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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탈북소년의 진술(퍼 온 글)1
Korea, Republic o 수전노 0 514 2010-01-15 11:19:19
탈북소년의 정치범수용소 증언

남조선 분들에게 드립니다북조선에서 도망쳐서 여기 지금 중국에서 이 글을 씁니다의 고향은 평양입니다.
아버지는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정치학부 선생이였고어머니는 김형직 사범대학에서 외국어학부 선생이였습니다,
누나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기악을 배우는 학생이였습니다,
저의 가족은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살았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인차 아버지, 어머니. 누나와 함께 정치범관리소에 가게되였습니다. 평양에 살 때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런데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술에 취해 로동당에 어긋나는 정치적발언을 하여 반당, 반혁명분자로 되여 우리집 식구들은 함경북도 명천군인가하는곳에 정치범 관리소에 잡혀가게 되였습니다,
밤에 자는데 갑자기 문을 쾅쾅 두드리며 사람들이 밖에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가 나가서 문을 열었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4명이 시꺼먼 안경을;끼고 있었는데, 아버지 가슴을 쎄게 때리더니 량쪽에서 팔을 비틀어 뒤로 하여 족쇄를 채우고 두 사람은 아버지를 끌고 나가고 두 사람은 우리 집을 수색하엿습니다.
집안이 전부 마사지고 부억에 내려가 사발까지 다 깨버리더니 어머니와 누나.나를 방바닥에 앉으라고 하더니 아버지가 집에서 반혁명적 소리들을 하지 않았는가, 나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는가. 록음기로 라지오를;듣지 않았는가, 하면서 여러가지를 자꾸 물어보앗습니다
아버지 당증을 찾아서 그것은 자기네들이 건사한다고 하면서 주머니에 넣었고 아버지가 전국 지식인대회에서 와 사로청 대회,그리고 군대 때 대회에 참가하여 찍은 기념사진 4개를 몽땅 벗겨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자기비판을 할 준비를 잘 하고 있으라고 하더니 밖에 나오지 못하게 밖으로 열쇠를 채우고 가는 것이엿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건강하지 못한데 그때 사람들이 나가자 마자 기절하면서 쓰러졋습니다.
누나와 나는 울면서 어머니를 흔들엇지만 새벽에 날이 밝아서야 어머니는 깨나더니 누나와 나를 안고 계속 울엇습니다
아침에 9시 되여서 까마즈차가 오더니 (러시아제 화물트럭) 우리집 물건을 다 실어가고 어머니와 누나, 나는 갱생에 (68년 북한산 찦차) 타라고 하더니평양시 보위부에 싣고 가 거기서 2일밤 감방 안에 있으면서 나는 그냥 있고 어머니와 누나가 계속 불리워 나가 조사를 받앗습니다
손도장이랑 여러 번 찍더니 3일 되는 아침에 랭동차에 타라고 (북한에서 자체로 철판으로 차 적재함에 철집 만들어 쒸운차인데 호송이나 포약 , 탄약, 등 중요물건 나를 때 이런 차를 쓴다)하엿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니 아무 것도 없고 군대 4명이 총을 메고 앉아있다가 우리를끌어올려 놓앗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 뿐아니라 젊은 남자 3명,녀자 2명도 함께 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손과 발에 족쇄를 다 채우고 우리 가족은 그냥 갔습니다
쉬지않고 계속 가다가 모를 곳에서 밖에 나가 변소 보라고 (소변)하면서 우리 가족은 차에서 내리게하여 길 옆에서 변소를보고 족쇄에 묶이운 사람들은 차에 물 넣을때 쓰는 바게쯔를 올려보내 거기다 오줌을 누게 하엿습니다.
우리 식구를 타라고 하더니 문은 하나만 닫고 하나는 열어놓고 군대 4명과 운전수(운전기사),별을 단 사람2명이 밥싸온 걸 펼쳐 놓고 밥을 먹으면서 하면서 쌍욕을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더니 별을 단 사람 한 명이 나를 보고 하더니 하면서
밀빵 두 개와 절군 오이반찬 한 젖가락 크게 집어서 내 손바닥에 주면서 다 먹은 다음 올라가라고 햇습니다,
저는 오이만 씹어먹고 빵은 먹는 것처럼 하면서 춤(침)을 발라 꽉 쥐여 쪼꼬마게 덩어리 두 개를 만들어 쥐고 인사하고 차에 올라가자마자 한 덩어리는 엄마 입에 넣고 다른 한 덩어리는 누니 입에 쑤셔 넣엇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손을 꽉 잡고 빵덩이를 입에 문채 나를 보면서 눈물 흘렷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벽 2시쯤 해서 관리소에 도착햇는데 정문 앞에 사람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잇엇습니다,(이 아이가 들어간 수용소는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16호 관리소인데 원래는중요 범죄자들만 취급하던 곳이다. 당 반혁명분자,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들로써 관모봉 기슭에 잇던 정치범 관리소를 없애게 되면서 거기에 있던 김창봉,허봉학등도 여기에 잇다가 화성 관리소로 왓다고 한다
관모봉 관리소를 없애게 된 근원은 6군단을 해산하면서 9군단 사령부를 관모봉 기슭에 건설하면서 그 안의 정치범 관리소를 없애게 되엿다.
또한 온성군 종성구의 정치범 수용소도 그 안에 인민군 담배농장을 건설하면서 인원을 각 정치범 관리소들에 분활 배치햇는데 여기 인원중에서 엄중 범죄자들이 화성 관리소로 가게 되엿다
6군단 사건 마무리하면서 체포된 사건 관게자들도 모두 화성으로 옮겨졋는데당시 그 인원들을 실어나른 사람이 본인과 혈연관계이다
이때부터 화성의 정치범 관리소는 부피가 커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엿다
꿱꿱 소래기 치며 우리를 보고 머리를 들지말고 손을 올려 머리 뒤에 붙이라하면서 초대소에 들어가더니 족쇄에 묶이운 사람들은 그냥 그 길로 차에 싣고 들어가고 우리 가족은 방바닥에 무릅 끓고 앉으라고 하더니 이것 저것 물어보며 책에다 쓰는 것이였습니다
사람 4명이오더니 어머니와 누나를 먼저 데려 내가고 우리를 데려온 사람들에게 이젠 다 됏다 돌아가도 된다고하자 그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말하면서 나갓습니다
사무실 바닥에 혼자 앉아잇는데 어떤 보안원이 오더니 나를 데리고 가더니 감방에 가두엇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입고온 옷들을 다 벗기고 거기서 죄수복을 주엇는데 너무 커서 마대처럼 너덜거리고 너무 낡아서 다 구멍이 뚫리고 때가 너무 껴서 옷처럼 보이지 않앗습니다
그 안에는 20살부터 10살까지 남자 아이들만 30명 잇엇는데 그런 반이 6개엿습니다. 나는 4반이엿습니다.
내가 잇는데는 3구역이라고 햇습니다
새벽에 반장이 기상 하고 소리쳐서 다 깨여나 밖에 나가 줄을 섯습니다.
그때 밖을 보니 량옆이 다 벼랑인데 벼랑에다 동굴을 파고 거기에 기관총을 걸고 군대들이 보초를 섯습니다
내가 거기 잇을 때 벼랑초소를 세여보니 12개가 3구역을 지키고 잇엇습니다
그 날부터 가구 만드는 조에서 목수 일을 배워주기 시작햇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 갈라져서 아버지는 1구역, 어머니와 누나는 2구역에 갓는데,1구역 아버지 방은 손과 발에 족쇄를 차고 잇어야하는 엄중한 죄수 구역이고 2구역은 허리 굽히고 들어가는 콩크리트 창고인데 계단으로 해서 땅 속으로 내려가면서 방들이 잇엇습니다천정은 살창을 치고 그 우에 보초병이 총을메고 보초를 섭니다
2구역은 강제로동을 시키는 곳인데 남자들은 벌목과 제재일을 하고 (통나무를 판자로 만드느곳) 녀자들은 농사일을 하엿습니다, 3구역은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1.2구역의 가족들이엿는데 죄수들을 치료하는 진료소도 잇엇습니다
밥은 하루 두 끼 주엇는데 한 끼는 감자1개와 소금 몇 알을주고 다른 한 끼는 통강냉이 삶은 것을 한 줌 주거나 벼겨,강냉이겨를 가루내여 범벅을 만들어서 한 덩지씩 주기도 햇고 통밀을 삶은 것을 한줌 주기도 햇습니다.
나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반장이 자꾸만 절반씩 빼앗아 갓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안되엿습니다,
감옥 주변에는 풀도 제대로 나지못하게 약을쳐서 배가 고파도 풀 뜿을 데가 없엇습니다,
어쩌다가 빽빽이 풀과 고마리 풀,도꼬마리 풀과 강태나무 풀을보면 선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뿌리까지 다 뽑아서 먹고 나머지는 씹어서 덩지 만들어 숨겻다가 밤에 잘 때 몰래 먹엇습니다.
3구역 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산에서 도토리를 잘 줏거나 송이버섯을 잘 따는사람들은 그래도 산에서 일하면서 칡뿌리, 머루, 다래,돌배도 먹는데 우리처럼 평양에서 살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니 관리소 안에서 시키는 일만 햇습니다
작년에 관리소에 들어왓을 때 몇 달 동안은 우리 가족이 모두 검토 기간여서남들보다 고생을 숱해 햇습니다,
일주일에 2번 아니면 3번씩 아버지와 우리가족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여러가지를 물어보앗으며 감시원 선생들이아버지가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하면서 우리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각자 몽둥이로 버지를 때리엿으며 메고잇는 총에서 소제대를 뽑아서 때렷습니다
또 어떤 때는 전동기(모타)에 끼우는 피대를 잘라서 만든 채찍으로 때렷습니다
아버지가 맞아댈 때마다 어머니는 기절하엿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하면 선생들은 물 한 바게쯔를 떠다가 나에게 주면서 엄마에게 부으라고 하기에 나는 무서워서 떨면서 엄마의 몸에 물을 부엇습니다,
아버지가 그 때마다 소리치면 선생들은 면서 량옆에서 달려들어 아버지의 관절 사이에 각자 나무를 끼우고 무릅을 밟아대엿습니다,
어떨 때는 아버지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하면서 때렷습니다,
너무 맞아대여 아버지는 이발이 남은 것이 없고 입이 터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엿습니다,
머리를 다 깍아놧는데 머리가 너무 맞아대여 성성한 데가 없엇습니다.
온몸이 상처가 가뜩햇고 제대로 걷지 못하니까 선생들이 량옆에서 끌고 다녓습니다.
선생들도 때리고 조사 나온 양복 차림의 사람들도 때렷습니다,
자꾸만 대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서 선생들에게 대들고 그러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 거의 죽게 때렸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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