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년들의 정신상태와 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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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청년들의 정신상태와 행동. 나는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고향을 떠나온지는 1년도 넘지않았지만 지금 나의 친구들은 어떤모습일까?!. 그길지않은 나날동안 나는 참으로 많은것이 변했다.. 외관적으로는 스타일이나 말씨 행동까지도 많이 변하여 전형적인 북한과남한사람들의 중간형태로써 즉 짬뽕이다. 스타일도 짬뽕이요.말투도 짬뽕이요.지금 완전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진화중이다.. 지금의 내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종종 가져보군한다.. 짧은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정장바지에 구두를신고 스포츠가방을 둘러메고 떠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샤기컷이라고하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왁스로 떡을 만들면서 찢어진 청바지에 목걸이를걸고 다닌다.. 내가 생각해봐도 웃음이 절로나오는 모습이다. 과연 1년전의 내가 이런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외관적으로 많이변해버린 내모습에 비해 정신상태나 사고수준은 거의 변한것이 없다.. 참 이상하고 요지경같은 일이 아닐수가없다... 지금의 스타일은 북한에가면 또다시 한두달내로 고칠수있는것이고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살수있는 땅이라 어쩔수가없겠지만 세계관이나 객관적인 사고가 그대로 변하지않은것은 먼가 문제가있는게아닐수없다. 지금도 여기 한국에 첫발을 내디디고 새삶을시작했을때의 방황을 잊을수가없다. 자유만있으면 무엇이든 다할수가있을것같고 그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자신심에 충만해있던 나에게 이 사회는 너무도 냉혹한 경쟁시대를 보여주었고 나보다 까마득히 위에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실망과 타락 자신심의 부족함을 심히 느꼈었다. 나는 이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고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때문에 사실 지금도 방황하고있다.. 나는 과연 어떤인간인가.?! 내가 무엇을 할수있고 무엇을 잘할수있으며 어떤방식으로 살아야 제대로된인생을 살수있을것인가.. 결국 내눈에 보이는 나의 모든것은 모두가 결함으로 콤플렉스로 안겨와 사실상 나를 무력화시켰고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던 내가 종당에 생각하고 결심한것이 일단 공부를 하자, 공부를 하면서 나의 앞길을 생각해보자..라는 간단하고 쉬운 결정이었다. 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맘도 편해졌고 그전과같은 신경과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내가 확실히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잘할수있을지 모른다.. 그냥 부닥치면서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나를 찿아갈것이다.. 이것이 여기 처음 정착한 나만의 생활방식이기도하다.. 처음 알수없는 외래어와 전부 영어로 장식된 네온싸인에 정신이 없어 자그마한 슈퍼마켓가기도 부담스러웠었다. 그무엇도 우리말로 쓰는것이 거의 없었고 외래어와 영어로 나는 벙어리처럼 물건을 들고 카운터앞으로가서 그냥내밀고 값도 물어보지않고 오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그것도 살면서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공부는 둘째치고 버스를 타거나 길거리를 걸을때 가게들의 네온싸인을 외우면서 다니는게 습관이 되었다. 아 저건 훼미리 마트 저건 바이더웨이 편의점 이런식으로 빠짐없이 물건도 읽고 간판도 읽고 하니 조금씩 말을 이해할수가 있었고 지금은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열공중이다..(사실 무슨소린지 모르면서 걍 앉아있는...) 그래도 변하지 않은것이 바로 나의 정신상태이며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어떤것이 어떻게 변하지않았느냐 라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패스하겠다. 사실 그건 나도 잘모르는 일이다. 어떤사고방식이 변하지않았는지 사회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하지않았는지 나도 딱히 모르겠다.. 그냥 변하지 않았다고 밖엔 말할수가 없는 나의 무식함에 다시 한번 탄복하면서.. 내가 살던곳은 평양이었다.. 주먹위주가 순위를 결정하는 소위 북한 놀새들의 무리에서 나는 친구들의 배경으로 늘 건방지게 살아왔었다.. 골격표본을 자랑하는 날씬한 몸매에 (강동원을 닮은)나?는 당시 주먹세계에서 알아주던 친구들의 덕분으로 당당하게 다닐수가 있었던것이다. 당시의 놀새들을 보면 분류가 있었는데 체육을 업으로하면서 살아가는 스포츠맨들과 당시 장사를 하면서 고리대금이나 골동품장사를하는 난봉꾼애들 대학가의 돈많은 애들이 주류였다. 스포츠맨들은 주먹을 알아줬고 장사를 하는 애들은 입담을 알아줬으며 돈많은 애들은 역쉬 돈을 알아줬다.. 그때 상당히 유행됬던 유머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말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난다. (물에빠지면 주머니부터 뜬다).(펄럭이는건 기발이 아니다) 뭔소린고 하니 결국 돈이 기본이라는 말이다.. 펄럭이는건 기발이 아니고 지페이고 물에빠지면 돈이 없는 주머니가 가벼워 그어느것보다도 먼저 떠오른다는 얘기로써 돈의 힘을 간단히 표현하는 말인것이다. 결국 돈으로 무엇이나 다할수있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있는것이다.. 북한에는 은행에 돈을 맏길수가없다.. 강제 저금이란것이 있어서 월급에서 매월 얼마씩 공제되는게 있긴하지만 그건 찿을수가없는 그런것이다. 거기다 자신이 번돈을 저금한다고 하면 그것은 강도에게 돈을쥐여주며 잠깐 봐달라고하는 식이다. 그러니 모든사람들이 옛날에말하던 뒤울안 살구나무밑의 오지 단지에 .... 즉 개인금고를 집의 장농이나 가구밑에 숨겨놓고 든든히 자물쇠를 잠그는것이다.. 그런데 어린 아들넘들은 이것을 용서치않고 술마신아버지가 취해서 잠든다음 키를 찿아들고 금고습격전을 벌린다. 금고를 열면 미화(달러)가 어느정도 쌓여있고 아버지는 내일아침 그걸 점검할것이다. 그러면 아들넘의 호주머니에서 (가달러)위조화페가 나오고 결국 진짜와 가짜가 바뀌어 아들넘은 몇칠동안 호화식당과 여자애들을 달고 시내를 누빈다.. 그러다 그것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아들넘은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며칠동안 벌을선후에야 겨우 용서받으며 그순간 금고의 키는 바뀌나 그것도 몇달갈수가없다.. 도둑한명을 10명장정이 못지킨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소리가아닐까?. 그리고 사회생활이나 대학생활을 하는 애들과 군대에간 애들간에는 상당한 격차가있는바 고등학교친구들도 몇년후 군에갔다온 친구들을 만나면 서먹서먹해지거나 결국 친구로써의 진정한의미를 상실할때가많다.. 당시 우리또래애들이 군대를 부르는말이 상당히 엽기적이었는데 그것이바로 (공산군)이다. 인민군대를 우리는 (공산군)이라고 불렀고 군인들은 (공산군 아저씨)라고 불렀다. 또 군인이 많은 지방에서는 군인들을 (토비)또는 (공비) 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즉 도둑질과 강도질을 잘해서 붙은 애명이라 보겠다. 그러나 이들도 어쩔수없는일. 영양실조에 걸리지않고 살아남으려면 그길밖엔 없는것을... 또 당시의 패션도 상당히 웃긴거라 말하지않을수가없다, 그때 가장유행이었던 드라마가 (가을동화) (겨울연가)였다. 여자애들은 그때 송승헌이나 배용준을(매력투성이)라고 불렀으며 당시 영상앨범들도 많이들어와 그것을 보는게 사회적 풍조로되었다.. 또 서울말씨가 유행으로 번져져 전화를 걸면 상당히 이상한 억양?(너무도 짬봉이라서 상당히 듣기가 부담스러운) 이 많이들렸다.. 당시 액션영화를 좋아하던 남자애들도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며칠밤을 새면서 드라마를 볼정도였으니 그인기가 과히 하늘을 찔렀다.. 친구의 생일이나 모임때 북한노래는 거의 듣을수가없었으며 남한의 발라드나 토로트가 널리 애창됐다.. 그때당시 나도 (애모)(존재의이유) 등 여러가지 남한노래를 불렀으며 지금도 즐겨듣는다.. (그러나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죽어도 안부른다..불렀다간 순간에 촌스러움의 극치가 되기에) 또 패션도 상당히 근사히 유행되어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입었던 외투스타일이 유행으로 되어 수많은 부모님들의 돈을 앗아갔다.. 여자애들은 달라붙는 쫄바지를 입고 다녔고 생머리를 하고싶어 난리도 아니었다. 그에 발맞춰 단속대가 조직됬는데 이들은 9시부터 6시까지 길거리단속을 다녔다.. 당시 청년동맹에있던 나는 그런 여자애들이 잡혀오면 간단히 대화하고 강제노동을 보내는 일을 맞고있었는데 참 웃긴건 나도 그드라마나 노래를 부르고 내위에 상급들도 거의 같은 수준이었던것이다.. 여자애들에게 목걸이 귀걸이를 회수하고 쫄바지를 입은체 진흙탕에서 일하게 만드는 그일은 내게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자칫하면 사회적인 내이미지에 타격을 줄수있어 나는 며칠후 그일을 그만두고말았다. 단속에 따른 대응법도 생겨 여자애들은 9시전에 출근했다가 6시 이후에야 퇴근길에 오르군했었다. 매직을 하고싶어 엄청 안달을 떨던 여동생을 보며 약을 올리던 그시절이 그립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하고싶어하는 그모든행동이 멋있고 세련되어보이는건 나도 마찬가지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긴외투에 가방을 메고 눈오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내모습을 상상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기도 하던 그때였다.. 생활총화시간이라고 하는 자아비판의 날을 겨우 뚱땡이로 넘기고 말씀전달이라고 하는 김정일의 개소리를 읽어주는시간이면 턱방아를 찧는건 모두 내나이또래 젊은애들이었다. 거기에 30대 후반까지도 속하기는 한다. 야회가 열리는 밤이면 감기에 걸겨 열이 불덩이 처럼 나다가도 벌떡일어나 뛰어나가고 6.25미제 반대투쟁의날과 같은 집회를 하는날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나가는 애들이 바로 젊은이들이었다. 앞에서는 (장백산 줄기줄기)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고 뒤에서는 (당신은 나의 남자여)(애모)를 부르는 애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문제는 결코 우리뿐이 아니였다. 남한노래를 부른다고 늘 나를탓하시던 우리 아빠도 사실 (애모) 이노래를 엄청좋아하셨다.. 결국 딱딱하고 격식화되고 강요적인 사상교육도 이제는 금이 가기 시작한것이다.. 젊은이들은 감성적으로 살기를 원했고 자기개성을 연출하며 자유스럽게 살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고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됬고 자기들을 억압한다는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표출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모든공포와 가난의 주범이라는것을 모를뿐,이세상에 자기들이 살고있는 북한과같은나라가 더는없다는것을 모를뿐,진정한 자유와 민주가 무엇인지 모를뿐이다.. 자기들이 얼마나 개돼지보다 못한 구속에서 사는지 세뇌된교육으로 인하여 자기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장애화가 됐는지 모를뿐 이들은 자유와 개성을 바라고있으며 또 하나하나 자기도 모르게 실천해가고있다. 그러나 이와반대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아직도 김정일의 건강을 바란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김정일을 우러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그 지옥같은 세상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실과 결여된 모든 거짓에 속아 고통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안스러움을 금할수가없다. 또 이렇게 말로밖엔 아무것도 할수없는 내처지가 한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기의 발밑에 얼마나 거대하고 무서운 반항이 잠재해있는지 모르고있다. 이들이 진실을 알고 자유를 알고 민주를 알게 된다면 그힘을 실로 강할것이며 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결코 그들이 무맥하고 무지해서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는것이아니다.. 그들이 혁명을 몰라서 그렇게 앉아서 당하고만있는것이 아니다. 철저히 세뇌된 교육과 공포정치로인하여 지금껏 유지되오고 버티고있는것이지만 그말로는 실로 얼마남지않았다.. 모두가 북한이 어떤곳인지 바로알필요가있다. 그 땅을 보면서 자유과 인권이 얼마나 귀중한지 또 어떻게 지켜야할지 새삼스러운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도 있다.. 다시 우리에게 그런 세상은 오지않을것이지만 그런세상을 만들려는 김정일의 발악을 수수방관할수도없다.. 우리가 친북세력을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북한과 같은 세상을 만들려는 김정일의 생각에 동조하는 그들의 행동이 분하고 원통해서이다.. 지금껏 굶어죽고 맞아죽고 수용소에서 비참이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이 우릴 보고있는것 같아서이다. 북한을 바로알자.! 그리고 절대로 그런 세상이 올수없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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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님과 같이 어느 정도 자유분방한 생각을 갖는 학생과 모범생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기억되시는지요 ?
감사합니다... 우리가원하는 그런날을 학수고대합니다...화잇팅!
저는 이북을 떠난지 10년 중국에서 절반 한국에서 절반 그렇게 십년세월 보냈네요
저는 깁은 산골에서 살다가 우연히 길이 되서 한국에 오게 되였지만 고향을 떠나올때만 하여도 세상을 전혀 몰랐습니다
소문에는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긂어죽는다고 하여도 저의 산골에서는 감자라도 흠쳐 연명을 하였기에 소문에 불과 한줄만 알았지요
단 이북에서 김일성이 .김정일이 아니면 나는 살수 없을 정도의 사고밖에는
고향을 떠나 시내에 들어서면서 긂어죽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은 단지 순수한 량민들이라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슬품을 목격하게 되였습니다
한국에 오기는하였지만 현재로썬 이북을 위해 저의들이 할수 있는 일이라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배워서 통일이 되면 고향에 무엇인가를 이루어 주고싶은 생각밖에는 할수있는 일이라곤 없더군요
단지 늘 자나깨나 이북은 언제야 변할가 싶은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는데
푸른바다님의 글을 보니 10년에 강산이 변한다고 이북도 예외는 아니네요
빨리 이북사람들도 세상을 알고 탈북을 하던가 아니면 내부 혁명이라도 일어나 사악한 프로독재자 김정일이정권을 무너뜨리고 새세상을 만들날이 과연 언제일지 희망이 다소 생기네요
다소 이북사람들의 사상동태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있다면 교활하게 자기를 위장하는 것만이 있습니다.
원칙대로 산다면 그가 누구든 한주일내로 긂어 죽어야 원칙이 강한 사람입니다.
월급으로 쌀 2 kg 사면 끝인 나라에서 원칙 지키면 굶어죽어야 하는데.. 그런 나라에 모범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도 사상적으로는 아직도 주체사상을 진심으로 믿는 학생들도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궁금했던겁니다.
어려서부터 몇천몇만번을 듣고 배웠지만 그것이 사상적 가치가 있는지도 의심이 갈정도입니다.
그무엇이나 다른것과 비교하면서 느낄때 상하를 판단할수있고 옳고그름을 판가름할수있는것인데 그들이 좋다고 하는 주체사상을 귀에못이 박히도록듣었지만 그무엇과도 비교해볼수가없었습니다..
결국 수만번을 듣었지만 진리란 의미 진실이란 의미 즉 머리속에 남을만한 그무엇도 없는것이죠.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그것을 개척하고 지키는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이것이 내가배운 주체사상의 한토막입니다.
사실 3살난 애도 말할수있는 사상아닌가요?.(제가좀 철학에 무식해서..)
그리고 회한님 사실 전 모범생이라는 개념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떤것이 모범생인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뜻이겠죠..
한국식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보기 시작하면 결국 끝없는 공허함과 허탈감만이 남으니.. 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답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회한 - 무명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한국 원주민]
이후에도 그냥 많이 올려주십시요.
이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살면서 저절로 터득합니다.
미흡하다면 그 주체사상의 방향을 공동체의 이익과 어떻게 일치시키고 조화시키느냐가 항상 선택으로 남지만요!
사실 북한의 실태를 많은분들이 아셔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저는생각합니다.
그나마 허접한 제글 보아주시면서 기뻐해주시고 힘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하고 그동안 많이 힘들어하셨던 또순이님께서 오랜만에 웃어주시니 정말로 저도 기쁩니다.
모든여러분들의 앞길에 행복만이 깃들기를 기도할게요..
대책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것 같네요. 뿐만 아니라 진보, 보수꼴통 여러분
들마저도 비슷합니다. 어쩌면 정부마저도 스스로 무슨 행위를 하는지
모를것입니다. 하여튼 그 요점이 뭐냐 하면 시간끌기입니다. 북한이
무너지지도 않고 개방되지도 않게 현상유지 하는 겁니다.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북쪽이 미국과 핵협상을 잘하여 미국이 북쪽을 공격
하거나 북쪽이 핵끌어안고 자폭하거나 하는 사건이 안일어나도록
최대한 북쪽에 경제적으로 협조합니다. 미사일 개발에 돈을 보태는줄
모른다? 아주 잘압니다. "정부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남과 북이 공존하기만을 바라는 겁니다.
"통일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존을 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북한 인민들의 인권은 남쪽사람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참으로 죄송하지만 남측은 좀더 분단되어있기를 원합니다.
돌맞을 소리입니다만 현실이 이렇습니다.
저는 몇명 비슷한 칭구들과 아사이맥주마시면서 (목화밭,당신은 모르실꺼야,등 )요런 (북한말버전-날라리곡.외곡<출처불명>)노래에 엉덩이춤을 추다가 비사회주의에 걸려서 2틀 난리 났었죠.~울엄마가 와서 일명 광명을 찾았죠~ㅋ바다님의 글속에 부류를 빌린다면 난 아마도 돈이 우선이라는 것을 안 부류인것 같네요.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돈을 좋아한답니다.
어쨋든 참 희한한 북한입니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것이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추는것이 사람의본능인데~
한국은 내가 뭘하던 윤리와 도덕만 지키면 별상관 없더만~
★그리고 윗분.대체적인 탈북자들은 현정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건 님이 그냥 이사이트 탈북자들의 글만 읽어서 그렇게 생각할겁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도 개중에는 있다는 것을
유념 해주세요.★
푸른 바다님 화이팅!!!
푸른바다님 앞길은 탄탄대로 에요. 조금만 지혜롭게 노력하면 ,,한국 사회가 아무리 냉정하구 틈이 없대두 우리 북한 속담에 못이 틈이 있어 들어가요? ㅋㅋ
그리고 누가 감히 바다님 까마득히 위에 있는데요.
바다님 아직 어린나이고 타구난 기질이 있고 또 < 장군님^^* 덕분에 !!ㅋㅋㅋ>한다면 한다는 불사조 같은 신념이있어 한국사회에서 성공은 층분해요.
너무 어린나이에 갖출건 다 갖추었으면서 뭔 겸손하긴,,,,
그리구 단순하게 생각 했다니 벌써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를 다 가졌는데요.
가장 어려울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거 보통사람은 못해요.
저두 물론 단순하게 생각 못해서 망친 일이 많어요.
(반말
현실태가 그러하다면 바로 일으키려는 노력은 하지 말자는건가요?
현정부가 얼마나 안이하거니와 이 부진한 대북정책에 대응하려 저분들은 노력하신다는 겁니다..
북에 인권을 한국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구요?
글쎄요..저도 토종 한국인이지만 님하곤 다르군요..
그래요..대다수 국민들이 무관심하고 있는건 사실이죠..
허나 북에 실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라 보죠..
저 또한 얼마전까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정부에서 내국의 사정만 보호하려고
공공연하게 북의 현실을 알리지 않는 태도가 국민들을 이렇게 만들었구요..
저두 그 언젠가 평양의 모습을 보곤 실 없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와..북한도 이제 살만한 곳이 되는건가?"
그건 외부를 향해 철저한 홍보를 하려는 김 개장군의 수작을 몰랐던거지요..
이 세상이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전 아직은 우리 민족이 그렇게 무심하고 안이한 민족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니 꼭 그럴거라 기대합니다..
북에서 외부 세계를 모르듯 우리도 북을 모를뿐...
좀 더 세상에 알려져 400만에 육박하는 아사한 인민들의 주검의 넋이라도 위로해 줘야 같은 민족으로써 그나마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요...
공존이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사람 대접받을 수 있고 언론의 자유가 있는..
그리고 책임하에 하고 싶은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독재없는 그런땅이 먼저 되어야 가능하겠지요..
통일이 싫다면 먼저 북측 내부 변화가 있어야만이 인권유린에 대한 손가락질 없이 공존이 잘 될 수도 있으련만...
너무 현실을 주시하며 그에 응하려 하는 것만이 대책이 아니라...
오늘도 비상태세를 이루며 서로를 겨누고 있는 우리가 공존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님께서 쓰신 글들이 요력을 갖고 원하시는 뜻을 이루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여기에 쓰시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다듬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또 공적으로 인정받고 오래갈 수 있도록 공인된 잡지에 투고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님의 글 실력도 부쩍 늘 것이고 또 소정의 원고료도 받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는게 더 좋은 방법이고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오니 생각이 있으시다면 연락 주십시오.
제 메일은 <a href=mailto:nkmans@hanmail.net>nkmans@hanmail.net</a> 입니다.