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었던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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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최대의 식량난과 에너지난으로 최악의 붕괴위기를 맞았던 시기는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 김일성의 사후에 들이닥친 식량난과 자연재해 동유럽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는 북한이라는 자그마한 독재국가를 붕괴위기로 몰아넣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폭압에 죽으면서 사상최대의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였다. 그때 그나마 김정일이 민심수습으로 내세웠던 일이 평양시민들만은 어느정도의 배급과 공급이였다. 당시 북방지역의 국민들이 모두 아사위기에 처해있을때도 평양근방의 사람들은 굶어죽을 정도들은 아니였었고 이로인하여 수많은 거지(꽃제비)들은 살길을 찿아 남쪽지방으로 대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평양지역의 배급도 지속되지못하고 끊어짐과 동시에 상상할수없었던 아사와 에너지 위기가 들이닥쳤다. 가스와 석유로 에너지를 충족하던 평양시민들은 에너지난으로 인해 모란봉이나 만경대쪽에 위치한 공원들에 나가 마른나무잎과 풀잎을 걷어와 대신했으며 집집마다 연탄을 때서 에너지와 난방을 보장하기시작했다.. 전기가 없어 주교통수단인 궤도전차와 무궤도 전차( 전기로 나오는 에너지로 다니는 버스) 는 길가 에 힘없이 서있었고 출퇴근시간이면 길거리는 그야말로 난리 법석이였다. 저마다 궤도전차를 먼저타려고 몸싸움을 벌리다가 깔려죽는 사람들이 다있었으니 그 상황을 머라 표현할수가없다. 주머니에 지갑과 비슷한 물건이 들어있으면 면도날에 옷을째이기가 일쑤였고 눈감으면 코베간다는 속담도 하품하면 금이발뽑아간다 라는 새로운 속담으로 새롭게 태여날정도였다. 또 물이 나오지않아 아파트에서 사는 주민들의 고통을 끔찍했고 한번쓴물은 다시정화해서 두번세번쓰고 마지막에는 화장실용으로 버려지군했다. 그나마도 물이 나오지않아 볼일을 볼수없게된 사람들은 신문지에 용변을 보고 20층 30층높이에서 그것을 그대로 버리군했다. 당시 유행되던 말중에 (번대맞아라)라는 말이있었는데 이것은 신문지에 용변을 본사람들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걸 버릴때 외치는 소리란뜻이였다 아파트주변의 길거리는 늘 악취로 가득했고 낮은층에서 사는사람들은 여름에 문도열어놓을수가없어 참기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하군했다. 그더운여름 전기가없어 선풍기도 돌릴수없었으며 지하철이나 버스도 에어컨을 틀수가없었다. 그러나 여름은 이들에게 있어서 그나마 행복한 계절이였다. 겨울은 평양시민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시기였고 이때는 정말 젊은이들도 참기힘든 추위와 고통이 찿아왔다. 평양시의 대부분 주택들은 온수난방 이라고 하는 시스템에 의하여 난방을 보장받고 있었다. 평양시 화력발전소와 동평양 화력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온수 (즉 석탄을 때서 나오는 수증기로 타빈을 돌리고 남는 뜨거운물)로 난방을 보장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력난과 수송수단의 부족으로 발전소들은 거의 멎어 있는 상태였고 난방관이 삭고나 메는것을 방지하기위하여 당국은 랭수를 그관에다 쏘아댔다. 난방도 보장되지않는 그추운겨울 관으로 흘러들는 냉수는 양말을 두어컬레나 신고 슬리퍼를 신고도 바닥에 5분이상 서있지못하게 만들었고 집전체를 그야말로 자연 냉장고로 만들어버렸다. 나이가드신 늙은분들은 너무도 추워 솜옷을입고 이불을 덮고 겨울신을신고 침대에서 주무셨으며 또 가지가지의 아이디어가 나오기도했었다. 플라스틱 물통에 뜨거운물을 가득담고 마개를 꼭닫아놓으면 그 열기가 새벽까지도갔었고 출근시간에 세수를할수있는 따뜻한물도 될수있었다. 당시 마누라는 끼고 안자도 물통을 끼고 잔다 라는 말이 유행될정도였으니 그추위와 고통을 짐작할수가있을것이다. 그런고통은 고층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더심했다. 엘레베이터는 다니지도 않았고 20층30층서 사는 사람들은 그 높은 계단을 한치한치 톺아오르며 살아갔다. 고층건물서 사시는 노인네들은 아침에 내려오셔서는 어떤일이 있어도 저녁때에나 집으로 올라가셨고 젊은이들인 우리도 상당히 힘든 운동이였다. 아무리 추웠어도 10층까지만 올라가면 추위를 모르고 20층을 올라가면 윗단추를 풀어헤치며 30층을 올라가면 땀으로 미역을 감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환희의 진땀도 집에들어가 5분만 있으면 무서운 오한으로찿아와 사람들을 괴롭히군했다. 교통난도 마찬가지였다. 평양의 늙으신 분들이 모두 겨울이면 지방의 친척이나 자식들집으로 피서를 가는 시절이였다. 그나마 연탄이나 나무를 때서라도 난방을 어느정도 보장하는 시골이 그들에겐 너무도 천국과같은 세상이였던것이다. 출근시간을 맟춰 지하철이나 궤도전차를 타고 떠났는데 절반도 가지못해 정전으로 멈춰선다. 금방 오겠지 금방 전기가 오면 떠나겠지 라는 무모한 기대로 거기에 서있다보면 출근시간은 커녕 점심밥도 그안에서 먹어야하는 판이 된다. 거기에 다니는 시간도 느려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몰려서있고 그러다 한대라도 도착하는순간이면 그때는 난리도 아니다. 얼마전 지하철노조원들의 파업으로 지하철운행이 지연되고있을때 나는 그때당시의 느낌을 다시한번 받을수가있었다. 엄청나게 밀린사람들이 모두 지하철에 탔을때 내뒤에 서있는 처녀의 앞가슴이 내등에 밀착되여 어쩔줄을 모를때 나는 새삼스럽게 평양의 지하철역에 서있는 느낌에 멍해졌었다. 하긴 열차도 너무도 연착이되고 다니지가않아서 평양에서 청진까지 5일이나 7일을 걸려 도착할 정도였으니 그때의 상황은 과히 처참하고 끔찍했다. 콩나물시루같은 열차안에서 볼일을 볼수가없어 그자리에 앉아서 해결할정도 였고 그나마 그자리마저 못차지한사람들은 그위험한 열차지붕에 매달려 다니군했었다. 조금만 졸면 가족의 생사가 달린 자그마한 쌀배낭이 어디런가 없어져버리고 한순간만 손을 놓으면 열차지붕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며 날아가는 참사를 면할수가 없었던 세월!! 살인과 강도 강탈이 대낮에도 그것도 한나라의 수도라고 자처하는 평양시내의곳곳에서 일어나던 지옥같던 세상.. 평양의 상징이라고 자처하는 주체사상탑의 봉화대불꽃이 전력난으로 며칠씩 꺼져있고 로동당간부들이 사는 특정지역만 겨우 가로등불빛을 보장하는 그시절 사람들은 무척이나 강해졌고 인내스럽고 억척스러운 인간들로 변해갔다. 교통난에 그들은 모두 자전거라는 대용품으로 반응했고 식량난에는 풀뿌리와 나무줄기로 살아갔다. 그시절 법은 자체의 사명을 잃었고 법을지킨다는 사람들은 모두 비리와 비법의 화신으로 전락해갔다. 강도 도둑은 판을 쳐 밤에 잠궈놓고 자는 키를 부스고 들어와 말짱 거두어가는 판이였고 좀늦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는 야구 빠따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아침에야 깨어나 빈손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세월이였다. 당시 일본산 중고자전거가 유행이였는데 그값은 당시 서민들에게 있어서 거금이였다. 그러니 그자전거를 빼앗거나 도둑질하여 팔면 그들에게는 횡재인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도 자전거를 17대나 강탈하고 결국은 총살까지 당한 사람도있었다. 17대래야 한국돈 10만원값도 안가는 액수이지만 그돈때문에그는 목숨을 잃었다. 추석이나 설명절 교통수단이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척들과 조상들의 묘소를 찿는것을 포기했고 그나마 묘소를 돌볼사람이없어 어쩔수가없는 사람들은 자동차 적재함에서 위태로운 길을 떠나야했다. 그당시의 평양의 모습은 이렇듯 참혹했다. 수도라 불리우던 평양마저이정도였으니 다른 곳이야 더말해 무엇했으랴.. 그때 당시 지방사람들은 평양을 천국처럼 여겼다. 이렇게 험악하고 끔찍한 도시도 지방에 비하면 천국이였던것이다. 그 험하고 무너져가던 시절에도 변하지 않은것이 있었으니 바로 정치선전과 공포정치였다. 당시 북한당국은 소란했던 민심을 가라앉히려고 최대의 공포정치를 펼쳤는봐 그때 죄아닌 죄로 공개처형을 당하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몇천인지모른다. 라디오와 티비의 아나운서들은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깁니다라고 몇천번을 외웠고 남한의 발전도 모습과 자유로운 모습을 막으려고 피눈이되여 날뛰였다. 북한의 티비 채널이 3개였었는데 그나마 지방은 1밖엔 볼수가없었다. 남한의 티비 전파를 막는다고 남한티비전파가 들어올수있는 채널을 모두 막아버렸고 집집마다 티비에 봉인 딱지를 붙여 감시하군했었다. 그래서 늘불만이였던 사람들의 말이 보고싶어도 전기가 와야 보는거 아닌가고 그렇게 볼거없고 변태적인 티비라면 오히려 보여주면서 교양하는게 옳지않느냐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상황은 변한것이 없고 사람들의 사고수준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그 세뇌교육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으며 구두닦고 깡통차고 쓰레기장 뒤지는 남조선 어린이들이란 말을 더는 믿지않게 되었다. 사실 초등학교시절 내가 배운교재에 있던 거지남조선 소년에 대한 글은 지금 모두 없어졌다. 진실을 결코 가릴수는 없었고 뻔한사실을 눈감고 아웅한댔자 먹히지 않을것을 이들도 알기때문이다. 진실은 가릴수가없으며 진실로 인하여 김정일 망할날은 멀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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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식량만큼은 우리 남쪽에서 책임져줬음 좋겠어요...
배가불러야 남조선문화나 민주주의,자유에대해 관심이 생기고 전기가있어야
남조선드라마를 볼것아니겠어요.
북한주민들을 걱정해줘서 ...
하지만 나도 북한에 처자가 있지만 ...북한국민을 도와 준다는 것이 김정일 정권을 지속되게 한다면 ...우리 형제 처자들이 불쌍하지만...저는 반대입니다.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이북백성 다 긂어 죽어도 김정일이 눈섭한오래기 까딱안하는 놈입니다
국민들이 굶어죽는것이 가슴아퍼할늠이면 이북은 벌써 개방이라도 했을겁니다
차라리 긴고통보다 짧은 고통이 났지 안을가요
긴세월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그많은 사람들 죽어가는 것 보다 모든식량줄을 끈어버리면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든지 할게 아닐가요
가슴아프네요
내 부모형제가 사는곳인데 이렇게 밖에는 바랄도리가 없어서요
세계적으로 식량을 주면 김정일이 국민들 가지고 옥수수 가루 몆주먹 뿌려주고 장난을 쳐서 말입니다
김 개장군의 오른팔이라 지칭하는 군대.. 외부에서 지원오는 모든 물자는 첫째로 군대로 들어가 군사력을 키우는데 여념없다 들었어요..
뭐 그런 군대도 지금은 못먹어 쩔쩔 매는 수준이긴 하지만...
또 고위 간부들이 그 돈되는 물자를 그냥 두겠나요..어떻게든 빼돌려 자기 뱃속 채우느라 김 개장군만 신주단지 모시듯 우러러보고 있는 북한 인민들만 굶주림의 연속으로 내모는 거지요...
우리가 도와봤자 김 개장군의 독재만 지지하는 꼴이니 지원은 더이상 안된다봐요..
물론 수많은 인민들에겐 참으로 안된 일이겠지만...지원 하나 안하나 어차피 인민들에게 돌아가는건 굶주림뿐이니까요...
우리가 해야하는건 식량 지원이 아니라 세계를 볼수 있는 눈과 자유 지원이겠지요...
남측의 큰 타격을 예상했기때문에 대북지원을 해서라도 그나마 북측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이 썩어빠진 정권이 없어지고...
김 개장군을 세계적인 왕따로 철저히 고립시켜 놔야 언젠가 개장군이 치매끼 때문일지라도 독재에서 물러나 개혁개방이라던가 민주주의 실현을 할 수가 있겠지요..
그렇게 하기엔 중국의 걸림돌이 너무 크긴 하지만.....
분명한건 하늘이 지켜보는한 절대 용서 하지 않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