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북한주민을 해방할 강력한 지도자를 요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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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 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집 사람들을 따뜻한 紅色(홍색) 옷을 입혀서 눈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의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을 생각하게 한다. 눈이 내리는 계절을 이기게 하는 따뜻한 옷의 의미는 이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눈과 추위를 냉혹한 인권유린으로 비유한다면 혹독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북한주민이다. 그런 추위에 따뜻함을 주는 홍색옷의 의미는 視覺的(시각적) 효과의 따뜻함으로 추위를 이기에 하는 것과 保溫(보온)의 효과로 추위를 이기게 하는 것을 담고 있다. 이런 의미를 계속 펼치면 이런 내용도 나온다. 지금 한반도는 김정일의 인권유린이라고 하는 추위의 掩襲(엄습) 곧 남한적화 또는 인권유린의 팽창에 떨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포함한다. 지금의 한반도는 김정일의 추위를 극복하는 것의 유무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있다. 국민들이 모두 나서야 하지만 무엇보다 더 지도자의 몫으로 보아야 한다. 김정일을 무시하는 지도자인가 아니면 김정일에게 굴종하는 지도자인가? 2. 그 차이를 두고 생각하게 한다. 문제에 굴종하는 지도자, 문제를 무시하고 극복해내는 지도자의 차이를 말한다. 성경에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이 나온다. 그 중에 10명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1)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4)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5)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6)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문제에 눌린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에 있다. 문제에 눌린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기회에 어떤 연고로 눌렸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굴종하며 사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3. 김정일에게 굴종하는 자들이 대한민국의 지도자 班列(반열)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지도한답시고 은근슬쩍 김정일에게 굴종하는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런 지도자들을 모두 다 제거하지 않는 한 북한주민을 해방하는데 많은 障碍事由(장애사유)가 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햇볕정책을 만들어 자기들의 본 모습을 감추고자 하였다. 그와 같은 자들이 존재하는 한에는 국민은 굴종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 답답하고 우울한 십여 년의 세월을 벗어던지는 계절이 왔다고 소리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을 봄으로 비유하자면 봄은 왔지만 아직도 봄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더욱 분명하게 자유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는데 적극적인 세월로 가게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김정일에게 눌린 사회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국민의 어깨에 있는 눌림이라고 하는 멍에를 꺾어야 한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야 한다. 때문에 오히려 김정일을 붕괴시키는 예수의 정신으로 강력하게 무장해야 한다. 4. 그런 정신이 곧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정신이다. 그 두 사람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속한 자들이다. 多數(다수)인 10명은 아낙자손의 장대함 앞에 스스로 무너져 절망에 눌려버렸다.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절망을 짓이기는 말을 하였다. [1)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2)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3)그들은 우리 밥이라. 4)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5)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여호수아 갈렙의 말을 되새겨 보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다. 앞의 열사람은 스스로가 무너져 스스로를 평가하기를 아낙자손에 비해 메뚜기라고 하였다. 여기서 지도자의 두 가지 모습이 보인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앞에 열사람의 문제에 눌린 굴종에서 나오는 처세인가? 그 문제를 짓이기는 여호수아 갈렙의 처세인가? 분명하게 구분하실 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실 것이다. 또한 결국 이 정부의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힘에 따라 다르게 곧 나타날 것으로 본다. 5. 더 두고 보면 김정일에게 눌린 정부인가, 김정일을 무시하는 정부인가가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는 문제를 극복하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지도자이다. 그들은 문제에 눌려 허덕이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문제를 오히려 밥을 삼아 강력한 敢鬪精神(감투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슬기를 따라 적을 무너지게 하는 지도자였다. 그런 지도자가 참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를 가진 대한민국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코 문제에 눌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에 눌리는 사람들은 자기 理性(이성)의 한계 속에 묶여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묶여있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 이성 바깥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그 안에 갇히게 되면 결국 이미 그 문제에 무너진 심리상태를 갖게 된다. 그런 심리에 묶인 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을 축복의 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奴隸(노예)의 땅으로 끌어들인다. 6.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들은 그 10명의 정탐꾼처럼, ‘가나안 땅의 아낙자손에 비해서 자기들의 보기에 스스로 메뚜기’라고 하였고, ‘아낙자손의 눈에 볼 때도 자기들을 메뚜기로 보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은 결코 김정일을 극복할 수가 없게 된다. 적화공작대상이 되어 이미 눌려버린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김정일에 대한 반응은 體質的(체질적)인 것이 되었다. 체질적으로 눌린 자들은 결코 그 눌림의 심리상태의 감옥에 갇혀 있기에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 나무에서 그 열매를 내듯이 하는 것처럼 이다. 그 나무 체질에 따라 다른 열매를 내는 이치가 그것을 담아낼 수가 있는 비유가 될 것이다. 김정일에게 길들여지면 스스로의 理性(이성)을 따라서 자기를 눌림이라고 하는 감옥에 묶여지게 하는 것이다. 공갈협박에 갇혀 지내는 자들은 결국 스톡홀름 러브에 빠져 자기가 자기를 묶어놓은 것이 된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자기가 자기를 무너지게 한다. 7. 이내 諦念(체념)하고 오히려 김정일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고 스톡홀름 러브에 빠져 결사옹위를 외치게 된다. 공갈협박에 인질로 잡혀지면 결국 가서는 자기가 자기를 우물 속에 가둔 것이 된다. 자기가 자기를 김정일의 두려움 속에 가둔 것이 된다. 자기가 자기를 김정일에게서 나오는 공포 속에 가둬놓은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무너지면 그런 것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김정일은 그들의 태양이 되고, 그들은 그 태양을 통해 살아가는 가축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김정일 없는 세상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 태양이 지면 자기들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사는 자들이 이 남한에 엄청나게 많다면, 그것은 나라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간개조를 통한 혁명의 전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지도자들을 弑害(시해)하려고 할지 모른다. 8. 그런 자들이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대통령을 左之右之(좌지우지)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런 자들을 모두 발본색원하여 무너지게 해야 하는데, 이들을 제거하는 길은 수많은 고정간첩들을 의미한 지뢰밭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에 그 어려움은 있다. 이런 말은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고, 이런 말은 그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를 보는 눈은 하나님의 눈이 있고 인간의 눈이 있다. 정보취득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 두 사람의 시각이나 그 열 사람의 시각은 同一(동일)하였다. 분석과 응용에서 각기 다른 견해가 나온 것이다. 김정일의 세력들이 가득하여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밥이 된다고 담대하게 외치며 하나님의 지혜로 슬기롭게 헤쳐 나가 마침내 김정일을 붕괴시키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다음 대권은 김정일을 밥으로 여겨 잡아먹으려는 지도자들이 대권을 잡을 것이라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9. 김정일의 눈치나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라, 김정일과 그 권부를 밥으로 여겨 잡아먹으려는 지도자들이 나서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 역사의 흐름으로 보인다.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고,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때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 어둠의 편이냐? 빛의 편이냐? 여기에 중도는 없다.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과 그를 무시하는 사람과의 권력투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말함이다. ‘金大中의 자기도취 혹은 과대망상’이란 제목 하에 김대중 씨의 미국 나들이에서 한 말을 분석한 김준엽 데일리nk논설위원은 [이날 김씨의 하버드 강연 내용을 유심히 뜯어보면 김씨는 드디어 '햇볕정책의 세계화' '햇볕정책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햇볕정책의 역사화'까지 노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이들은 이제 ‘햇볕정책의 세계화' '햇볕정책의 보편화' '햇볕정책의 역사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10. 김대중은 이미 김정일에게 눌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불어 넣고자 과욕을 부리고 있다고 하며 김논설위원은 ['민주화 투사'로만 역사에 남아도 충분할 것을 김씨는 '인류 최초 햇볕정책 창시자'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도취(자기기만)이자, 과대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이런類(류)의 정신현상을 '파라노이아'(paranoia)로 설명한다. '완고한 망상이 지속되는 상태'라는 뜻이다.]라고 맹공하였다. [보스턴을 방문 중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터프츠대 찰스센터 다이닝 룸에서 90여 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한 강연과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햇볕정책이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았지, 사실은 햇볕정책과 거의 상통하는 말씀을 개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선닷컴은 보도했다. 김대중 그는 미국에 가서 햇볕정책은 현재 이명박 대북정책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고 하는 것은 억지냐 아니면 맞는 말이냐를 두고 생각하게 한다. 11. [그는 “햇볕정책은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풀어가고 서로 공동승리하는, 윈-윈의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 부시 정권이나 이명박 정부나 저의 의견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표현만 다르지 실제로는 같은 길을 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고 조선닷컴은 "李 대통령 대북정책, 햇볕정책과 거의 상통"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이들은 이제 ‘햇볕정책의 세계화' '햇볕정책의 보편화' '햇볕정책의 역사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에 더욱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내용의 분명한 것은 저들이 노리는 것은 한반도에서 김정일에게 대한 굴종을 정당화 보편화 역사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을 넉넉하게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예수이름으로 구하고 그 주시는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아주 강력하게 거론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대권을 주신 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조건으로 보여 진다. 하나님의 정하신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12. 한반도의 착취의 세력인 골리앗을 몰아낼 다윗을 찾고 계신데 누가 손을 들고 自薦(자천)하겠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주어질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아브라함 링컨처럼 북한주민을 그 심각하고 혹독한 노예상태에서부터 해방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으로 확신한다. 때문에 역사는 문제에 눌린 사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을 한번 해먹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정일에게 가서 개혁의 개자를 꺼내고 혼구멍난 자들이 魂飛魄散(혼비백산)하여 알아서 기는 모든 정치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들었다. 그런 자들을 받들어 모시는 군인들의 어리석음도 보고 들었다. 하나님은 역사로 하여금 그런 자들을 무너지게 하는 기회를 만드신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분명한 것은 김정일을 무시하는 자들이 得勢(득세)하는 세상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김정일의 혹독한 인권유린에 떨고 있는 지도자들은 결코 집 사람들에게 따뜻한 보온성의 옷과 아울러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옷을 입혀 줄 수가 없다. 더더욱 북한주민을 해방할 수가 없다. 강하고 담대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처럼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한다. www.onlyjesusnara.com 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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