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미싱사로 일했던 탈북이주민 이순영(가명.50.여)씨는 눈치와 순발력이 있다고 자부해온 여성이었다.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을 때만 해도 "북한에서 대학을 나와도 한국에 오면 다시 공부해야 하지만 재봉하는 사람은 박으라면 박으면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 2년간 직장을 스무 번도 넘게 옮겼지만 정착할 직장을 잡지 못했다.
하나원에서 나와 처음 일했던 재봉공장에서 들었던 첫마디는 "북한 사람이라 이런 기계도 못 써본 모양이네"라는 무시하는 말이었다.
<IFRAME height=200 marginHeight=0 src="/Articles/Components/ad/cr_banner.html" frameBorder=0 width=200 marginWidth=0 scrolling=no align=right topmargin="0" leftmargin="0"></IFRAME>가슴에서 피가 끓었다. 마음속으로 "너희는 운 좋아서 남한에서 태어나고 나는 운 나빠서 북한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느냐"며 눈물을 삼켰다.
동료의 무시에 마음이 상할대로 상하면 또 다른 공장을 찾아 취직했다.
그러나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다른 문제가 그를 기다렸다.
공장 사정이 나빠지면 북한 출신인 자신에게만 월급을 주지 않는 차별을 당했다.
12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두 딸을 데리고 생활해야 하는 이씨는 기다릴 시간도 없이 다른 공장으로 옮겨야 했다.
남들처럼 시위라도 해서 체납임금을 받아 나오고 싶었지만,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계좌로 입금해달라는 요구를 끝으로 조용히 떠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경력이 쌓여 월급을 올려준다는 공장도 많았지만 일 시작한 지 하루만 지나면 월급을 10만원, 20만원 깎자고 요구했고, 동료와는 월급이 40만원이나 차이가 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주변에서 미싱공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조언해 때밀이 기술을 가르친다는 학원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육 첫날부터 "마사지를 먼저 배워야 한다"며 침대에 누운 남자의 허벅지를 문지르게 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고 깨달았지만 교육비 70만원은 환급해주지 않아 모두 날렸다.
지난 2년간 어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면서도 일을 계속 해 왔다는 이씨는 "기술이 있고 자신도 있던 나도 이렇게 직장 생활하기가 어려운데 다른 탈북여성들은 어떻겠냐"며 "화를 내도 소용이 없고 내가 사장이라면 더 지독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속이 좀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다른 탈북여성 김이숙(가명.35)씨는 "일을 하며 나를 속여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탈북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익히 알고 있었던 김씨는 차별을 피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숙박업소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북한이 아닌 중국 길림에서 왔다고 신분을 감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출신이 아닌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때마다 더욱 열심히 일해서 버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루는 형사가 찾아와 "조선족이라고 하는데 아닌 것 같다는 신고를 받았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다행히 형사가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나온 탈북자라고 신원을 보증해줬지만, 탈북자에 대한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고 직장 생활은 더욱 위축돼 갔다.
김씨는 "남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어서 취직하기 전에 억양교정 강의도 들었는데 잘 안됐다"며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다르게 대할 것 같아 점점 벽을 쌓고 살게 된다"고 처지를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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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시장에서 순대국을 먹은 일이 있었다.
한 50-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몸만 부산하고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아주 조심조심... 그러면서 말은 많이 하는것으로 보인다.
말투를 들어보니 조선족 아주머니는 안닌것 같다.. 그래서 내옆에 왔을때
조용하게 아주머니 말투가 저의 어머니와 비슷하십니다.. 북에서 오셨죠..
나는 참 반가운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 아이구 아니야.. 하면서 대뜸 멀리 가버린다"
왠지 처세술이 부족해 보인다.
내생각엔.. 적극적으로..이렇게 하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든다..
"그래 북에서 왔어.. 어머니 고향은 어디야.." 그러면서 대화를 해보며..
배워 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탈북자들이면 어때서, 그러는지 참 이상하네요. 옛날에 간첩이 나쁘다고 오랜 세월 교육을 받아서 그 영향의 잔상이 뇌리에 남아 있어서일까요?
2년간 직장을 20번이나 옮겼다면 분명히 본인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남쪽출신 분들도 직장에 처음 입사해서 적응 못하고 투덜거리면 차별을 받고 쫒겨날수
있는데, 꼭 탈북자라서 그런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스스로 그런 차별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면 이 사회에서 영원히 패배자로 남을 겁니다
그리고 북에서 왔다는게 무슨 죄가 됩니까. 스스로 의기소침해 당당히 나서질 못하고
투덜거리면 어느 누가 챙겨주겠어요, 모든 것은 스스로 정면돌파로 뚫으셔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수 있어요.
직장을 많이 옮기는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 없습니다, 스스로 반성좀 하셔야 됩니다
처음에 고생 많이 하셨다고 그러셨습니다. 이남사람들이 이북데기들이라고 비하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이북사람들이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평이 나서 차별은 없어지셨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북 사투리를 쓰셨습니다. 제 주위에는 아직도 평안도 사투리를 쓰시는 친척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언제나 부모님이 이북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북사람이라고 생각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에게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내려오시는 탈북자분들에게는 제 친척들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과장과 방어적 태도가 그 바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가 사람들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민족인데 이상한 국민성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 탈북자들은 남한으로 내려오면 놀면서 다 먹여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조선시대에도 현재도 놀고 잘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외국에도 놀면서 잘사는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인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삽니다.
탈북자들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난 아니야. 난 몰라. 내 잘못은 절대로 없어"라는 태도가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건 북한이나 독재체제에서나 있는 국민성입니다.
남한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이 동족이고 보듬어야 된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한 사람들 스스로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을 안해주니까요.탈북자에게만 그런다는 것은 좀 지나친 생각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북한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솔직히 전쟁중에 남에서 올라간 사람들이나 전쟁 국군포로들에게 이북은 관대하게 대했나요? 남한보다 훨씬 더 심하게 대한 것으로 아는데.....
문제는 우리는 서로를 극복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과 이해가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지금의 태도로는 세계어느나라에 가도 탈북자들이 성공 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