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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심각한 경제난 1968년부터 시작"
동지회 571 2006-09-18 13:43:13
군사적 불안과 가뭄, 연료 부족 등으로 인해 북한이 1968년부터 심각한 경제난을 겪기 시작했다고 분석한 동독측 자료가 공개됐다.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7월까지 동독 ‘당과 대중단체 문서보관기관’ ‘국가공안국 문서보관소’ 등이 보관하던 북한 관련 비밀 문서와 사진을 수집해 ‘독일지역 북한기밀문서집’(도서출판 선인)으로 출간했다.

일반적으로 북한 경제는 1960년대의 ‘자립경제 건설’로 일부에서 제3세계의 선두주자라 불릴 정도였으나 1970년대 후반의 경기 침체 등으로 한국에 역전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 중 주 북한 동독 대사관이 1969년 2월 6일 작성한 ‘1968년 북한의 경제발전에 관한 정보’는 “푸에블로호 나포와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으로 군사 정세가 첨예화하자 방어시설, 포병 진지 건조 등에 추가 재정, 철강·시멘트 등을 우선적으로 투입했고, 부분 동원령이 내려져 가뜩이나 빠듯한 인력난을 심화했다”고 기록했다.

또 가뭄으로 전력 생산이 감소해 화학·제철 공업은 기존 용량의 50~60%만 가동할 수 있었으며, 중국으로부터 코크스·코크스탄이 불규칙하게 공급돼 주민들에겐 엄격한 전력 공급 제한조치가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문서는 “1968년 한 해 동안 공업생산에 별 진전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함흥 재건사업과 같은 동독·북한의 협력사업, 1960년대 중·소 이념갈등에 따른 외교 변화, 경제 정책과 정치 동향에 관한 1차 자료들을 수록한 이 문서집에는 당시의 사회 정세를 담은 ‘정보 보고’도 많다.

대사관의 1965년 6월 24일자 보고는 “1주일 전에 남포에서 남자 네 명이 절도·치사·간통과 아내 독살죄로 공개 처형당했다”고 적었고, 10월 28일자에선 “주민들이 끊임없이 높은 물가에 대해 불평하며, 엔지니어와 학자들이 본업 외에 책을 저술할 경우 더 이상 보수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12월 3일자에선 “한 북한인은 ‘해마다 봄철에 생필품 조달이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통일을 통해 식량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통일연구원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nk.조선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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