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에 대한 탈북자의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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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입니다. 저는 북에 있을 때 김대중같은 "애국인사(북한식 표현)"들이 대통령되면 통일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통일이란 바로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이겠죠. 북한에서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은 우리가 남쪽에 심어놓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저같은 북한에서 고위급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어서 직접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서 들은 것이 아니라서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을 간첩이라고 하는 사람은 김유송 뿐 아니라 여러명 됩니다. 김유송은 탈북자이고 또 북한에서 고급군관(상좌-한국의 대령)까지 하던 사람입니다. 그외에 남한 언론인인 이도형선생님은 김대중이 김일성한테서 4천만불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아래에 동영상 자료 링크 나와 있습니다. 그외에 먼저 답변하신 분들이 김전대통령이 북한을 위해서 유익하게 했다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98년도 99년도 최악의 식량난으로 정권붕괴가 예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99년도 탈북했지만, 그 당시 식량난이 심각해서 북한에서 중앙급대학들에서 기숙사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없어서 임시휴교가 되어서 대학생들이 식량을 구입하려 고향으로 보내졌고, 그 전에 식량대용으로 대학에서 칡뿌리를 공급했는데, 그것을 먹고 학생들이 구토하고 얼굴이 붓고 난리 났습니다. 그리고 강의하던 대학교수들이 현기증으로 졸도하는 현상들이 줄줄히 일어났구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아예 다들 식량공급떠나서 학교들이 거의 문닫을 정도였구요. 식량난이 심각해서 북한정권을 지탱해주는 보위부, 안전부 가족들도배급을 받지 못해서 일을하지 않고 장사하느라 여념이 없었구요... 도강꾼(탈북자 또는 탈북 브로커)들이 적은 뇌물만 줘도 경비대나 보위원들은 눈감아주기가 일쑤 였습니다. 군대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군대에서 죽마저 군인들에게 공급할 수 없게 되니, 많은 탈영병들이 생기게 되었고, 장교들도 배급을 받지 못하니, 자기 가족 식량구입을 위해서 다니느라 탈영병 신경쓸 겨를이 없었구요. 또한 북한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정상가동해야 하는 군수공장들이 멈춰섰구요. 종업원들은 공장 부품을 뜯어서 내다 팔아서 식량과 바꿔먹기 시작해서 북한정권은 본보기로 여러명을 공개처형을 시켰습니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은 그땅에 미련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탈북하기 시작했습니다. 98년도 99년도 실제적으로 북한을 떠나는 탈북자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즉 대량탈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99년도 탈북했는데, 탈북할 때 쯤 북한이라는 나라가 이제 끝이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근데 2000년도 남한의 김대통령께서 김정일 만나서 쌀과 돈을 보내줘서 북한정권이 숨을 쉬게 된거였죠... 북한정권의 지팡이인 보위부, 안전부, 군대, 그리고 군수품 공장들에 먼저 식량을 공급하였구요. 그때부터 보위부, 안전부가 탈북자를 잡아들이기 시작했구요. 중국 연변쪽 공안간부들에게 뇌물(현금또는 여러가지 북한특산물들)까지 주면서 탈북자 색출을 강화했구요. 그러나 실제로 햇볕정책으로 남한에서 쌀이 갔어도, 북한 백성들은 여전히 굶어죽었습니다. 그게 백성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위에서 말한것처럼 탈북자 잡아들이는데, 그리고 다른분이 설명하시는 것처럼 핵무기 같은 대량살육무기 개발을 위한 곳에 사용하였죠. 저는 김대중전대통령이 간첩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잘 모르지만, 대통령이 간첩이었다면 이 나라는 벌써 그때 북한에 흡수되지 않았을가 생각합니다. ************************************************** 추가 ************************************************* 북에서 온 탈북자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그분은 좋은 의도로 동포가 굶어죽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쌀을 주면 그 사람들도 변할 것이라는 선한 의도로 도와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악해서 선을 악으로 갚은 것입니다.
99년도 북한의 상황은 최악이 었습니다. 즉 다시말해서 통제 불가능한 상태었습니다.
배급은 원래 90년대 들어오면서 부터 점점 미공급이어서 94년도부터 아예 주지 않았구요. 98년도 99년도 심각했다는 것은 북한의 핵심계층 즉 다시말해서 북한 평민들을 통제하는 보위부(국정원)와 안전부(경찰), 그리고 군부에 배급이 되지 않아서 국가 시스템자체가 돌아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니 탈주병이 생기기 시작했고, 군관(장교)들도 배급을 받지 못하니 식량구입 돌아다니느라 탈주병 신경쓸 겨를이 못되었구요. 더 심각한 것은 북한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돌려야 하는 군수품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배급을 받지 못한지 이미 5년이상 되어서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면서 국가가 배급을 주지 않아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안전원 보위원들도 배급을 받지 못하게 되니,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장사해도 뇌물받고 눈감아주군 했습니다.
자연히 자본주의 근원인 장마당(시장)을 통해서 식량이 유통되고, 사람들이 장마당을 통해서 벌어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 뿐 아니라 안전부, 보위부 가족들도 다 장마당에서 장사해서 벌어먹고 살게 되었죠. 말하자면 저절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구요. 예전에는 장사하면 안전원들이 물건 뺏고 구타하고 장사 못하게 하였지만 완전 달라졌지요.
시스템이 엉망이 되니까 대량 탈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99년도에 탈북했는데, 중국에 있었을 때나 한국와서도 주변에 탈북자들 보면 대부분이 98년도 99년도 탈북한 탈북자들입니다.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탈북해도 보위부나 안전부, 그리고 국경경비대에 뇌물을 조금만 줘도 눈감아 줬습니다. 왜? 경비대, 보위부, 안전원들도 배급을 받지 못하니까 먹고 살자구요....완전 탈북하지 않고 중국을 들락날락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구요. 그때는 탈북이 지금보다 쉬웠습니다.
근데 2000년도 6.15. 선언 하고 한국에서 달러와 식량을 보내서 일반 백성들에게 배급 주지 않고, 보위부 안전부에 배급을 풀기 시작하면서 장마당을 폐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들은 배급 못받는데 안전원들만 배급받는 "특혜"를 누리게 되니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안전원들이 정말 악랄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을 마구 구타하고 장마당을 폐쇄하기 시작했습니다.....결국은 자본주의 씨앗인 장마당(시장)이 폐쇄되었죠.
그리고 군부대에 배급이 시작되면서 국경경비대가 악랄하게 탈북자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북한 국경연선보위부에서는 중국공안국간부들과 변방대 간부들에게 뇌물(현금이나 북한 특산물)까지 주면서 탈북자 대량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동생도 공안에 잡혀서 북송되었습니다. 북한 보위부가 공안에 뇌물 줄 그돈이 어디서 갑자기 나왔겠습니까. 국가에서 준돈이죠. 결국은 한국에서 보내준 돈이죠.
결국은 북한에서 탈북도 못하고, 장사도 못하게 하고 그렇다고 배급도 주지 않지..하니 오히려 아사자가 내부에서는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 삼촌 들 중 두분이 2000년도와 2001년도에 돌아가셨습니다. 남한에서 보내준 식량을 조금이라도 일반인들에게 풀었다면 그런일이 생기면 안되죠. 나중에 통일부자료에서 보니 그때 보내준 식량과 달러로 식량을 구입해서 북한 주민 2000만명 전체에 골고루 나눠주었다면 10년동안 굶어죽을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준 돈 다 어디 갔겠어요? 결국은 핵무기, 미사일 만드는데 들어갔겠죠.
그리고 남한에 준 식량을 국가가 개인들에게 팔아서 달러로 만들어서, 결국은 무기개발에 필요한 부품을 사들였구요. 그 식량들을 사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 미국에 친척이 있는 북한 사람들이 송금받은 돈으로 구입하는 거거던요....
북한은 워낙 식량이 귀한 곳이라 쌀만 보내면 얼마든지 현금(달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식량을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상점에 진열해놓고 비싼 값에 팔거던요.
결국 햇볕정책은 북한에서 시장경제(장마당)을 폐쇄하고,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햇볕정책이 북한에 한류를 전해주고, 많은 탈북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구요. 남한이 개성공단해서 북한노동자 고용해서 일해도 개성공단 노동자는 편지로라도, 혹은 자기 친척을 만나서라도 자기가 남한사람과 일한다는 것을 누설하는 순간 온 가족이 수용소에 보내집니다.
북한은 폐쇄된 사회라서 개성공단노동자가 개성에서 남한 기업인과 만나서 일한다는 것을 평안도나 함경도 사람이 알 수가 없구요.
또한 햇볕정책으로 탈북이 어려워졌구요. 도강비용이 폭등했구요. 북한에서 자본주의에로의 개방의 씨앗인 장마당이 폐쇄되었구요. 남한에서 쌀이 들어가고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일반인은 알 수도 없구요. 그냥 "장군님의 배려"로 받는 쌀이다.라고 생각하구요.
북한에 개혁개방과 남한 드라마를 전하는 것은 햇볕정책이 아니라 탈북자가 북한에 보내는 송금과 물건들로 북한에 한류가 스며들어갔구요. 탈북자가 보내는 돈으로 북한의 시장경제인 장마당이 활성을 얻은 것입니다.
탈북자가 많아 질 수록 북한은 점점 개방에 가까워지구요. 더 많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소식과 외부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대북지원은 탈북을 어렵게 하고 장마당을 폐쇄하게 하므로 장사해서 하루 장사해서 하루 먹을 식량을 벌어서 먹고 사는 평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네이버 지식에서 "햇볕정책" "탈북자" 검색어로 찾아서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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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지속됐던 대결구도에서 햇볕정책도 한번 쯤은 시도해볼만 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이산가족들도 많이 생존했었고 죽기 전에 내 부모형제를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고.
쌀과 돈을 보내준 덕분에 많이 만나긴 했었죠.
여튼 김정일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실패했지만 한편으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시다.
통일은 쉽게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백번 맞는 것들이지요.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요.
이런 진실한 절규를 들어줄 이가 많지 않은것이 참 애석하다.
네이버에 이 글을 올리신분 존경스럽고 멋지시다.
탈북인으로서 이분의 글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만 하시오.
김일성 김정일보다 한국의 대통령을 왜 더 헐뜯는가?
북한에는 어렵고 힘들지만 내일을 위해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2500만명의 동포들이 있다.
요놈의 더 민주는 독재자의 수양딸에서 간첩하구 종부기들 모두 품어주고 지켜주고 하면서 정작 북한인민에게 필요한 북한 인권법이나 탈북자 강제북송이나 북한 독재정권 규탄같은 사안들은 함구 또는 반대만 하지유. 오히려 북한정권 비호하는 넘들도 넘쳐나지유. 그러니 뿌린대로 거드는것 또한 당연하지유.
우리 탈북자 형제님들 쌍라이트 크게켜고 똑똑히 새겨야합니다. 지금은 쪽수가 3만명 보잘나위가 없어 무시당하지만 이제 통일되문 북의 2500만 형제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하지요. 진실을 알리는것 또한 북한 민주화의 선봉. 북한 개혁개방의 선봉. 통일 선봉대 3만 탈북자 우리가 해야할 몫이지요..........
햇볕정책 아니었으면 그 당시 5~10년만에 북한은 붕괴되었단다.
- 너나좋아해라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3-02 05: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