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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경제발전 신화는 집단적 착각이었다.
Korea, Republic o 민주주의 4 547 2007-01-23 03:52:25
박정희 경제발전 신화는 집단적 착각이다 !!!


이번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실정의 일면이, 문서증거로서 드러났다. 즉 그가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저거들 쌈지돈인양 몽땅 받아내서는 - 갈취라는단어에 가깝다 - 정권 맘대로 썼다는 것이 밝혀졌다. 거의 구걸외교를 해서 말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박정희 비호세력은, 박정희가 그 돈으로 국가경제를 발전시켰으니 괜챦은것 아니냐는 낯뜨거운 옹호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 논리를 펴는자들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경제의 발전은 박정희가 아닌 ..개인 청구권 대상자들 - 보상금의 수령자격이 있는 일제 피해자들 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래글은 이전에 포스트 했던 박정희의 경제발전 공적론을 반박하는 글을 재수정 하여 올리는 글이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의 경제발전 신화의 세뇌로 부터 깨어나서 그 가 오히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오히려 지체시켰던 부분도 많았음을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박정희가 남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라(경제)를후퇴시킨 군사독재자가 될 뻔 했으나 그나마 우리나라 국민들, 기업인들 역량으로 나라(경제)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남미에서 처럼 했다면 저항정신이 강한 한국에서 곧바로 권력을 잃었을 것이므로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그나마 경제에 신경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 분야에도 박정희는 功 만 아니라, 매우 엄청난 과오를 많이 범했는데 우리는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우리경제가 지금도 후진국에 잇을것이라는 근거없는 신화적 착각에 세뇌되어 있다. 그건 사실이라기 보단 집단적 착각이다. 실제적인 근거를 나열하겠다.

1)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창작품이 아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5개년 계획은 이미 장면정부때 기획되고, 완성되었던 , 그러나 5.16쿠테타로 실시되지 못한 계획이었다. 장면정부때의 내각 구성은(국방부 장관을 제외하곤) 정말 엘리트중의 엘리트들이었고, 그들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박정희보다 더욱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둘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2) 출발부터 한국경제를 망치고 시작한 박정희
박정희 정권(민정시작)은 출범때부터 이른바 공화당 4대 의혹 사건이니 하면서 각종 부패, 부정사건을 일으키면서 시작했다. 특히, 그중 핵심인 증권파동_ 증권시장 조작, 파탄이 공화당 창당자금 마련을 위해서 벌였던 것은 이리 오래전에 밝혀진 일이다. 그 증권파동은 자본주의 경제운용의 중심축중 하나인 우리나라 증권시장을 파탄내면서 시작했다. 아마도 자국의 경제 흐름의 중추인 증권시장을 권력을 장악한 그 국가의 정부 여당이 조작해서 (지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위해 ) 파탄시킨 예는 세계 역사상 없을것이다.

3) 대일 청구권 문제
박정희 정권 초기 (군정기간 포함)에 그들이 증권파동,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부작용등으로 파탄냈던 경제가, 60년대에 그나마 성장을 기록하였던건 엄청난 별외소득(?) 때문이었는데.. 그건 미국의 지원금 이나 AID자금이 아닌, 박정희가 일제피해 청구권자금을 일본으로 부터 받아내서는 써대면서 생색낸 돈이었다.
일제가 35년간 강점기에 착취했던 조선인 노동력, 국토자원에 대하여 박정희가 청구권자금 이랍시고 ( 배상이란 용어도 못썼다) 받아낸 그돈은 그러나 사실 정권의 돈이 아닌 일제때 피눈물을 흘린 국민들의 돈이었다. 그 협상도 매우 졸속으로 처리되어 제대로된 배상을 못 받았고, 나중에 징용되었던 사람등 개인들이 배상받을 길도 막은 한심한 협상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이런 배상금 졸속처리는 알고보면 "역적 "조폭 갈취단"에 가까운 짓이었다.

4) 과다한 정치비용 문제
박정희는 선거때 마다, 그 들의 부패, 비도덕 행위로 말미암은 비인기를 만회키 위해 엄청난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그 정치비용, 선거비용이 엄청나서 71년 대통령선거 후엔... 지 들 스스로 이렇게 선거몇번 하다간 나라망한다면서 유신체제로 갔다... 참내 !
박정희가 첫 민정이양,대통령선거에서 (윤보선씨와 경쟁한) 증권파동으로 모은 돈까지 쏟아부어가면서 행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기지 못하자, 선거 개표소에 정전을 일으키면서 결과를 뒤집기에 이르렀다. 그런 부정불법행위에 가담한 놈들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 돈을 주었겠나 ?

5) 세계에서의 한국 이미지 추락, 수출등 경제 악영향 문제
박정희 정권의 시작은 그 자체로 한국 경제의 악영향을 몰고왔다. 쿠테타의 직접적인 경제에의 영향은, 쿠테타 후의 즉각적인 미국의 대한 경제원조중단, AID 한국지원 중단을 몰고왔다.

박정희 시절은 물론 지금도 미국, 일본, 독일은 세계경제 3강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요즘엔 중국이 떠오르고는 있지만....그런데 박정희 시절엔 그 세계경제 대국들과 국민들이 우리나라를 거의 혐오에 가까운 눈으로 봤으며, 우리나라 이미지 및 그나마 몇안되는 상품들의 이미지는 거의 세계 최악 그 자체였다. 물론, 우리나라가 전쟁등의 영향을 받은 후진국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이미지를 최악의 이미지로 망친 정권이 박정희다. 독일과는 동백림사건, 일본과는 김대중 납치사건, 미국과는 코리아게이트.. 유신쿠테타 등으로 말이다. 특히, 독일은 우리와 비슷한 분단국가로서, 우리나라 광부, 간호사들을 취업시키는등 우리나라를 도와주려 애썼던 나라인건은 여러분들도 잘 알것이다. 미국이 (박정희가 쿠테타로 집권한 걸 트집잡아 ) 경제원조를 중단했던 시기에도 서독이 경제원조등으로 우릴 도왔다는건 정말 감사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고마운 나라에 감사는 못할망정 그 나라에서 (그 주권을 침해해가며 ) 공작원들을 보내. 유명 작곡가 윤이상씨등을 납치한 박정희 정권의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짖거리 때문에, 독일 정부의 대한 경제원조가 뚝 끊기고, 양국 교역관계가 망가진건 정말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준 일이다.

일본에서의 김대중 납치는 우리 정부가 비굴하게 일본 정관계 인사들에 로비해가며
굽신거리게 만든건 물론, 그 국민들이 한국 과 한국제품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그 이전 활발하던 일본기업들의 한국 투자가 일본내 여론 악화때문에 주춤거렸다.

세계 정치/경제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한국을 부도덕/부패국가의 대명사로 만든 즉, 부패를 수출까지 하는 나라로 각인시킨 " 코리아게이트"는 더 설명치 않아도 한국의 발전에 치명적 타격을 준 사건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한다.

6) 국유재산 헐값매각
박정희 이전에는 우리나라 국유지 비율은 세계 다른나라들에 비해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았다. 일제의 토지등이 국유화 된 탓 등인데.. 이전 정권들이, 특히 박정희 정권이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 팔아치워서, 지금은 뭔 도로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실제 건설자금이 아닌 토지보상비로 거의 다 나가는 형편이다. 국토의 균형적 건설을 위한 SOC 투자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고, 엉뚱한데(토지구입에 )거의 쓰이도록 되어있고, 그 주된이유가 박정희의 (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국유재산 헐값매각, 절취에 있다는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박정희 정권이 국유재산 매각, (국가가 직접개입한 ) 부동산 투기를 한건 ,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시리즈 "서울만들기"편 글들에 서울시 간부를 지낸 모인사의 서울시 관련 기록에 잘 나와있다. 하도 그런 일을 자주하다보니, 그 인사는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얼마나 심각한 국가적 부정부패 사건인줄 모르는듯,'1971년 선거 후에 서울시엔 예산도, 쓰기 위해 팔 자산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기록하고 있다. 그 만큼 정부, 지자체가 박정권의 선거를 위해 국가예산, 재산을 쏟아부었었음을 말해준다. 대통령 비서관 오원철이 개입한 부동산 투기 관련 진술은 더 언급하지 않겠다. 입이 더러워 질까봐...
( 중앙일보 서울만들기 시리즈 링크는. http://news.joins.com/series/general/200308/2901/)

7) 한국 문화산업의 결정적 장애를 조성한 박정희
요즘 한국 영화가 뜨고 있다. 쉬리이후..... 정말 거센 한국 영화 돌풍이다. "겨울연가"로 인한 한류열풍도 뜨겁기 그지 없다.. 그런데 한국 영화가 70년대 이전 .. 그러니까 50, 60년 대에도 세계에서는 몰라도 아시아에서는 최상위권을 이뤘었던건 아시나 ? 오발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등은 아시아 영화제를 휩쓸었었다. 그런데 그런 한국의 문화적 능력, 창작능력이... 결국 문화산업이 박정희 시기 - 특히 유신체제 동안에는 거의 암흑기라도 해도 부족할 시기를 맞고 말았다. 정치적 검열 과 군사문화적 획일성 강요 - 예를 들어 장발 단속, 금지곡 양산 같은 시대상황에 의해 창작의 자유가 훼손되니.. 문화산업이 잘 될 리 없었다. 그 경제적 피해도 결코 작지 않다.

문화, 영화계의 톱스타들이 트렌드를 만들고, 국가 산업이나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서 특정 산업, 기업, 상품의 흥망을 좌우하는건 지금 만이 아니라 그때도 마찬가지 였다. 그 규모는 작았을지 몰라도 말이다. 2003년도 대한민국 영화대상인가 하는 영화제에서 -- 김대중 정권에 매우 비판적인 신상옥 감독이 특별상을 받을때 " 김대중씨에 의해 검열이 없어져..... " 라며 한국 영화영상 산업의 부흥과 한류열풍의 근저가 검열 폐지 와 창작자유 보장에 의한것임을 인정하는 걸 들은적 있는가 ? 꺼꾸로 박정희 정권의 검열등은 한국영화-다른 문화산업도 ,그리고 그 문화산업의 도움을 받았을 ..다른 산업도 모두 질식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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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예를 든 몇가지 문제만으로도 박정희 정권 과 그 정권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태가 우리 경제 발전의 암초였던걸 알 수 있을것이다.
그런 박정권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우리 경제에 발전이 있었던건 박정권의 몇몇 바른 선택 ( 경부고속도로 건설 ) 때문이 아니라 , 거의 착취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못받았던 노동자들과 베트남에 파견되어 희생된 파월장병들의 피의 댓가, 일제때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등... 박정권에 의해 희생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몫으로 돌려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시대 '경제발전'을 보는 시각에 있어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이 말한 아시아 경제성장의 근본적 한계인 < 생산력 투입의 증대 에 의한 단순 생산증대 > 부분이 많은걸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공적을 모두 비난,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 그 시대의 경제적 발전을 박정희의 덕인양... 또 잘하기만 한 양 신화화 하는 수구보수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좀더 차분하고 세밀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공과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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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다른생각 2007-01-23 12:33:09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발전을 복잡한 이론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냥 배부르고 따뜻하면 되는거죠. 독재자 어쩌구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은 배부르게 잘 살고 있습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같은선상의 비교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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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공 2007-01-23 14:30:49
    그당시 경제발전을 박정희 혼자 일궛다는 것은 편견이지만, 경제발전을 이끌었다는 건 편견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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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ㅉㅉ 2007-01-23 15:31:11
    독재자도 저렇게 이쁜 독재자가 어딨더냐??
    망할사람아!! ㅉㅉ
    당시 지금의 아버지.어머니들 즉 서민들의 어버이나같은 존재였단다..
    경제발전의 엄청난 성과를 독재자라는 이유만으로 깍아내리고 흠잡는다는건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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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장산 2007-01-23 15:39:34
    이 글을 쓴 민주주의씨는 어떻게던지 박정희를 음해하려고 혈안이
    되었군요. 김대중,김정일,노무현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킵디까?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실생활에 적용해 소용이 없으면 헛된 논리에
    불과합니다. 이론은 공산주의이론이 참 이상적이지요. 그런데 왜 다 망했나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이론이 성공할 수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필리핀은 일찍 민주주의를 시작했는데 왜 아직 후진국인가요 ?
    한국의 박정희나 싱가폴의 이광요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론 보다는 결과가 좋아야 됩니다. 결과가 좋은 사례는 원칙으로 추앙받기 쉽습니다. 박정희의 성공사례는 이론과 주의를 초월한 실용주의라고나 할까요. 중국의 등소평의 "까만 고양이건 흰고양이건간에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 라는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읍니다.
    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닙니다. 배고픈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가 없읍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경제적인 뒷받침과 지식수준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활성화 되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시작했지만 논쟁으로 일관하다 다리 하나 건설 못하고 빈곤속에 세월만 보냈읍니다. 배를 골으며 민주주의를 계속해야 하나요 아니면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방법이라도 해서 살 길을 찾아야 하나요? 개똥이라도
    먹고 죽을 사람이 살아 나면 그것이 바로 명약입니다. 박정희가 비록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어느 정도 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를 안정시키고 경제발전시켜 결과적으로 경제적 뒤밭침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융성하게 된 것이고 이렇게 여기 글쓴 민주주의씨처럼 박정희를 비난할 수잇는 환경까지 형성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시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먹히지 아니했으면 민주주의를 한다는 평가는 받았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국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이 능력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발휘되느냐 못되느냐는 지도자에게 달려 있읍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김일성부자가 이끈 북한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 정주영 없는 현대조선소,현대자동차회사가 노동자들의 노력만으로 창립.성공할 수있었나요? 이것마져
    박정희의 주도아래 정주영이 따라온 결과입니다. 경제개발5개년 게획이
    장면이 이미 계획한 것이라고 ?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착수해서 성공시킨 사람이 위대하지 생각만 한 사람이 훌륭하다고 할 수있읍니까? 실제로 담배를 끊은 사람이 금연 성공자이지 생각만 해서는 담배를 끊을 수없는 이치와 같읍니다. 그리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겁쟁이 장면이 무슨 큰 일을 할 수있었을지 그의 과거 행위를 보면 알 수있읍니다.
    그리고 대일청구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박정희 정권이 모두 다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댓가로 우리나라경제 발전 밑천을 마련한 것은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시키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나를
    발전시켰읍니까? 저절로 발전되었을까요? 박정희외에 이승만, 윤보선,장면이 경제발전 시켰나요? 이분들은 하나같이 국정미숙과 우유부단한 정치로 혼란만 지속시킨 사람들입니다. 전두환,노태우는 박정희의 딲아논 기반위에서 나라의 발전은 어느 정도 국가안정에 기여헀지만 도둑질한 비난은 면키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김영삼씨는 개인의 무능으로인해 IMF 파멸을 가져온 사람이니 알만하고 김대중씨는 북한에 수조원의 돈 갖다주어서 북한이 미싸일쏘고 핵실험하게하고 집권과정 내내 친인척, 측근비리로 얼룩지게 했으니 박정희보다 잘 한게 없는 것이 분명하고 지금의 청개구리 대통령 놈현처럼 나라경제는 망하던 말던 내몰라라하고 입에 나오는 대로 무책임하게 떠드는 사람은 말 할 필요없이 박정희와는 역량과 인품이 비교가 안되지요. 박정희가 경제실정하고 여러 면에서 실정했으면 그러면 그 어느 대통령은 박정희보다 잘한 게 있읍니까? 사람마다 완벽한 사람은 없읍니다
    80%만 잘해도 아주 잘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동시대에 박정희보다 더
    경제발전시킨 그 어느 지도자가 세계역상에 있기는 있었읍니까?
    이 글을 올린 민주주의씨는 그져 박정희 험을 잡을려고 온갖 문구를 찍어와서 짜집기해놓았지만 왜 그러는지 정의가 뻔히 보이는 군요.
    이제 다음은 실수안하고 그 잘하는 김정일, 김대중,노무현의 찬양을 올릴 계획인가요? ㅉ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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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꽃지기 2007-01-24 00:31:40
    수년전 중년의 어느 중소기업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박정희는 위선자야!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경제개발계획도 사실은 장면 정부의 것이었다고.>
    비록 연배는 10여년의 차가 있었으나 나 또한 박정희에 대해서는 나름의 또렷한 인식이 있었기에 바둑친구이기도 했던 그분에게 그 일단을 펼쳐보려 했던가 보다.

    <그런가요? 아마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말씀하시나 봅니다만 5.16 당시 그 계획서가 어디 있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
    2공화국 당시 수립된 그 계획이 당시 부흥부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단 사실은 아마도 모르셨나 보다.

    이어지던 대화가 석유파동 당시 범국민적 에너지 절약운동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집무실의 난방이 금지되고 있었던 점을 지적하자 바로 반박해 오신다.
    <그거 다 국민들을 의식한 쇼라고.>
    그에 대한 재반박으로 10.26 이후 청와대의 집무실과 내실의 화장실 변기 속에서 발견된 한장씩의 벽돌을 언급하였다. 또 추가하여 10.26 당일 그가 메고 있던 다 낡은 혁대로 인해 넘버원임이 쉽게 확인되지 않았단 점을 지적하였다.

    최소한 그것들만은 박정희가 타인을 의식하여 행동한 증거들이 아니지 않으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자 곧바로 입을 여신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몰지각한 거지. 소비가 생산을 촉진함은 경제의 기본인데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거기에 걸맞는 소비행태를 보였어야지.>
    <.......>

    그 순간부터는 내가 입을 닫았다.
    아무리 현대가 다원화 시대라 하나 억지논리까지 들어줘야 할 시간도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어 보여서였다.

    많은 사람들은 2공화국이 의원내각제였단 점을 들어 민주정치가 마악 꽃피고 있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면서 장면은 5.16의 희생자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수년 전 어느 대통령은 그에게 사후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었고.

    우선은 제 용어의 일반적 정의부터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민주정치란 무엇일까?
    당시 한국이 처했던 상황을 감안할 때 그때 정치의 최우선 지향점은 무엇여야 했을까?
    혹자는 국회의원들 상호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협의가 민주정치의 시작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으리라.
    국리민복 위한 실천은 없고 의견만 난무한 것이 민주정치였을까?
    하지만 진정 민주를 들먹이려면 당시 대다수 국민들이 처했던 굶주림의 해결이 정치의 최우선 과제여야 하지 않았을까?

    당시 실질적 국가수반였던 장면 총리가 5.16 당일 보여준 행동은 훈장감일까 징역감일까?
    역사는 가정법 없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냉철히 판단함이 합리적이리라.
    당시라면 6.25가 끝난지 불과 얼마 후였고, 휴전선에선 남북한간 국지적 무력충돌이 심심치 않게 발생되고 있었을 때다.

    쌍방 지도부의 합의에 의거하여 한반도에서 형식적이나마 남북한간 무력충돌이 멈춘 것은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72년 7월 4일이니까.

    5.16 당일 국가수반 장면은 외침으로 인한 국체의 위기가 아닌 내란으로 인한 정체의 위기시에 국가 영도를 포기한 채 수녀원으로 잠적하였었다.

    그는 과연 훈장감인가?

    국민들은 그날 발생한 것이 북한의 남침이 아닌 5.16 쿠테타였음을 위안 삼아야 하나.

    임진왜란 당시 왜구에 의해 부산포가 함락되자 당시 조정대신들은 가솔들을 미리 개성방향에 옮겨둔 채 등청하고 퇴청하던 슬픈 이야기가 남아 있긴 하다.

    6.25 당시 부산항에 배를 띄워두고 거기에서 임시정부 청사로 출퇴근하던 당시 고위층들의 이야기도 슬프기만 하다.

    지금은 역사 속의 슬픈 지도층과는 크게 바뀌었다고 말들을 하리라.
    하지만 과연 국민들은 그 말을 믿어줄 것인가?

    무엇이 민주정치인지를 다시금 생각할 일이다.
    지금껏 민주를 들먹이는 자 민주를 희롱한 경우가 많았음이다.
    민주의 이름으로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피와 땀의 참 가치를 인식한다면 민주란 단어를 함부로 들먹이면 곤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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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꽃지기 2007-01-24 01:21:28
    현대를 흔히 CEO비즈니스시대라고들 한다.
    기업 등 조직의 운영상 그 수장의 역량과 역할이 결정적 비중을 차지함을 반영한 말일 것이리라.
    더불어 현재 조직의 수장이 가져야 할 역할 중에 강조되는 필수적 몇가지가 있다.
    비전과 분명한 목표의 제시,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 및 세부 실천전략의 수립, 구성원의 자발적 노력을 위한 동기 부여 등등이 그것이리라.
    헌데 놀랍게도 역대 대통령 중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한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두고라도 역대 대통령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했는지를 비교해 보면 그 답은 어느 경제지표의 비교보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하지 않을 것인가.

    개인의 치부에 몰입했던 것으로 객관적으로도 잘 알려진 전, 노 두 대통령이 있다. 또한 대통령 퇴임 당시 국내 어느 재벌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보도를 한 일부 언론을 아직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 않고 있는 YS가 있다.
    그 수많은 대선과 총선을 치루고도 아직도 지금껏 축재한 막대한 정치자금으로 국내외 언론에서 입초사에 오르내리고 있음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DJ도 있다.

    조용히 생각해 볼 일이다. 역대 대통령 각인들은 재임 시절 과연 무엇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추구했었던가를.
    누가 국리민복을 추구했고 또 누가 자신의 이익을 도모했던가를.

    답은 결코 어렵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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