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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무용수 조명애, 약 사먹을 돈도 없어서…
주성하기자 2009-09-25 09:49:47 원문보기 관리자 1242 2009-09-30 02:13:34
조명애.

남한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2002년 8월 15일 한민족 통일축제 한마당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인기 스타가 돼버린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소속의 예술단원.

이후 한국에선 조명애 팬클럽까지 생겨나고 이런 인기에 묻어 그녀를 광고 모델로 쓰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결국 그녀는 이효리와 함께 애니콜 광고를 찍었다.

조명애는 분단이후 남한에서 최초로 광고 모델로 데뷔한 북한 예술인이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조명애의 인기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07년 남북합작드라마 ‘사육신’에서 주연 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조명애의 유명세는 이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그녀가 병색이 완연한 환자가 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아래 글은 조명애를 잘 안다는 한 탈북자가 서울에서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방송인 ‘자유북한방송’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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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자다.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北무용수 조명애, 애니콜 광고모델”, “남북 합작 ‘사육신’ 촬영...”


올해 26살인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그가 몸담고 있던 “평양 민족예술단”의 무용 훈련장에서였다.

친구였던 예술단 무용지도원을 찾아 갔을 때 처음 알게 된 그녀는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고, 여타의 행사장에서도 어깨를 스칠 때가 있었다.

2005년 그녀가 남한의 유명 여배우와 광고촬영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었던 말이 있다.

외국에서 광고 한편 찍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된다는데...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누군가가 무슨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가며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머쓱해 있는 나에게 다가와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꼭대기 놈들이나 좋아할 일이지.”

본인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광고촬영 후 국가로부터 그녀가 받은 혜택은 가정용 전화기가 전부였다.

180달러라는 설치비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가정용 전화기라지만 당시에도 국가가 너무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2008년 6월, 마지막으로 본 그녀는...병약하고 시름겨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디 아파?”

그녀를 대신해서, 위장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친구가 말해 주었다.

남조선과 합작 드라마 찍을 때 생긴 위병이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 곳곳에 완연한 병색이 돌고 있었다.

그럼 약이라도 좀 사 먹어야지?

그리고는 또다시 공연한 소리를 했다싶어 혀를 깨물었다.

약 사먹을 돈이 있으면 왜 저러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쳤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 합작 드라마를 찍고서도 명애가 받은 돈은 일 푼도 없고 그가 소속된 예술단에 일제 중고 버스 한 대가 “수고한 대가”로 공급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금도 앓고 있을 명애가 이곳 남조선에서 “청순, 행복, 발랄”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개인의 가치와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북한 당국의 행태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이평평 (2009년 3월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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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애는 남한 매스컴에 등장한 첫 북한 연예인이다. 한국으로 치면 남한에서만 활동하는 연예인이 아닌 일본에서 크게 뜬 한류스타 정도라고 할까.

그런 연예인이 저 정도 처지라면 이곳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북한에서 살았던 내게는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은 원래 그런 곳이었으니까.

물론 조명애가 뜬 것이 대단한 미인이라서보다는 운이 좋았던 영향이 크다. 미모로 따지면 북한엔 조명애보다 예쁜 여성들도 많다. 다만 성형에 질려있고, 순수함에 목말라있던 남한의 젊은이들에게 그녀의 자연적 미모와 청순함이 그 순간 어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찌됐든, 그녀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타가 됐다. 그러나 남한에서 받은 인기는 북한에선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북한의 스타의 기준은 다르다. 김정일의 눈에 들어야 대접도 받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뜰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냥 외화벌이용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조명애는 김정일이 어여삐 여길 스타일은 아니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여러 연예인들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그러니 제 아무리 남한에서 유명하다 해도 약 사먹을 돈도 없는 처지일 수밖에 없다.

설치비가 180달러인 전화기를 집에 놔준 것도 당국이 광고출연에 대한 대가로 지불했다기 보다는 남북 합작 드라마촬영 등으로 오라가라 할 일이 많으니 부르기 쉽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추억하는 남한의 팬들이라도 많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땅을 잘못 골라 태어나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아까운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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