이 하시길래 말씀드린 거예요.
어설픈 민주주의 숭배자를 상대하다 보니 자신이 아주 유식하게 느껴진다 하셨잖아요.
그 말이 웃겨서 살짝 꼬집어 드린 겁니다. 대개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라도 스스로 그런 자화자찬 못하거든요. 게다가 그것은 사실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그 큰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시라고 충고 드린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환상 속에서 별로 나오고 싶지 않으신가 봐요. 하긴 그게 행복할 수도 있죠.
덧붙이며...
원칙적으로 저는 토론 등에 있어서 욕설이나 명백한 불법행위가 있지 않는 한 글을 삭제하는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선생님을 위해 그런 의견을 말한 적은 없지만, 다른 분들의 사례에서 그런 의견을 밝힌 적은 있죠.
다만, 글이 삭제되는 이유에는 선생님의 책임도 있다고 봐요.
이곳은 다름아닌 탈북자 분들이 주인공인 '탈북자 동지회'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또는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북한문제와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을 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그간의 발제글이나 댓글들을 보면, (이런 표현이 좀 무례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느낌 그대로를 말씀드리자면) 중화사상에 찌든 중국인이 대한민국을 씹어대는 것으로 밖에 안보였어요.
그러니 이곳의 관리자들 입장에서 이곳 탈동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을 수도 있죠.
저 역시 이곳과 코드가 잘 맞는 편은 아니예요. 아는 분들은 모두 아시지만,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습니다. 북한의 뽀글이와 그 추종자들 두둔한다고 욕도 많이 먹고요. 심지어는 탈북자단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가감없이 말합니다. 그래서 저 이곳에 안티도 꽤 많아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삭제조치 등의 제재를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위에서 언급한 그런 기본적인 취지만 준수한다면 이곳을 이용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관리자나 다른 사람들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 내부에서 한번 문제를 찾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이런 한낱 게시판 이용문제를 가지고 일국의 민주주의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마세요. 보기 안쓰럽습니다.
님은 속이 아주 음특한 음모가라고 말하는것이 어울리죠.
이건 맞는 사실이네
제가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이건 아십니까?
예절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지만, 음모라는 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죠.
즉, 남이 뭐라든 내가 '저 놈은 음모가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그의 모든 언행이 그렇게 보입니다.
쉽게 말해, 내 편이면 옳은 소리하는 사람으로 보일테고, 적이라 생각되면 뭘해도 나쁜 놈일 뿐이죠.
아마도 저는 선생님에게 있어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선생님의 생각을 존중합니다만, 그것을 객관화하려 하지는 마세요.
또,그런사람들과 민주주의에 관해 토론한다는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고요.
현실적으로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들과는 거래는 있을 수 있어도,공감과 소통같은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부질없는 짓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