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명철 [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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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곡동 헌인릉 주변의 어느 정원가든. 가을단풍이 빨갛게 물든 자연의 풍경이 아름답다. 친환경재질로 꾸며진 테라스에는 연인들이 커피 잔을 놓고 한가로움을 달랜다. 일상의 하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 평온함이 묻어있다. 주변에 선글라스와 이어폰을 착용한 요원들이 삼엄한 근무를 선다. 저쯤에서 검은색 다이너스티 리무진이 가든 마당에 들어와 정차하고 뒷좌석에서 권영해가 내린다. 좌우를 둘러본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우아한 한복을 입은 중년여인이 안내한다. 약간 어두운 지그재그 통로를 지나 어떤 곳으로 온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 미닫이문을 살며시 연다. 커다란 식탁을 마주하고 앉은 젊은 사내가 곧바로 일어서며 목례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반가워요. 조명철 박사님! 별일 없죠?” “네! 그렇습니다.”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안위를 위한 특수업무에 자문을 주시는 박사님께 고마워요. 제가 안기부를 대표해서 인사드려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옛 조선시대 풍경이 그려진 대형액자와 얼기설기 펼쳐진 병풍, 각양각색의 화려한 도자기 등으로 아늑하게 꾸며진 방은 전통문화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황토색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방구석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가수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온다. 서빙이 시작된다. 고운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차례로 음식과 술을 내온다. 따뜻하고 차가운, 다채로운 모양의 음식이 한 눈에 보기에도 그림 같이 예쁘다. 궁중음식으로 차려진 식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다. 술이 담긴 은색주전자를 들고 권영해가 “자! 오늘 점심은 제가 사니 한 잔 받으세요.” 하자 조명철이 “감사합니다. 부장님!” 하고 답한다. 두 사람은 술잔을 가볍게 찢고 입가에 가져간다. 조명철이 잔을 털고 권영해에게 준다. “한 잔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저! 부장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에게 말을 놓으십시오. 부장님은 저 보다 20살 이상 많은 연장자이십니다. 일국의 정보기관 최고수장인 부장님께서 아들 벌 같은 어린 저에게 경어를 써주시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허허! 그래요? 참! 북한의 보위부장은 대학교수에게 존경어를 안 쓰나 봐요?” “삿대질이나 안하면 다행입니다.” “그래요? 교육자에 대한 예우가 형편없네요.”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당간부가 최고입니다. 보위부에서도 행정간부인 보위부장보다 당간부인 정치부장이 실제적 권력자입니다. 행정간부와 당간부 양대 체제는 북한에만 있는 특수한 인사시스템인데 실은 서로 감시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네!~ 그렇군요.” 시대와 제도를 떠나서 교육자는 그 사회의 존경과 리더의 상징이다. 보편적으로 국가의 흥망성쇠가 교육에 달렸다고 한다. 민주교육과 독재교육의 차이가 오늘날의 남과 북의 서로 다른 현실을 만들었다. 북한에서의 교육자에 대한 인식이 형편없이 낮다는 조명철의 증언은 별로 놀랄 것도 아니다. 폐쇄사회 그곳에서의 교육자체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인데 여기에 무슨 정의와 진실이 있단 말인가? 권영해가 가볍게 잔을 비운다. “당신은 우리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자 최초의 대학교수이고 박사예요. 그것도 그 유명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죠. 김정일이 졸업했고 당과 국가의 간부들을 양성하는 그 대학에 나이 든 교수 박사가 많으면 뭐하죠? 지도자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비굴한 짓이 또 어디 있나요?” “...” “다른 사람도 아닌 양심과 시대의 대변인이라는 지식인들이 노동당의 폭정정치에 찍소리 못하고 사는 곳이 평양이죠. 그들의 침묵에 김정일 독재는 더욱 강해지고 인민의 고통은 길어질 거예요. 역사를 거꾸로 돌리면 그들은 땅을 치고 자신을 후회할 거예요. 저는 인간 조명철의 용감성을 존경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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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장이 등장하면 첩보소설인가?
조명철 저격수 이윤걸이도 나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