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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무장공비 침투사건 - 노도부대 2편
Korea, Republic o 궁금하다 1 599 2007-02-02 21:23:10
첫날, 공비도 잡고 우리쪽도 희생자가 있었다..
그날 의문은 누가 공비를 잡았느냐다. 다 와서 누가 잡았느냐고 물었다. 알수가 없지 소리나는 쪽으로 총을 쏴댔으니 총알에 이름 쓴것도 아니고…
그런데 정황상 상근예비역인 일병이 쏜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나중에 포상금 2천만원 받은것으로 들었음).
산비탈을 따라 뛰어내리던 공비가 한명 있었고(섬광탄을 다 건드리고 다니던),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공비가 있었던 거다.
우리 호 뒤에서 저벅저벅 올라가던 것이 그중 한명의 공비였고, 행정병이 던진 수류탄이 실패해서 우리 호를 통과해서 올라간 공비가 전사한 후임병의 호와 전투를 했고 수류탄을 던져 그 호의 인원을 제압한 다음 올라가다가 다음 호의 인원과 만난거다.

공비잡은 일병은 갑자기 발소리가 나서 총구를 뒤로 돌렸는데 눈앞에 뭐가 번쩍 했단다. 반사적으로 총을 쐈는데 그게 공비의 얼굴에 맞은것이다. 올라오던 공비도 앞에서 뭐가 휙 돌아가니 총을 쐈는데 다행이 일병의 머리를 빚나간 것….

아래호에서 전사한 전우는 수류탄이 날아들기 전에 이미 머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고, 수류탄이 들어와서 두명은 뛰어나가고 이미 전사한 전우는 못빠져 나왔던 것이다.

이거 미친다…우리가 올라가던 공비 제대로 잡았었더라면 우리가 죽을수도 있었는데 전우가 대신 전사한 것 아닌가 온갖 가정이 머리속을 휘집는데 죄책감과 공포와 다행스러움이 교차하며 다시금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실감났다. 심장을 움켜쥘수 밖에 없는 고통.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에 대한 답이 없는 상념들……..

중대장은 상관들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중대원들은 빨리 내려갔으면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중대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전투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신속히 호를 정비하고 보급품을 점검하라고 했다.
잠을 잘틈도 밥을 먹을 틈도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끔찍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호를 높이 쌓아야 했다. 여전히 땅은 파이지 않았고 쌓아올릴 돌은 부족했다.시간이 가는게 무서웠다. 밤이 안오기를 바랬다.
물과 식량과 깔깔이등의 보급품도 없었다…
그대로 밤은 찾아왔다.

그날은 달이 떴다. 희미하게 앞이 보였다.
그러나 달이라도 떠주길 바랬던 첫날과는 달리. 내 머리와 어깨를 비추는 달빛은 섬뜩하기만 했다.
능선을 따라 자리잡은 우리는 공비에게 노출되어 있고 우리는 공비를 보기 어렵다.
호 오른쪽의 오르막길에 계속 눈이 간다..
공비가 저위에 나무뒤에 쭈그리고 앉아 우리를 보고 있을것만 같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미칠것만 같다.

설마설마 했는데 위에서 또 총소리가 들린다. 하하~ 이건 꿈일거야. 난 지금 침상에서 자고 있는데 꿈을 꾸는 걸거야 총소리 안들리게 해줘 아니 총쏘지마 무서워 죽겠단 말이야….
꿈이길 바랬지만 복수심에 눈이 먼 중대원들은 낙엽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한탄창씩을 갈겨댔다.
고함을 지르는 중대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마 전사한 전우의 고참인 분대장일 것이다.
수류탄이 터진다. 크레모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 다들 미쳐가는구나. 이게 전쟁인가…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도 총을 쐈다. 총을 쏠수록 전방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더욱 더 우리를 자극하고 엄습했다. 그냥 우리가 미쳐서 총을 쏘는 줄 알았고 두려움을 떨치려고 총을 쏘는 줄 알았다.
여기 4명 진치고 있으니까 공비에게 오지 말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그런데……
딱콩! 하는 소리가 들렸다. m16이다. k-2와 소리가 틀리다. k-3 연발소리와 틀리다.
이런 공비 또 왔다………………..
우리 호 앞으로 오지 않기만을 바랬다. 어제 전우가 전사했고 죄책감이 들었던것은 이제 먼 옛날 얘기같다. 살고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딱콩! 딱콩!
공비가 쏘는 총소리가 정확하다. 탄알이 부족하기에 조준사격을 하고 있을 터. 위쪽에서 교전이 일어난게 맞다. 그냥 미친듯 총을 쏴대는건 우리 호밖에 없던거다.
내일은 누가 쓰러져 있을까. 막 피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들이 상상된다.
총을 꽉 잡았다. 그래 와라 죽이고 집에 간다. 와라 와라 와라 와라 와라….
그렇게 끊임없는 총소리는 날이 밝아서야 그쳤다.
휴가 나와서 뉴스에서 본 이야기지만 칠성산 아래 살던 노인분이 산에서 총소리 나는데 625를 다시 겪는것 같았다면서 무서웠다고 했다. 그정도로 퍼부었으나 공비를 잡지 못했다.

다음날…잠과 물이 부족한 차에 헬기가 물과 식량을 낙하했다. 낙하산이 매달고 떨어지는게 아니라 저공으로 떨어뜨려준다. pet병에 담긴 물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다 으깨져서 성한 물병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배분하여 자기 수통에 채워넣고 본인 몫으로 전투식량을 챙긴다.
이제 눈들이 반짝반짝한다. 군인이다. 이제 군인이 된거다. 이틀간의 교전은 사회에서 껄렁대다다가 끌려온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만든 것이다.조를 나눠 취침을 하고 호를 정비하고 인근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낮에는 거의 노출되어 있는것과 같아서 밤의 공포감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총소리보다 빨리 날아오는 총알에 내가 죽을지 모르는 일인거다.

중대장과 호를 점검하는데 어느 호 앞에 수류탄이 떨어져있다. 영화에서 보는 불룩불룩한 수류탄..
우리 수류탄은 공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저건 공비가 던진거다.
호에 있던 전우들은 그냥 멍한 눈으로 수류탄만 볼 뿐이다. 수류탄 불발되서 살아남은 3명의 군인. 누군가의 애인이며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 3명의 삶과 죽음으로 울고 웃는 그들 뒤의 수십명의 사람들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인데도 신기하게 막 떠오른다.. 살고 죽는게 얼마나 허무한가….

수류탄 주위에 줄로 위험지대 표시를 하고 올라갔다. 이 호는 돌이 부족해서 통나무를 끌어다가 막았는데 제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호다.
여기서 또 골때린다. 3명의 앞에 쌓아놓은 통나무에 총알자국이 2개 나있다.
“야 그거 뭐냐”
“엥? 총알자국이지 말입니다”
“그거 5센치 높았으면 너 죽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무감각하다. 이런 대화가 농담처럼 오간다. 엇그제까지 초코파이 하나 더 먹고 작업할때 몇분 더 쉬는게 군생활 최고의 목표였던 군바리들이 이틀만에 제2차 세계대전의 주인공들이 되어버렸다.
우리보다 밑에 있는 호에는 야간투시경(중대 1개 지급. 요즘은 모르겠음)을 지급했는데, 한명이 관측중에 공비가 크레모아 설치지점을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야투경을 쓴 상태로 사격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크레모아로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영화에 나오는 그런 야투경이 아니고 묵직하고 2안으로 된거 있음 –) 그런데 공비가 크레모아 앞으로 오지 않고 뒷면으로 기어가길래 어쩔 수 없이 후폭풍으로 잡자고 눌렀는데. 다음날 같이 확인해 보니 후폭풍에 쓸려간 흔적만 있고 공비는 없었다. 원래 크레모아 후폭풍도 가공할 위력이기 때문에 공비의 신출귀몰함에 놀랄 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사회에서 아무리 겁쟁이인 녀석들도 그 4박 5일만큼은 정말 믿음직한 전우였다.

눈은 빛났고 판단은 냉철했으며 두려움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제대 후에도 우리 군대를 믿는것이 바로 이런것이다. 전쟁이 나면 모두 전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날도 우리가 기대했던 철수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각자의 군장이 공수되어 옷을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것만이 변경된 사항이었다.
3일째는 간간이 교전이 펼쳐졌고 여전이 공비는 총알을 단발로 사용하였다.
다음날 수류탄 파편에 앞이 피범벅이 된 일병 한명이 후송되고 높은사람들이 와서 격려를 하고 황급히 떠났다. 보급품도 모자르지 않게 되었다.
근데 실탄이 부족했다. 5탄창중에 대부분 3탄창 이상을 소모했다. 수류탄도 넉넉하지 않았고 섬광탄은 거의 바닥이 났다.

남은 탄알과 수류탄을 서로 나누고 4일째 작전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한명이 뛰어와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했다.
10명정도가 뛰어내려가다 보니 돌무더기를 쌓은 넓은 개활지가 나왔는데 저 멀리 뭔가 도망가는 듯이 보였다. 나는 무전기를 메고(P-99k) 뛰어 내려왔기에 숨이차 조준을 하지 못했는데 뒤에서는 몇발 사격을 가했다. 무전기를 내리고 엄폐물 뒤에서 조준을 했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문제는 그 뒤다. 약 15분간 우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공비로 예상되는 물체가 숲속으로 사라지면 놈은 우리를 보는데 우리는 어두운 안쪽을 못보는거다. 개활지에 꼼짝없이 갖힌 꼴이 된것…
이런게 전투 경험인가보다.
그 개활지를 이탈하는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차라리 보이면 안무섭겠는데 전방 180도의 숲 어디에서 우리를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라가니 반대쪽 산등성이에서 연기가 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중대장은 20명정도의 정예를 추려서 반대 봉우리로 넘어가는 작전을 세웠다. 지도를 보니 거리가 꽤 됐지만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것 같았다. 모두 허리를 숙이고 장전상태에서 안전상태로 놓고 전진을 했는데 단 한명도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넘어가다 보니 연기가 아니고 산 중간에 구멍이 있는데 그곳으로 안개가 지나가는것이 연기처럼 보였던 것이다. 다시 돌아와 호를 정비하고 4일째 밤을 맞이했다.

4일째밤이 칠성산 전투에서 제일 기억이 남는다. 우리 호가 수류탄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첩보에 의하면 공비는 단 한명이 남아있다고 했다. 한명은 이미 북으로 넘어갔다고..
그런데 4일째 그날 전투 결과 2명이 확실했다. 암튼 뉴스는 여러가지 설을 제기했지만 우리는 2명과 전투를 했다고 확신한다.
왜냐면 첫날 우리 전투지역에서 내려오던 공비와 올라가다 잡힌 공비가 있던거 기억 날거다. 잡힌 공비에게 소총이 없었고 소총끈이 예리한칼로 잘려나가 있었는데 즉 두명이 올라오다가 한명이 쓰러지자 한명이 총끈을 잘라 총을 가지고 도주한것이다.
첫날 내려오던 공비 1명, 올라오던 공비 2명. 총 3명이었는데 한명을 잡은거고, 한명은 북으로 넘어가고 한명이 일부러 혼란을 주기 위해 교전을 한 것이라고 밝혀졌지만. 우리가 보기엔 북으로 넘어간것이 아니라 두명이 있었던거다….
복잡하지만 암튼 4일째..
그날은 총성도 안들리고 이제 공비들이 지역을 이탈했나 싶었다.

그런데!!!!!!!!!
전방 20미터 앞에서.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사람이다. 동물은 아니다. 동물은 저렇게 느리게 걷지 않는다.
재빨리 고개들을 숙였다
설치해놓은 섬광탄만 건드리면 바로 크레모아를 사용하려고 손에는 격발장치를 꼭 쥐고 있었다.
누르고 던지고 당겨라….매복의 기본 지침이다. 모두 내가 크레모아를 터뜨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명은 수류탄을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 소총을 잡고 한명은 방아쇠에 손가락 걸고 내 눈만 봤다.
그 상태로 1시간이 지속됐다. 슬슬 의문이 들었다. 저게 공비면 왜 같은 장소에서 움직이고 있을까.
눈치없이 산 아래에선 조명탄을 쏴대고 있었기 때문에 뻔히 우리 호가 보일텐데 말이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그 자세로 초인적인 힘으로 우리는 버티고 있었다. 침도 제대로 못삼켰다.
1시간반….2시간이 됐다. 소리는 끊임없이 났다.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5시가 넘어서자 아주 어렴풋이 날이 밝아온다.
소리는 계속난다. 해가 뜨면 서로 노출이다. 누가 먼저 용기를 내서 먼저 날리느냐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밝아진다. 4명은 서로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확 하고 호 위로 머리를 내서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정도 소리면 정말 20미터 앞이다. 서로 보면 얼굴 식별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기 때문에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앞에 공비와 눈이 마주칠것만 같았다. 모든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이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 위를 전속력으로 내려오는 소리다.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리에 행정병과 반사적으로 내가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았고 내가 한탄창을 소리나는 곳에다가 갈겼다. 드르르륵~ 2초 정도면 30발이 다 소모된다.

영화처럼 주구장창 쏘는거 믿지 마시라.
쏘고 나니 소음기쪽이 행정병의 귀 옆이었고 으악 하고 행정병이 귀를 막는 찰라!
내가 괜찮냐고 물어보는 중이었다…
“야 괜찮…………”

빠앙!!!!!!!!!!!!!!!!!!!!!!!!!!!!!!

왼쪽부터 후끈한 불길이 날 덮치고 오른쪽으로 흘러갔다…..
아차!!! 전방에 있던 공비 생각을 못하고 반사적으로 뒤를 보고 등을 보이고 만것이다.
전방에 소리를 내던 것은 공비였고, 우리가 뒤쪽을 사격하느라 위치를 노출시키자 곧바로 수류탄을 던진것이다….
왼쪽귀가 안들렸다. 등을 해머로 얻어맞은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고통이었는데 그때는 따끔했던 정도로 느껴졌다.
오른쪽 두명은 놀라 엄폐했고, 왼쪽 행정병은 엎드려 있었다. 죽었나……
그 짧은 순간에 신기하게 날은 환해졌다. 날이 밝으면 공비는 활동하지 않았다.
행정병을 흔들었다.
“야! 괜찮냐”
“네 괜찮은데……..” 살았구나
“등이 아프지 말입니다”
“나도 등에 뭐 맞았다. 좀 봐라”
행정병이 내 등을 확인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럴리가 없지 무지 아픈데 잘 봐봐 까서 봐바”
그러나 외관상으로 상처가 없었다. 이번엔 행정병 뒤를 봤더니 야상이 아주 약간 뜯어져 있었다.
뭐랄까 커터칼로 살짝 긁은것 처럼 실밥이 아주약간 올라와 있었다.
등을 까보니…..
살속에 손톱만한 시커먼게 들어가 있었다. 피도 안났다.

“야 너 등에 점있었냐”
“아니지 말입니다”
“너 등에 수류탄 맞았다”

이렇게 5일째 아침을 맞이했다.
4명다 긴장때문에, 또 똑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풀려 일어설수가 없었다.
한참을 살아남았다는 기분을 만끽하고서야 다리에 힘을 얻어 일어설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후방에서 난 소리는 공비인지 알수 없었지만 전방에서 소리를 내던 것은 공비가 확실했고 공비가 던진 수류탄이 호에 쌓아놓은 맨 윗돌과 같은 높이의 바깥쪽에서 공중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행정병은 등에 수류탄이 박히고 난 깨진 돌덩이에 등을 맞은 거다.
아니 같이 수류탄 맞았는데 그녀석은 헬기타고 내려가고 난 걸어내려갔다 T.,T
국방부에서 우리가 서로 던진것이라고 주장을 하다가 결국 파편조각이 북한 수류탄으로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내가 총을 쏜 장소를 샅샅히 점검했는데 혈흔은 없었다.
정말 죽을 용기 한번 내서 상반신 드러내고 사격 했는데 못잡았다니..
그 생각이 들고 몇초 후….
사람을 못죽인것을 아쉬워 하는 내가.. 뭐랄까… 암튼 정말 우스운거다 군대라는게….전쟁이라는게…

그날 하산을 하고 대대로 복귀했는데 이건 월드컵 우승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의 카퍼레이드도 아니고 미리 준비된 대대원들의 열렬한 환영을받으며 주둔하고 있던 폐교로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즉시 도열해서 속옷까지 다 벗고 실탄을 회수당하긴 했지만………

이후로 우리 중대는 한동안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고 각지에서 도착하는 위문품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밤은 우리에게 두번째 지옥을 선사했다. 우리가 자는 교실은 밤새 악몽에 시달리는 중대원들의 비명소리에 불침번을 서는 전우가 무서워서 귀를 막고 벌벌 떨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몸에 머리가 쭈뼛쭈뼛 서서 미칠 지경이다….

이후 한달간의 매복과 수색 정찰기간중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나 생략하겠다. 손아프다.

작전기간중 전파된 웃지 못할 사고사례를 몇개 적어보면…..
야간에 이동물체는 무조건 사살이기 때문에 똥오줌이 마려우면 호 안에서 비닐로 해결해야 된다.
호 밖으로 나가면 옆의 호에서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르니까 저녁에 억지로 배변을 하고 호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느부대 중대장이 옆에 상병에게 나 대변보고 온다고 말하고 앞에서 볼일을 보는데, 조느라고 그 말을 못들은 상병은 바스락 소리에 놀라 깨서는 그 중대장에게 한탄창을 다 쐈다고 한다. 실화다.
어느 부대는 평지에서 호를 파고 매복하는데 앞에 커다란게 다가와서 3명이 집중사격을 했는데, 다음날 나가보니 방목하여 키우는 황소를 죽여서 부대에서 소값을 물어줬단다.
송이버섯을 캐는 주민을 사살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11월인가? (확실치가 않음) 부대에 복귀했고, 우리부대 앞을 지나가는 모든 보급차량은 우리 중대 사열대에 온갖 식료품과 위문품을 쌓아놓고 갔다. 나는 병사중에서는 유일하게 사단장 유공표창을 받았는데, 받을 일을 해서가 아니라 대표격으로 받았다. 공비잡은 상근예비역 일병은 훈장이 추서됐는지 정확한 소식을 듣지 못했고 얼마 후 상근예비역들은 고향으로 가서 남은 군생활을 보냈다.(상근예비역은 1년은 정상복무, 남은 기간은 방위를 하는 이상한 복무형태.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전사한 전우만 불쌍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사치는 정말이지 부끄러운 것이었다.
얼마 후 중대 전원 동시 휴가라는 사상초유의 주인공이 되어 부대 안으로 들어온 전세버스 2대에 나눠타고 곧바로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 전우의 묘 앞에서 예를 갖춘 후 각자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학교에 왔더니 과 후배가 데모를 하고 있었다.
정말 쏴죽일 놈들은 이런새x들이구나 싶었다. 가서 자짜고짜 이 xxxxx 하고 멱살을 잡았다가 당황하는 후배의 얼굴을 보고 그냥 씁쓸히 웃으며 돌아섰다.
그 xxx에게 뭐라고 말을 할 것인가. 뭘 알아먹겠는가.
우리는 분단국가다. 휴전국이다. 전쟁은 일어나면 안된다 너무나도 끔찍하다.
죽은 공비의 주머니에는 도토리 몇개와 우리가 먹다버린 전투식량 봉지를 여러번 접어 놓은 것이 발견 되었는데. 도토리를 생으로 먹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장난삼아 산에가서 입에 대보신 분은 알거다. 거기에다가 전투식량 봉지에는 밥알이 열 몇개 붙어있었는데 그걸 아껴서 접어 놓은거다..
이게 사람 할짓인가.

7월에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故 송관종 상병을 찾을 예정이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대신해 본인의 임무를 다하고 간 그에게 잠시 묵념을 보내주길 간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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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공 2007-02-03 00:53:56
    이 글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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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석기자 2007-02-03 12:41:24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은 전쟁의 참 맛을 모릅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다는 절박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죠. 치열한 전쟁의 경험을 겪은 분들은 많지만 그분들이 전쟁을 소상히 쓸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잘 정리하여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긴박했던 상황을 아주 세세히 정리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킬 좋은 글 올려주신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저도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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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만세 2007-02-03 14:02:10
    앞으론 이런 전투는 없겠죠.... 무인 감시장비 개발되어서 기계 1대가 주간 야간을 막론하고 약 폭100 m의 경계 및 사격 할 수 있다더군요... 자이툰 부대에도 배치되었다던데....
    무장 공비 침투시에는 이걸 적당한 간격으로 핵심지역에 주욱~~ 장치해놓으면 되니깐...

    심리묘사가 뛰어나군요..... 흥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고인이 되신 분께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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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길 2007-02-03 14:14:19
    잘~읽었습니다....글도 잘쓰셨고....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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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사즉생 2007-02-03 16:56:05
    전사하신 국군 장병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이 시기에 군 생활을 했는데 이때 짜증 좀 나더군요. 상급부대에서 북한군 특작부대 침투가능성 첩보 날라오고.... 완전무장하고 샅샅이 수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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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현 2007-02-03 18:42:00
    저도 퍼온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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