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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는 친일파였다.!!
Korea, Republic o 민주주의가좋다 1 552 2007-01-23 03:26:31
[Letter from Athens] 노무현 정권 과거사 정리가 어려운 이유

하영식 redian@redian.org

얼마 전에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동학교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나 자신도 이전에 쓴 글에서 동학문제를 거론하면서 '조병갑'이란 이름을 거론한 적 있었기 때문에 조기숙 전 수석이 조병갑의 증손녀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계속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친일파 논쟁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친일파 후예들

몇 년 전, 신기남 의원, 이미경 의원의 부친들은 모두 일제시대에 헌병대 출신으로 밝혀져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 있다. 그리고 김희선 의원의 부친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의 특무경찰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측에 의해 제기돼왔다.

물론 조선일보의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지만 이 신문의 보도내용에 대해 김희선 의원 측에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 대부분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권 인사들의 족보를 뒷조사하는 조선일보의 의도는 명백하다. 친일파 인사들이나 자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진흙탕 속에서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일제시대 당시에는 모두 진흙탕에 빠져 있었다는 논리를 은근히 퍼뜨리면서 친일파 논란을 피해가려는 의도이다.

외국에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시 신기남 의원의 부친이 일제시대에 헌병오장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을 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연로하신 독립운동가를 직접 만나 당시의 헌병오장이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는 말문이 막혔던지 아예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 주체 정치권에는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한다면 과거사 청산의 주체가 정치권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정치권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잠시 거론했다가 덮어버리는 관행을 반복해왔다. 참여정부에서도 과거사 문제는 이런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 2005년 8월 29일 열린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찬승(앞줄 가운데) 편찬위 상임부위원장이 선정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현재 과거사 청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사람을 들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실이 논란이 되는 비이성적인 일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공적과 다른 대통령들에 비한 월등한 선호도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박대통령의 개인사는 한반도 역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어쨌든 박대통령은 일본제국주의의 장교출신이기 때문에 친일파에 속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일제의 장교출신이 친일파가 아니면 누가 친일파에 속하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박정희 친일파는 논쟁 여지조차 없는 사실

1947년에 대구에서 일어났던 10.1항쟁을 연로한 세대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해방 후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민중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일제시대 때의 경찰과 군인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일하고 있었던 데 있었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오히려 일제의 주구노릇을 했던 군인들이나 경찰들이 버젓이 승진한 계급장을 달고서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민중들을 다시 탄압했던 것이다. 민중들의 분노는 바로 이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는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병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글줄이나 읽을 줄 알면 모두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했고 사회주의 사상을 신앙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불씨를 던져줬다.

조선이 망한 뒤,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은 이씨 왕조의 복원을 원하지 않았다. 일제의 군대를 불러들여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수십만의 농민들을 학살한 뒤 나라를 팔아넘긴 조선왕조로의 복귀를 단연코 거부했다.


▲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군



당연히 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체제를 꿈꾸었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에 유행했던 사회주의 세상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박정희 시대 때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직접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는 95% 이상의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물론 5%는 종교인들로 추정할 수 있다. 일제에 항거해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 경제 분야에 몰두하면서 진보운동과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경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면 고문과 구타를 시작했는데, 사상범이라면서 항상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 투옥되면 대부분은 열악한 수형환경으로 인해 80% 이상의 독립운동가들은 감옥에서 죽든지 아니면 출옥 후에는 병치레로 인해 죽어갔다.

내가 헌병오장에 대해 질의했던 연로한 독립운동가도 수형생활 중 동상을 얻어 다리를 절단할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살해했던 일을 주로 했던 고등계 형사들이나 일제헌병대의 헌병들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조선인들이었다. 바로 이들이 해방이 되면서 대한민국 군대의 장군이나 장교로, 경찰조직의 서장이나 간부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20년 전에 그렸던 민주화 세상은 아직 안 왔다

일제가 물러가면서 막다른 골목에서 사경을 헤매던 친일 잔재들을 구제해준 곳이 바로 미군정청이었다.

당시에 이들이 그렇게도 철저하게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했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주구가 돼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자신들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때문에 해방 후에는 재판절차도 없이 체포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잡아들인 빨갱이들은 모두 트럭에 싣고 어딘가에서 학살해서 묻었다. 최근 들어 학살 장소들이 발견되면서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의 가정은 파탄되고 자손들은 비참한 환경 속으로 내던져졌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일제의 주구들은 해방이 된 뒤에는 친미반공세력으로 변신해 남한사회의 주류로 다시 등장했다.

미국과 반공이 이들을 살린 것이다. 또한 이들의 자손들 대부분도 고등교육을 받은 뒤 사회의 상층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소위 민주화운동 출신이 중심이 돼 만들었다는 열린우리당에서까지 친일파의 직계자손들이 활개를 쳤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에서 친일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민주화는 단지 군부의 인사가 민간인으로 대체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잔재들이 청산되는 것도 민주화의 중요한 내용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의 민주화 문제도 과거사 청산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 나라에서 땅투기 정도야 범죄 축에 끼지도 못할 것이다. 당연히 '론스타 사건'처럼 국가의 관료들이 외국회사의 뇌물을 받고 국가의 부를 팔아넘긴 반민족적인 사건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2007년의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이면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수많은 학생들과 노동자. 농민들, 도시빈민들이 민주화투쟁을 하다 군부독재에 의해 죽어갔고 감옥으로 끌려가고 두들겨 맞았다.

민주화는 그렇게 싹이 텄다. 하지만 20년 전 우리가 꿈에도 그렸던 민주화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 당시에 바랐던 민주화가 이뤄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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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늘 2007-01-23 11:09:15
    이런글이 탈북자사이트에 실리는 게 적합한지 묻고싶군요. 가뜩이나 북한문제와 새삶으로 골치아픈데......
    독립운동가들중엔 우파도 있고 사회주의계열도 있었습니다. 상해임정엔 아무래도 우파가 주도적이었고, 전체적으론 다수가 우파입니다. 한때 일본군은 만주의 독립군수를 10만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대가 만주를 장악한 1930년대 중반이후엔 독립군세력이 크게 죽은 대신, 모택동의 유격대가 동포들사이에서도 조직되었습니다. 그 숫자가 크진 않았으나, 1945년 일본항복이후 팔로군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팔로군을 독립군으로 보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그들은 일단 모택동의 군대로 해방후 즉시 귀국을 못하고 장개석군대 패주시까지 중국내전에 참전했습니다. 상해임정이 돈이 어딨습니까? 장개석에 기대 사는거죠. 그래서 장개석이 보다 못해 수백명에 불과한 광복군을 국민당군대에 합류시켜 싸우자 하니, 김구 주석이 딱 거절햇습니다. 한 줌에 불과한데....그래 해방후 광복군이 미군수송선편으로 인천하에 귁구해 일본군 도락꾸(트럭)를 타고 경인가도를 지나 서울로 왔습니다. 우리군대가 온다고 감격에 겨운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왔는데, 기강엄정하고 삐까삐까한 일본군만 보다 남루한 군복에 쩔은 광복군을 보고 낙담천만이었습니다.
    한편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차례차레 제압한 미군은 자유로운 양키들답게 말레이지아 등 해방된 태평양지역을 자생적인 독립투사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온통 혼란과 무질서 도가니로 변했습니다.(지금 이라크) 통제가 안되자, 급기야 항복한 일본군을 다시 재무장시켜 치안유지에 들어가니 엄격한 일본군앞에 쥐죽은 듯 다시 평정해졌습니다. 1945년 8월15일 일본군이 항복했음에도 미군사령부는 조선주둔 일본군에게 미군진주시까진 치안을 유지하도록 명령을 내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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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늘 2007-01-23 11:47:29
    이승만정부나 미군정이나 문제는 당시 남한에 사람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미군정보장교는 워싱톤으로 보고서에서 이나라엔 시골역장 맡을 인재조차 구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수만대 전투기를 잃었는데, 그 제작공장이 조선에도 몇 개 있었습니다. 기술자는 모두 일본인인데다 패망직전 모두 일본으로 뜯어가 버릴 정도로 조선인은 우민화되었습니다. 경성제국대학 졸업해도 취직은 어려웠습니다. 만주국 공무원 정도.....일본군 장교?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회유하기 위해 구한말부터 일본육사에 한 해 수명씩 입학시켰는데, 3.1운동 등 독립운동이 거세지자, 1920년대부턴 그나마 거의 안 받았습니다. 대륙침략이 노골화되고 조선인들도 징병대상이 되자, 당연히 다시 입교를 시켰는데, 주로 만주군 군관학교였고, 일본육사는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패망직전 일본육사 한 기가 2천명이 넘었다는데, 그 중 조선출신은 10명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군에 참여한 만주군, 일본군장교출신이 사관생도 다 포함해서 100여명 정도입니다. 625직전 국군이 10만인데 필요한 장교숫자가 얼마냐? 그리고 대부분 대위이하 초급장교출신들입니다. 조선출신에게 연대장, 사단장 마구 맡긴다? 일본애들이 예나제나 얼마나 소심한 족속인데.....건국에 다급한 이승만이나 돌아서면 천황도 봐주는 실리의 양키나 얼마안되는 일제치하 공무원들과 인재들을 그냥 등용한 겁니다. 문제는 625가 터지자 광복군은 정규군경험이 거의 없는 반면, 일본군 장교출신이나 심지어 사병출신들도 두각을 나타낸 겁니다. 산속에 유격대출신을 대대장으로 쓰긴 어렵지만, 지금도 군대에서 돌아가는 걸 본 병장출신은 소양교육시키면 중대장, 대대장 올리기 수월합니다. 덕분으로 625초기 지리멸렬한 국군은 잘 버텨댔습니다.
    박정희 등 일본출신들이 건국후 일본천황에 충성햇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급니다. 다들 식민지굴욕에 치를 떨엇습니다. 기껏해야 일본군 초급장교들, 망국의 젊은이들을 일제앞잡이로 몰아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평양출신이고 만주군대위 출신인 백선엽장군에게 당신이 일본군이냐 국군이냐고 물어보면 답은 뻔합니다. 625만 아니었으면 전공도 없이 건군에 참여하고 50년대에 옷벗었을 사람들입니다.
    친일파란 일본에 나라를 넘긴 이완용같은 자들, 일본에 붙어 조선인들의 고혈을 빨고, 권력을 누리고 치부한 자들, 독립투사들을 악의적으로 고문한 자들 등입니다. 나머진 단순부역자로 망국의 아픔일 뿐입니다. 단지 그들이 한번쯤은 사죄햇어야 했는데, 그래서 요즘 수년간 친일파 때려잡기를 한심하다 싶으면서도 지켜봤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어 수많은 북한 공산당원들과 관료들을 김정일과 한통속으로 몰아 다 처단하면 됩니까? 설사 무력통일이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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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다른생각 2007-01-23 12:39:06
    제목과 내용이 좀 다르네요. 그래서 박통이 뭔 친일을 했다구요? 대구10.1항쟁과 항일독립군이 어쨋다구요? 박통의 친일행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샅샅이 뒤져 봤지만, "그가 일군장교였다"는 것 이상을 찾지 못한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식의 도배는 결코 여론을 호도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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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장산 2007-01-23 13:50:38
    이 글을 쓰신 분의 저의가 무었입니까?
    박정희를 꼭 폄하해 보고 싶다는 말입니까 ?
    귀하의 소속은 노무현파, 김대중파, 김정일파 중 어느 파 소속인가요?
    박정희는 군인이 되고싶어 일본군대에 입대해서 군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꼭찝어서 이렇다할 친일행위를 한 것은 없읍니다.
    왜정시대 교육받은 사람은 모두 친일파 입니까?
    그런 잣대로 잰다면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으로 독립하기전 대다수의 미국장교들이 영국에서 교육받았으므로 친영파로 배척받아야 되지요.
    미국은 영국에서 군사교육을 배운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전쟁을 이끌었읍니다.
    일본도 명치유신때 많은 장교가 영국에 가서 해군교육과 해운기술을 전수받았지만 2차 대전때 영국과 전쟁을 했지요 .일본도 영국에서 교육받은 장교들을 친영파로 배척하지 않았읍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쇠약할 대는 선진국가에서 군사 교육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실용주의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도 직원들로 하여금 일본 소니그룹에 가서 전자기술을 배우도록 사정하며 매달린 것도 친일행위로 매도되어야 합니까?
    아직도 우리나라는 적성국가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현재 러시아에 가서 우주로겥 과학기술을 필요하면 배워야 합니다.
    나라가 강해지기 전까지는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친일이니 친러니 하고 매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박정희 등의 장교들이 그당시 일본에서 군사기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디서 배울 수가 있었읍니까?
    왜정시대 당시 미국, 영국,독일은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군입대의 기회도 주지 않았고 중국군은 미약한 군사기술로 일본에게 연전연패하는 실력이었으니까요.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군사지식등 여러가지 배운 것은 역사적 사실이므로 잘배웠다 못배웠다를 떠나 독립후에 긴요하게 활용할 수있었읍니다. 적국에 배운 기술이므로 기술 자체까지
    배척해서는 안되지요. 우리나라는 일찌기 갑신정변의 주역 고균 김옥균의
    주장처럼 일본의 명치유신처럼 조선도 빨리 개화해서 서양문물을 배웠다면 이씨조선이 망하지도 않앗을 것입니다. 선각자 고균 김옥균선생이 일본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박정희처럼 비난받을 수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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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늘 2007-01-23 22:35:54
    당시 독립지사들은 보잘것 없는 장비와 자금을 갖고 수백만 일본군과 맞선 민족의 기개입니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지사로 김원봉, 원조 김일성 김경천 장군, 보천보전투의 김일성주석 외 많이 있습니다. 통일을 앞두고 모두 추모되고 후손도 추적되어 정부원호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그들 다수는 아주 순수한 사회주의자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판가름 난 마당에 북한 공산당 간부들도 변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자본주의 국가치고 각종 사회보장정책 등 사회주의요소를 안 도입한 나라가 어딨습니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용하면 서유럽 독일, 프랑스, 스웨덴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있습니다. 진화한다고 봐야 합니다. 북한 고위층, 고급장성들도 달러나 축재하고 퇴폐에 젖고 통일후 보복당하지 않을까 공연한 걱정말고 인민에게 최선을 다하고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된 건 체제지 개인이 아니잖습니까? 북한사회에서 배우고 지도력있는게 그들인데, 잘 준비하면 비슷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통일후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선거에 나가고....러시아, 중국이 개방한지 20년이 넘고, 북한도 초기 자본주의요소가 도입되고, 남북교류 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여간 통일은 가능한 남북 모두가 행복하게...인민들 좀 그만 때리고...그리고 북한은 미국을 만나려고 기를 쓰는데, 남북 모두 조선사람들은 왜 그리 빠다를 좋아하는지...정답은 김치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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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갱이갓뎀 2007-01-24 03:16:27
    어줍잖은 빨갱이 논리 가지고 민주주의 타령 지껄이며 박정희 친일파 만들기 하고 앉았는데 위 본문 내용중에 보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쨌든 박대통령은 일본제국주의의 장교출신이기 때문에 친일파에 속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일제의 장교출신이 친일파가 아니면 누가 친일파에 속하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거 뭔 개념 가지고 쓴건지 당췌 알수가 없다. 일본군 장교였으면 친일파인것이고 논쟁의 여지도 없는거라고?

    목숨을 걸고 빨갱이들과 싸워서 이 나라를 지켜낸 당시 우리 국군의 대다수 엘리트 군인이 일본육사출신이란걸 모르나 보군. 낫들고 호미들고 전쟁할래? 전술/전략을 이해하고 장비를 다룰줄 아는 군인이 있어야 전쟁을 할꺼아냐. 박정희가 친일파면 그분들 역시 친일의 굴레를 벗어날수 없는거고 너같은 놈들 역시 친일파가 세운 나라에서 밥얻어 처먹고 살고 있는거야. 알간?

    그리고 일본군 출신이 남한에만 있나? 북조선 공군은 아예 일본공군의 복사판이란걸 잘 모르나 보네. 북조선 공군의 초대 지휘관 20명 전원은 일본군 장교 또는 일본 나고야 항공학교에서 정예 훈련 받은 놈들이라구. 따라서 빨갱이들이 대남방송 할때 친일파가 세운나라라고 맨날 떠드는게 웃긴거야.

    김일성 개ㅅㅐ끼의 동생인 김영주는 일본군 헌병 출신인거 모르지? 그 외에도 북조선 관료의 다수가 일본군 출신 또는 친일 관료출신이란것 부터 공부 좀 하고 지껄이기 바란다. 일본군 장교가 친일파라는 개소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시고 국립묘지에 묻히신 우리의 호국영령들 이름에 먹칠을 하는 개소리라는걸 명심토록. 빨갱이스런 개소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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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er 2007-01-24 09:55:55
    미친눔아 김일성의 "친쏘" 는 왜 들추어내지않느냐?
    김일성의 "친중 " 은 또 어쩔테구?????????????? ㅁㅣ친 인간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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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퍽치기 2007-01-24 11:17:32
    선거철이 되었나 봅니다....선거철만 되면 국민이 우러르는 박정희를 깍아내려야 자신들이 돋보이고 표를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못된 인간들의 짖이조. 그런 놈들이 모여서 정치를 하니...제대로 될리도 될수도 없습니다. 절대 찍어주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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