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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제제를 받는 곳이 북한이다.
푸른 바다 3 682 2006-04-10 05:24:34
나의 사랑

어제 북한여성을 사랑하는 어떤 맘씨 착하고 순수하신 분과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결혼은 할수없다는 그분의 말에 많은 분들이 불쾌감을 표현하셨고 오직 나만이 그분의 생각을 이해하고 같은 생각의 일치를 보았다할까...
대부분 나이드신 북한분들이 사랑하면 책임지고 끝까지 가야하는 그어떤 이유가 필요없는 그런 순수하고 의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있다.
나 또한 그랬었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북한에 있는 애인이 생각나 한쪽가슴이 아파왔다.
개봉을 앞두고있는 차승원 주연의포스터를 보다가 나도몰래 눈물이 고여와 자기자신을 주제할수가 없었다.
나를원망하며 미워할그녀를 생각하니 미안한마음이 앞서고 한편으로는 그와 나의 인생을 위해 하늘이 선택해준 이별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결코 같이 섞일수가 없는 계층의 두남녀인 우리였기에 차라리 나의 탈북으로 이어진 이별이 그녀나 나의 앞날을위해 서로가 행복해질수있는 최상의 선택이 아니였을까...
그녀를 처음만났던 평양의 김일성광장이 지금도 눈에 밟혀온다.
김일성의 생일이였던 그날의 야회!!
춤을 출줄몰라 서성이던 내앞에 친구들이 당황한 표정의 한 처녀를 데려왔다.

이런 나자체도 황당한 말을 남기고 눈을 끔벅한후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친구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며 내가 그녀에게 했던 첫말이 라는 말이였다.
부끄럼잘타는 북한 처녀들이라 하지만 얼굴이 빨개져 대꾸도 못하던 그녀의 모습을 죽어도 잊을것같지 못하다.
결국 그날 나는 그녀에게 춤을 배웠고 그녀의 직업과 나이 등을 알아냈다.
물론 그때당시 그녀를 맘에 두고있었던것은 아니였다.
그후 웬지 그녀가 자꾸 보고싶어졌고 만나고싶어졌으나 그녀를 찿아갈 용기가 나지않아 벙어리 냉가슴앓듯 끙끙거리기만 하였다.
몇달이지난 어느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는 횡재를 하게 되였다.
결국 그계기로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였으며 그후 그녀와의 잊지못할 추억을만들어 냈다.
평양시만경대구역의 컴퓨터센터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매일 10시가 지난 저녁에 퇴근하곤하였다.
아직 사랑한단말도 하지못한 그때 나는 거의 스토커수준으로 그녀를 좋아했다.
여기서는 10시면 늦은 저녁에 속할수도 없지만 북한은 10시가 지나면 사람들의 인적이 뜸해지고
더구나 여자들은 상당히 두려워하는 시간떄였다.
100m 정도 뒤떨어진거리에서 나는 그녀의 퇴근길을 말없이 뒤따랐고 그녀도 모르는듯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기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퇴근길을 함께 했고 결국 그녀의 을 받는 영광을 기어코 지니게 되였다.
밤길을 말없이 걷고 있는데 그녀가 문득 돌아서서 말을 던졌다.

헉! 순간 이제 뭐라고 해야하나 왜자꾸 쫓아다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하나 하는 위구심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자신없이 그녀에게 다가서는나에게 그녀가 던진 두번째말이
순간 육감적으로오는 행복한느낌!!
그렇게 그녀와의 첫시작은 시작되였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되였다.
매일 그녀와걷는 밤거리가 그렇게 정겹고 멋있게 보일줄은 몰랐었다.
주말마다 그녀와 영화관에서 보던영화가 그렇게 재미있었고 대동강 유보도를 거닐며 서로 먹여주던 아이스크림 맛이 그렇게 좋을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나만 변하지않으면 영원히 변하지않는다던 그녀의 말이 그토록 달콤하고 가슴에 와닿을줄 참으로 몰랐었다.
내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그나날들이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결코 그녀와 나와의 앞날은 낭만적인것이 못되였다.
당간부였던 아버지와 인민군 장교였던 오빠 가 있는 그의 가정에 나라는 인간이 들어설 자리는 있을수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였다.
숙청대상이였던 나의환경과 그런나를 숙청하는 그녀의 환경이 우리사이에 어두운그림자를 비추고있었다.
사랑하면 책임져야하고 주위의 환경에 개의치말고 끝까지 함께해야한다는 나의 사랑관을 바꾼계기도 이떄였었다.
그녀와 사귄지 1년이 될무렵 나는 이런 생각에 고민하게 됬었고 결국 나를 합리화시키는방법을 찿아냈다.
그래 사랑한다고 다결혼할수는없지.. 사랑하니까 보내주는거지..
가는데 까지 가자!
이런 생각으로 나를 합리화했으며 그길만이 그녀와의 하루하루를 연장시킬수있는 유일한 방법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사이를 눈치챈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찿아왔다.
젊은혈기의 사랑은 이해할수있으나 나를 가족의 일부로 받아들일수는없다는것이였다.
그말은 참으로 냉혹한것이였고 나를 크게 무너뜨린 계기로 되였다.
또 그말의 무서운진실을 받아들여야 할때 그녀를위한길이 그길이라는것을 인정할때 나의 가슴은
무너져내리고야 말았다.
몇칠동안 술로 살았다.
친구들이 한숨을 쉬며 위로해줄때 황소울음을 터뜨리며 슬피울었다.
아마 그렇게 운것이 지금껏 처음이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내가 한스러웠다.
여기 남한처럼이라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어딘가 도망치기라도 하련만 북한은 그어디도 나를받아줄수 있는곳이 없었으며 새로운시작이란 꿈에불과했다.
그후 그녀와 나의 운명은 나의 탈북이라는 계기로 이별을 맞았다.
두만강을 넘을때 문득 이런생각을했다.
그녀와 친구들과 가족과 이강을 넘었으면 외국여행처럼 즐거웠을 기분이 들었을것 같은 생각이였다.
나는 떠날때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할수없었다.
단지 친척집에 다녀온다는 말로 간단히 인사말을 하고 돌아섰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웃으며 바래는 그녀의 얼굴을 뒤로하고 걸어올때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도 친구들과는 마음껏울면서 이별할수있었으나 그녀와의 이별은 모든걸 감추고 숨겨야했던 이유때문에 더구나힘들었다.
청진에 와서 그녀에게 잠깐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끊기전 겨우 했던 소리가 라는 말이였다.
기다려서도 안되고 갈수도 없는 그런처지에서 내가 왜이런말밖에 할수없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나는 사랑했기때문에 보내준다는 그말을 믿으며 또 옳다고 생각한다.
사랑할수밖에 없었던 그녀였지만 사랑했기때문에 보내줄수밖에 없던 이유...
나는 그녀의 부모님이나 환경을 원망하지않는다.
또 나의 환경과 이별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오직 순수했던 사랑마저 그렇게 생이별을 시키는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그세상이 한스러울뿐이다.
북한에 남겨두고온것은 사랑했던 애인과 가족 친구들과 원망뿐이다.
여기온후 동기들과 여러사라믈이 이렇게 묻군한다.
왜 여자친구하나 사귈생각없이 외롭게지내냐?..
죽을고생하며 중국에서 한국에 도착하여 정착교육을 받는도안 우리탈북자들은 만시름잊고
사랑도 하고 좋은만남도 갗는다.
그러나 나는 사랑도 좋은만남도 가질수가 없었다.
그녀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와 그누구도 나와 가까이할수있는 틈을 내주지않았다.
교육기간이 끝난후 친구가 해주는말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다.
거만하고 탈북자이면서 탈북여성들을 여성으로 보지않는 유별난 인간이였다고 말들 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그렇지않은데...
지금도 나는 그녀생각에 잠못이룰때가 많고 딴생각을 할수가없다.
그런생각이 그녀에게 죄짓는일처럼 생각되고 자꾸 만날수있고 다시 사랑할수있다는 허망한생각이
현실처럼 밟혀오기 때문이다.
나는 통일을 너무도 원한다.
통일은 둘째치고라도 서로 자유롭게 래왕할수있는 그런 날이 너무도 목마르게 기다려진다.
그래서 내나름대로의 통일에 대한생각과 많은 남한분들이나 탈북자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통일의 문제점에 제동을 거는 그런사람들과 목처을 돋구며 욕을먹어가며 싸우고있다.
이런 발광적인 행동마저 안하면 내가 그녀를 죽을때까지 볼수없을것같은 생각이 들기때문이다.
그런세상을 만들어놓고 또 남한마저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김정일이 살아있는한 결코 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않을것이기 때문이다.
.....
많은분들에게 자기 감정에 빠져 쓴 어이없는글을 보여드리게 되여죄송합니다.
많은 이해부탁드리고여 딱딱하고 정치화된 논쟁보다 이런 실생활이나 자신이겪은 현실로 서로를 이해하는게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탈북자들의 목적은 오직 진실된 북한의 모습을 알려주고 또 모든분들이 그런 악의 체제를 만들어놓은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그추종세력들에대한 분노를 느껴달라는것입니다.
다시는 그렇게 살수없는 우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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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은총 2006-04-10 06:33:08
    푸른바다님의 진솔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함께 마음 한구석에 젖어드는 그리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이 게시판에 실렸던 글들을 볼때마다 이분은 연세도 지극하고 비교적 생각하는바가 무게가 있고나하는 인상이였는데 글 내용을 보니 젊은분이군요. 더욱 반갑고 이야기중에 사랑하기때문에 결혼할수없었다는 생각도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오늘날의 이 현실에서 어쩔수없이 단념하고 그리움과 추억들만 밀려오는 시간을 보다 유익하게 만들고 장차 더욱 보람있는 일로 걸어가시는 푸른바다님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길 기원합니다. 우리 통일의 성업이 이루어질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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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답해 2006-04-10 08:32:05
    푸른바다님 글 잘 보았습니다...어제 저와 얘기할때 님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그냥 별거 아니었다고 얘기 안하시더만......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군요...
    그리고 어제 같이 얘기해준것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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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2006-04-10 08:55:33
    몇일동안 마실 술이 북한에 과연 있을가?
    나의 할아버지는 그토록 술을 좋아하셨건만...
    한번도 원없이 마셔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조금은 진실성이 결여된 듯...

    북한의 현실은 조그마한 포장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상상 이외의 곳이기에 사실을 얘기하는데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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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섭 2006-04-10 09:44:04
    푸른바다님의 이야기는 정말 마음이 아픈 러브스토리이군요. 그래서인지 더더욱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군요. 푸른 바다님! 그래서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에 묻고 있기에 쓰는 글마다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북한에 있는 그 아가씨도 우리 푸른바다님을 그리워 할 거예요. 푸른 바다님의 마음이 그리 아름다우니 북한의 아가씨가 그런 마음의 사랑을 그리워하는건 충분히 상상히 가는군요.

    남한에서 그렇게 북한처녀처럼 수줍음타는 아가씨를 만나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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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핵 2006-04-10 10:47:25
    흠...님 내가 알기론 북한에서 잘 사는 분은 엄청 잘 살아요
    북한에서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보통인들 보다 잘 살죠
    물론 대부분 당간부들이겠죠
    내가 전번에 만났던 북한분도 생활이 괜찮아 보였어요
    그분은 술이 없어 못 마시는것이 아니라 신체땜에 조금씩 마신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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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2006-04-10 11:32:05
    윗분은 숙청대상 집안이라잖아요...
    아무나 잘사는줄 아시나본데...

    북한에 있을 때 듣던 소문중에 잘사는 사람들은 집에다 로봇까지 두고 있다고 하더군요.
    또 당간부들은 복숭아를 찰떡에 비벼서 복숭아의 솜털을 떼어내 먹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다 북한에서 들은 것들이죠.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의 부자들의 심장은 콩알만할 것입니다. 언제 재산몰수당하고 멸문지화당할 지 모르는게 북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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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바다 2006-04-10 11:52:45
    숙청대상의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종파의 누명을 쓰시고 처형당하셨고 삼촌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시고 ...
    당간부들만 잘살고 그런건 아니죠.
    저는 북한에서 자랄때나 탈북전에도 평양시민들 생활수준의 중산층은 넘었습니다.
    지금의 남한생활보다 여유롭고 풍족했다고 봐야겠죠.
    제가 이런걸 자랑하자는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여.
    울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이세상의 걱정과 근심중에서 가장 행복한 걱정과 근심이 먹을걱정.입을걱정이다>
    어릴적에는 이말씀의 뜻을 이해할수없었는데 나이들면서 그진실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언제 끌려갈지 모르고 항상 뒤에 노려보는 눈초리를 달고다니는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수가 없더라고여.
    정말 편안히 그누구의 간섭이나 위협없이 살고싶었던게 우리가족의 소원이였습니다.
    그멸문지화의 위기를 늘느끼며 사느니 차라리 먹을걱정 입을걱정하며 사는게 한결 행복한것이라 생각되기도 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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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2006-04-10 12:08:21
    아... 그러셨군요...
    글세.. 그런 생활을 하셨으니 .. 그럼 이해가 감.

    탈북자 누구나가 말하는 그런 집안이였군요.

    정신적 고통보다는 육체적 고통이 백배는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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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이 2006-04-10 12:32:31
    김일성 생일이 남한의 발렌타인 데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군요...국경의 남쪽이란 영화에서도 대충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것 같던데... 하여튼 빨리 김정일이 뒈져서 님도 빨리 그녀를 다시 볼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시집 가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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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맘 2006-04-10 14:24:30
    푸른바다님..님의 글에서는 사랑하지만 주위와 환경때문에 어쩔수 없이 헤여졌다고 보는것이 맞는거죠!
    사랑했기때문에 헤여졌다구는 볼수 없어요.참..제가 아는 남자분이 있는데요.
    그분은 결혼을 북한에서는 하기힘들기에 둘이서 도망쳐서 한국와서 결혼하구
    잘살구 있답니다. 많이 부러웠구 또 북한에서의 연애가 궁금했구요..
    전 나이가 어려서 북한을 떠났기때문에 북한에서 연애를 못해봤기때문에 정말 부럽더라구요.ㅋㅋ
    참 글이 오이밭으로 흘렀네요.
    어제 답답해님의 글을 읽어보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니잖아요?
    헤여져야 한다는걸 안다면 차라리 시작을 안하는게 좋죠!
    지금 한국에서 북한처럼 사랑을 맘대로 할수 없나요?
    흠...요즘 젊은이들...지들이 사랑한다면 부모의 말도 듣지 않아요.
    둘이 같이 자살하면 할지언정..
    님과 답답해님의 사랑은 차원이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해님은 차라리 우정으로 친구로 그여자분을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
    되네요. 서로가 상처받을걸 안다면 사랑보다는 우정이 낮죠.
    지금도 답답해님의 사랑은 엔조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여성이 불쌍하다면 상처를 주지 마세요!
    한주가 시작됐네요.오늘도 모든 분들 해피..즐~
    참..저혼자만의 생각이니..저번에 북한에 가구싶다처럼 ...태클 정중히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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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은 2006-04-10 15:47:30
    푸른바다님의 글을 읽으면서 남의 사연같지않고 ...저하고 비슷하네요~
    사랑하는 사람이 평양에서 추방되여온 가족이라는것을 알았을때 그때는 이미 서로가 너무 깊이 알았을때였죠,~그심정 뭐라고 표현할수가 없었어요 저의 어머님께만 가만히 얘기했더니 그냥 당의광폭정치가있기에 그들도 소생할 날이 있을거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출가 외인이라 후날 본가집에도 떳떳히 갈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고민하면서 살았는지...나의 운명보다 그남자의 앞날만 걱정하며 살다보니 머리가 다 하얘지더라구요 후~더말하기가 싫으네요 그러케 놓아주는게 차라리 좋은거에요
    지금은 함께살면서 의심했고 미워했던 용서하지못했던 그모든것이 너무 죄스럽고 부끄러워요 지금은 중국에서 무역회사의 사장으로 활약하고있지만 앞으로 다시 갈수있다면 북한에가서 그때 다하지못한 우리들의 서글펐던 사랑을 사랑과 용서라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싶어요
    다만 그가 용서해 줄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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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답해 2006-04-10 20:28:16
    해리맘님께..태클거는건 아닙니다만...저는 결코 엔조이가 아닙니다...제 사정을 아시면 님도 이해할겁니다...그걸 여기서 다 말씀드릴순 없고요...어쨌던 저는 그녀가 오게 되면..예쁜 사랑을 할겁니다..
    다만 제가 사랑이란 용어를 좀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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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핵 2006-04-10 22:51:36
    답답해님 옳슴다... 뭐 사랑이란게 별겁니까?
    감정이 가는대로 하는거죠... 복잡하게 생각하면 자기만 피곤합니다.
    그냥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는게 이후에도 후회없는 일입니다.
    힘내십쇼...결과가 어떠하든 따딴디 왕챈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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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섭 2006-04-10 23:21:48
    내가 태어나던 해가 바로 육이오 전쟁이 나던 1950년 그러니까 벌써 56년이 지나갔군요. 그럼 내나이도 아니 벌써? 60을 바로보게 되는군요. 나에게도 푸른 별님처럼 아른다운 사랑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집 사람을 친구소게로 처음본날 저는 그날 집에가서 한잠도 못잤습니다. 저는 우리집 사람의 그 모든것을 무척 좋와했습니다. 그게 사랑인지 뭔지는 몰라도 저는 그냥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진장 좋와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에 낙방해서 재수를 하던 떄였죠. 볼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부끄러움을 많이타는 그런 애띤 아가씨였죠.

    둘이 만나면 제 집사람은 대학을 다녔었지만 제가 영어를 좀더 잘해서 늘 시험공부도 해주었습니다. 영어 문장도 해석해주고 이러면서 우리들은 그 사랑이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을 여러번 낙방하는 바람에 우리집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말았죠. 제 집사람집에서는 시집가야 된다고 선을 보게 하였는데 제 집사람이 그냥 싫다고 하면서 저를 계속 사귀였습니다.

    저는 이제 대학 일학년에 입학한 대학생이고 제 집사람은 졸업하고 이제 시집을 가라고 집에서 권유받고 있었고.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사랑하면 헤여져서 좋은데로 가도록 해주어야 되는데 헤여지자고 해고 푸른별님처럼 두볼에 흐르는 눈물을 다꼬 엉엉울면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10초내로 들이 마시고는 쓰러지고 한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해여 지겠대요. 어찌나 보고 싶은지. 저희집 사람도 자기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는 엉엉 눌면서 눈이 펑펑쏟아지는 1월달 우리집 앞에 가방하나 들고 서있었어요.

    저희집은 가난했고 우리 집사람집은 잘사는 집이였죠. 가진거라고는 뭐 두쪽밖에 없는 대학 일학년생. 같이 붙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긍ㄴ데 사랑하니까 그게 사랑인지 뭔지는 몰라도 정이 옴팍 들어서 앞뒤도 가리지 못하고 혜어질수 없더군요. 저는 그때부터 공부와 알바이트를 동시에뛰는 고시생으로 무진장 ㅈ고생하였습니다. 지금은 이제 아들 둘 낳고 잘 살지만요. 저는 지금도 못혜여져요. 하루도 없으면 어떻게 살지. 제가 왜 이런 글을 썼냐면요 사랑이라는 그 마음이 생기는데 어떻게 혜여져요. 푸른별님처럼 어쩔수 없는 상황을 빼고는 ... 푸른별님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저는 정말 상상이 가는데요. 푸른별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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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바다 2006-04-11 05:28:53
    요섭님 감사합니다.
    님과같이 선량하시고 훌륭하신분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응원이 있어 이렇게 우리가 맘놓고 사는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님과같으신분들의 보살피심속에 힘을 얻고 살겠습니다.
    가슴에 와닿는 격려의 말씀 감사드리고여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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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04-14 08:35:28
    참 아름다운 사랑이였네요.
    잊을수가 없죠.
    어떻게 잊을수가 잇겠습니까?
    북한에서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신 남자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게 진짜 사실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
    당신은 진짜 아름답고 멋진 사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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