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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탈북일기
Korea, Republic o 학사대 5 2183 2011-02-09 09:17:53

31명의 생명때문에 이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2만여명의 탈북자가 지구의 반을 돌고돌아 몇년의 험난한 고생 끝에 이루어낸 한국행에 비하면 나의 탈북은 단 24시간만에 시작해서 끝마친 활극이였다.

허나 십여년을 준비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열번도 넘게 탐사했으며 동지들과 함께 중국도 원정도강을 여러번 하였다.

하여 내린 결론은 보트피플로 휴전선을 넘는 것이라 단정지었다.
그때는 노무현정부시절이였다. 해상탈북 또는 표류자들이 귀순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북송 되던 시절이였다.


남북의 해군을 모두 기만하고 인천시 덕적면에 상륙하여 마을 이장을 찾았다.
이장은 나이 많은 노인이였다.

초급적공조원 시절에 남조선 국군이 남쪽주민들을 부르는 말이 생각나서 물었다.

"어르신(북에서는 어르신을 안쓴다) 여기가 어딥니까?"
"덕적면인데 댁들은 어디서 온거유?"

북한엔 면이 없다. 댁들이라는 말도 잘 안쓴다.

조선이라 해야할지 북한이라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북쪽에서 왔다고 답했다.

"아니, 백령도말이요?"
"아니요. 그 웃쪽이요."
"그럼 북한말이요?"
"예. 북한에서 왔습니다. 경찰을 불러주시오."

이장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있는데 경찰이 왔다. 로인들이 자기들이 먼저 만나야 한다고 욱박지르니까 경찰은 한쪽에 가서 말붙일 생각을 못한다.

나는 단번에 한국사회의 민주 자유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앞에서 북한사정을 얘기해주고 언론에 흘려줄 것을 부탁했다.

언론에 나가면 북송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타산했다. 우리의 최대걱정은 북송이였다.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자살용 칼은 간수할 것을 마지막 아버지이자 탈북 브로커의 명령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하달하고 득달같이 달려온 산만한 한국해경배에 올랐다.

큰 소동이 일어났다. 경비가 뻥 뚫리다 하고 인터넷에 났던 것이다.
우릴 보고 닥달질이다. 암만 닥달질해도 아내와 아이들은 전부 몽골사공들이다.

눈치보니 딱 알린다. 내입에 따라 누구의 목이 잘리는가이다.
출발지에서부터 덕적도까지 항해 해도작업을 하란다. 나를 위해 이 땅에 와서 나로 인해 누구의 목이 잘려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하는생각이 갈마들었다.

우리는 GPS 같은 게 없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이미 전에 예견하고 덕적도 도착 즉시 항해일지를 불태워 버리였다. 갈지자로 갈팡질팡하며 갓난신고하여 여기까지 왔노라고 종잡을 수 없는 해도를 그려주었다.

여러번을 반복하며 똑같은 말은 한번도 없다.
"참 이렇게 한심한 선장도 있는가 하며 어처구니 없어한다."

여러명의 해군 함장들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나도 그들 못지않은 1등 항해사이다.
북한의 선장들은 장비 없이도 바다에서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국정원으로 인도되였다. 3일동안 누구도 우리에게 귀순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북송만 하면 자살할 판이였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미 북한에서 단도조법을 교습시켰었다. 첫날 목욕하러 들어갈때 숨긴 단도가 아직  있었다.

옷 벗을때 나는 겨드랑 짬에, 아들은 신발 밑에 감추어 통과할 수 있었다.
국정원도 별거 아니였다.


그들의 3일간의 인상을 보구는 잘못 왔구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만일 지금의 30명중에 귀순의사를 밝혔다가 북송되는 날엔 온가족이 처참한 죽음을 만들어야 하는데 누구도 밝히기 어렵다.

남쪽사람들은 남한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이다. 충분히 자유로운 면담을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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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행복 백심 관리자 초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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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복 ip1 2011-02-09 09:44:28
    공감하네요.
    김부자에게는 깍듯하면서 북한백성에게는 거지노예취급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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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ip2 2011-02-09 12:51:29
    참말로 온 가족의 목숨을 걸고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남한의 사정을 밝게 알고 계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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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발자 ip3 2011-02-09 13:07:49
    학사대님 본인이 알기로는 2000년대 이 후로 북한어선이 우리 해상(서해상. 동해상)으로 넘어온 사례는 11차례쯤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 중 5차례는 바다길을 잃어 잘못 넘어온 어선으로 밝혀져 북으로 돌려보냈고 6차례는 탈북한 사례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귀순사례는 2005년도 홍씨일가 그리고 2009년도 두가족 11명 탈북 사례입니다. 당시 수사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그 중 한국으로 망명의사를 분명히 밝힌 사람은 9명이고 나머지 2명은 남쪽으로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배에 탑승했다"라고 당시 언론들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위 사실중 두가족의 11명 중 2명은 귀순의사가 없었다고 당시 위와 같은 보도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사실관계의 진위가 궁금합니다. 혹시 학사대님께서 위 사실에 대하여 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인도 위관장교 출신으로 본인이 군생활할 당시에는 위 님께서 제기한 부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수긍은 합니다 관할 지휘관이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탈북의사를 밝힐 기회도 주지않고 섣둘러 북으로 송환해버리는 사례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위와 같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남북관계의 미치는 영향 또는 당국자가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북한동포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러한 행태를 자행한다면 자유민주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국민으로부터 비판받아 마땅하면 지탄받을 일입니다.

    님께서 제기한 바와 같이 수사당국의 형태가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언론내지 여러 경로를 통하여 그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진위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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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세훈동지 ip4 2011-02-09 16:08:04

    - 원세훈동지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2-10 12: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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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ip5 2011-02-09 16:29:31
    귀순의사를 4일째엔 물어봤나보네요. 단도조법을 쓰실일이 없게된게 보는 저도 마음이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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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대님 ip6 2011-02-09 18:23:13
    의 글에 공감합니다.
    지당한견해 입니다.
    님의 주장대로 그들과의 탈북자면담을 조성해 준다면
    적극동참 하고 싶습니다.
    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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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ip7 2011-02-09 20:09:24
    역시 학사대님의 글은 재미가 있습니다. 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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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대 ip8 2011-02-09 20:26:54
    고발자님이 문의하신데대한 답은 제가 알고잇질 못하내요 다만 제가 북한에서 본 해상탈북 또는 표류 북송자들은 전부 탈북방지의 생생증언자로서 일년간을 보위부로 출근하며 강연을 하고 다니다는것을 목격한것 뿐입니다

    나는 이에대하여 한국국정원에 와서 분명히 문제가 잇음을 밝히엿습니다

    허나 그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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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ip2 2011-02-09 20:31:32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뭐 맨날 그렇지요. 하나마나. 책임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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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원 ip4 2011-02-09 22:35:49
    문제는 국정원 수장에 가정원 가장을 앉힌 놈현이 문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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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 ip9 2011-02-09 23:31:57
    옷 새 걸로 갈아 입히지 않던가요??
    3일 동안 칼도 발견 못하고 이탈 경위도 안 물어봤다면..할 말이 없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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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나라 ip10 2011-02-12 04:06:59
    노태우 때까진 안기부 제대로 작동됐는데, 영삼이 때부터 돼중, 특히 놈년을 거치면서 완전 핫바지가 돼 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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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콜렛 ip11 2011-02-14 21:06:23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습니다... 그래도 온가족 같이 탈북이라니!!
    다행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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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전일송 ip12 2011-02-16 17:17:51
    처음 며칠 아무것도 안 물은것은 탈북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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