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신. 이오시프 스탈린.독재의 최고봉.제15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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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 과 독소전쟁을 보면.. 1934년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노골적으로 소련을 디스하며 주변의 소국을 병합, 소련의 안보를 위협하게 된다. 소련은 안보적 위기를 느끼게 되었으며, 대숙청 와중에도 꾸준히 국방력을 증진하기 위해 병력을 늘리고 무기를 뽑아내었다. 스탈린은 영국, 프랑스와 손을 잡고 히틀러를 막아보려 했으나, 영불은 소련을 노골적으로 무시했고,(이때 실제로 얼마나 무시했냐면, 영불 지도자급에서도 뭔휀협정 이후 독일에 대한 불신과 1938-9년 들어 폴란드 위기가 번질 때 영불대사가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과 대면해서 협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스탈린은 "만일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독일을 공격한다면 소련은 200개 사단을 동원할 용의가 있다. 영불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라고 물었다. 이에 영국 대사는 영국 본토에 육군사단 3-5개를 원정군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드립과 프랑스 대사는 전쟁 의지에 대해 머뭇거림을 보였다. 이에 스탈린은 "이런 도둑놈들! 우리는 200개 사단이나 동원하는데 즈그놈들은 손도 안대고 코풀려고 하네?" 라는 반응을 보이며, 서방이 이이제이를 노리는 것 아니냐라는 의심을 한층 더 강화했다. 다만, 프랑스는 몰라도 영국에 대해 실드를 칠 여지는 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대륙에서 전쟁이 터질거라 예상되면 육군 사단보다는 해공군 투자 혹은 전쟁에 쓸 재원 마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독일에 침략당해도 소련의 개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폴란드의 고집 때문에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
사실 핀란드도 통째로 꿀꺽하려고 했지만 겨울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카렐리야 지방만 점령하는 선에서 강화를 맺었다. 손바닥만한 나라에게 얻어터진 놀라운 업적으로 스탈린은 1939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게다가 스탈린은 자신이 배신했을 경우의 상황을 히틀러가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협상하는 자세가 아니라 고압적인 자세로 여러가지 사항을 요구하여 여러가지 수많은 이익들을 챙겼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히틀러를 화나게 만들기도 해서 히틀러는 스탈린을 "피도 눈물도 없는 강도"라고 비유할 정도였다.자기도 피도 눈물도 없는 학살자이면서 그러나 히틀러가 엄청나게 빠른 시간만에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를 함락시키고 다이나모 작전에서 영국군마저 거의 전멸 위기에 놓여, 영국의 함락도 거의 코 앞에 이르게 되자 스탈린은 깜짝 놀랐다. 당시 민심은 당시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영국조차도 한번에 독일에 점령 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스탈린의 태도는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히틀러가 요구하는 일들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협조해 주었다. 그러나 게오르기 주코프를 위시한 소련의 여러 장군들은 이런 스탈린의 태도가 전쟁이라는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주코프는 스탈린에게 여러차례에 걸쳐서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며 경계령을 내려주라고 화를 냈다. 그러나 스탈린 또한 화를 내면서 히틀러를 건드리면 안 되며 그렇게 한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5년 KBS에서 광복 70주년에 맞춰 방영했던 '세계대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은 "영국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히틀러가 설마 우리 소련을 치겠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히틀러가 단시간에 독일 민족들을 통합하고 독일 내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독일 공산당을 완전히 전멸시켰던 모습과 특히 유럽의 거의 대부분을 순식간에 정복하는 히틀러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의 뒷통수를 쳐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몰로토프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스탈린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1943년에는 전쟁을 할 준비가 마련된다"라는 스탈린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스탈린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던 상황이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소련과 끝까지 강화할 생각이 없었고 1941년 6월 22일 새벽 3시 30분부터 바르 바로사 전쟁을 개시하여 소련을 침공한다. 기습공격을 당한 붉은 군대는 초장에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전쟁이 시작된지 고작 몇 시간 만에 소련군 전투기 1200대가 그냥 지상에서 파괴되었고, 소련의 전방 보급기지들은 부대에 탄약을 공급하기도 전에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당시 독일 측의 기록에 의하면 소련은 1800기의 항공기를 잃었고, 그 중 다수는 이륙하지도 목하고 비행장에서 선 채로 파괴되었다고 하며 지상에서 파괴된 전투기가 대략 1500대라고 한다. 그리고 독일군은 단 하루만에 발트 3국으로 부터 60~80킬로미터, 벨라루스로 40~60킬로미터, 우크라이나로 10~20킬로미터까지 진격해 들어왔고, 독일군의 진격이 워낙 전광석화 같다 보니 당시 소련군은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많은 부대들이 새로운 숙영지로 이동 중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괴멸되었고, 전선에 도착한 부대들도 무턱대고 싸우다가 몇시간 만에 사라지기도 했다. 겨울전쟁에서도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여준 소련군은 역시나 우왕좌왕했고 그 사이 소련군의 상당수는 격파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포로로 잡혔다. 지휘에서 보급에 이르기까지 아직 대숙청의 여파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소련군이기에 이러한 패배는 당연했다. 결국 이 바르 바로사 작전으로 무려 수백만에 가까운 소련군 포로가 잡혔으니, 사실상 소련군은 거의 와해 상태에 처했다.
스탈린은 독일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자 망연자실하였고 매우 창백하고 당황한 얼굴로 빈 파이프를 뻐끔거리면서 이 상황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스탈린은 이 회의에서조차 이 공격이 단지 제한된 도발이라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세묜 티모셴코가 '우리의 도시를 공습하는 걸 그냥 도발이라고 할 순 없다'라고 말하자 스탈린은 "그렇다면 독일의 장군들이 자신의 도시를 폭격해서 도발을 했을 것이다"이라면서 독일 지도자 히틀러가 그럴 위인이 아니라고 대꾸했다.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었고 "히틀러는 분명히 이 상황을 모를 거야." 라고 푸념하듯이 말하면서 히틀러가 전쟁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일개 장군들이 음모를 일으킨 것이거나 독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끝까지 믿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휘부의 누군가가 "히틀러는 이 도발에 대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독일측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스탈린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몰로토프를 독일 대사관에 파견했다. 독일 대사관에 도착한 몰로토프는 그곳에서 만난 독일 대사 슐렌부르크에게(여기서 이인물을 살펴보면 베르너 폰 슐렌부르크 백작(1875년 11월 20일~1944년 11월 10일) 나치 독일의 마지막 소련 대사. 독일 제국 시절부터 활약한 외교관.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한다. 참고로 암살자 그룹의 내각 계획에 외무장관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몰로토프는 그 말은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말을 더듬거리며 "우리가 귀국에 그럴만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라고 말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스탈린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몸에 힘이 빠졌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뒤 오랫동안 견딜 수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소련 지도부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주코프가 독일군을 저지해보겠다고 여러가지 전략들을 이야기했지만, 이반 코네프는 "저지가 아니라 전멸이겠지." 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였다.
그는 그 와중에도 오로지 정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정치부회의에 참석했다.(여기서 스탈린을 살펴보면 스탈린의 이 멘탈붕괴는 인간 스탈린의 나약함을 드러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탈린이 어떤 생각으로 현 정세에 임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게 비춰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임을 일단 언급하지만, 일단 스탈린은 그 전부터 히틀러에 대해서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효웅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자신처럼 정세에 대한 계산이 가능하며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정치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은 1선 장군들이 뻔히 보이는 전쟁의 전조를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계산이 서는 날카로운 정치가인 히틀러에 대한 판단을 중시했기에 무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이 엄청난 위력으로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국을 패배하며 히틀러는 완벽한 계산하에 전쟁을 일으킨 대단한 효웅이고, 독일의 전력은 대단하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이러한 까닭에 스탈린은 양면전쟁의 한계와 러시아 기후의 무서움을 히틀러가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 버리자, 히틀러에 대한 고평가는 역으로 '러시아를 이길 만해서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닐까? 우리의 정보가 잘못됐었나? 독일이 신기술을 개발했나? 하여간 우린 끝이야!' 와 같은 사고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런 경우 충격에 빠져 아무 것도 못하는 지도자도 역사 속에 종종 있으나, 강철의 대원수는 어쨌건 일단은 싸울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금세 충격에서 일어선 편이다.) 한쳔 방송 연설은 몰로토프에게 맡겨놓았는데 그는 몰로토프가 자신을 위협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업무를 맡겼다. 그나마 스탈린은 다음날부터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며칠 후에는 하루에 14시간 정도를 일하면서 전쟁을 지휘할 정도로 괜찮아 졌다고 한다. 소련 지도부는 일단 적이 코 앞에 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어찌저찌 전열을 정비하고 독일군과 싸우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던 스탈린에 의해 소련군이 입은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안 많은 사람들은 점점 "왜 스탈린이 서기장으로써 전쟁 역할을 수행하는가?" 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탈린은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벌이게 된다. 1941년 6월 29일부터 측근과 장군들은 스탈린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스탈린이 실종된 것이다. 당황한 사람들이 스탈린의 행방을 알아보니 그가 며칠간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숨죽이며 틀어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기에 소련 지휘부는 일단 스탈린이 없는 가운데에서 할 일을 계속 했지만, 스탈린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그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다. 그들은 항상 스탈린에게 명령을 받아 움직였으며, 지금하고 있는 일들이 그의 노여움을 사서 그가 갑자기 돌아온 뒤 자신들을 무슨 트집을 잡아 숙청 시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상.. 끝. 제 1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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