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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과김대중-5
Korea, Republic o 서시장 0 328 2009-12-04 12:09:42
남북 화해에 속지말라 à 김대중 시대(時代) 높아지는 반미친북(反美親北) Series-5

교과서 문제는 한국의 기반조차 흔들었다.
북조선에 대한 안일한 느슨한 배경에는 별도의원인도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2년이후 일본으로부터 의 경제 원조를 끌어내기 위해 대일 교과서 규탄 외교를 폈다.역사인식문제를 외교에 결부시켜 한편에서 연단을 두드려 경제 협력을 해라 기술원조를 해라 는 모양새를 취했다.

거기까지 국교정상화이후 한일외교에서 역사인식문제라고 하는 것은 한번도 나온적 없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일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오랫동안 반일국가 였다는 인식이 정착되어있스나 실은 정권의 그때그때 국민의 반일감정에 어떻게 대처 했나 하는 것은 시대에따라 상당히 다르다.

확실히 식민지배,가해.피해 라는 관계가 이씀으로 국민들 사이에는 적지않은 반일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감정을 왜교에에 결부 시킨 것은 전두환 덩권이 처음이다.결정적인 계기는 1982년 교과서 문제였다.

그때 전두환 정권은 일본에 60억$의 경제 협력을 요청하였스나 여간해서 교섭이 난항이였다.
그때 일본 Mass-com은 문부성 이 교과서검정에서 중국 침력을 진출 로 바꿔 편제했다는 보도를 했다. 그것은 최초 중국에 한해서 취급했다.

일본의 진보파 Mass-com은 당시 전두환 정권은 마치 악의 화신 처름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한국과 연대항 분위기응 아니였다. 이 보도는 근원적으로 오보였스나 최초는 중국 으로의 침략이 진출로 바꿨다는 오보 였던것이다.

그런데 Tokyo 에있는 한국 특파원들이 이것을 서울로 보내고 서울에 있는 일본 특파원들이 일본에 보내고 하는사이에 한국,중국 양쪽으로의 침략이 진출로 바뀌고 말았다. 오보 위에
오보가 겹친것이다.

다시 3.1독립운동을 폭동이라 보도한것등등 한국 역사가의 시각에서 일본 교과서 왜곡이계속 지적되어 한,중 양국은 함께 외교 Route 를 통해 일본 교과서 내용에 대해 항의를 했다.
그렇지만 그때 한국 Mass-com 과 한국정부는 일본 교과서 현물을 보지못했다.

검정통과전의 견본 이였기에 표애 나타나지 않는것이다.당시 한국 Mass-com 보도를 보면 알지만 일본 굑과서가 어떻게 바뀌어 써젔는가 라는 표가 게재되어있다.그렇지만 거기에는 출판사명이 없다.

한국 교과서는 고정적으로 국정이여서 한가지밖에는 없다. 일본에서도 1개종류 밖에 없는 교과서의 기술이 변한것같이 읽혀지는 표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Mass-com 이 대대적으로 보도한후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에 검정통과 견본본을 제공했다.

결국 검정통과된 견봅본이 한국정부에 건네진 것은 문제발생후였다. 나는 그때 재 서울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을 담당하고있서 현장에 있서씀으로 이때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내가 아는 한국의 역사학자 선생이 한국굴지의 신문으로부터 코멘트 를 요철이있서 그러면 현물을 보여달라고 기자에게 말했다면 없다고 했다.

현물이 없고 무엇 때문에 코멘트 할수있겠는가 거절했슬 가능성이 있섰슬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속으로는 일본교과서가 괘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듯, 일본 Mass-com 이 시끄럽게 하고 이스니까 이것은이용한다.

이를 이용하여 60억$ 의 경제협력문제로 일본에 압력을 가한다는 노선을 선택한것으로 판단한다.전두환 정권과아사히 신문의 공투(共鬪)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금전까지 전두환은
군사독재 로서 괘씸하다 했스나 “한국도 비난” 이라고하는 Phrase로 아사히 신문은 서내려간다.

그후 재일한국인 지문 채취문제, 일왕 사죄 의문맥문제, 그리고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까지 계속되고있다.이결과 한국내에서 일본군이 정말 부녀자 를 강제연행 했다. 길 걸어가는 10대의 젊은 처녀를 군인이 끌고가서 강간 했다는 Image 가 정착 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헌 친일파가 세운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그런 일을저질은 일본국에정중한 사죄와 배상을 받지 않은채 체결된 한일조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북조선과 그 손끝들이 “한국은 친일파 가 세웠다”태여나서 안될 나라다.

라는 악선전을 하고있던 같은 시기에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이 일본 역사안식이 이상하다는 것을 외교 수단으로하여 일본을 규탄 했다.그것은 아사히 신문 등 대다수의 일본
Mass-com 들이 보도한 것을 그대로 인용 했다.

던두환 이나 노태우는 실제 알고 있섰다.그들은 일제통치시대를 살고있섰기 때문에 그런일은 없섰다는 것은 알고있섰다.또한 월남전에서 싸우고 있슬 때 월남 여인 들과의 사이에 태여난 2세에관항 실정도 군인으로서 실감과 그들은 잘알고 있다.

그러나 이용할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용했다.여기에 대해서 일본이 사죄했스니 이용할수 있섰다. 그결과 한국 TV에서는”실록 드라마”라하여 평화로운 마을에 일본 군인이
나타나 10대의 처녀들을 끌고가는 광경을 촬영하여 방영했다.

젊은 세대는 사실을 모으니 TV 에서 그런 드라마 를제작하여”피해자” 가 나와 증언하며
일본 신문,TV 가 일본은 필히사죄 해야한다 주장해,그위에 일본 총리대신 이 사죄했다로 되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버린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식민지배에 협력한 친일파 를 엄중 처벌 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주체사상파 의 논리가 힘을 얻어 가고있섰다.주체사상파들은 위안부 문제등을 테-마 로 열심히 운동을 전개 했다.

남,북에서 이 때문에 국제회의를 개최하면 북조선은 판문점 을 통해서 그러한 사람들의 입국을 허용하며 선동했다. 또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한 김대중 의부인이 북조선 여성단체와 위안부문제 라던가 전쟁 희생자들에게 일본측의 보상문제에대해서 의견 교환 했슬것도
예상된다.

주(註)
본란에서는 일본 필자의 일방적 견해로 우리와 감정적으로 상충 되는 면이 있스나 전체
기사를 써나가는데 불가피한 팔요악적인것까지 게재하게 된 것을 독자 여러분의 혜량이 있스시기 바랍니다.주(註)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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