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무서원과 정치보위부는 어떤 복장이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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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 전쟁 당시에도 수필을 읽어보면 경찰에 해당되는 ‘내무서원’과 ‘정치보위부’가 있었다고 하는데(대부분의 종교인들도 내무서원과 정치보위부에게 체포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에서는 이런 것까지 전시하지는 않지요.) 혹시 어떤 복장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수필에 따르면 정치보위부는 견장 색상으로(어떤 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전투장교와 구별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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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당시 그들의 복장은 카키색 즉 북한말로 국방색 복장에 테가 큰 평상모를 씌웠으며,,
장교 혁띠를 착용하고,,,,, 견장색갈은 인민군과 달리 푸른색이었습니다.
1945년11월에 <북조선 행정 10국> 이라는 명칭으로 첫출발을 뗀 현재의 보위부는 ...
1948년 9-9일 북조선 정부수립과 동시에 <북조선 내무성> 으로 편입이되면서..,,
처음에는 <특수정보처> 로,,,그다음에 < 정치보위국>으로 명칭을 바꾸었죠.
그때부터 1973년 에 정식 <국가정치보위부>로 독립할때까지 내무성소속의 한개 국으로 존재합니다.
그때에 남북군사분계선을 지키던 3,8경비여단도 북한내무성 산하 로서,,, 인민군복장은 입었지만 어깨에 같은 파랑견장만을 달았었죠,
좀 길어졌지만,,,결론은 전쟁당시는 정치보위원들도 북한 내무성의 한성원으로서 ,,,,
기본 사복을 입었거나 정복을 입을 당시에는 파랑견장이었어요.
이런 것은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도 극소수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정보인것 같은데.
옛날에 정치보위원들이 내무서에 속해있었다는 것도...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1 18:16:25
서당개 많이 주어 들어도 (개 자는 안된다 해서) 멍멍새끼 밖에는 못되는 씁쓸한 현실이요...ㅉㅉ
- ㅋㅋㅋㅋㅋ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1 18:16:50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49:51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1 19:06:3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08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15:36:13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14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17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2 20:45:3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21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15:35:50
더 깊이 알고 다시 올려 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틀린것도 있구요.... 다시 정확히 알고 올려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사실은 북한에서 국가정치보위부 란 말을 쓰지 않은지 오랩니다.
그것도 좀..나열하세요.
그러면 정말로 천재로 인정할게요..
해방되여 보안서가 생길당시 내무성과 보위부를 총괄하는 국장이 누구였나요?
그런 상식 따위나 좀 알면 천재 되는가요?ㅋㅋㅋ
이봐요,,, 바보님,,, 위의 질문자는 ,,,정치보위원들의 복장을 질문했지...보위부의 역사를 질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겠어요??ㅋㅋ 그래서 내가 님을 바보라 하는거죠,
...............
그리고 북한에서 <정치보위부>라는 말 안쓰는거 온세상이 다알아요,
1973년에 정치보위부 단독기관으로 출발을 했지만 당시 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의 건방진 만행은 김정일의 심기를 대단히 건드렸죠,,,,
당시 정치보위원들의 위세는 당일꾼들 마저도 벌벌 떨게하였죠,
그래서 김정일이 1982년초에 김병하를 체포하려했으나 기미를 알아차린 김병하가 권총자살을하면서,,,,그것으로서 <정치보위부> 시대는 끝이 나죠,
그후부터 김정일의 오른팔과 같던 이진수를 부장으로 하는 <국가보위부> 시대가 시작됬죠...
그러나 그때로부터 5년 후에 이진수가 지방출장에서 밤나무 가스를 마시고,,급사를 하죠 ,,
또 그후부터는 부장을 임명하지 않고 김정일이가 부장을 한셈이죠.
그러다가 1993년 초에 <국가안전보위부>로 개칭을 하면서도 부장은 없었죠,
그후 제1부부장이나 같던 사람도 김정일 눈밖에 나면서 반역자로 몰려서 1998년에 자살을 하죠
...................
좀 겸손하세요...
사실 북한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가 질문자에게 답을 안해주기에...내가 아는것 만큼 답해주었는데,,,그게 그리도 눈에 거술리는 이유가 뭐죠?
그러지들마요,,,, 사내들이란게,,,,
내가 잘모르든가,,,틀린것이 있으면 더잘 아시는 분들이 정정해 주면 될것아닌가요?
쪼잔하게,,,질투나하면서,,,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3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35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52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54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59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9-24 22:50:5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10-04 10:59:41
군과 사회의 정치보위사업을 지휘하고있다
우리는 북한의 정치보위기구가 바뀌여오는 배경을 잘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쏘련의 내무상이 메리야 였고 이후에 안전상은 제르젠쓰끼였습니다
쏘련의 내무상 메리야는 정보.정탐일군을 특별한존재로 꾸리고 안전상 제르젠쓰끼 역시
로숙한 사람들로 꾸렸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2중3중의 정보.탕정망을 구축하여 쏘련의
정탐을 모조리 색출하였다
또한 일본의 36년간의 강점시기 정보통치 정보정탐 전술 이모든것에 대한 집합적인 정보 정탐 전술을 북한이 구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부터 꾸바의 최신식 정탐 반탐 과학기술기재를 도입하여 이분야의 현대화에
자금을 탕진하여 왔다
이미 무력부장 김창봉사건 이나 로므니아의 2인독재자 차우세스끄의 총살사건을 통하여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가장중시하였던것은 독일 히틀러의 정보정탐 과 케스타포와같은 충신들을 배양해내는 것이 였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아침첫일과의 첫번째가 보안국장이보고하는 대내외 정치첩보자료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유지되여 오고있는 이유는 2중3중의 정보망입니다
1998년대에는 말단 정보망까지 마비될수있는 지경까지 갔었다
이후 국제식량지원으로 군리 보위부까지 식량수급이 가능해지면서 회복이 되였습니다
만약 정보원을 움직이는 말단 보안원이 자기생활에 쪼들린다면 정보망이 하나둘 마비될것입니다
말단보안부는 정보망을 움직이는 기사라고 할수 있는데 이것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결국 검과방패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충신이라하여도 자기생활에 쪼들리게되면 충성심이 나올수없는것은 당연한리치이고 결국 변할수밖에없는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래서나는 남한이나 세계가 식량지원을 하는것을 반대합니다
말단정보통치기구까지 먹여살리고나면 일반주민에게는 돌아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의 통치기구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로 끝나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