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북송당할 때의 심정(경험) |
---|
친선다리는 <죽음의 다리>
중국 경비대에 체포된 나는 <친선다리>를 거쳐 북송 되였다.
공산당 정부끼리 <친선다리>이지 탈북자에게는 죽음의 다리였다.
북송 전에 중국장교(조선족)에게 간절히 매달려
중국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호송 차에 실려 북한초소에 이르니 자동보총(AK)을 든 군인은
보자마자 날카롭게 <굽어 앉자!> 소리친다.
땅에 굽어 앉지 않으면 그 대로 칠판이다.
조국은 어머니 품이라고 선전 받았지만 실제 당해보니 살기가 풍겼다.
중국과 똑 같은 공기겠지만 북한의 공기는 더욱 쌀쌀하여 숨이 막혔다.
마중 나온 북한정치보위부 원과의 간단한 인계인수가 끝나자
중국제 수갑 대신 보다 많이 사용한 듯 도금 벗겨진 수갑을 채우고 후송하였다.
희망찬 탈북이 하루 천하 죽음의 길로 이어졌다.
그 때 나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가.
마치 꿈속에서 벌어지는 듯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 정치보위부 감옥(집결소)에 들어가면 자살도구로 쓰일 모든 물건
즉 혁대, 지퍼, 단추, 심지어 팬티의 고무줄까지 뽑아낸다.
그러므로 일어설 때에는 바지춤을 잡아야 한다.
이 점을 알고 두 손을 들라면 아래 도리는 자동적으로 <아담, 하와>가 된다.
여성들도 발가벗긴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수치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다.
감옥 첫 날부터 탈북 한 <너는 민족 반역자니 죽어 마땅하다.>고 선언한다.
여기서부터 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살아나올 수 없다는 곳에 들어와 제 정신 없는 데
이런 <사형선고>를 들으면 더욱 싸늘하게 심장까지 얼어든다.
<이제는 죽었구나.>하는 공포가 엄습하는 속에
감방의 첫날밤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비몽사몽에 빠져든다.
대낮보다 밝은 광야를 마음껏 다니는 자신을 본다.
정말 자유로운 창창한 광야다.
이 눈부신 광야는 <아침기상!>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깨진다.
아직 날이 어두운 겨울의 새벽 5시, 전력부족으로 수수떡 같은 전등 빛의 감방은
말 그대로 지옥처럼 느껴졌다.
밤잠을 설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밤새 광야는 자유로운 바깥세상이 너무 그리워(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염원이 신기루와 같이 반영된 것 같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2-02-21 20:40:47
이런 미친 놈도 버젖이 컴퓨터에 앉아 미친놈 수작질 할 수 있다는게...
이런것도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인강?
너 혹시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부위부에 넘겨주면서 밥얻어 먹은 그놈 아니냐?
별 정신지랄 나간 놈이 다 들어와서 ....
니 말대로라면 북송되서 개고생한 사람들이 응당하단 말이냐...썩 꺼져버려라!!!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2-02-21 20:40:00
보위부가 살인 집단이 아니라구?? 이런 병신짝을 사람이라고 북한에서 정보원으로 쓰는가?
이 머저리 병신아! 북에서도 탈북자라고 한다. 내가 있을 때만도 보위부에서 탈북자라는 말을 했다.
너 언제 중국에 게바라 들어 왔니? 주제 사상은 투절하다고 지껄이냐.
머저라 네 가족과 주변을 보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리고 너도 북한에서 살았고 귀와 눈이 있으면 현실을 봤을텐데 비단 보자기로 싸서 감추려 하니.
너 같은 물건짝들은 눈에 깍지가 씌여져 동족살인을 서슴치 않는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2-02-21 20:3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