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도적질 해보셨나요?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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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도적질 해보셨나요? 제가 대학때 1994년에 교도 나갔어여 6개월 현역군인들 한테서 군사정치 배우고 예비역 소위가 되죠 근데 제가 배운건 군사 정치가 아니구요 구타하는법 벌서는법 거기다 저기 저사람들처럼 도적질 하는거 배웠어요 참 저의 대학은 고등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범대학인데요 우린 6개월 동안 저렇게 물자 훔치려 다녔어요 안훔치면 중대장이 산꼭대기 까지 돌격 앞으로!하죠 우리는 9군단 7대대 5중대에서 교육받았는데요 첫날에 배낭에 가지고 갔던 엿덩어리랑 과자랑 콩닦은거랑 사관장 한테 다 빼앗겼어요 그리고 중국산 봉지크림도 다 빼앗더라고요 군인은 화장 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날 공교롭게도 보일러 불이 꺼져버려서 ..... 그날 첫 가 나무줏기엿어요 헐헐 나무는 다 찍고 번데머리 중대병실주위에 나무란 절대 없죠 그때 중대장이 하는말 가리키는걸 보니 사택의 울바자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우리 소대는 당연히 다 뜯어왔죠 못뜯어온 소대는 그날 반죽음되었고 일주일동안 변소 쳤어요 그담은 갈마화차대에 내려가서 석탄 훔쳐오기, 차가 멀쩡히 서있는데 고무관 가지고 바께쯔 가지고 기름 뽑아 내기, (그때 고무관에 입대고 그거 빨다가 휘발유 많이 먹었음) 맞은편 산중턱에 있는 남자 중대가서 쌀창고 털어내기, 식기 걷어오기 아유 완전 이건 도적무리에요 참고로 저는 여자 입니다 참한 여대생들 이렇게 도적놈으로 양성시켜놓고 교육은 무슨 교육입니까? 추억하고 싶지 않은 인생입니다 다음 생이라는게 있다면 절대 북한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다시 북한사람으로 태어나라고 한다면 전 차라리 아프리카 원숭이로 태어나겠습니다 지금 여기 저의 주변에 있는 분들은 북한 생활을 이야기 해달라고 자주 청합니다 더불어 말씀드리면 여기서 저는 완전 요조숙녀로 평가 받습니다 여기 저의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추억 말씀드리면 저를 어떻게 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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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1사대 아니면 2사대 ???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도 고향이 청진입니다.
특히 사대하고 인연이 깊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김에 한 번 님을 추정해 보았습니다.ㅋㅋㅋ
저도 88년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대에 추천 받았었는데 안 가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공산군 나가서 10년 세월 죽게 고생만 하다가 왔습니다.
저의 집은 1사대 근처입니다.
님의 올린 글을 보니 9군단 교도대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군요.ㅋㅋㅋ
님의 글을 보니 2000년도 내가 중국으로 도망쳐 나올 때 길가에서 본 인민군 여자군인들이 생각이 납니다.
다치면 똑 부러질 것만 같은 연약한 목에 광택이라곤 전혀 없는 노리끼리한 뿌연 머리카락, 바람에 터서 더덕때가 앉은 얼굴, 게다가 목에 쇠버짐까지 돋아 정말 여자군인이 아니라 여자 꼬제비 같더군요.
너무 여위여 옷까지 헐망해져 흡사 허수아비 연상케 하고, 한창 부풀어 있어야 할 가슴은 아무리 살펴봐도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구요.
남자 군인들보다도 더 가련하고 측은하게 보여 속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탈북자 요조숙녀 은희님도 한 때는 그런 모습이였을까요?ㅋㅋㅋ
갈마화차대, 9군단 교도^^ 허...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봅니다.
암튼 잠시나마 고향추억을 하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영국에 가 계시네욤?
저는 97년 4월에 교도를 나갔었는데 우린 혼성중대라 도적질은 안햇지만,, 거의 그정도는 갓었죠,,,
10일정도를 한끼도 빠짐 없이 밥은 전혀 못먹고 속도전가루 떡만을 먹었엇는데 전혀 질리지 않은거예요,,,
왜 그럴가 하고 생각을 해 보앗는데 그떡을 한번도 배부르게 먹은적 없는것입니다,,,
손이 다 트고 6월까지 솜옷을 입고 다녀야 했고ㅡㅡ녹이 팍쓴 철통에 담겨진 물을 세수 대야로 푸기도 하고 비물을 그대로 맞은 대로 마시고 해도 어떻게 병이 안나고 견디였는지 의심입니다,,
ㅜㅜㅜㅜㅜ
저는 평양고사포사령부에서 교도해서 평양 만경대구역 대평리와 남포 강서군 경계에 나가 있었죠.
우린 도둑질을 2~3번 나갔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농사짓는데 필요한 쟁기를 얻으려 나갔었는데... 남의 집 창고 털이범으로 전락했죠.
그런데 저는 체질상 도둑질을 못하겠더라구요.
반갑습니다.
제 여동생은 청진1사대, 지금 오중흡사대 졸업했어요.
내 동생은 사봉 굴다리 옆인가에 있는 고사포중대에서 교도를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교도의 추억이 떠올라 댓글 남깁니다.
네 북연님 저의 나이는 33세 맞아요. 어느덧 나이도 훌쩍 넘어서 이제 조금있음 사십대가 되겠죠? 뭐 인생 다른거 있나요? 바다위에 쪽배 신세라 가라앉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머나먼 뭍까지 슬슬 거슬러 가야겠죠? 다들 그때의 그 추억을 조금씩 하면서 사는지 아님 넘 넘 시간이 없어서 때로 기억조차 잊고 사는지 궁금해요. 저의 주변 사람들은 북에서 대학생활은 어떻게 하는건가고 자주 물어요,\\. 그래도 이런말은 감추는게 낫겠죠? 정말 아름다운 시절이였었는데. 그런데 그때는 다들 도적이였었던거 같애요. 장마당에 나가 까까오하나를 사먹는데 앞에서 이상한 눈빛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먹칠한 얼굴에 손등까지 까매서 가슴이 콩당콩당 뛰였죠. 그래서 사먹던 까까오를 뒤로 살짝 감추고 지나치려 하는데 갑짜기 뒤에서 획-----하고 덮쳐 달아나더라고요.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참
기억하기싫은 추억들이죠?
지금도 그럴거에요 우리 고향은. 우리가 더 좋은 옷을 입을때 우리가 더 맛있는걸 먹을때 그리고 우리의 주머니에 돈이 불어날수록 그때의 추억은 점점 가슴아프게 몰려와요
다들 그렇죠? 열심히 돈을 모아서 통일되면 각자 자기들의 고향에 부모잃은 고아들 방랑자들을 모아서 몸도 마음도 깨끗이 목욕시키고 공부도 시키고 세상을 참되게 가르치는 교육자로 다시 살아납시다
지금은 모두 교편을 놓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본분을 잊지 맙시다
저도 가끔 저의 본분을 잊고 있을때 마다 여기 들려서 마음의 채찍질 다시 한번씩 하고 돌아 갈게요
전국 각지에서 탈북하신 사대출신 여러분 언젠간 우리가 설자리 확실하게 있을겁니다. 화이팅.
이제 조금 지나면 40대가 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서는군요. 휴---
너무 무의미하게 세상을 산 것 같은 느낌이 밀려드는 건 어찌할 수 가 없습니다.
님이 애기한대로 길 잃고 떠도는 쪽배신세라도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만족하고 열심히 인생의 노를 저어보렵니다.
쓰라린 추억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채찍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아니면 그곳에 교도를 나가신것 뿐인가요? 하긴 저도 평양시 중화에 교도나갔었으니..
앞으로 하시는 일이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땐 그렇게 해야만 사는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도둑질을 시켜놓고 6개월 후엔 뻐젖이 군사교육 졸업증과 예비역소위 칭호를 주더라고요
피------ 지금은 아무 쓸모도 없는데
암튼 고사총 밑에 앉아서 비를 맞던 잊지못할 추억이랑 반공호에 들여다 놓고 곰잡듯이 젖은 나무불을 피워놓고 연기질식 시키던 중대장얼굴이 눈앞에 선 한네요
암튼 우리중대는 중대장이 21살에 입당하고 주변의 갈마 비행장, 108부대 806훈련소등 군부대 남성군인들속에서 명칭이 악마 중대로 소문나 있었죠 지글지글한 그 중대장동지 - 지금은 39살 완전 아줌마겠군요 지금의 모습 좀 봤음 원이 없겠어용 ㅋㅋ
학교에서 글뒤지로 소문난 저도 그때는 정치에 물들어서 청춘과 위훈을 부르짖으며 돌격대로 탄원하였어요.
영화 <우리는 청춘>에 홀딱 반해가지고 저도 위훈을 세운다구요, 참 어처구니가 없죠? 근데요, 나가서 보니까 실지는 그게 아니더라구요. 자신이 채념하지 않으면 정말 한순간에 바보가 돼 버리고, 또 조금만 어리버리하면 당하기 일수고..... 서로가 도와주면서 일하는 그런 돌격대가 아니라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모든것을 묵살해야 하는 그런 돌격대더라구요. 덕분에 도둑질도 많이 했어요.
뭐, 다 아시잖아요, 군대와 돌격대는 막강의 도적무리, 강도무리들이라는걸.... 거기서 제가 나중에는 소대장까지 했지만 그만큼 대원시절부터 많은 어려움과 많은 도둑질과 ...... 더 말 안해도 알겠죠? 하긴 거기서 안전하게 살아남을려면 자신부터 강해야 하고,,,,, 특히 남자보다 더 강해야 했어요. 그만큼 노력을 해야죠.
다들 그래서 돌격대로 가면 여자들은 다 배린다(전 여자들이 배린다는 말이 걍 그쪽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같이 도둑놈이 되고 여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강도질에도 같이 나가야 하고,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입담도 세야하고....)고 하고, 돌격대가 있는 주변의 사람들은 증오의 눈총들을 쏘면서도감히 두려워 말도 못하고,.,,,, 걍 눈감고 아웅하기 일쑤였죠. 위에서 평화님이 속도전 가루 얘기를 하셨는데 한참 웃었어요. 제가 이번에 북한을 도와 주면서 엄마에게 속도전가루를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어요, 추억이 생각나서 지금도 그때의 그 맛인지 되게 궁굼해서요.
그랬더니 그 말을 집에 해가지고 울집 온 식구가 한바탕 웃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통쾌하게.....
제가 그정도로 속도전가루하고 인연이 깊어요. 쥐처럼 먹고 소처럼 일을 하던 우리로서는 배고품을 달래기위해 집에서 보내오는 속도전가루를 누가 볼새라 자신의 장앞세서 장문을 양 옆으로 막고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비벼 먹었었어요. 냄새는 온 중대 병실에 다 풍기면서 말이죠.
ㅋㅋㅋ 그때 추억이 나서 금방 평화님의 글을 보고 혼자 웃었어요. 그 시절에는 모두 도둑놈이요, 모두 강도라고 생각해요.
근데요,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사회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자신의 선량함은 뒤로 한채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마음에 없는 그런 행동을 하잖아요.
그건 은희님이나 우리들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우릴 그렇게 만든거죠.
참고로 여기 나와서 걍 도둑질하고 강도질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북한사회가 썩었기 때문이죠.
휴ㅡㅡㅡㅡ 제가 글을 많이 썼죠?
말을 하자면 끝이없지만..... 하여튼 잠깐의 추억이 정말 묘했습니다. 참고로 저도 청진 태생입니다.
108은 "배고파"로 806은 "날공육"으로 ....
참 이름도 그럴듯하게 달아놓고 흔하게 부르면 지내던 시절이였었지요.
원산사대졸업생이시면 집도 원산? 지금은 어디에 사시는지?
?? 제가 이상하게 문제의 포코스를 몰아가는 것 같은데?...
암튼 다른 의미는 없고 그곳과 많은 인연이 있기에 드려본 말입니다.
그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꿈님이 반가운게 아니라 꿈님이 하신 단어가 정말 반가웠어요.ㅎㅎㅎ
<배고파> <날공육> 이거 강원도에서 놀지 않으신분은 잘 모르는데?
혹시 안변의 날공육 훈련소는 좀 아시나요? 네 저의 집은 원산
그리고 지금은 united kingdom 에서 삽니다. 반가웠어요.
근데 어떻게 United Kingdom에서 사시죠? 영국인가본데,,
무슨 일이 있나보죠?
저는 한국에 온지 9개월밖에 안됬는데 은희님은 언제오셨는지?
궁금한데요?
선배로써 앞으로 많은것을 가르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저의 메일주소는 <a href=mailto:kangr-81@hotmail.com>kangr-81@hotmail.com</a>예요
아무쪼록 자녀분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 아울러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