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에서의 죽음의 나날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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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선생을 만나보았다. 선생은 이제 1시간을 넘기지 못한단다. 이게 무슨 하늘무너지는 소리인가?!~~ “선생님 영희를 살리는 방법은 없습니까?!선생은 내살을 떼여 서라도 ,내피를 뽑아서라도 영희를 살릴수만 있다면 .아무것이라도 할수 있어요 선생님...”선생은 안된다고, 이젠 늦었다고. 죽는게 걔뿐이냐고....안된단다. 아무렇게 해도 안된단다... 이젠 어쩌면 좋단말인가?!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건만 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동생 영희가 이렇게 먼저 간단말인가..하나님 ,하나님 계십니까? 이거 불공평하신거 아닙니까?.. 왜 하필이면 영희입니까? 네?!--------- 가족이 다 죽고 딱 영희한명만 남았습니다. 그것도 안됩니까!~~~~ ........................... 영희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북한의 교양소와 그안의 선생으로 불리우는 모든 악마들과 악당들 난 용서하지 못한다. 절대로 용서못한다. 아니 나뿐만이아니라 모든 교양생들 다 용서못할것이다. 난 막 뛰여갔다. 영희가있는 병실로 ..... 영희는 마지막숨을 쉬며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나한테로 가리켰다. 영희야!~~영희는 막 자기한테 다가가는 나의 손을 잡으려고 애를 썻다. 나는 영희의 손을 꼭 잡았다. “언니야! ....나 ...먼저 제주도에 갈게요...헉...허..”영희의 눈이 점점 커지며나의 손을 꼭 잡고 놓질 않았다. ..영희야!..안돼....안된다고... 영희야!---- 아무리 부르짖었건만 영희는 대답없고 몸만 굳어졌다. 하나님---하나님 계십니까. 계시면 우리영희, 내동생영희를 좀 살려주세요.~ 영희의 심장은 멎고 몸은 굳어졌다. 얼마나 이세상에 한이 맺혓으면 눈도 감지못했을까.. 불쌍한 영희..밥한끼 따뜻하게 해먹어보지도 못하고 영희를 보낸 나자신이 속상하고 미웠다.나는 영희의 눈을 감겨주고 종이에 김영희라고 떨면서 또박또박 썻다. 그리고 목에 걸어주었다. 난 죽을 때까지 김영희란 이름을 기억할것이다. 처참하게 죽은 영희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손에서 눈을 감겨줬고 숨을 거둔 영희다 .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렷다. 2반반장이 반원6명데리고와서 굳어진 영희를 비닐로 둘둘 감았다.목을 새끼로 한번 매서 량쪽으로 길게 1메터넘게 씩내놓고 허리도, 발목도, 그렇게 해서 6명에서 들고 나가 창고에 넣었다 영희야~! 너 나쁜애야 .언니 남겨두고 왜 먼저가니.... ........................ 3일이 되자 일요일이 되엿다. 일요일마다 창고안의 시체를 달구지에 싣고 꽃동산에 묻으러간다. 나도 여기에 속해서 가게되였다. 처음가는 “꽃동산”이였다. 날씨도 쌀쌀했고 해빛도 우리를 잘 비쳐주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6명에 경비선생이 총을 메고 따라왔다. 달구지에 한가득 쌓인 시체속엔 영희도 있었다. 삽, 곡괭이 , 꽉지들을 모두 메고 떠났던 우리는 “꽃동산”이라는데 도착했다. 난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사람뼈며,머리 난 기절할번 got다. 다른애들은 다 갔다와서 괜찮은데 난 생소하였다. 선생이 빨리 땅을 파라해서 우리는 곡괭이와 꽉지로 땅을 팠다. 언땅이여서 땅파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한 5명 들어갈가...“다 팠니? 추워죽겠는데..됐어.. 이젠 묻어” 선생이 추워서 이젠 시체들을 땅에 묻어란다. 난 안된다고 더 파서 묻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부질없는 노릇이다. 할수없이 한명한명 구덩이에 넣었다. 영희의 차레였다. “미안해 영의야 이다음우리 제주도에서 만나자” 난울면서 영희를 묻었다. 영희가 이런곳에 비석도 없이 마구 묻히는게 정말 안타까웠다. 미안하다 영희야---5명들어갈 구덩이에 20명 넣다보니 시체가 땅위로 불룩이 올라왔다. 흙은 땅이얼어서 없으니까 흙덩이를 시체에 떡떡 붙혀놓았다. 다 해노으니 커다란 묘지가 되었지만 흙덩이 사이사이에는 시체들이 보였다. 형식이다. 이것이 “꽃동산”의 묘지인 것이다. 그날밤 무서웠다 영희가없는 세상 영희가 없어서 무서운게 아니라 얼마든지 살수있은 영희가 병도아닌 병 때문에 죽었다는 이점.. 영희뿐아니라 “꽃동산”에 묻힌 모든사람들의 죽음의 세상이 무서웠다. 언제 내게도 찾아올지 모르는 설사의 죽음! 영희같은 처참한 죽음! 냉이풀을 뜯어먹었다고 흙채로 삼키게한 그인간, 결국은 그냉이 풀흙이 영희를 죽이게 했다. 죄아닌 죄로 여기 교양소에 들어온건만해도 억울한데 그억울한 교양소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희!그다음주 일요일에 “꽃동산”에 내가 또 동원됏다. 또 예전처럼 한달구지나 되는 시체를 싣고 올라가보니 영희의 시체가 ,아니 그날에 묻었던 시체들이 다 뼈다귀로 변했다. “꽃동산”에 있는 개들이 올라와서 다 뜯어 먹은 것이다.어떻게 이럴수가...아--모든 교양소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다 개가 먹은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이 “꽃동산”이 무서웠고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꼭 살아서 나가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했다. 꼭 살아서 이소굴을 벗어나 이현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도 영희묻을 때처럼 묘지를 해놓고 내려오면서 저 사람들도 또 꽃동산의 개밥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몸서리 쳤다. 며칠있다가 교양소 소장이 증산 x호에가서 회의를 할테니 준비하라면서 월경자들만 운동장에 모이라고 하였다. 한명한명 이름부르며 생년월일과 출생지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갑자기 무슨일이나 해서 모두가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한 3일 됐을가 ..다 모이라면서 회의가 있단다. x호에 간단다. 모두가 줄을 지어서 거기가보니 간부들도 많이 와있었고 우리 11호뿐아니라 여러곳의 증산에있는 월경자교양소 교양생들은 다 왔다 그날의 중요한 회의라는것은 그달이 2월달인데 김정일 탄생일 2월16일 맞으며“대사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 1년채울걸 7달하고 나는 나가는 셈이된다. 순간 왈칵눈물이나왔다 요짧은 기간을 못참아서 영희는 먼저갔다. 영희가 살아서 같이 이기쁜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가..영희는아마 콩당콩당 뛰였을 것이다. 다들 좋아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드디여 나가게 되었구나 살아서 진정 이소굴을 나간단 말인가.. 믿어지지가않았고. 실감이나지 않았다. 앓으면서도 회의에 참가한 교양생들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못갔다. 기차가 바로 있었으면 괜찮지만 연착이 자주되는 북한이라 며칠동안 기차를 기다리다보니 퇴소되는 날 을 하루앞두고 죽은 사람이 몇십명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 나가게 되었다고 그렇게 눈물흘리며 기뻐하던 그들이였건만 교양소악마들은 그들의 병을 돌봐주질않았다. 이 악마같은 소굴은 동정이나 인정이 통하지 않고 공포증과 두려움,죽음뿐만이 있는곳이다. 2월23일 드디여 이 소굴을 빠져나가는 날이왔다. 7달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였던가..내가 제일 사랑했던 영희를죽인 이 소굴.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정문나서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나갔다. 다시는 다시는 들어안간다. 또다시 들어간다면 먼저 목숨을 끊고 말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검고 녹이 다 쓴 철문을 열고 나섰다. 물론 설사하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잘걸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서로 도우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도중 기차안에서 ,갈마역전에서 ,청진역전에서 걸지못한 사람들은 다죽고 몇 명밖에 살지 못했다. 죽은 사람들을 역전바닥에 눕혀놓을때도 , 교양소에서 죽은 온성언니 남동생이 누나를 마중하러 청진역전에 나와서누나소식물어서 대답해줬을 때도 북한의 독제정권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자칭하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인간 생지옥이라는것을 세상에 꼭 알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청진에 도착한 함경북도 교양생들은 도당정문앞에 다 서있었다.함경북도를 책임진 선생이 도당에 보고하고 우리에게 퇴소증을 나눈어 주었다. 도당에 보고할 때 나는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던 교양생들 모두가 놀랐다. 함경북도 2000명중 200명 밖에 살아돌아오질 못했기 때문이다. 악마들... ! 살인귀들!.. 착취자들만 모여사는 북한의 생지옥! 난 김정일 독제주의가 이렇게 무서운 소굴인걸 인제야 알았다. 내가 증산에서 안 일이지만 이인모씨가 증산교k화소를 돌아보다가 “내가 한국의 감옥에서 이렇게 생활했다면 살아서 조선에 오지 못했을 것이입니다.!” 라고 말했다.이말 한마디땜에 이인모씨가 어데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현실의 상황을 말한게 그렇게 잘못인가!? 사람을 파리목숨보다도 못여기는 참혹한세상 ,개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조선의 교양소의 현실태, 너무나도 비참한 사회이다.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잡아먹는 증산교양소 ,이무시무시한 죽음의 날들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난 김정일에게 묻고싶다. 억울하게 죽은 영희, 아니 그숱한 증산교양소 사람들을 위해서 할수있는 일이 뭐냐고 !...이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이 대신 죽을수있냐고....사람이라면 눈물흘릴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수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놓고 편안하게 대통령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가...?..역사는 기억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저주스러운 일들을!..
---------------- 난 중국을 통하여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죽은 사람들속에서 살아남은 절 받아주었습니다.처음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전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영희한테 전 말했어요.“영희야 네가 그렇게 가고싶었던 한국에 내가 왔다.이언니가 왔단다. 꼭 니가 있는 제주도에 가볼게..” -하고,,,,,,---------
증산에서 먼저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승에 가셔서 모두들 살아계실때처럼 사시지 마시고 꼭 행복한 영혼이 되시길 빌고빕니다. 여기 대한민국에서 당신들이 다 못산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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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독재정권이 무너질때까지 인민이 주인된 참다운 자유민주주의가 세워질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천국의 모모님! 힘내세요. 슬픔을 힘과 용기로 말입니다. 하이팅!!1
목숨걸고 온 한국땅이기에값지게 잘살아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